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93화 (93/726)

#093화

태민의 사무실을 나온 처용은 태룡전으로 돌아와 다시 카투라를 찾아갔다.

[어서 와, 마침 딱 끝났는데.]

카투라가 손을 흔들며 처용을 반겨 주었다.

그리고.

“아, 안녕하세요…….”

허공을 부유하는 잉어, 곤이 입을 뻐끔거리며 말했다.

전처럼 그저 의지를 전하는 것이 아닌 입으로 내는 또렷한 목소리였다.

겉모습에도 변한 부분이 있었다.

지느러미와 수염이 조금 더 길어지고 꼬리지느러미도 두 갈래에서 네 갈래로 늘어났다.

이전에는 그저 밋밋한 잉어처럼 보였다면 지금은 조금 더 화려해진 비단잉어처럼 보였다.

“뭔가 좀 달라졌네요?”

처용이 곤을 관찰하며 중얼거리자.

[내 정수를 조금 나눠줬거든, 이 정도는 되어야 서로 편할 거 같아서.]

카투라가 웃음을 지으며 설명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태초의 신수시여.”

곤이 앞 지느러미를 다소곳이 모으며 카투라에게 고개를 숙였다.

[말했던 대로 이 인간을 도와줘, 그러면 네 격을 높이는 걸 도와줄게.]

“네.”

카투라는 곤의 대답을 듣고는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아이에게 잘 설명해 줬으니까. 청룡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그럼, 음…….”

처용은 카투라에게 감사를 전하고 곤을 바라보았다.

“곤…… 이라고 부르면 되나?”

[그건 이 아이가 진화한 종족의 이름이고 네가 적당하게 다른 이름을 지어 줘.]

“그래도 되나요? 카투라 님이 지어주시는 게…….”

[난 작명 솜씨가 형편없거든. 하하.]

“흠…….”

곤을 곰곰이 바라보던 처용은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니모.”

허공을 이리저리 헤엄치며 부유하는 곤의 모습을 보고 기억 속 어떤 캐릭터가 떠올랐다.

“어때?”

곤은 나쁘지 않은지 헤엄치듯 꼬리를 흔들었다.

[그럼 청룡을 찾길 바라.]

“감사합니다.”

처용은 카투라에게 감사를 전하고 니모와 함께 안식전을 나와 보물전으로 향했다.

아타에 관한 일로 잠시 확인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셨어요. 용님.”

보물전에 처용과 니모가 들어서자 거대한 두 개의 알 앞에 있던 아타가 처용에게 다가왔다.

아타 옆에서 커피를 마시던 루나는 처용을 향해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새로운 녀석이 들어왔네?”

루나가 허공을 부유하는 곤, 니모를 바라보며 말했다.

“날 도와줄 녀석이야.”

처용은 아타와 루나에게 니모에 대해 말을 해주었다.

“그나저나 이게 새로 태어날 녀석들이야? 아타.”

두 개의 거대한 알을 바라본 처용이 아타에게 묻자.

“네. 이번에도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아타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이 엔트리스 퀸 아타.

그녀는 조금 복잡하고 특별하게 태어난 존재였다.

태어난 이후로도 주로 태룡전에 머물며 끊임없이 흐르는 신력의 일부를 흡수해왔고.

처용의 일을 도와주며 경험치까지 쌓아왔다.

그녀는 처용의 무리에 속한 존재이기에 반쯤 시스템의 영향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영향들이 더해져 지금은 더욱 성장한 상태.

“확실히, 키가 조금 크긴 했네.”

처용이 아타를 보며 중얼거렸다.

본래 그녀는 루나보다도 작은 키의 어린아이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더 자라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정도로 성장한 듯 보였다.

머리 위에 달린 연꽃도 봉오리에서 조금 벌어진 형태로 바뀌었다.

“용님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아타가 뒤에 있는 거대한 알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저는 강한 병사를 만들수록 더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거대한 두 개의 알은 아타가 성장한 결과, 추가로 만들 수 있는 A급 개미의 알이었다.

그녀가 A급 개미를 생성하기 위해 처용에게 건네받은 것은 수류부와 풍운부의 힘이 인첸트된 무구였다.

이전에 사냥했었던 A급 던전보스인 티라노와 드레이크의 사체를 이용해 미리 만들어 둔 것들이었다.

“기대되네.”

처용은 아타와 거대한 알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타가 지금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아마 자신처럼 모든 속성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완전히 성장한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모습을 보일지 기대되었다.

추후 악신들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니모.”

아타와 알의 상태를 확인한 처용은 니모를 부르며 태룡전의 열쇠를 꺼내었다.

그때.

“나도 갈래.”

루나가 처용이 니모를 데리고 나가려는 것을 보고 따라나섰다.

그동안 태룡전 안에서 수련만 한 것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마침 너도 데려가려고 했어. 아타, 알이 깨어나면 나에게 알려주고.”

“알겠습니다. 용님.”

아타의 배웅 인사와 동시에 처용이 게이트를 열었다.

