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97화 (97/726)

#097화

다음 날.

날이 밝자 처용은 곧장 루나와 류마를 이끌고 던전으로 향했다.

뒤틀린 유령 저택이라 불리는 던전.

게이트에 입장하자 폐허가 된 대형 저택 입구처럼 으스스한 분위기의 로비가 드러났다.

아주 오랜 시간 방치된 듯 낡은 벽지와 뜯어지고 부수어져 있는 가구들.

그리고.

-끼이이. 끼이이.

문이 삐거덕거리는 듯한 불길한 소음들.

마치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분위기였다.

“어때, 뭐가 있어?”

으스스한 분위기가 신경 쓰이지 않는 듯 처용이 태연하게 말했다.

처용의 말에 루나와 류마가 그림자 속에서 나왔다.

“……있어.”

“저도 느껴집니다.”

두 뱀파이어가 처용의 말에 대답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일단, 앞으로 가면서 찾아보자.”

“이쪽이야.”

처용의 말에 루나가 앞장서며 나아갔다.

로비를 지나 복도에 들어서자 색이 바래고 오래된 그림들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덤비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처용이 중얼거리며 복도를 나아가다 복도 중앙에 온 순간.

-키히히히.

-캬하하하.

벽에 걸린 그림들이 흉측하게 변하면서 유령이 튀어나왔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오금이 저려 자지러졌을 상황이었지만.

“명환부-여명의 등불.”

처용의 손에서 마치 가로등 전구처럼 밝은 빛을 내뿜는 구체가 만들어졌다.

-화아아!

어둠이 가라앉은 저택 내부에 명환의 빛이 퍼지자.

-꺄아아!

-케에에!

그림에서 튀어나온 유령들이 괴성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절반가량은 그 빛을 견디지 못한 채 소멸했고.

-사각. 서걱. 파사삭-

남은 유령들은 루나와 류마에 의해 빠르게 정리되었다.

복도를 벗어나자 마치 식당과 같은 분위기의 공간이 드러났다.

“파티홀인가?”

처용이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바닥에 떨어져 부수어져 있는 샹들리에.

다리가 부러져 주저앉아 있는 식탁.

벽에는 무기에 의한 손상의 흔적까지.

마치, 이 장소에서 격렬한 싸움을 한 것 같았다.

이곳은 태민이 미리 이야기했었던 말하는 언데드가 나타난 장소였다.

처용과 두 뱀파이어가 흩어져 수색을 시작하자.

“용님, 찾았습니다.”

류마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처용을 불렀다.

처용과 루나가 류마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피?”

류마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자세히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작은 핏방울이었다.

“뭔가 다른 건가?”

처용이 류마에게 질문했다.

이 던전 내부에는 류마가 보고 있는 핏방울 외에도 피의 흔적이 꽤 많이 있었으니까.

벽, 바닥, 찢어진 커튼에도 피가 얼룩져 있었다.

그러나.

“일족의 피야.”

루나가 바닥의 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처용이 바닥에 떨어져 퍼진 듯한 모양의 피를 자세히 관찰했다.

“누적 혈흔이네.”

중력의 작용으로 위에서 아래로 곧장 떨어져 내린 혈흔.

주로 코피를 흘릴 때나 옅게 베였을 때, 핏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생기는 혈흔이었다.

회귀 전, 추적에 특화된 동료와 마인의 뒤를 쫓을 때 배웠던 잡지식이었다.

“다친 것 같은데?”

처용이 피를 보며 그 당시 상황을 예측하듯 말했다.

뱀파이어는 피의 종족.

칼에 베인다 해도 절단이나 깊은 상처가 아니면 피가 잘 흐르지 않았다.

피가 흘렀다 해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다시 몸으로 되돌아갔다.

처용이 아는 한, 뱀파이어가 피의 흔적을 남기는 경우는 큰 부상을 입었을 때였다.

혹은, 이전의 류마처럼 저주에 당했거나…….

“찾을 수 있겠어?”

처용은 생각을 정리하고 두 뱀파이어에게 물었다.

이곳에 뱀파이어가 있다는 것은 확실해진 상황.

그를 찾으면 모든 의문이 해결될 것이다.

“이 피 덕분에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류마가 처용의 말에 대답하며 루나를 바라보았다.

류마의 시선을 받은 루나는 검지로 바닥에 떨어진 피를 찍어 입가로 가져갔다.

검지에 묻은 피가 가루처럼 부서지더니 루나에게 흘러 들어갔다.

“음…….”

루나는 집중하듯 눈을 감고 침음성을 냈다.

1분 정도 지나자.

-후우우.

루나의 몸에서 옅게 혈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쪽이야.”

루나의 말에 붉은 안개처럼 흘러나오는 혈기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처용과 류마가 앞장서 안내하는 루나의 뒤를 따랐다.

