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96화 (96/726)

#096화

태민이 협회로 돌아가 곧장 협회장에게 회의를 요청했다.

백호와 혁수 등 초기부터 협회장의 세력이었던 이들과.

신뢰도가 높은 소수의 임원, 팀장들이 협회 대회의실에 모두 모였다.

“……이상입니다.”

태민이 그간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나마 이야기하자.

“…….”

“…….”

“…….”

좌중에 침묵이 감돌았다.

“부럽구만, 귀한 경험을 하고 왔어.”

백호가 진심으로 부럽다는 듯 입을 열어 침묵을 깼다.

“일만 없었어도 나도 따라가는 거였는데.”

“네가 따라갔다가 무슨 사고를 치려고!?”

백호의 말에 옆자리에 앉은 혁수가 질책하듯 대답했다.

“……아주 그냥 판타지였습니다.”

태민은 지친 듯 짧은 여행(?)에 대한 감상을 표했다.

“솔직히…… 저도 조금 아쉽긴 하네요.”

태민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현아가 말했다.

유니크 클래스가 된 그녀는 협회 헌터들 중 한 개의 파티를 이끄는 팀장으로 승진했다.

그간 협회의 몰렸던 던전 일정을 부리나케 해결한 결과, 레벨도 많이 오른 상태였다.

“일단, 중요한 건 청룡의 신관을 찾는 것입니다.”

태민은 지친 표정과 눈빛을 바로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가장 최우선으로, 비밀 등급은 최고 등급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동시에 무언가를 꺼냈다.

-탁.

푸른 빛을 반짝이는 얇고 넓은 돌조각 같은 형태.

협회에 오기 전, 처용이 미리 건네주었던 청룡의 비늘이었다.

“부장님과 저, 그리고 팀장님들께서 하나씩 가지는 게 좋겠습니다.”

태민의 말에 협회장을 포함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면 그것도 감추는 게 좋지 않나?”

재고관리 센터장, 혁수가 비늘을 바라보며 태민에게 말했다.

“네, 특히 올림포스 헌터들에게 보여서 좋을 건 없겠죠.”

“내가 그럴듯한 아티팩트로 바꿔주지, 장신구 형태로 만들어서 그걸 넣으면 될 거야.”

“감사합니다. 센터장님.”

태민이 혁수의 말에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올림포스가 한국의 세 번째 S급 헌터를 노린다라…….”

분노가 끓는 듯 낮은 목소리로 백호가 중얼거렸다.

“다른 헌터도 아닌 S급 헌터를 납치해서 놈들이 무슨 짓을 할까?”

지금 백호의 머릿속에는 처용이 탈취한 서류의 내용으로 가득했다.

인신매매, 장기매매 등…….

심지어 S급 헌터라면, 놈들의 표현으로 ‘최고의 상품’이지 않을까?

백호의 상상은 점점 끔찍하고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한국에 있는 올림포스 길드를 모조리 엎어 버려야 하나?”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가 저지른 만행으로 인해 백호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분노가 임계점을 부수고 넘어가기 직전의 상황.

“아서라, 백호야.”

협회장이 그런 백호를 만류했다.

“올림포스 총 길드장이 나한테 직통으로 연락해왔었다.”

올림포스의 총 길드장.

제시카는 한국에서 일어난 소식을 듣고 밀려오는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러나 올림포스는 당장 해결해야 하는 급한 상황이 있었다.

그녀는 협회장에게 정말 유감이라며 사과를 전하고는 추후 한국에 직접 오겠다고 전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협회장의 만류에 백호는 마지막으로 ‘참을 인(忍)’자를 마음속에 그려내었다.

“총 길드장이고 나발이고 이번에도 개수작을 부리면, 다 엎어 버릴 겁니다.”

“그땐 나도 말리지 않으마.”

협회장도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난 마당에 총 길드장이 찾아와 행패를 부린다?

그것은 선을 넘는 행위였다.

“우선, 과장님 말씀대로 한국의 세 번째 S급 헌터부터 수색합니다.”

협회장이 좌중을 둘러보며 무거운 분위기로 말을 이었다.

“한국의 소중한 인재를 올림포스의 마수에서 지켜냅시다.”

그 말을 끝으로 회의가 파했다.

그리고.

“부장님.”

뒤돌아 나가려는 백호를 태민이 불러 세웠다.

“왜, 태민아?”

“부장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태민이 백호에게 무언가를 말하자.

“……그거 좋은데?”

백호가 마음에 든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승낙했다.

모두가 나가고 태민만이 남아 서류를 정리할 때.

“아, 그것도 전달해 드렸어야 했는데.”

뒤늦게 무언가가 생각난 듯 태민이 중얼거렸다.

이전 처용이 알아 봐달라 부탁했던 일 중 하나였다.

사무실로 돌아온 태민은 ‘처용이 요청했었던 정보’가 적힌 서류를 보며 전화를 들어 올렸다.

