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102화 (102/726)

#102화

신전 정화가 시작되고 세계에 또 한 번 커다란 뉴스가 터졌다.

-전쟁신의 신전에 저주가 퍼진 이유는 마인들과 손을 잡았기 때문!?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 대외비 유출. 마인들과 불법 실험한 흔적?

-길드 내부자의 발언 “헌터들의 장기를 적출했다.”

이 모든 것은 올림포스 총 길드장 제시카가 다른 길드와 협업하여 공개수사를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발단으로 한 국가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워 글래디에이터 한국 지부에서 시작됬다?

-모건 길드장 실종되기 전 한국에 방문.

-박철민 한국 지부장, 현재 마인들과의 불법 거래로 협회 지하 감옥에 수감 중. 인터뷰는 불가능.

“일이 예상보다 더욱 커졌는데?”

강원도와 서울이 이어지는 전철역인 경춘선, 그중 하나인 상봉역 옥상.

그 난간에 걸터앉은 처용이 핸드폰 기사를 보며 중얼거렸다.

처용은 오늘 역시 청룡의 신관을 수색하는 시간을 가졌고.

역을 다 둘러본 후, 핸드폰의 기사를 통해 신전의 상황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라이트닝 워리어는 예상 범위였고 죽음의 신관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막냇동생인 죽음의 신관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그녀의 언니와 오빠까지 합세할 줄은 몰랐다.

풍요의 신관은 그렇다 쳐도, 문제는 태양의 신관.

그는 권백호와 커맨더 만큼이나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인물이었다.

그 이유는 그가 가진 무력이 커맨더 못지않게 강하다는 것도 있지만, 그가 모시는 성좌 때문이었다.

태양신 라.

헬리오폴리스의 대신이자 태양을 상징하는 성좌 중 가장 강력한 신.

솔직히 라에 비하면 같은 태양신인 올림포스의 아폴론은 애송이 수준이었다.

애초에 아폴론은 제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자리를 물려받은, 따지자면 2세대 성좌였고.

라는 태초신에 의해 탄생한 선천적 신격, 즉 세월의 경험 자체가 차원이 다른 신이었다.

그리고 회귀 전…… 악의 종주, 조크 크타니드에 의해 가장 첫 번째로 살해당한 대신이었다.

‘좋은 상황인지, 안 좋은 상황인지 잘 모르겠군.’

처용의 눈이 핸드폰 속 한 기사를 응시하고 있었다.

-태양의 신관 “파라오 길드장으로서 이 일을 그냥 묵과할 수 없다.”

기사의 내용은 그가 제시카의 합동 조사 요청을 받아들이고 이 일에 신경을 쓰겠다는 내용이었다.

처용이 볼 때, 그가 이 일에 개입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있어 장단점이 모두 있었다.

좋은 점은 태양의 신관이 강력하고 정의로운 헌터이니 만큼.

그가 움직인다는 것만으로도 마인들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가 합류한다면 마인들을 돕는 배신자들 역시 그의 눈치를 보며 활동이 위축될 것이다.

그러나 활동을 조심해야 하는 것은 처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전쟁신의 신전에 저주를 퍼트린 것은 처용이었으니까.

만약, 태양의 신관이 신전에 저주를 퍼트린 것이 처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럴 가능성은 절대로 없었지만, 머릿속으로 가정은 해 보았다.

‘날 죽일 듯이 추적하겠지.’

지금은 무사히 넘어갔지만, 앞으로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태양의 신관은 악신들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필요한 헌터.

그와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좋지 않았다.

처용이 기사를 확인하며 생각하고 있을 때.

“다녀왔습니다. 용님.”

류마가 그림자에서 솟아 나와 고개를 숙이며 처용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직, 소식은 없지?”

처용이 청룡의 신관을 찾았는지 묻자.

“죄송합니다.”

류마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큰 은혜를 입은 그에게 도움이 되어야 했지만.

