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99화 (99/726)

#099화

한편, 처용이 뱀파이어들을 구하고 태민과 이야기할 때.

백호는 협회 조사단원들과 태양 마차 길드 정문 앞에 서 있었다.

“비켜.”

백호가 경비를 서는 헌터들을 향해 경고하듯 강하게 요구하자.

“안됩니다!”

경비를 서는 헌터들은 비키라는 백호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거 안 보이나?”

백호가 험악한 표정으로 손에 쥐어진 영장을 들어 보였다.

[조사허가 승인서]

“눈깔이 장식이 아니라면 공무집행 방해하지 말고 비켜.”

“그…….”

경비 헌터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길드원 외에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길드장의 명령’이 있었다.

태양 마차 길드원으로서 신관이 직통으로 내린 명령은 절대적으로 우선해야 했다.

하지만, 영장을 들고 온 백호의 요구 역시 함부로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경비를 서는 헌터들이 서로 눈짓하며 식은땀을 흘릴 때.

“무슨 일입니까?”

소란을 감지하고 길드 본부 안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지부장님, 그게…….”

본부 안에서 나온 사람은 태양 마차 길드의 한국 지부장, 최민식이었다.

경비를 서는 헌터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죄송하지만, 외부인을 들이지 말라는 길드장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최민식이 백호에게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고 있겠지?”

백호가 사나운 눈빛으로 최민식을 응시하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최민식이 무표정하게 대답하자.

“알고 있는데도, 나를 막아서!?

-우우웅!

마치 음공처럼 퍼져 나간 괴성에 주변이 진동하듯 울렸다.

“으윽!”

“크윽!”

그 영향으로 경비를 서던 헌터들은 물론 주변에서 구경하던 이들까지 귀를 막으며 주저앉았다.

백호가 무력을 보이며 강하게 나가는 이유는 다양했다.

첫 번째는 진심 어린 분노였다.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음에도 자기 길드를 우선시하는 놈들에 대한 분노.

두 번째는.

-최대한 강하게 나가십시오. 놈들도 잘못한 걸 알고 있는 이상, 제지할 명분은 없습니다.

태민이 백호에게 어떤 일을 부탁하며 건넨 말 때문이었다.

“……이런다고 좋을 건 없습니다.”

백호에게 대답하는 최민식의 무표정이 깨졌고 일그러져 있었다.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가 저지른 일들은 유감입니다. 하지만.”

“유감으로 생각하는 놈들이 보이는 태도가 지금 이따구냐?”

백호가 최민식의 말을 자르며 입을 열었다.

“워 글래디에이터 헌터들은 받고 외부인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

“마치, 무언가를 감추려는 것처럼?”

“그 무슨…… 억지입니까!”

백호의 말에 최민식이 표정을 구기며 대답했다.

“억지? 억지는 지금 네놈들이 하는 짓이겠지!”

최민식의 대답에 백호가 분노를 드러내며 말했다.

“한국에서 일어난 참사를 정당하게 ‘조사’하러 온 나를 왜 막는 거냐!”

백호가 최민식에게 영장을 들어 보여주었다.

“아무리 영장이 있어도 길드장님의 명령을 거스를 순 없습니다.”

최민식은 백호의 영장을 보고도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조사하는데 한국 협회보다 길드가 우선시 된다라……?”

-파지지지!

백호의 몸에서 전류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백호가 겉옷을 집어 던지며 입을 열었다.

“앞을 막는 태양 마차 길드원 전원을 공무집행 방해로 체포한다.”

백호가 뒤에 서 있는 협회 조사단원들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내가 전부 쓸어버릴 테니 협회에 호송 차량과 지원을 요청해라.”

“알겠습니다.”

백호의 명령에 뒤의 있던 협회 헌터들이 뒤로 물러나며 대답했다.

-파지지직!

동시에 백호에게서 흘러나오는 전류가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

그 모습에 최민식이 놀란 채 뒤로 물러났다.

백호의 태도와 분노한 듯한 표정을 볼 때, 그는 분명 진심이었다.

지금 본부 안에 길드원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해서 그들과 자신만으로는 백호를 막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의 한국 지부장을 포함한 A급 헌터 다섯이 5분 만에 나가떨어졌으니까.

“자,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최민식이 다급하게 외쳤다.

“길드장님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

“어, 어쩔 수 없습니다. 저희 입장도 입장인지라…… 부탁입니다.”

-치지지지.

최민식의 말에 백호에게서 흘러나오는 전류가 사그라들었다.

