#105화
“수,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습니다.”
회의가 끝나자 태민이 식은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회담이 잘 끝나나 싶었더니.
처용이 나타나고.
지상에 강림한 성좌가 드러나고.
처용이 그 성좌에게 분노를 드러내며 올림포스에게 선전포고(?)를 했고.
양 측의 성좌가 협상(?)을 하고 어찌어찌 잘 마무리가 되었다.
좀 전에 일어났던 그 파란만장한 상황을 다시 상기하니 또 식은땀이 흘렀다.
“참……, 유진이와 같이 다니면서도 성좌에게 칼을 들이미는 놈은 처음 봤구먼.”
백호가 황당하게 웃으며 처용을 향해 말했다.
“이번에는 이 늙은이도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협회장 역시 앓는 소리를 하며 말했다.
그러자.
“이렇게라도 경고하지 않으면…….”
처용이 제시카와 메리가 나간 자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백 퍼센트 청룡을 노릴 테니까요.”
“확신하듯이 말씀하시는군요.”
“확신을 넘어서 진실입니다.”
협회장의 말에 처용이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했는데도 따로 대비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설마……, 이런 상황까지 갔는데도 청룡을 노릴까요?”
태민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성좌들은 세계를 지탱하는 존재들로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지 조금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후-.”
처용은 태민의 말에 포세이돈을 생각하며 대답했다.
“포세이돈은 힘에 미친 머저리 같은 성좌입니다. 아니 그는 생각하는 뇌가 없다고 봐도 됩니다.”
거대 성운에 소속된 대신을 향해 거침없이 욕을 내뱉는 처용을 보며 세 사람의 표정이 멍해졌다.
“주변에서 제지를 가한다 해도 분명 무모한 짓을 저지릅니다.”
“빨리 찾아야겠구먼.”
처용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한 백호가 대답했다.
방금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처용의 성좌는 대신인 정도가 아니라 거대 성운과 맞설 정도의 힘을 가진 신이었다.
그런 존재가 대놓고 경고를 했는데도 청룡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이거…… 신들끼리 전쟁이 일어날 수도.’
정말 심각한 상황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청룡의 은신처가 발견되는 순간 포세이돈은 분명 휘하 병력들을 이끌고 공격할 겁니다.”
“미치겠네.”
“다행히 제 성좌님이 직접 움직인 이상 시간을 더 벌 수는 있을 겁니다.”
처용이 백호의 말에 대답하며 진지하게 말했다.
“어떻게든 저희가 먼저 찾고 청룡 님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게 베스트겠네요.”
태민에 처용의 말에 진지하게 대답했다.
이게 가장 좋은 상황이었으니까.
“뭐, 여차하면 제가 포세이돈의 신전을 박살 내면 됩니다.”
신의 신전은 신과 병사, 신관과 원활한 연결을 위한 신호소와 같았다.
그런 곳이 완전히 무너진다면 강림과 강신, 화신체를 만드는 것에 문제가 발생한다.
“……시, 신전을?”
백호가 황당한 표정으로 처용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협회장과 태민 역시 황당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제가 그들에게 전한 경고는 빈말이 아닙니다만?”
“…….”
백호가 볼 때 그 말대로 처용은 여차하면 신전을 무너뜨릴 것 같았다.
자신 역시 올림포스에 쌓인 게 많고 화도 많이 났지만.
처용은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언가 달랐다.
그는 후폭풍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리고 신전을 무너뜨린다는 터무니없는 짓도 정말로 가능할 것 같았다.
“우선…… 세 번째 S급 헌터를 수색하는데 더 박차를 가해야겠습니다.”
태민의 말에 백호와 협회장이 무언으로 긍정했다.
그를 먼저 찾는다면 처용이 신전을 무너뜨릴 일도, 신들이 전쟁을 벌이는 일도 없을 테니까.
“생각 없이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이니까요.”
처용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지만.
“최악의 상황에는 신전을 무너뜨린다는 말 아닌가?”
백호가 얼굴을 쓸며 처용의 말에 대답했다.
“하하.”
처용이 웃음으로 긍정했다.
***
호텔을 먼저 나온 처용이 좀 전에 전달받은 아테나의 말을 생각했다.
‘대화를 하고 싶다라…….’
