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화
더 지체하지 않고 곧장 던전으로 향한 처용은.
“이쪽이었는데…….”
자신을 보고 도망쳤던 녀석이 있는 장소를 찾아갔다.
던전에 관한 부분만큼은 기억력이 좋다 자부하는 처용이기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마치 호수처럼 넓게 펼쳐져 흐르는 계곡.
외곽에 서식하고 있는 암모나이트와 투구게까지.
찾고 있었던 그 장소에 도착했다.
“일단.”
처용은 암모나이트 하나를 집어 들어 계곡 위로 던졌다.
-풍덩.
계곡 위에 파문을 그리며 암모나이트가 떨어졌지만, 이전과 같은 반응은 오지 않았다.
투구게와 암모나이트를 몇 마리 더 던져 봤지만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결국.
“수류부-수면질주.”
처용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예상대로 수심 몇백 미터는 될 것 같은 깊이.
다리에 수류부를 붙인 처용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달려나갔다.
이윽고 시야에 계곡 밑바닥이 보이자 무언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처용이 기척을 따라가자.
“동굴?”
눈앞에 드러난 건 바닥이 뚫린 듯 보이는 거대한 해저 동굴이었다.
그리고 그 동굴에 가까이 다가가자 찾던 녀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후르르!
거대한 무언가가 물살을 가르고 헤엄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동굴 안쪽, 어둠 속에서 두 개의 푸른 눈동자가 나타났다.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낸 녀석이 처용을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후화아아악!
녀석의 입에서 나선으로 회전하는 넓은 범위의 회오리가 쏘아져 나갔다.
-쿠콰콰콰!
바위와 수중 식물, 각종 어류 등이 회오리로 말려들자.
마치 믹서기에 갈려 나가는 것처럼 가루조차 남지 않고 분쇄되었다.
“생각보다 강한데?”
점점 다가오는 회오리의 위력을 본 처용이 감탄했다.
아무리 금강불괴라 할지라도 저 속에 말려들면 좋지 않을 것이다.
“수류태극권.”
처용은 다가오는 회오리를 대비하기 위해 양손에 수류부를 하나씩 움켜쥐었다.
“나선환류(螺旋還流).”
양손을 앞으로 뻗어 회오리를 향해 태극을 그리자.
-휘오오오.
정면에서 다가오는 회오리보다 작은 회오리가 처용의 손에서 쏘아져 나갔다.
이윽고 두 회오리가 맞닿았고 처용이 쏘아 낸 작은 회오리가 거대한 회오리에 집어 삼켜졌다.
처용의 방어가 실패한 듯 보였지만.
-파아아…….
거대한 회오리가 돌연 힘을 잃은 듯 사그라졌다.
처용이 사용하는 속성의 힘을 담은 태극권.
반탄장이 속성 공격을 속성으로 받아쳐 흘리거나 튕겨내는 기술이라면.
환류는 속성 공격을 같은 속성을 이용하여 흩어버리거나 무효화시키는 기술이었다.
방금은 나선으로 회전하며 다가오는 거대한 회오리를 막기 위해.
반대로 도는 회오리를 중심으로 쏘아 보내 흩어버린 것이었다.
-쿠르르…….
녀석은 설마 자신의 공격이 손쉽게 막힐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쿠와와아!
녀석이 거대한 몸집을 드러내며 동굴 밖으로 뛰쳐나왔다.
처용은 녀석이 달려드는 것을 대비하며 전투를 준비했지만.
[신수의 격이 발동합니다.]
[‘위압감’이 발동 중입니다.]
-쏴아아!
거대하고 긴 몸을 이끌고 뛰쳐나온 녀석은 처용을 무시하고 머리를 돌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또 도망간다고?”
처용은 다리에 수류부를 두 장 더 붙이고 ‘수면질주’의 속도를 높여 녀석을 추적했다.
추적하여 점점 가까이 접근하니 녀석의 생김새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곤(鯤)]
[등급 : A급 준 신수]
[특징 : 전설 속에서만 존재가 전해지는 거대한 물고기.]
[물에 사는 생명체가 맑은 장소에서 청명한 정수를 쌓으며 진화한 모습.]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은 개체입니다.]
[스킬 : 워터 마엘스트롬, 물의 목소리, 워터 블레이드…….]
대략 30m는 넘어 보이는 길이와 녹색과 갈색으로 반짝이는 비늘들.
기다란 형태의 잉어와 비슷한 생김새를 한 몬스터, 아니 신수였다.
‘잉어라기보다는 피라루크에 가까운 모습이네.’
처용은 곤의 모습을 관찰하며 흥미를 갖고 계속 추적했다.
그때.
-왜! 따라오는 거야!
곤에게서 어린아이 느낌의 맑고 청명한 목소리가 울려 왔다.
-오지 마!
곤이 머리를 살짝 돌리고 거대한 회오리 ‘마엘스트롬’을 재차 발동했다.
처용은 곤의 마엘스트롬이 쏘아지기 전 환류를 사용해 그것을 없애버렸다.