***

청룡을 만난 이후, 처용은 다시 산신각으로 돌아왔다.

“사흘 안에 찾는 것이 가장 좋은데…….”

처용이 청룡의 비늘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아레스의 신전을 해결하기 위해 헌터들이 모이는 날짜는 사흘 후.

그전까지는 올림포스 길드 전체가 준비에 정신이 없을 것이다.

사흘이라는 시간 안에 청룡의 신관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좋은 상황이었다.

청룡의 신관을 찾을 다른 방법은 없는지 생각도 해봤었다.

니모가 청룡을 찾은 것처럼 그의 신관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 장소를 제외하면 자잘한 기운밖에 모르겠어요.

처용은 니모가 가리킨, 자잘한 기운이 느껴지는 장소로 가봤었다.

그곳에 있던 것은…… 던전이었다.

불법 던전이 아닌 협회가 관리하는 정상적인 C급 던전.

‘고이는 강물’이라 부르는 던전으로 장어나 망둥어 등, 수중 몬스터들이 나오는 던전이었다.

니모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몇 군데 더 가봤지만.

대부분 물과 관련된 던전이었다.

그리고 청룡과의 대화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아이가 완전히 각성하면 나의 수계도 곧장 끝날 것이네.

그의 신관은 선택만 받았을 뿐, 각성은 하지 못한 상태일 수도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은 일반인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일 것이다.

결국, 니모를 이용해 찾는 것은 포기했다.

“후우…….”

처용에게서 답답함이 담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때.

“저녁을 잔뜩 시켜 놓고 왜 죽상이야?”

연화가 처용에게 다가와 맥주 한 캔을 건네면서 말했다.

“하하…….”

처용이 연화가 건네는 맥주 캔을 받으며 산신각의 중앙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곳에는 치킨을 포함해 족발, 보쌈, 그릴 바비큐 등 먹거리가 나열되어 있었다.

-치킨이 대수냐? 청룡을 찾으면 만찬을 대접하마.

청룡을 찾을 때, 처용이 루나에게 했었던 말.

루나가 처용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당당하게 요구했고.

처용이 웃음을 지으며 약속을 이행한 것이었다.

“맛있어.”

“맛있어요!”

루나와 아타는 처용이 준비한 것들이 마음에 드는지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와그작. 와작. 와작.

허공을 부유하는 잉어.

니모가 햄버거를 양손으로 잡듯 양 지느러미로 잡아 씹어먹고 있었다.

“……이젠 놀랍지도 않아.”

그 모습을 황당하게 구경하던 연화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훈련은 어때?”

처용은 연화에게 그녀가 받는 재활 훈련을 물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자신이 경고한 만큼, 고된 훈련일 테니까.

“전혀 힘들지 않아, 나름대로 보람도 있고.”

연화는 정말로 힘들지 않은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는 게 무엇인지 깨닫고 있었다.

태룡전 외곽을 죽을 때까지 달리는 것?

그것은 기초 중 기초, 애교 수준이었다.

숨은 쉴 수 있는 물방울 속에 갇혀 검을 휘두르거나, 같은 동작을 만 번씩 반복하거나.

열두 시간 동안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된 채 주변의 마나를 움직이는 명상 등을 했다.

훈련 첫날.

연화는 완전히 지친 상태로 하루 일정을 겨우 끝마쳤다.

그 후 악어처럼 네발로 기어서 안식전에 돌아갔고 곧장 곯아떨어졌다.

정말 힘들고 고된 하루하루였지만.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이 맞는지 훈련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보람이 있다는 말 만큼은 진심이었다.

빛의 신에게 파면당하고 가호를 박탈당했을 때.

그 당시에는 마치 강한 마취제를 맞은 듯 기운이 빠지고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었다.

거기에 있던 것이 사라진 듯한, 허탈하고 허무한 감정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재활 훈련을 시작하자 좋지 않았던 상태가 조금씩 나아졌다.

완전히 비워진 그릇에 깨끗하고 청결한 물이 새로 채워지듯.

허무함과 허탈감이 사라지고 점점 안정감과 충족감이 채워졌다.

지금 그녀는 본래 스텟의 60%까지 회복한 상태.

“뭐, 다행이네.”

처용은 연화의 말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에게서 여러 가지 감정들이 느껴졌지만, 잘 견디고 있는 것 같기에 딱히 묻지는 않았다.

“그래서 왜 그렇게 죽상이었던 건데?”

연화가 처용에게 맥주 캔을 든 손을 내밀며 말하자.

“그냥, 답답해서.”

처용이 건배를 받아주듯 손에 들린 맥주 캔을 내밀며 말했다.

-탁.