사실 처용이 무력까지 드러내며 티케를 압박한 이유는 현재 아테나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함도 있었다.
형제들에게 완전히 배신당하고 동료가 되어 같이 싸울 때의 그녀는 믿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녀가 배신당하기 전이고 애초에 아테나는 정이 많은 신이었으니까.
정의로운 그녀가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올림포스의 이득을 위해, 형제들을 위해 행동할 수도 있었다.
그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기에 제시카와 티케를 몰아붙인 것이었다.
“후-.”
처용이 생각을 정리하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과연 그녀가 여래와의 대화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가 기다려졌다.
가능하면…… 그녀와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테나가 세상을 위함이 아닌 정에 이기지 못해 형제들을 택한다면 어쩔 수 없었다.
올림포스 전체를 말살하는 수밖에…….
처용이 각오를 다질 때.
“저기…… 요?”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울리며 누군가가 다가왔다.
“……?”
처용이 고개를 돌리자 놀랍게도 메리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냥 아무 데나 가자니까요. 메리. ……당신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마주한 듯 놀란 표정을 짓는 제시카도 보였다.
그녀는 타국에 왔으면 신중하게 맛집을 골라 가야 한다는 메리에게 시달리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메리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달려가는 모습에 따라온 것이었다.
그곳에 처용이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
“더 볼일이라도 남았습니까?”
처용이 메리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묻자,
“메리랑 제시카가 회담 전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거든요.”
“…….”
그래서? 라는 표정으로 처용이 침묵했다.
“맛집 좀 소개해 주시지 않을래요?”
……그걸 왜 나한테 묻는데?
처용은 이 말이 나오려는 걸 삼키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뭐 하는 상황인가? 싶은 황당함에 뭐라 말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밥이라도 사 주시면 나중에 사례할게요!”
메리가 장난스럽게 두 손을 모으며 처용에게 부탁했다.
그러자.
“메리, 그냥 아무 데나 가죠. 실례했습니다.”
제시카가 창피한 듯 처용에게 고개를 숙이며 메리를 잡았다.
그때.
“적당한 곳이 있긴 합니다.”
침묵을 지키던 처용이 입을 열었다.
“따라오시죠.”
“……?”
전혀 예상하지 못한 처용의 말에 제시카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처용을 응시했다.
“히히, 빨리 가자. 제시카.”
메리가 즐거운 웃음을 지으며 제시카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제시카를 메리가 데리고 처용을 따라왔다.
처용은 그 둘을, 특히 제시카를 향해 찰나의 순간 눈짓하고는 다시 앞장서 나아갔다.
메리의 부탁을 들어준 건 그저 제시카와 대화를 나눠볼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회담장에서는 메리, 그녀 안에 있는 티케와 주로 마주했으니까.
“이게 뭐 하는 거예요. 메리!?”
제시카가 자신의 손을 잡고 처용을 따라가는 메리에게 말했다.
“무려 한국의 두 번째 S급 헌터가 데려가는 곳이야. 맛이 없을 리가 없잖아.”
메리가 제시카에게 조용히 속삭임과 동시에.
‘그리고 저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기회잖아?’
제시카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웃음을 짓는 메리를 본 제시카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메리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특히, 관심이 생긴 대상에 대해 알아볼 기회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지금처럼 그녀가 ‘온전히 메리’인 상태라면 더더욱.
이윽고 처용이 발걸음을 멈춘 곳은.
[77계 치킨 - 강남본점]
처용이 주기적으로 방문해 대량으로 치킨을 포장해가는 곳이었다.
처용이 가게에 들어서자.
“어서 오십시오!”
식당 사장이 직접 나와 인사를 건네고 주문을 받았다.
“평소처럼 준비해 드릴까요?”
“그거랑 세 사람이 먹을 만큼 따로 주문하겠습니다.”
뒤따라온 일행을 눈짓하며 처용이 주문을 마치자 사장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치킨이 맛있다는 건 들어본 적 있어. 이번 기회에 먹게 될 줄이야. 히히.”
자리에 앉은 메리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적어도 치킨이 맛이 없다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처용은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제시카를 잠시 눈짓했다.
메리에 의해 끌려온 제시카는 뒤늦게 처용이 왜 호의를 보였는지 궁금한 눈치였다.
“나한테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데?”
처용이 제시카의 시선을 마주하며 묻자.