임무를 잘 수행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마음에 걸렸다.

“아니야, 모든 일이 쉽게 풀리지만은 않는 법이니까.”

처용이 핸드폰을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류마, 내일은 내가 부르기 전까지는 일족들과 함께 태룡전에 있어라.”

“이유를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이 나라에…… 까다로운 놈들이 방문하거든.”

내일은 제시카가 한국에 방문하는 날이었다.

원래는 더 뒤에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처용이 신전에 남긴 서류를 직접 확인하고 그 출처가 한국이라는 것을 알자 일정을 앞당긴 것이었다.

올림포스 총 길드장, 제시카 로스차일드.

그녀가 정확히 무슨 생각으로 움직이는 것인지 모르는 이상 뱀파이어들을 함부로 노출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아무리 뱀파이어들이 은신과 잠입에 뛰어나다 해도.

무려 아테나의 신관을 상대로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마친 처용이 류마에게 한 가지를 더 물었다.

“회의가 언제 끝나는지 말해 주었나?”

곧장 내일 있을 제시카와의 회담 때문에 협회장과 의논하고 싶었지만.

협회장과 백호, 태민에 이어 협회 주요 인사들까지 모두 국회에 출석한 상태였다.

이번에 한국에서 발생한 참사 때문이었다.

“저녁 7시쯤 끝난다고 들었습니다.”

“시간 맞춰서 찾아가면 되겠네.”

자리에서 일어난 처용이 게이트를 열고 태룡전으로 향했다.

***

국회의사당.

각 기관의 의원들이 모여 국가의 중대사를 논하는 장소.

그곳에 각 기관을 대표하는 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차분하고 격식 있는 회의가 진행되어야 하는 장소였지만.

“그걸 마음대로 결정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언제나 개싸움이 벌어지는 장소라는 것을…….

이제는 일반 시민들도 잘 아는 곳이었다.

“협회 마음대로 영장을 발부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2:8 가르마로 머리를 넘긴 의원 중 하나가 단상을 짚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수사기관에 알리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다니!

-당신들이 검찰보다 윗선인 줄 알아!?

-지금 당신이 하는 짓은 독재야 독재!

처음 소리쳤던 의원 주변에서 그를 옹호하는 듯한 목소리들이 울렸다.

그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한국 헌터 협회장, 황제일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

“이 사건을 논하기 전에 뭐 좀 물어봅시다. 의원님들.”

중앙 단상에 선 협회장이 마이크에 입을 데고 차분하고 강경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들 계십니까?”

협회장의 질문에 웅성거리는 소음만 들릴 뿐.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어 마이크로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박택진 의원님은 아십니까?”

협회장은 자신에게 영장을 논하며 말했던 의원을 부르며 질문했다.

“헌터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 행위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정확히 짚어 드리겠습니다.”

지목당한 박택진 의원이 대답하자 협회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한민국 헌터들의 약점을 잡고 착취 및 불법 장기매매, 인신매매, 불법…….”

협회장의 입에서 범죄 목록들이 흘러나오자 의원들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리고.

“마인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의 위험까지 보이는 불법실험과 거래.”

협회장이 말을 끝마치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의원들은 협회가 초기에 정보를 일부 통제했기에 많이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뉴스와 현재 돌아가는 상황, 정황 증거들만 알고 있었다.

협회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범죄들은 차마 한국에서 일어났다고는 보기 힘든 일들이었다.

합죽이가 된 의원들을 한 번 둘러본 협회장이 말을 이었다.

“이런 일이 발생하여 영장을 발부한 것인데, 이게 권력 남용에 독재입니까?”

“……증거는 있습니까?”

의원 중 하나가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고 협회장에게 질문했다.

그 말에 협회장이 태민을 눈짓했다.

태민이 협회장이 있던 단상 위로 올라왔다.

“한국 헌터 협회 던전조사과 과장 김태민입니다.”