그러자, 곤이 기겁한 듯.
-따라오지 말라고!
세 개의 마엘스트롬을 동시에 만들어 발사하려 했다.
“귀찮네.”
처용은 환류로 다시 한번 회오리를 흩어버리려다가.
“워터 마엘스트롬을 차단한다.”
도망가는 곤을 빨리 잡기 위해 권능을 발동했다.
-슈르르르.
곤의 주변에서 회오리치며 만들어지던 마엘스트롬이 사라졌다.
-아 안돼! 오지 마!
기겁하며 도망가는 곤을 처용이 따라잡은 순간.
“징벌의 선고.”
처용의 주변에 붉은 기류가 퍼지더니 곤을 감쌌다.
-이, 이건 뭐야!
곤이 당황한 듯 붉은 결계의 벽에 몸을 부딪치며 발버둥 쳤다.
“여기에서 나가는 건 불가능해.”
처용이 곤에게 나지막하게 말하자 곤이 결계의 벽에 바짝 붙으며 처용을 경계했다.
곤의 눈에 비치는 처용의 모습은 마치 진귀한 물고기를 잡은 어부처럼 보였다.
-오, 오, 오지 마!
마엘스트롬이 봉인된 곤은 워터 블레이드 등 다른 수 속성 공격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쯧.”
처용은 곤의 공격을 피하고 환류로 파훼하면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동안 신수의 격이 성장한 것 때문인지 곤의 감정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마치 겁에 질린 어린아이가 물건을 마구 집어 던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카투라에게 부탁받은 이상 녀석을 굳이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몬스터가 아닌 신수의 일종이고 했고…….
그러나, 더 일이 질질 끌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처용이 무력을 써야겠다 마음먹은 순간.
[아아, 들리니?]
처용에게서 카투라의 전음이 전해졌다.
‘카투라 님?’
처용은 살짝 놀란 듯 대답했다.
그녀가 태룡전의 손님이기는 하지만 성좌들처럼 자신에게 말을 건네올 줄을 몰랐으니까.
[여래가 도와줬거든. 그보다도 저 아이, 어린 녀석임에도 꽤 쓸 만해 보이네?]
‘다치게 하고 싶진 않았지만, 제압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콰과과!
카투라와 전음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곤은 마구잡이로 공격하고 있었다.
[내 수족이 될 녀석이니 내가 도와줄게.]
카투라의 말이 끝나자.
‘이건……?’
처용은 성좌들과 감각을 공유하는 익숙한 느낌에 놀라워했다.
동시에 처용에게서 심해처럼 짙은 파란색의 신력이 뿜어져 나왔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하하.]
카투라가 머쓱한 듯 웃음을 지었다.
[자, 일단은 내 신력을 저 녀석에게 보내. 그럼 내 의지를 전할 수 있을 거야.]
처용은 놀랍고 의문이 들었지만, 그녀의 말대로 우선 지금 상황에 집중했다.
마침 처용에게서 카투라의 신력이 흘러나오자 곤이 공격을 멈추었다.
곤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친숙하면서도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윽고 처용에게서 흘러나온 신력이 곤에게 닿자.
-……!?
곤이 안절부절못하듯 머리와 지느러미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내가 잘 이야기했으니까. 이쪽으로 데리고 와 줘.]
카투라의 말을 마지막으로 처용에게서 흘러나오던 짙은 푸른색의 신력이 사라졌다.
“이봐.”
처용이 곤을 바라보며 말하자.
-네, 네에…….
반항하며 날뛰었던 곤은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이며 대답했다.
곤의 대답은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 의지를 전하는 것에 가까웠다.
“더 도망가지는 않겠지.”
-네…….
처용이 결계를 해제하자 곤은 약속대로 도망가지 않았다.
“따라와라.”
태룡전의 열쇠로 처용이 게이트를 열자 거대한 몸집의 곤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안으로 들어갔다.
***
처용이 곤과 함께 태룡전으로 들어서자.
“워…… 뭔!?”
태룡전 외곽을 달리며 재활 훈련을 하던 연화가 뒤로 물러섰다.
난데없이 나타난 거대한 몸집의 물고기를 경계했지만.
“아아, 내가 데려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 그래?”
연화는 처용의 말에 안심한 듯, 하던 훈련을 계속했다.
신까지 만난 마당에 이런 일은 그러려니 하고 넘길 정도로 그녀의 멘탈은 강해지고 있었다.
[카투라가 말해 준 그 아이구나.]
여래가 처용에게 다가와 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연화의 재활 훈련을 봐주고 있었던 것 같았다.
-으…….
곤은 여래를 마주하자 몸을 떨었다.
신수의 자격을 지니고 있기에 눈앞의 신이 드높은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일단 이 녀석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구나. 제자야.]
처용이 안식전으로 향하자 곤이 서둘러 따라갔다.
‘물 밖에서도 문제는 없었네.’