“그렇긴 합니다만?”
제시카가 표정을 굳히며 말할 때.
“메리는 궁금한 거 있어!”
메리가 처용에게 물었다.
“여기에서 함부로 물어보는 건-.”
제시카는 그런 메리를 말리려 했다.
지금 일행이 앉은 장소는 룸 형식으로 분리되어 있긴 해도.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오픈된 장소였으니까.
그때.
-탁!
처용이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한 번 두드리자.
-우우웅!
무형의 마나가 퍼지며 처용과 제시카, 메리가 있는 테이블을 감쌌다.
마나를 빽빽하게 중첩해 주변에 퍼트린 것이었다.
이 안에서 하는 대화가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함이었다.
“와…… 스킬도 아니고 마나만을 이렇게 다룰 줄이야?”
처용이 무엇을 했는지 알아본 메리가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제시카 역시 처용이 스킬을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놀란 듯 보였다.
“성좌가 너무 자주 감탄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 메리 안에는 티케가 없어. 퇴근했거든.”
메리의 말을 들은 처용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신관이 회사 사무실도 아니고 퇴근?”
처용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함과 동시에 미륵의 말을 떠올렸다.
-흥미롭구나. 두 인격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으니.
‘신관이면서 신인 상태라…….’
처용이 기억을 더듬으며 생각할 때.
“히히, 재밌는 표현이네? 이중인격이라고 하면 되려나?”
메리의 말을 들은 처용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둘이 하나이자, 하나가 둘, 메리랑 티케는 친구니까 가능해.”
“인간과 성좌가 친구가 된다라…… 힘들 텐데?”
메리의 말에 처용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너한테도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
“…….”
처용은 메리의 말에 침묵했다.
본인은 힘들다고 말했지만…….
마음만 통한다면 서로 친구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회귀 전, 처용에게는 인간인 친구들보다 인간이 아닌 친구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오크, 엘프, 수인 등 이종족 뿐 아니라 성좌들까지 있었으니까.
“이런 걸 나한테 말해줘도 되는 건가?”
처용은 메리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메리한테 호의를 보여줬으니까.”
“……그렇군.”
메리의 말에 대답함과 동시에 처용은 한 가지를 더 파악할 수 있었다.
“교단에 올림포스의 간자가 있을 줄이야.”
처용의 말에 메리도 제시카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엇…… 어떻게?”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외부인은 성자와 성역의 사제 중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그저 단순한 소거법이었다.
협회의 사람들은 아니라고 본다면.
자신이 두 번째 S급 헌터라는 사실을 아는 자는 성좌와 그와 같이 있던 사제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생각해 볼 때.
이들은 뱀파이어에 대해서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사령관 아저씨보다 더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네?”
그녀가 말하는 사령관 아저씨는 커맨더를 뜻하는 말이었다.
“한 가지만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마치, 고민을 하듯 침묵하고 있던 제시카가 처용을 보며 질문했다.
처용이 어깨를 으쓱이자.
“판데모니움의 악마들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제시카가 고심 끝내 질문한 것은 바로 악마에 관한 것이었다.
“의외네?”
처용은 정말 의외라는 듯 말했다.
“신력에 대해서 물어볼 줄 알았는데.”
헌터로서 다른 이들보다 앞서 나아가기 위한 단서가 코앞에 있었다.
신에게 빌린 힘 신성력이 아닌 고유의 신력을 가진 헌터가 눈앞에 있었으니까.
그러나.
“저희가 싸워야 하는 상대이니까요.”
제시카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너희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그녀에 머릿속에는 회담장에서 처용이 말한 것들이 맴돌고 있었다.
마인들을 이끄는 악의 성좌들, 악마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아테나의 신관으로서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었고. 티케에게 들은 것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저 악마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적이라는 것, 그 정도뿐이었다.
헌터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괴물들과 싸우는 존재.
때문에 헌터로서 맞서야 하는 상대에 대해 알고 싶었다.
제시카의 마음가짐을 알아본 처용은 미소를 지었다.
‘아테나…… 신관을 허투루 뽑은 건 아니었구나.’
처용은 제시카의 말에 회귀 전, 동료였던 이를 향해 속으로 말했다.
잠시 고민한 처용은 악마들에 대한 적당한 정보들을 말하려 입을 열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