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103화 (103/726)

#103화

국회의사당 회의가 끝나고 하루 뒤, 인천공항.

“한국이라는 나라에는 처음 와보네요.”

“이 나라에는 맛있는 게 많다고 해요. 제시카.”

각각 짐가방을 든 가벼운 옷차림의 제시카와 메리가 한국에 입국했다.

이전, 길드원들을 잔뜩 데리고 입국한 모건과는 다르게 수행원들이 많지 않았다.

기자들의 눈을 피하려고 최대한 조용히 이동한 것도 있었지만.

제시카는 여럿이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모건이나 다른 길드장들처럼 과시용으로는 더더욱.

“그리고…… 이번 기회에 또 다른 S급 헌터를 미리 확인할 수 있잖아요.”

메리가 제시카를 향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올림포스 길드의 정보력으로 파악한 특급 정보 중 하나.

바로 한국에서 커맨더 다음으로 S급 헌터가 나타났다는 소식이었다.

심지어 그가 상당히 강하다는 것까지도…….

“어쩌면 청룡의 신관도요…….”

“…….”

제시카는 마지막에 물은 메리의 말에는 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항상 제시카에게 편하게 말하는 메리였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존대를 하고 있었다.

제시카 역시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메리와 제시카를 포함한 올림포스의 헌터들이 안내를 받으며 공항을 나오자.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올림포스 길드장님.”

협회에서 귀빈을 모실 때 사용하는 리무진과 태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시겠습니다.”

제시카와 메리를 태운 리무진이 협회가 운영하는 호텔로 향했다.

차량에 탑승한 메리가 옆자리에 앉은 제시카를 조심스럽게 눈짓하며 스킬을 발동했다.

‘제시카.’

그녀가 마음속으로 제시카를 부르자.

‘무슨 일 있습니까?’

제시카가 계속 정면을 응시한 채 메리에게 답변했다.

메리가 사용한 스킬은 ‘전령의 귓속말’.

일정 범위에 있는 대상과 속으로 대화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서로의 의지를 속으로 전달하는 전음과 같은 스킬.

‘누군가가 우릴 따라오고 있어.’

메리가 창밖을 구경하는 척하며, 제시카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제가 눈치채기 힘들 정도의 실력이라면 손가락에 꼽습니다.’

제시카가 머릿속에 여러 헌터들을 상정하며 대답했다.

‘메리도 전혀 모르겠어……, 이 정도로 존재감이 사라진 은신 스킬은 처음 봐.’

메리가 감탄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아마 우릴 추적하는 게 아니었다면 전혀 몰랐을 거야.’

‘……당신의 독특한 스킬이 아니었다면 저 역시 몰랐겠지요.’

제시카가 메리의 스킬을 언급하며 대답했다.

메리만이 가진 독특한 스킬인 ‘뒤통수의 눈’.

그 능력 중 하나는 누군가가 몰래 일정 시간 자신을 따라오면 알려주는 스킬이었다.

그러나 굳이 이 스킬이 아니어도 메리의 감지 범위는 넓은 편이었다.

올림포스의 정보를 담당하는 나이키 윙 길드장.

그녀의 추적과 감지 능력은 올림포스 길드장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이었다.

그런 그녀가 뒤통수의 눈이 아니었다면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추적자가 따라붙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저쪽에서도 메리가 알아챘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아.’

메리의 말에 제시카가 슬그머니 창밖에 시선을 두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빌딩들과 차량, 사람들.

시야 안에 지나가는 것들을 빠르게 하나하나 훑었지만, 특이사항은 없었다.

‘혹시…… 그자일까요?’

제시카가 공항에서 메리가 말했던 인물을 언급했다.

한국에 나타난 두 번째 S급 헌터.

제시카는 혹시 그자가 아닐까 짐작하고 있었다.

‘모르겠어. 만나면 알 수 있을 거 같은데…….’

제시카의 말에 메리가 자신이 없는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 여인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리무진이 호텔에 도착했다.

수행원들을 제외하고 제시카와 메리만이 태민의 안내를 받으며 호텔 최상층으로 향하자.

“반갑습니다. 올림포스 총 길드장님.”

미리 기다리고 있던 협회장이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며 인사를 건넸다.

각성자끼리는 시스템의 영향으로 언어가 달라도 말이 통하지만.

협회장은 각성자가 아니기에 영어를 사용한 것이었다.

“반갑습니다. 한국 헌터 협회장님.”

