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90화 (90/726)

#090화

제시카의 말이 끝나자.

대회의실 내부에서 대답들이 빗발쳤다.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신의 신관이 마인들과 손을 잡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진심으로 말도 안 된다는 듯 분개하는 자들과.

-하지만, 상황이 너무 이상합니다.

-신전에서 강력한 마기가 나왔습니다.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

이 상황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진실을 파악하려는 자들.

-모건은 그런 자가 아닙니다! 이건 음모입니다!

-애초에 확실하게 모건 님이 몬스터가 된 것이 맞긴 한 겁니까?

-믿을 수 없습니다!

모건을 옹호하며 무언가를 감추려는 듯 불안감을 보이는 자들.

제시카는 좌중을 한 번 쓱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 일은 올림포스만으로 해결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좌중이 제시카의 말에 집중하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주변 길드의 도움을 받아 이 일을 하루빨리 정리하자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또다시 여러 의견이 빗발쳤다.

이 일을 심각하게 보고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이들은 찬성하는 분위기였지만…….

-올림포스는 약하지 않습니다!

-다른 놈들의 지원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것조차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면 다른 길드가 비웃을 겁니다!

제시카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았다.

이들 대부분은 모건을 옹호했던 이들이었다.

제시카는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들을 한심한 듯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아직 모르시나 본데…….”

제시카가 인상을 찌푸리며 오른쪽에 앉아 있는 메리를 바라봤다.

“메리.”

메리는 제시카의 부름에 고개를 끄덕이며 누군가를 불렀다.

그리고.

부상을 입은 듯 왼쪽 팔에 깁스를 한 여성 헌터가 대회의장에 들어왔다.

“메리랑 제시카는 이미 직접 봤지만, 다른 사람들도 이걸 봐줬으면 좋겠어.”

메리의 말이 끝나자 대회의장에 들어온 헌터가 입을 열었다.

“워 글래디에이터 소속, 마법사 클래스 헌터 로라라고 합니다.”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밝힌 헌터, 로라는 오른손을 앞으로 뻗으며 스킬을 발동했다.

“쇼 아이즈.”

그녀가 사용한 스킬, ‘쇼 아이즈’는 아주 짧은 시간 눈에 담긴 것을 녹화하여 보여주는 스킬이었다.

보조 스킬 중에서도 극히 희귀한 스킬.

-우웅.

로라가 뻗은 오른손에서 밝은 구체가 생성되었고 대회의장 중앙으로 날아가 화면을 생성했다.

그 화면 속에서 로라가 직접 목격한 장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신전 내부에서 불길한 느낌을 과시하며 흘러나오는 마기.

그 안에서 헌터들의 장비를 입은 인간형의 흉측한 괴물들이 나타났고.

그런 괴물들과 갑작스레 전투를 벌이는 헌터들의 모습이 보였다.

흘러나오는 마기에 오래 노출된 헌터가 괴물로 변이되는 모습에서는 모두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크하악! 아, 아레스…… 개, 새끼!

처참하게 변한 모건이 신성모독을 내뱉으며 화면에 나타났다.

심지어 그가 약자멸시를 발동하고 공격 스킬까지 사용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그 장면에서 대회의장 내부에 시간이 정지한 듯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윽고 현장에 있던 모두가 급히 퇴각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쇼 아이즈가 끝났다.

“…….”

“…….”

로라가 사용한 스킬이 끝났음에도 아무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신관이 타락하여 처참한 몰골로 변하고 신성모독을 내뱉으며 공격하는 모습.

그 모습에 모두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특히, 태양 마차 길드의 길드장 헤리스가 받은 충격을 더 컸다.

그는 올림포스 신관들 중 모건과 친한 친구 사이였다.

무엇보다 모건과 ‘같은 일을 공유하는 사이’였기에 이 일에 대한 충격이 더 크게 다가왔다.

‘도대체 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모건!’

너무나도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는 이미…….

헤리스가 충격과 고뇌에 빠져 있을 때.

“저도 직접 보기 전까지는 믿지 못했습니다.”

제시카가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신관이…… 자신의 성좌를 모욕하며 타락한 모습을…….”

현실을 이야기한 제시카의 말에 대회의장 분위기가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장이자 전쟁신의 신관 모건이 타락하여 몬스터로 변했다.