“상황이 잘 풀리는 것 같으면서도 불안하거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처용은 연화에게 청룡과 올림포스, 지금의 상황 등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너무 혼자서 해결하려는 건 개인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

연화가 교단에서 배척받았을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어떻게든 누명을 벗어보려, 명예를 되찾으려 발버둥을 쳐 봤지만.

거대한 힘과 권력 앞에서는 홀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널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잖아. 당장은 협회 전체가 널 도와주고 있고.”

“맞아.”

연화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종말은 절대로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최강의 헌터가 되었든, 신이 되었든 간에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다.

그걸 잘 알기에 미래의 지식을 한껏 활용하여 자신의 편을 만드는 것이다.

‘배신하지 않을 세력’을…….

“그저 불안감 때문이야.”

처용은 솔직히 자신의 감정을 인정했다.

회귀 전보다 훨씬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혹시나 모르는 사이 저지른 실수로 인해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가?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지는 않았는가?

자신의 선택한 방향이 과연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인가?

고민과 선택에 의한 강박증.

특히, 휴식의 시간을 갖거나 일이 없을 때는 종종 심한 불안감이 찾아 왔었다.

일이 없는 날마다 수련에 매진하는 이유가 그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서였다.

전생의 경지를 되찾기 위한 수련은 중요했고 또 수련에 집중하는 동안 잡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고행탑이나 찾아갈까.”

처용은 대충 휴식이 끝나는 대로 카투라의 분신과 수련할 생각을 했다.

그때.

처용의 전화기에서 벨이 울렸다.

[수신자 : 김태민]

수신자를 확인한 처용이 전화를 받았다.

“네, 과장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 다름 아니고 이전에 부탁하셨던 것 때문인데요.

태민의 말을 들은 처용은 생각에 잠겼다.

워낙 그에게 부탁한 일이 많기에 무엇인지 바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뱀파이어와 관련해서 단서가 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처용은 태민의 말에 정신이 번뜩 들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른 뱀파이어를 찾은 겁니까?”

처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태민에게 물었다.

루나 역시 처용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먹는 것을 잠시 멈추고 집중했다.

-찾은 건 아닙니다. 다만 그 이상한 이변이 발생한 던전이 있습니다.

검은 침식의 저주가 흘러나왔던 메마른 묘지 던전.

그 던전에서의 돌발 사고 때문에 처용이 급히 출동했었고 루나와 류마를 만날 수 있었다.

-급변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무언가 이상한 이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태민은 처용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협회에서 관리 중인 소형 마을 급의 B급 던전.

뒤틀린 유령 저택.

유령형 몬스터가 출몰하는 곳으로 난이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출몰하는 유령형 몬스터의 수준은 대부분 C급 수준으로 약한 편.

유령에 강한 사제나 마법사 클래스가 아닌 근접 클래스라 해도.

마법이 인첸트된 무기로 공격하거나 데미지가 강한 스킬을 쓰면 유령을 잡을 수 있는 던전이었다.

B급에 도달하기 직전인 C급 헌터가 입문하기 아주 좋은 곳이었다.

준비를 든든히 했다면, 다수의 C급 헌터들도 사냥이 가능한 던전.

그러나.

최근, 이 던전에서 무언가 변화가 나타났다.

“비명이요?”

-네, 유령들이 내는 울음소리가 아니라 마치, 누군가가 고문받는 듯한 소리가…….

던전에서 유령형 몬스터들이 내는 소음이 아닌 고통에 젖은 절규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변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유령이 아닌 네임드 언데드가 나타났었다고 합니다.

“저주는요!?”

처용이 언데드라는 말에 급히 반문했다.

만약 그 언데드가 뱀파이어가 저주로 변이된 개체라면…….

-저주는 없었습니다. 그 던전에 갔었던 헌터들 모두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태민은 서류를 보며 가장 거슬리는 부분을 이야기했다.

-그 언데드가 헌터들과 전투를 벌이면서 말을 걸어왔다고 합니다.

“말을 걸어왔다고요?”

-네,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답니다.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라…….”

-그리고 사라졌답니다.

처용은 태민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한 후 질문했다.

“혹시, 그 언데드가 어떻게 싸웠는지 알 수 있습니까?”

태민은 처용의 질문에 서류를 살펴보며 대답했다.

-어둠을 타고 빠르게 이동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뱀파이어일 가능성이 크네요.”

어둠을 타고 이동하는 능력은 뱀파이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어째서 현장에 있던 헌터들이 언데드로 봤는지는 의문이지만…….

-마침 내일이 협회에서 그 던전의 이변을 조사하는 날입니다만.

“제가 직접 가보죠.”

-처용 님이 직접 가신다면 안심입니다.

처용이 태민과의 전화를 끊자.

“찾은 거야?”

루나가 처용에게 다가와 물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내 감으로는 70% 정도 확실하다고 보는데…….”

처용이 루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류마랑 같이 가보자.”

“고마워.”

루나가 옅게 웃음을 지으며 감사를 전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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