제시카는 협회장에게 인사를 건네고 그의 측면에 자리한 백호를 바라봤다.

“오랜만입니다. 권백호 헌터.”

“뭐…… 오랜만이구먼.”

백호는 제시카의 인사를 심드렁하게 받았다.

한국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올림포스 자체에 좋지 않은 감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있었던 일은 들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제시카가 백호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건넸다.

“총 길드장이라는 양반의 머리가 너무 가벼운 거 아니오?”

“제 잘못이니까요…….”

“하…….”

백호는 제시카의 말을 듣고는 마음속에 담아둔 감정들을 내뱉듯 깊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아랫놈들의 병신짓이 윗사람만의 잘못은 아니거늘…… 미안합니다.”

백호는 자신이 예민하게 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를 건넸다.

이전 소말리아의 일 때문에 커맨더와 올림포스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질 뻔한 적이 있었다.

-미안합니다. 커맨더.

그 당시 제시카는 완만한 해결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었던 사람이었다.

아무리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면 그녀가 커맨더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이런 짓을 저지른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저는 이번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협회장이 제시카의 말에 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우선……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제시카는 메리를 통해서 대략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신전과 성좌까지 연관된 문제였으니까.

협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태민에게 눈짓했다.

태민이 준비된 서류와 증거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모든 설명이 끝나자.

“하아…….”

제시카는 밀려오는 두통과 현기증에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 정도일 줄이야…….”

머리를 부여잡은 제시카가 협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보여주신 서류들, 복사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대로 가져가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협회장의 수락에 메리가 확장 마법이 걸려 있는 가방을 열어 서류들을 챙겼다.

“큰 문제와 관련이 있는 만큼 사안이 심각합니다.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협회장은 완만하게 흘러간 회담에 만족하며 미소를 지었다.

올림포스 총 길드장이라는 이름의 무게 때문이었는지, 회담이 답답하게 흘러가리라 생각했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제시카는 협조적이고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회담이 잘 마무리되나 싶었을 때.

“저기…….”

메리가 방 측면, 스탠드가 있는 방향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메리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저분은 언제까지 저기 있으실 건가요?”

갑작스럽게 꺼낸 메리의 말에 제시카와 협회장, 태민이 의문을 품었고.

백호는 메리를 향해 눈을 가늘게 좁혔다.

-혹시 모르니 제가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회담 전, 처용이 백호에게 다가와 했었던 말이었다.

‘나도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건만…….’

백호는 메리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곳을 하나하나 자세히 훑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의 두 번째 S급 헌터는 수줍음이 많으신가 봐요?”

“!!”

“!!”

“…….”

메리의 말에 협회장과 태민이 표정 관리에 실패하고 백호 역시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때.

“아무래도…….”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닌 낮은 음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올림포스의 정보를 담당하는 길드장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군.”

메리는 그 목소리를 듣고는 제시카를 향해 브이를 그리며 웃어 보였다.

사실 그녀는 회담 내내 자신을 추적하는 사람을 찾는 데 몰두했었다.

몇 시간 동안 계속 집중하면서…….

결국에는 그를 찾긴 했지만, 속으로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전 세계의 최상위 헌터들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감지가 어려운 사람은 없었으니까.

“잘됐네.”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스스스.

스탠드 밑 그림자가 꿈틀거리더니 사람 형채를 취하며 솟아 올라왔다.

“내가 직접 물어보고 싶은 것들도 있었으니까.”

어두운 그림자가 벗겨지고 나타난 것은 처용이었다.

‘동화경까지 사용했는데 알아차릴 줄이야.’

처용이 메리의 감지 능력을 감탄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동시에 뱀파이어들을 숨기고 자신이 직접 온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기왕 이렇게 제시카를 직접 마주한 마당에 그녀를 직접 파악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자신에 대해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권력을 믿고 나대는 길드들은 힘을 보여줘야만 함부로 건들지 않으니까.

그림자에서 일어난 처용이 다가오자.

“당신이…… 한국의 두 번째 S급 헌터로군요.”

제시카가 처용을 평가해보듯 뚫어져라 관찰하며 말을 걸었다.

처용은 그 말에 작은 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왜, 청룡의 신관이 아니라서 실망했나?”

“……!”

“……!”

처용의 대답에 이번엔 제시카와 메리가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동시에 협회 측 사람들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대놓고 직접 물어볼 줄은 몰랐으니까.