처용이 자신을 잘 따라오는 곤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곤은 공중에 살짝 부유한 상태로 뱀처럼 꼬리를 움직이며 따라오고 있었다.
이윽고 안식전 앞에 도착하자 작은 문제가 생겼다.
“혹시 네 덩치를 줄일 수 있나?”
곤의 머리 크기만 따져도 안식전의 대문과 맞먹은 크기.
이대로는 안에 들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처용의 말이 끝난 순간.
-슈우우.
곤의 비늘이 빛을 내뿜더니 덩치가 점점 작아졌다.
-뻐끔, 뻐끔.
점점 작아지던 곤은 30cm 크기의 청록색과 갈색 비늘이 섞인 잉어로 변했다.
작게 변한 곤이 허공을 헤엄치듯 부유하며 처용 옆에 붙었다.
문제가 해결된 처용은 곤과 함께 안식전의 최상층으로 향했다.
처용과 곤이 카투라가 거주하는 곳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었어.]
처용을 기다리던 카투라가 반가운 듯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보살님도 계셨네요?”
카투라의 옆에는 보살도 자리에 있었다.
[어서 오세요. 계승자. 또 새로운 손님을 데려왔군요.]
[내가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거든.]
보살의 말에 대답한 카투라가 보랏빛 눈동자로 곤을 응시했다.
그러자.
-태, 태초의 신수께서 왜 저를…….
곤이 떨리는 음성으로 궁금증을 담아 카투라에게 의지를 전했다.
처용은 곤의 말에 의문을 품었다.
카투라를 ‘태초의 마수’가 아닌 ‘태초의 신수’라 표현했으니까.
‘둘이 같은 의미인 건가?’
처용이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아까 말해 줬잖아, 내 수족이 되어 줬으면 좋겠다고.]
카투라가 곤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는 처용을 바라봤다.
[고마워, 난 이 아이랑 이야기 좀 해 볼게. 아마 오래 안 걸릴 거야.]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일을 마친 처용은 곧장 안식전을 나와 좀 전 일이 떠올렸다.
그렇게 반항하고 날뛰던 곤이 카투라와 접촉하자 바로 얌전해진 것이 신기했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카투라는 자신을 모든 물에 사는 생명체의 어머니라고 말했었다.
그렇게 보면 곤이 말한 ‘태초의 신수’라는 표현도 맞는 것 같았다.
‘녀석 입장에서는 조상의 끝자락을 만난 거와 다름이 없으니.’
카투라의 앞에서 다소곳해진 곤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실없는 생각이 든 처용은 잡념을 털어내고 게이트를 열어 협회로 향했다.
올림포스와 관련된 문제 역시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미륵님은 자리를 비우신 건가?’
처용은 문득 미륵이 자리를 비운 것에 의문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
처용이 태민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아 오셨군요. 처용 님.”
내부에 가득 쌓인 서류를 살펴보던 태민이 처용을 반겼다.
그 서류는 모두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가 한국에서 저지른 불법 행위에 대한 서류들이었다.
처용이 탈취해 온 것 말고도 태민이 따로 조사한 것들까지 있었다.
“……과로로 쓰러지실 것 같습니다만?”
날을 샌 듯 피곤함이 드러나는 태민의 얼굴을 본 처용이 말했다.
“하하, 사건이 사건이다 보니 일이 좀 많긴 합니다. 제 스킬 레벨이 오를 정도로요.”
태민은 괜찮다는 듯 반쯤 농담을 섞어 말했다.
요 며칠간, 탐정의 능력을 한껏 활용한 덕분에 그의 스킬 레벨이 오른 것은 사실이었다.
처용은 주어진 업무에 충실히 임하는 태민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자 ‘자비의 손길’을 걸어주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이거밖엔 없군요.”
처용의 황금빛 신력이 태민에게 닿자.
“몽롱했던 정신이 확 맑아지는데요? 힐에 이런 기능이 있을 줄은…….”
태민은 자신의 컨디션이 말끔하게 회복된 것을 체감하며 감탄했다.
“올림포스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나요?”
처용이 태민에게 묻자.
“독일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정신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WHU에서 답신을 받긴 했는데…….”
태민은 처용이 자리를 비운 사이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사흘 뒤에 독일에서의 일을 처리할 예정이랍니다.”
아레스의 신전을 해결하러 선발된 올림포스의 정예들과 지원을 오기로 약속한 길드들.
그들이 모두 모여 아레스의 신전으로 출발하는 날짜가 지금으로부터 사흘 뒤였다.
“……대충 예상대로네요.”
처용은 태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청룡을 찾는 데 부족한 시간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이 정도면 감지덕지였다.
“그, 처용 님? 혹시나 해서 묻는 것입니다만.”
태민이 처용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독일에서 일어난 사태에 대해 무언가 연관이…….”
탐정으로서의 감각이 독일에서의 사태와 처용이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해 한 질문이었다.
“제가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예!?”
처용 태민의 물음에 흔쾌히 대답하자 태민의 안색이 다시 나빠졌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