처용과 루나, 니모가 게이트를 타고 나온 장소는 태룡사의 산신각이었다.

“니모, 청룡을 어떻게 찾아내지?”

처용이 니모에게 물었다.

카투라가 준비해 줬다고는 하지만 자신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으니까.

“태초의 신수께서 정수를 내려주신 덕분에 찾을 수 있게 되었어요.”

카투라는 물의 근원을 지닌 최초의 생명체.

그녀는 물에 사는 생명체 중 ‘격이 높은 존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정수를 이어받은 니모가 비슷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쪽에서 무언가가 느껴져요.”

니모가 집중을 하는 듯 눈을 감고 입을 뻐끔거리며 말했다.

처용은 니모가 가리킨 방향으로 움직이기 전에.

“루나, 니모의 모습을 숨겨 줄 수 있겠어?”

루나에게 부탁했다.

“이 정도 크기는 충분해.”

루나의 손에서 안개가 뻗어 나오더니 니모를 감쌌다.

그러자 니모의 몸이 점점 투명해지다가 이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게 사라졌다.

“한 시간 정도는 유지될 거야.”

그녀는 자신의 날개와 귀를 감출 때처럼 환영 마법으로 니모를 숨겨주었다.

이것이 루나를 데려가려 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녀가 지루하다는 이유로 먼저 따라오기는 했지만…….

“일단 무작정 동쪽으로 가는 수밖에 없나.”

처용은 출발하기 전에 이진상의 사무실에 몰래 잠입했을 때 사용하던 은신 마법을 몸에 둘렀다.

“클로킹 아머.”

-쩌저저적.

발밑에서 투명한 유리 조각들이 나타나더니 처용을 감싸기 시작했다.

완전히 감싸진 처용의 모습이 투명하게 사라졌다.

처용은 니모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일직선을 달려갈 생각이었다.

건물과 산을 뛰어넘으면서…….

굳이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광고하듯 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루나 역시 환영 마법으로 생성한 안개로 몸을 감싸 은신했다.

“가지.”

준비를 마친 처용은 나침반의 역할인 니모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다행인 점은 처용의 본가, 태룡사의 위치는 강원도.

한반도의 동쪽에 있다는 점이었다.

“이 나라 안에 있는 건 확실한 거야?”

“그렇게 멀진 않지만, 바다 건너편에서 큰 신격이 느껴져요.”

“흠, 그래?”

니모의 말을 들은 처용은 잠시 고민했다.

“풍운부-하늘 질주.”

짧게 생각을 끝낸 처용은 양다리에 각각 풍운부를 세 장씩 붙였다.

“루나, 따라올 수 있겠어?”

처용이 루나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얕보지 마.”

루나가 발끈한 듯 날개를 크게 펴고 날아올랐다.

“그럼!”

처용이 하늘로 뛰어오르며 허공을 밟고 질주해나갔다.

루나 역시 날개를 펴고 처용을 뒤따랐다.

“조금, 남쪽으로요. 여기서 쭉 동쪽으로요.”

처용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바짝 붙은 니모는 계속해서 방향을 알려 주었다.

그렇게 니모의 안내를 받으며 계속 질주해나가자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 너머에서 무언가가 느껴져요.”

“흠, 이 방향은 울릉도인데…….”

처용은 니모의 말을 듣고 바다 위, 하늘을 달려나가며 중얼거렸다.

강원도의 동쪽 바다 너머에 있는 섬인 울릉도.

니모가 가리킨 방향은 그곳이었다.

“루나, 속력을 더 높일 거야.”

“상관없어.”

루나의 말에 미소를 지은 처용의 다리에 뇌전이 휘감기기 시작했다.

하늘 질주에 더해 질풍신뢰까지 사용할 생각이었다.

“뢰신보.”

-파직!

처용은 한 줄기 번개가 되어 니모가 가리킨 방향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혈기 각성.”

루나는 처용을 따라가기 위해 혈기를 끌어올려 전신에 휘감았다.

혈기를 온몸에 둘러 육체를 강화하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동시에.

“블러드 윙.”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혈기 중 일부가 날개에 집중되었다.

-우드득!

혈기에 강화된 루나의 날개가 1.5배 정도 커졌고 그대로 크게 한번 날갯짓을 하자.

-피이잉!

루나가 한 줄기 붉은 섬광이 되어 처용 못지않은 빠르기로 처용을 따라갔다.

처용과 루나가 전력으로 질주한 결과,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울릉도 땅을 밟았다.

“으아아…….”

울릉도에 도착하자 루나는 완전히 힘을 소진한 듯 대자로 드러누웠다.

“여기까지 잘 따라올 줄이야.”

처용은 솔직히 루나에게 감탄했다.

그녀가 여기까지 멈추지 않고 따라오는 것은 솔직히 무리라고 판단했었다.

그러나 집념이 강한 루나는 결국 끝까지 처용을 따라왔다.