“오래 걸리거나 시간을 끄는 것이라 판단되면…….”

백호가 최민식을 응시하며 낮게 읊조렸다.

“그땐 각오 단단히 하는 것이 좋을 거야.”

그 말에 최민식이 빠르게 길드 본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급하게 통신기로 온 최민식이 헤리스에게 상황을 전달하자.

-놈이 들어와서 좋을 게 없잖아!

헤리스는 최민식에게 절대 안 된다며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러자.

“저희가 권백호를 어떻게 막습니까? 그는 진짜로 지부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최민식이 울 듯한 표정으로 헤리스에게 말했다.

“길드장님, 권백호를 막아서면 정말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겁니다!”

-하아…….

헤라스가 이마를 부여잡으며 잠시 고민했다.

권백호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A급 헌터들 중에서도 한 손가락에 꼽히는 강자.

그가 무력으로 밀고 들어온다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명분도 있는 상황.

-권백호와 직접 이야기해 보겠다.

그 말에 최민식이 밖으로 나가 헤리스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백호만이 길드 본부 안으로 들어와 응접실로 향했다.

-반갑습니다. 권백호 헌터.

응접실 통신기를 통해 백호와 마주한 헤리스가 인사를 건넸다.

-태양 마차 길드장 헤리스입니다.

“나에 대해서는 뭐 잘 알 테고.”

백호는 헤리스의 인사를 대충 받으며 바로 본론을 이야기했다.

“왜 나를 막은 거요?”

그 모습에 헤리스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지만.

-……전쟁신 신전에 대한 일 때문에,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 수습을 태양 마차 길드가 맡았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길드의 대외비, 소속 헌터들, 내부 보안까지 전부 재점검할 필요가 있어서 막은 겁니다.

현재 올림포스에서 발생한 상황에 맞게 그럴듯한 이유였다.

“……그 대외비 중에는 한국에서 일어난 참사와 관련 있는 게 있지요?”

백호가 워 글래디에이터 한국지부에서 발견한 대외비를 언급하며 말했다.

“나는 그 일을 정식으로 조사하러 온 겁니다.”

헤리스가 잘 보이도록 영장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비단 여기 태양 마차 길드뿐 만이 아닌, 한국에 있는 올림포스 길드 전체가 대상입니다.”

-아무리 협회의 영장이라고 해도 신관인 내가 거부합니다.

헤리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신들을 모시는 각 길드의 신관들은 WHU 소속의 협회와 동등한 취급을 받는다.

때문에 지금처럼 마찰이 일어났을 경우, WHU 총회의를 통해 의견을 조율해야 했다.

헤리스는 그것을 알기에 신관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시간을 벌 생각이었다.

중요한 일을 마칠 때까지…….

그러나.

“그러면 강제로 집행하지요.”

백호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뭐, 뭐라고!?

헤리스는 설마 백호가 신관인 자신의 말조차 무시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기에 당황했다.

-나는 태양신을 모시는 신관입니다.

백호는 자신의 직위를 과시하는 헤리스를 보며 미간을 구겼다.

“신관이면 잘 알고 있겠지, 유진이와 내가 소말리아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백호의 입에서 더는 존대가 나오지 않았다.

“한국에서 그때와 같은 일이 일어났고 말이야?”

-지금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

“유진이가 이렇게 전해 달라더군.”

백호가 헤리스의 말을 자르며 커맨더를 언급했다.

“소말리아 때처럼, 이번에도 올림포스가 방해한다면.”

소말리아 사건 당시 커맨더를 가로막았던 S급 헌터들 중에는 올림포스의 신관들도 있었다.

-……방해한다면?

헤리스가 백호의 말에 기세를 꺾지 않고 대답하자.

“올림포스 본부에 ‘뉴 클리어(Nu Clear)’를 쏴 버리겠다고 하더군.”

백호가 씨익 웃음을 지으며 커맨더의 의지를 전했다.

그러자.

-……!!

“……!!”

헤리스도……, 뒤에서 지켜보던 최민식도 안색이 파래지며 말을 잇지 못했다.

뉴 클리어(Nu Clear).

커맨더가 소말리아를 쓸어버릴 당시 최초로 보여주었던 그의 결전기였다.

그 당시, 커맨더를 막기 위해 소말리아의 범죄자들이 모두 모였었고.

각종 불법 아티팩트를 꺼내며 방어선을 구축할 때였다.

커맨더는 그 방어선을 향해 싸늘한 눈빛을 보내며 스킬을 발동했다.

단 하나의 섬광.