그가 라이센스를 활성화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탐정의 서고-증거출납.”

태민이 스킬을 발동하여 증거 서류들을 하나둘 꺼내었다.

“저는 탐정이라는 비전투 클래스 헌터입니다.”

태민이 자신의 클래스와 스킬을 설명하며 증거 서류들을 빔 프로젝터 위에 올려놓았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국회의사당 대형 스크린에 태민이 올려놓은 서류들이 공개되었다.

스크린을 바라보는 의원들의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일부는 눈을 감고 다시 뜨기를 반복하며 제 눈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양이 너무 많고 아직 협회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들도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끝으로 태민이 단상에서 물러났고 다시 협회장이 자리했다.

의원들이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각, 세력들끼리 쑥덕대고 있을 때.

“저 증거들이 사실입니까?”

박택진 의원이 인상을 구긴 채 협회장에게 질문했다.

“사실입니다.”

“어떤 루트로 얻은 증거들입니까?”

협회장의 말에 박택진이 곧장 다시 질문했다.

그의 눈빛에는 의심과 현실부정, 그리고…… 불안감이 일부 보였다.

“고작 저 서류가 끝입니까? 어디서 누가 가져온-”

박택진이 침묵하는 협회장을 향해 기회를 잡았다는 듯 말하자.

“고작?”

국회의사당 내부 전체를 울릴 정도로 낮고 강직한 목소리가 박택진의 말을 끊었다.

“저 서류들 제가 가져온 것들입니다만?”

오른쪽 끝 단상에 팔짱을 끼고 앉아 있던 백호가 박택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어떻게 구한 겁니까? 권백호 헌터.”

백호의 흉흉한 시선에 침을 삼킨 박택진이 침착한 목소리를 유지하며 질문했다.

“워 글래디에이터 한국지부를 데스나이트 세 마리가 공격했었습니다.”

질문을 받은 백호는 담담한 목소리로 경기도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현장 정리를 도와주다가 발견한 것입니다. 반항하던 박철민은 그 자리에서 체포된 거고.”

백호가 설명을 끝내자 다시 서로가 웅성거리는 소음이 회의장을 울렸다.

“길드 본부가 몬스터의 공격에 무너진다는 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박택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딴지를 거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으로서 여러 길드 본부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마치 요새처럼 보일 정도로 단단한 보안을 자랑하는 길드 본부들.

본부에 체류하는 헌터들 역시 몬스터의 공격에는 끄떡없다고 말했었다.

박택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의원들도 있었다.

이들 모두는 헌터가 아닌 일반인.

몬스터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만 있을 뿐, 전문으로 알지는 못하는 이들이었다.

본인들 스스로는 잘 알고 있다며 자부하지만…….

“A급 몬스터 데스나이트.”

백호가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박택진과 그의 말에 동조하는 의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데스나이트가 돌연 국회의사당에 나타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의원들이 백호의 말에 집중했다.

“그 몬스터가 여기 있는 의원님들을 모두 죽이는 데 몇 초가 걸리는지 아십니까?”

백호는 자신의 말에 집중하는 의원들을 향해.

“1초.”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의원들은 백호의 말을 듣고는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검을 휘두를 필요도 없지요. 놈이 ‘데스 버스트’라는 스킬만 써도 이 장소가!”

-탁. 탁.

“사라지니까.”

백호가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강하게 말했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강한, 최상위 A급 헌터의 진심 어린 경고였다.

몬스터를 얕보지 말라는…….

국회의사당 내부에 잠시 침묵이 돌고 있을 때.

“의원님들께서 걱정하시는 바를 잘 알고 있습니다.”

협회장이 의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올림포스의 심기를 거스르는 게 두려운 것이겠지요?”

그 말이 정곡이었는지 대다수의 의원들이 고개를 돌리거나 헛기침을 하는 듯 반응을 보였다.

특히.