거슬리는 몬스터들을 빠르게 정리하며, 혈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쭉 나아가다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이곳이야.”

루나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수많은 책장이 나열된 서재였다.

“여기에서 흔적이 강하게 느껴지기는 하는데, 어디지?”

루나가 서재를 두리번거리며 말하자.

“흠…….”

통찰의 눈으로 서재를 둘러본 처용이 미소를 지었다.

“어디 있는지 알겠어.”

“찾으신 겁니까?”

류마가 반색을 표하며 말했다.

“똑똑하네, 던전의 환경을 이용할 줄도 알고.”

처용은 통찰의 눈을 계속 유지하며 책장 중 하나로 걸음을 옮겼다.

“이건가?”

책장에 꽃인 책들을 살펴보던 중 책 하나를 슬쩍 앞으로 빼내자.

-딸깍.

무언가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몇 개의 책을 더 빼내자.

-딸깍. 딸깍. 덜컥.

어떤 장치들이 맞물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쿵!

처용이 책을 빼낸 책장이 둘로 갈라졌다.

-끼이이익-

그리고 마치 문이 열리듯 책장이 좌우로 열리기 시작했다.

책장이 열린 안쪽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가지.”

처용과 두 뱀파이어가 아래로 내려가자, 마치 지하 감옥처럼 느껴지는 으스스한 공동이 드러났다.

그때.

“으윽! 와…… 왕녀님? 류마…… 백작님?”

지친 듯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고.

누더기 같은 로브를 뒤집어쓴 인영이 천장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나타났다.

“세피아 자작! 무사했었나?”

류마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두 분, 무사…… 하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로브를 뒤집어쓴 뱀파이어 세피아가 로브를 벗으며 대답했다.

로브 아래로 드러낸 그녀의 모습은 처참했다.

왼쪽 볼부터 턱 아래까지 찢어진 듯 길게 그어져 벌어진 흉터와.

몸 여기저기가 난자되고 불에 태워진 듯 심각한 상처가 많이 보였다.

마치 언데드라고 착각할 정도로.

[블라디카 제이 세피아]

[등급 : A급 자작]

[특징 : 고귀한 밤의 일족, 어둠 속성 마나의 축복을 받은 뱀파이어들의 귀족입니다.]

[현재 다수의 디버프를 받고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흉터의 저주.

-끊임없는 출혈의 저주.

.

.

[스킬 : 피의 손톱, 박쥐 소환, 그림자 습격…….]

‘마인들의 저주로 완전히 범벅이 되어 있네.’

통찰의 눈으로 세피아의 상태를 관찰한 처용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에게 걸린 다수의 디버프는 처용이 잘 알고 있는 마인들의 스킬이었다.

처용이 세피아를 보고 있을 때.

“자네 혼자인가?”

“안쪽……에 쿨럭! 생존한 일족이…… 있습니다. 커흑!”

세피아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말하는 도중 나온 기침에 피까지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지자.

“일단 치료부터 하지.”

처용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때.

“인간!?”

세피아가 놀란 듯 팔을 휘저으며 뒤로 크게 물러났다.

그러자.

“이분은 적이 아니네. 자작.”

류마가 세피아를 감싸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왜…… 인간하고?”

세피아가 의문을 담아 류마와 루나를 번갈아 봤다.

“내 서약자야.”

“……예?”

루나가 처용에 대해 간략하게 말하자 세피아가 이해하지 못한 듯 대답했다.

“하아- 류마, 그대로 잡고 있어.”

답답함을 느낀 처용이 류마에게 명령하고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모습에 세피아가 경계했지만.

“용님이 자네를 치료해 줄 걸세.”

믿음이 가득 담긴 류마의 말에 그를 쳐다봤다.

그때, 처용의 손에서 자비의 손길이 퍼져 나왔다.

신성한 황금빛이 세피아의 몸에 닿자.

-스스스.

흉해 보였던 얼굴의 상처와 부상의 흔적들이 회복되어갔다.

“이건, 신성력!? 어떻게……?”

세피아의 입에서 놀라움과 의문이 튀어나왔다.

처용의 손에서 뻗어 나온 기운이 신성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감았었다.

신성력은 어둠의 일족인 뱀파이어에게 있어 극독과 같은 힘.

특히, 지금처럼 부상을 입고 무력해진 상태에서 신성력을 마주한다?

그러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질 뿐이었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찬란한 황금빛의 신성력은 뱀파이어인 자신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자네처럼 당황했었지.”

류마가 그녀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저분은 평범한 신의 사제가 아니네.”

세피아는 류마의 말을 들으며 저항하지 않고 황금빛을 받아들였다.

본래라면 자신을 태워버렸어야 할 힘이 몸에 활력을 주고 있었다.