심지어 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스킬 약자멸시까지 사용했다.

모건은 이곳에 모인 신관들 중 레벨이 높은 편이었다.

즉, 모건보다 레벨이 낮은 신관들은 그 몬스터를 상대하기 힘들다는 의미.

“이제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아시겠습니까?”

제시카가 인상을 쓰며 말하자 반대 의견을 내던 자들도 입을 다물었다.

“이 일을 질질 끌수록 올림포스의 이미지만 더럽혀지고 상황은 더욱 나빠집니다.”

제시카는 대회의실 내부의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헤리스를 바라봤다.

“태양 마차 길드장, 괜찮습니까?”

헤리스는 아직도 모건의 충격적인 모습이 떠오르는지 흔들리는 눈빛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지 않군요.”

자신의 상태를 깨달은 헤리스는 솔직히 말했다.

“하아.”

생각을 정리한 듯 한숨을 내쉰 제시카가 대회의장을 둘러보며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길드의 길드장과 지부장들은 정예들을 이끌고 독일로 출발하십시오.”

제시카가 이 일을 해결할 올림포스 산하의 길드들을 호명했다.

신전을 조사하기 위한 조사팀, 나이키 윙 길드를 시작으로.

헤스티아를 성좌로 둔 블레이즈 길드.

포세이돈을 성좌로 둔 오션 엠퍼러 길드.

헤라클레스를 성좌로 둔 스파르타 길드.

호명된 세 길드 모두,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 못지않게 전투력이 강한 길드였다.

제시카가 호명한 순간.

“저도 가겠습니다.”

헤리스가 제시카를 보며 말했다.

“아뇨, 태양 마차 길드장님은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의 내부 수습을 부탁하겠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모건 님의 친구이기에 부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알겠습니다.”

헤리스는 침통한 표정을 내비치며 제시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오션 엠퍼러 길드장에게 빠르게 눈짓했다.

오션 엠퍼러 길드장이 헤리스의 눈짓을 알아차리고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시카는 무표정으로 헤리스를 잠시 응시하고는 말을 이었다.

“넥타르 길드와 파이어 해머 길드도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디오니소스를 성좌로 둔 포션 제작에 특화된 넥타르 길드.

헤파이토스를 성좌로 둔 올림포스의 대장장이 길드, 파이어 해머 길드.

두 길드의 길드장이 제시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교단과 라이트닝 워리어 측에도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신전에서 흘러나오는 마기에 오래 노출되면 몬스터가 되어버린다.

그 마기를 막기 위해서는 천적인 신성력을 다루는 교단의 성기사와 사제들이 필요했다.

아스가르드 역시 이 사건을 확실하게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메리, 파라오 길드에 연락해서 죽음의 신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말을 전해 줘.”

제시카가 메리에게 말하자.

“죽음의 신관은 왜 부르는 겁니까?”

길드장 중 하나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제시카에게 물었다.

올림포스 못지않은 성좌들의 성운인 헬리오폴리스.

그리고 그들의 병사들이 모여 만들어진 길드 파라오.

죽음의 신관은 저승의 신인 아누비스의 신관이었다.

죽음의 신관이라는 말에 대회의장 내부에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는 자들이 있었지만,

“죽음의 신관은 이번과 비슷한 일을 해결한 적이 있으니까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시카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저 역시 직접 가겠습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대책 회의를 끝냈다.

***

한편, 처용은 언론 매체를 통해 전해 들은 소식으로 상황을 유추하고 있었다.

“대충 예상과 비슷하긴 한데…….”

처용이 자신의 핸드폰 속 기사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올림포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만전을 기할 것.

-교단과 아스가르드, 올림포스의 도움 요청 흔쾌히 수락.

-올림포스의 도움 요청에 파라오길드도 움직여…….

“죽음의 신관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할 줄이야.”

처용의 눈은 죽음의 신관이 올림포스의 도움 요청을 받아들인다는 기사를 향해 있었다.

그 내용에 의문을 갖고 있을 때.

-죽음의 신관, “과거의 끔찍한 일이 재현될 수 있는 상황. 최선을 다하겠다.”

처용은 위 기사를 보고 잊어버렸던 과거의 기억 중 하나가 떠올렸다.

이집트에 나타난 S급 던전, 심연 속의 미궁.