그 빛이 소말리아의 방어선과 범죄자들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있던 자리, 아니 지형이 사라져 버렸고 지금은 바다가 되어 있었다.

세계 지도를 바꿔버릴 정도의 위력을 가진 스킬.

그것이 커맨더의 결전기, ‘뉴 클리어’였다.

-그…… 무슨!

헤리스는 머릿속으로 진지하게 전력을 계산해 보았다.

올림포스 본부는 신의 힘이 깃든 성지.

웬만한 대마법도 거뜬히 막아낼 수 있는 방어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커맨더의 결전기 만큼은 자신 있게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하기 힘들었다.

헤리스가 이를 악물고 분노에 떨며 고민할 때.

“……저희는 저항하지 않겠습니다.”

태양 마차 길드 한국 지부장, 최민식이 저항을 포기하고 조사를 받아들였다.

-네놈!

“길드장님, 커맨더님까지 자극한다면 일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집니다. 거기에…….”

최민식이 마치 헤리스를 달래듯 다급하게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상황에서 나름대로 현명한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길드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최민식은 태양 마차 길드의 지부장이기 전에 한국 사람이었다.

커맨더의 활약을 좋아하며 그를 존경하는 헌터 중 하나.

차마, 커맨더에게까지 거스르며 길드장의 명령, 아니 억지를 더 시행하기가 심적으로 힘들었다.

그리고 최민식은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가 저지른 짓들을 개인적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부장이라는 입장 때문에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 길드를 위해서도 지금 백호에게 협조하는 게 그나마 조용하고 평화롭게 끝나리라 판단했다.

최민식이 헤리스를 설득하자.

-길드의 제한 구역 만큼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인상을 크게 구기며 조사를 받아들였다.

“애초에 거긴 들어갈 생각도 없습니다.”

백호가 제한 구역은 관심도 없다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헤리스가 짜증이 솟구치는 듯 뒤돌아 나가는 모습으로 통신을 꺼 버리자.

“하아-.”

최민식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결정이 났으니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진작 이랬으면 얼마나 좋나?”

최민식은 백호의 말에 속으로 동의하며 침묵했다.

“우선, 워 글래디에이터 소속이었던 헌터들을 만나보고 어떻게 지내는지 직접 만나 봐야겠네.”

백호의 조사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검찰이 조사하듯 자료를 싹 털어가거나 강압적인 분위기의 조사가 아니었다.

그저 헌터들을 만나 길드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등 가벼운 조사였다.

길드 본부 입구에서 보였던 강하고 파괴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침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반응이 없군, 다행인가?’

백호가 왼손에 찬 시계를 만지작대며 주변을 슬쩍 둘러봤다.

그 후.

“다른 길드에도 가보고 며칠 뒤에 다시 올 겁니다.”

백호가 아직 만나지 못한 워 글래디에이터 소속이었던 다른 헌터들을 언급하며 말했다.

“그땐 막지 않겠습니다.”

최민식은 백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대답했다.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백호가 딱히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수상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길드 대외비가 있는 제한 구역에는 정말 관심도 없는 듯 보였다.

이윽고 조사가 끝난 백호가 길드 본부를 빠져나왔고 라이센스를 작동시켰다.

-태양 마차 X

그리고 라이센스의 통신 기능으로 태민에게 문자를 보냈다.

백호가 직접 협회 조사단을 이끌고 움직이는 이유는 태민의 부탁 때문이었다.

백호가 차고 있는 시계.

그 안에는 청룡의 비늘이 장착되어 있었다.

-세 번째 S급 헌터의 흔적이 가까워지면 비늘이 반응한다고 합니다.

태민이 청룡의 비늘을 이야기하며 백호에게 부탁한 것은 올림포스 소속 길드를 들쑤시는 것이었다.

백호의 역할은 바로 S급 헌터의 수색과 더불어 길드들을 방해하는 것.

그가 직접 영장을 들고 움직인다면, 무력으로도 명분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백호는 직접 조사하는 척하며 혹시 올림포스가 청룡의 신관과 접촉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대놓고 길드들을 방문하고 다닌다면, 그들의 은밀한 행동에 제약이 생기게 된다.

거기에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방문하는 것이기에 더욱 신경이 쓰일 것이다.

백호가 길드들의 시선을 잡고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전력으로 청룡의 신관을 찾는다.

혹시라도 올림포스가 이미 청룡의 신관을 확보했다면.

백호가 그 자리에서 그를 구출할 계획이었다.

이것이 태민이 고안한 방법.

협회는 일어날 법한 모든 상황을 준비하며 이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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