“함부로 건들어서 좋을 게 없는 건 사실입니다.”

계속 딴지를 걸었던 박택진이 협회장의 물음에 대답했다.

협회장은 박택진을 잠시 응시하고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황제일은 피해를 받은 한국 국민들과 헌터들을 위해 이번만큼은 참고 넘어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협회장의 말에 대다수의 의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올림포스를 적으로 돌리는 한이 있더라도…….”

마이크 스피커로 마지막 말이 울리자 의원들이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넘어서 크게 구겨졌다.

“그 무슨 무모한!”

-탕!

특히, 박택진 의원이 단상을 치고 일어나며 크게 외쳤다.

“당신 미쳤습니-.”

“이미 WHU에는 이번 사건에 대해 알린 상태입니다.”

“……그걸 왜! 허락도 없이 독단적으로-.”

“박택진 의원님.”

계속 딴지를 거는 박택진을 향한 협회장의 눈동자가 잠시나마 노기로 일렁였다.

“의원님께선 WHU 소속입니까?”

“……아닙니다.”

“WHU 소속도 아닌 의원님께서 무슨 자격으로 허락을 논합니까?”

한국 헌터 협회장이자 WHU 소속, 황제일의 일갈에 박택진의 입이 다물렸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분했는지 박택진의 이를 갈며 자리에 앉았다.

‘젠장! 어떻게든 수사를 늦추거나 방해해야 하는데…….’

그가 협회장에게 하나하나 딴지를 거는 이유는 거금과 귀한 아티팩트를 준 누군가의 부탁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대업’을 완수하는 동안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 놓으라고…….

‘저 망할 꼰대는 왜 조용한거야!’

박택진은 짜증이 일렁이는 표정으로 계속 침묵하고 있는 한 의원을 눈짓했다.

명품을 즐겨 입으며 항상 자식 자랑만 주구장창 했던 고위 국회의원.

그러나 지금의 그는 평범한 정장에 정리하지 않은 듯 산발이 된 머리를 하고 있었다.

다크서클이 가득한 눈매에 표정 역시 커다란 무언가를 잃은 살짝 멍해 보였다.

그는…… 항상 협회장과 대립했었던 이원춘이었다.

폐인이 되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그가 돌연 마이크를 잡았다.

“……나 이원춘은 한국 헌터 협회장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그의 말에 국회의사당 내부가 술렁였다.

특히, 박택진은 놀람을 넘어서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원춘이 미치지 않고서야 저런 말을 꺼낼 리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의 예상대로 이원춘은 현재 미쳐가는 상태였다.

하나뿐인 아들의 죽음.

그것도 그냥 죽은 것이 아닌 끔찍한 몬스터가 된 상태로 맞이한 죽음.

그건 그가 개인적인 루트를 통해서 직접 알아본 사실이었다.

끔찍하게 변이되어 죽어버린 아들의 모습 역시 사진으로나마 직접 확인했었다.

이원춘은 그 이후로 좋아하던 명품과 사치를 모두 내팽개친 채 미쳐가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하나의 감정만큼은 여전히 가슴속에서 불타올랐다.

아들을 죽게 만든 올림포스.

그들을 향한 증오가 마구 샘솟았다.

지금껏 아들인 이진태를 위해서라도, 자신을 위해서라도 올림포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었다.

그런데 길드는 그런 자신의 아들을 막 다루었고.

다치게 만들었으며.

종국에는 끔찍한 모습으로 사망하게 했다.

“의외군요. 의원님께서는 항상 제 의견에 반대를 하셨었는데.”

협회장이 그런 이원춘을 향해 떠보듯 말하자.

“한국에서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데 당연히 조사해야지요. 암!”

이원춘은 분노를 숨기지 않은 목소리로 강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협회장은 그런 이원춘의 모습이 조금은 안타까워 보였지만.

그의 미련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가 지금껏 저질러 온 악행에 대한 업보(業報)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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