지구 역사상 최악의 던전 중 하나로 입구부터 무려 열 마리의 데스나이트가 지키고 있던 던전이었다.

처용이 기억하기로는 많은 헌터들이 노력한 끝에 던전을 공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략되는 순간 헌터들의 정신을 오염시키고 지배하는 강력한 저주가 뿜어져 나왔고.

그 저주를 죽음의 사제가 막아냈다고 했다.

처용은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기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구나. 제자야.]

‘차라리 일이 더욱 커지는 게 낫습니다.’

처용은 여래의 말에 대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혼란이 커질수록 시간을 버는 셈이니까요.’

처용은 이 일에 올림포스가 정신없이 헤매는 동안.

청룡의 행방을 수색할 생각이었다.

심지어 청룡을 노리는 길드는 오션 엠퍼러 길드.

올림포스의 대신 중 하나인 포세이돈의 세력이었다.

처용이 볼 때, 아레스의 세력은 포세이돈의 세력에 비하면 애송이였다.

모건은 차단의 눈으로 허를 찔러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해도.

포세이돈의 신관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나름대로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기사를 확인한 처용은 핸드폰을 집어넣고 게이트를 열어 태룡전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안식전의 가장 위층.

카투라가 거주하는 곳으로 향했다.

[안녕?]

처용을 본 인간형의 카투라가 인사를 건넸다.

[수련이 아닌 이유로 날 찾아올 줄은 몰랐네?]

“네, 도움이 필요합니다.”

처용은 곧장 본론을 이야기했다.

그녀에게 청룡에 대해 설명하고 혹시 찾을 방법이 있는지 묻자.

[음…….]

잠시 생각하듯 침묵한 카투라가 입을 열었다.

[찾을 방법은 있지만, 문제가 있어.]

“무엇입니까.”

[나를 대신해줄 수족이 없거든.]

카투라는 이곳 태룡전을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분신을 만들고 처용의 스킬을 통해 간접적으로 밖에 나갈 수는 있었지만.

그것 또한 제약이 있는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내 수족이 되어 줄 아이가 필요했는데 잘 되었네.]

“혹시 저 거북이는 안 됩니까?”

처용은 신수의 격으로 무리에 받아들인 거북이를 생각하며 말했다.

[저 거북이는 좀 부족해.]

카투라는 자신의 손발이 되어 줄 ‘신수’가 필요한 것이었다.

혹은 그에 준하는 생명체이거나.

“하아, 신수를 찾는 데 또 신수를 찾아야 한다니…….”

처용이 한숨을 내쉬며 한탄했다.

[너에게도 신수의 힘이 있잖아, 그것도 우두머리 격인.]

“사실…… 이 권능도 갑작스레 얻은 것이라, 정확한 활용 방법을 모릅니다.”

[우두머리 신수가 가진 위압감이라는 게 있어, 높은 격이라고 해야 할까?]

카투라가 처용에게서 내뿜어지는 신수의 기운을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신수의 자격을 지닌 생명체는 네 격에 반응할 거야. 경외감을 가진다거나, 혹은 공포를 느낀다거나.]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

처용은 ‘없었다’라고 말하려다가 말고 입을 멈추었다.

무언가…… 그런 경우가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회귀 전? 아니야 그때는 신수의 격이 없었어.’

처용이 과거의 기억들을 뒤지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음, 네 신격이 조금 거친 느낌이 있는 것으로 봐선 도망치려나?]

“……맞습니다!”

[응?]

처용은 카투라가 자신의 기운을 살펴보며 중얼거린 말을 듣고 괴성을 질렀다.

머리에 번개가 친 듯 번쩍이며 희미하던 기억이 살아났다.

“절 보고 도망친 놈이 있었습니다. 그땐 추적하려다가 말았는데…….”

처용은 혹시나 싶어 카투라에게 그 당시 상황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음, 그 정도면 확실한데? 아마 네 격을 감지하고 놀라 도망친 걸 거야.]

카투라가 반쯤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러자.

“그놈만 있으면 청룡을 찾을 수 있는 겁니까?”

[그 아이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추적할 수 있을 거야.]

“당장 잡아 오겠습니다.”

[부탁해~!]

처용은 곧장 그놈을 봤었던 고생물 던전으로 향했다.

골치 아플 것 같던 일이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린 느낌에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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