“내가 청룡의 신관이었으면, 이 자리에서 날 노렸을 텐데. 그렇지?”

“메, 메리랑 제시카는 아니야! 그 정보도 최근에 얕은 수준으로 파악했다고!”

당황한 메리가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말했다.

올림포스의 길드 중 몇몇이 한국의 신수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최근 터진 일들에 의해 자세히 알아볼 시간이 없었다.

최근에 입수한 정보이기도 했으니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림포스 성좌들의 총 회의에서 아직 그 일을 판단 중이었다.

청룡을 확보하는 것이 이득인지 아닌지를…….

그때.

-탁.

처용이 아공간을 열어 청룡과 관련된 서류를 꺼내 책상 앞에 던졌다.

“날 파악할 정도로 실력이 있는 올림포스 정보 길드장이 이런 대외비를 몰랐다?”

제시카와 메리가 빠르게 서류를 넘기며 확인하자.

“데이비드…….”

또다시 생겨난 두통에 제시카가 이마를 부여잡으며 오션 엠퍼러 길드장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이, 이렇게 체계적으로 노렸을 줄은 정말 몰랐어!”

메리는 정말 억울한 듯 대답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인 산하 길드가 있을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

“참 대단해, 성좌가 성좌를 사냥할 생각을 하고 말이야. 역시 피로 역사를 세긴 올림포스다워.”

처용이 비아냥을 섞어 말하자 제시카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 누구도 자신 앞에서 대놓고 성좌를 모욕하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적당히 하시죠. 성좌님들을 모욕하는 건-.”

“미안한데.”

처용이 제시카의 말을 끊으며 말을 이었다.

“난 내가 인정한 신격만을 신으로 존중하는 사람이거든.”

“당신!”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남자의 말을 그냥 넘길 수 없다고 판단한 제시카가 자신의 힘을 일부 드러냈다.

제시카에게서 금빛이 섞인 녹색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그녀가 보인 힘은 마나가 아닌 신성력.

올림포스 성운의 임시 수장, 아테나의 신관으로서 가진 그녀의 신성력이었다.

그녀의 신성력을 본 백호는 협회장과 태민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마나를 뿜어 보호막처럼 둘렀고.

태민은 처용이 건네주었던 아티팩트의 보호막을 발동했다.

그때.

“아테나의 신관답군, 신력에 가까운 신성력이긴 하네.”

-쿠구구!

처용이 그런 제시카를 응시하며 붉은 아우라가 일렁이는 황금빛 신력을 뿜어냈다.

“……이건!?”

“신력? 어떻게?”

제시카와 메리는 처용이 가진 힘이 무엇인지 단번에 파악했다.

처용이 보인 힘은 성좌가 신관에게 가공하여 내려준 힘, 신성력이 아니었다.

신격을 가진 성좌만이 발휘할 수 있는 고유의 힘 신력(神力)이었다.

“큭…… 도대체 어떻게?”

제시카가 처용이 내뿜는 신력의 압박을 견디며 침음성을 흘렸다.

처용의 신력에 팽팽하게 맞서던 제시카의 신성력이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그때.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뷰어 포스!”

메리가 처용을 향해 눈을 빛내며 스킬을 발동했다.

뷰어 포스는 마주한 대상의 정보를 일부분이라도 파악할 수 있는 스킬.

그 능력을 통해 처용의 정체를 파악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남의 정보를 함부로 보는 건 좋지 않아.”

메리가 무엇을 하려는지 단번에 파악한 처용은 그녀의 스킬을 가볍게 막아냈다.

처용이 계승 받은 권능 중 하나인 통찰의 눈은 관철의 대신, 미륵의 권능.

통찰의 눈을 발동하고 있는 동안은 대상의 정보를 파악하려는 종류의 스킬은 통하지 않았다.

모건 때는 그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통찰의 눈에 둘러진 장막을 거둔 것이었지만.

눈앞의 올림포스 정보 길드장에게 자신의 정보를 보여서 좋을 건 없었다.

“익……!”

정보를 보는 데 실패한 메리가 침음성을 흘릴 때.

처용은 역으로 그녀의 정보를 얻기 위해 통찰의 눈을 발동했다.

그런데.

[■■]

[■급 : ■■…….]

[칭■ : ■■의■, ■■…….]

[특■ : ■■■■…….]

[■■ : ■■■…….]

“……!”

통찰의 눈을 발동한 처용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