마치, 고통에 젖은 육체의 상처들과 지친 마음을 따듯하게 감싸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윽고 치료가 모두 끝나자.

“다행히 네가 걸렸던 저주는 없었어.”

“아, 정말 다행이군요.”

처용의 말에 류마가 크게 안심하며 대답했다.

모든 상처가 사라진 세피아가 고개를 들자 말끔해진 얼굴이 드러났다.

길게 늘어뜨린 금발에 뱀파이어 특유의 붉은 눈동자를 가진 미인이었다.

“어떻…….”

세피아는 처용을 향해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고개를 젓고는.

“……감사합니다.”

상처를 치료해 준 것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몸이 회복되면서 흐려진 정신도 맑아졌고 눈앞의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왕족인 루나와 피의 서약을 맺은 인간.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류마 백작이 그를 존중하는 모습.

뱀파이어를 치료하는 신성력까지…….

세피아가 처용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

“고마워.”

루나가 처용에게 감사를 전하고 세피아 앞으로 다가왔다.

“세피아, 다른 일족들은?”

“……안쪽에 있습니다.”

루나의 말에 상념에서 벗어난 세피아가 대답했다.

“어떻게 된 건가?”

류마가 앞장서 안내하는 세피아에게 근황을 물었다.

“류즈 백작님이…… 놈들의 시선을 끌어준 덕분에…… 죄송합니다.”

세피아가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하자.

“류즈…….”

류마가 눈을 감으며 침울한 분위기로 읊조렸다.

“류즈는 류마의 동생이야.”

루나가 침울해진 목소리로 처용에게 류즈가 누구인지 말해 주었다.

“정말 유감이야.”

처용은 가족을 잃은 류마의 심정을 잘 알고 있기에 그에게 위로를 전했다.

“……그녀는 귀족으로서 일족을 지킨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류마는 진정하려는 듯 떨리는 목소리를 바로잡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주먹을 굳게 쥐는 것으로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난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이 류마를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마르크는 반드시 죽여 주마.”

“감사합니다. 용님.”

류마가 처용에게 감사를 전할 때.

일행이 공동의 안쪽에 도착했다.

“으음…….”

처용이 공동 안쪽의 광경을 바라보며 인상을 구기고 침음성을 냈다.

-으어…….

-으윽…….

그곳에는 이십여 명 정도의 뱀파이어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세피아 못지않은 상처를 입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상황.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그나마 멀쩡한 두 명 정도가 부상이 심한 다른 뱀파이어들을 돌보고 있었다.

다친 이들을 돌보던 뱀파이어 하나가 세피아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세피아 자작님? 상처가……? 류마 백작님? 왕녀님까지?”

세피아가 당황한 듯 보이는 뱀파이어에게 상황을 이야기할 때.

“후- 다친 사람들을 전부 한곳으로 모아.”

“알겠습니다. 용님.”

처용의 말에 류마가 즉각 대답했다.

세피아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즉각 행동했다.

부상자들이 빠르게 한곳으로 모이자.

“자비의 손길.”

처용이 부상자들을 향해 자비의 손길을 최대치로 발현했다.

-화아악!

찬란한 황금빛이 다친 이들에게 집중되며 공동 내부를 환하게 비추었다.

그러자.

-신성력?

-어……떻게?

뱀파이어들은 하나둘 몸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

“끝났다.”

뱀파이어들의 치료가 끝나고 처용이 손을 거두자.

“정말, 감사합니다.”

류마가 처용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우리 일족을 구해줘서 고마워.”

루나 역시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전했다.

왕족과 백작급 귀족에게 감사 인사를 받는 인간.

그리고 신성력으로 뱀파이어를 치료할 수 있는 인간.

그런 처용을 바라보는 다른 뱀파이어들의 머리에 의문과 놀라움이 이어질 때.

“모두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이분은…….”

류마가 뱀파이어들을 다독이며 현재 상황과 처용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자.

“어둠의 일족이 은인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이 공동의 뱀파이어들을 이끌던 세피아가 다시 한번 정식으로 감사를 전했다.

동시에 부상을 회복한 다른 뱀파이어들이 처용에게 고개를 숙였다.

“류마, 이들을 잘 챙겨 줘.”

“알겠습니다.”

“일단은…… 다들 돌아가지.”

일을 무사히 끝마친 처용이 태룡전의 열쇠로 게이트를 열었다.

루나가 들어가고 처용이 들어가려는 때.

“용님, 이들에게 먼저 설명해 주고 가겠습니다.”

“아? 그래, 알았다.”

류마의 말에 처용이 이해했다는 듯 대답하고 나서 게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후, 성역에 가기 전 주의사항이 있다.”

류마가 일족들에게 태룡전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특히, 그곳에 거주하는 신들에 대해 미리 이야기하지 않으면.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 펼쳐질 것 같기 때문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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