“무슨…… 인간이…… 지치지도…… 않아?”

루나는 전혀 지쳐 보이지 않는 처용을 보며 황당한 듯 숨을 고르며 말했다.

니모 역시 루나와 비슷한 심정으로 처용을 눈짓했다.

자신은 그저 처용 옆에 바짝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힘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런 빠르기로 쉬지 않고 질주한 처용이 조금도 지쳐 보이지 않는다는 게 놀라웠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 정도로 강한 인간은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우두머리 격인 신수의 자격까지 가지고 있는 놀라운 인간.

왜 태초의 신수인 카투라가 눈여겨보는 인간인지 이해가 되었다.

“잠깐만 쉬지.”

처용은 지친 듯 보이는 루나와 니모를 보며 휴식을 선언했다.

동시에 아공간을 열어 마실만 한 것을 꺼내었다.

[2% Coffee - Ice]

한국에서 나름 유명한 헌터가 브이를 그리고 있는 사진이 인쇄된 캔 음료.

그것은 처용이 서리가 낀 상태로 정지장에 넣어두었던 아이스 커피였다.

“자, 받아.”

처용이 뚜껑을 열어 루나에게 아이스 커피를 건네주자 그녀가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얼떨결에 커피를 받아 든 니모가 처용에게 감사를 전했다.

‘아, 잠깐. 얘 커피 먹여도 되나?’

처용은 뒤늦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니모는 지느러미로 커피 병을 잡고 마시고 있었다.

그러자.

“와! 이거 맛있어요!”

니모에게서 예상 밖의 감탄사가 나왔다.

“……그래 뭐 다행이네.”

처용은 니모의 반응에 헛웃음을 지으며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뱀파이어도 커피를 마시는 마당에 신수가 마신다고 문제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니모, 이곳이야?”

처용은 니모에게 이 장소, 울릉도에 청룡이 있는 것인지 물었다.

“조금 더 가야 할 것 같아요.”

니모는 동남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거, 울릉도가 아니라…….”

처용이 혹시나 하는 생각에 중얼거렸다.

계속 니모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처용과 루나가 빠르게 나아갔고.

결국, 울릉도의 동쪽 끝에 도달하여 다시 바다를 보았다.

그리고 니모는 계속 동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거…… 울릉도가 아니라 독도였잖아.”

니모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두 개의 섬이 보였다.

대한민국의 동쪽 끝에 자리한 섬.

니모가 가리키는 방향은 바로 독도였다.

게이트 사건이 터지고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가 되어버린 곳.

가끔 협회와 정부에서 점검 차, 방문만 하고 가는, 외로움으로 가득한 섬.

처용과 루나, 니모가 독도에 발을 디뎠다.

“이곳이에요. 여기에 있어요.”

니모가 처용 곁을 부유하며 말했다.

“일단 섬을 좀 둘러봐야겠네.”

처용이 다리를 박차 하늘로 뛰어올랐다.

허공을 밟고 공중에 부유한 처용은 독도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무언가를 발견하자 그곳으로 내려와 착지했다.

“쉘터인가?”

동굴을 개조한 듯 보이는 장소와 그곳의 입구로 보이는 철문이 보였다.

그 철문 앞에는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패드와 인식장치 등 보안이 걸려 있었다.

철문에 협회를 상징하는 마크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협회의 시설처럼 보였다.

처용은 곧장 태민에게 연락을 취했다.

-처용 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제가 지금 독도에 와 있거든요.”

태민에게 연락한 처용이 곧장 자신이 있는 위치를 말하자.

-……네?

처용의 말을 들은 태민이 반사적으로 질문을 내뱉었다.

-아니…… 조금 전까진 여기에 있었습니다만…….

도대체 왜 그가 독도에 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간 것이란 말인가?

“청룡을 찾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처용은 태민에게 독도에 왜 오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상황을 파악한 태민이 이해했다는 듯 점점 침착함을 되찾았다.

-패드 위 인식기에 처용 님 라이센스를 대면 열릴 겁니다. 협회 간부는 권한이 있거든요.

태민의 말대로 처용이 패드 인식기에 라이센스를 대자.

-승인되었습니다.

문에서 기계음이 들림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아닙니다. 그 안에 독도 순찰 기록이랑 점검 기록이 있을 겁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뭔가를 찾으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태민과의 통화를 끊은 처용이 루나, 니모와 함께 쉘터 안으로 들어가자.

-팟. 팟. 팟.

쉘터에 불이 자동으로 들어오며 내부가 환해졌다.

“이건가?”

벽에 붙어있는 거대한 모니터와 자판.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서류들이 보였다.

누가 언제 여기에 방문했고 어디를 둘러봤고 특이사항은 없는지 기록되어 있었다.

처용이 모니터 속 서류 파일과 책상 위에 널브린 서류를 확인하던 중.

“흠?”

무언가 의미심장한 정황을 하나 포착했다.

“이것들 봐라?”

서류를 살펴보던 처용의 인상이 점점 일그러졌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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