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86화 (86/726)

#086화

곧장 이진태와 아직 부상을 회복하지 못한 헌터들을 챙긴 모건이 태양 마차 길드로 향했다.

이진태를 인수 받는 과정에서 이원춘이 가로막긴 했었지만.

모건이 아들에게 신의 축복을 내려 완전히 멀쩡한 모습으로 되돌려 준다고 약속했다.

이원춘은 모건이 신관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자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수락했다.

-다른 건 필요 없습니다. 하나뿐인 제 아들이니 멀쩡하게만 고쳐 주십시오.

신신당부하는 이원춘을 향해 친절한 웃음의 가면을 쓴 모건이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이진태를 멀쩡한 모습으로 고쳐 준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저 일주일 뒤면 죽게 된다는 말만 하지 않았을 뿐…….

“네 아들은 신을 위해 고귀한 희생을 하는 거다. 흐흐흐.”

모건이 이원춘을 떠올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전쟁신의 신관인 자신을 위해 싸우다 죽는 병사.

얼마나 고귀한 희생이란 말인가?

모건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윽고

모건이 탄 차량이 올림포스 휘하 길드, 태양 마차 길드에 도착했다.

“환영합니다. 전쟁신의 신관님이시여.”

태양 마차 길드 한국 지부장이 모건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태양 마차 길드 한국 지부장 최민식이라고 합니다.”

“최민식 지부장, 태양 마차를 좀 빌리고 싶은데?”

모건이 태양 마차 길드 지부장, 최민식을 향해 명령하듯 말했다.

“길드장님께 보고하고 곧 준비시키라 하겠습니다.”

“그냥 통신구를 이쪽으로 가져와라. 같은 신관들끼리 이야기 좀 해야겠어.”

“……알겠습니다.”

모건의 말에 대답한 최민식이 길드 전용 통신기를 가지러 자리를 비웠다.

잠시 뒤, 최민식이 마치 태양처럼 일렁이는 듯한 테두리를 가진 타원형 거울을 들고 왔다.

거울을 세우고 모건이 그 앞에 자리하자.

-오랜만이네, 모건?

거울 안에서 긴 금발을 늘어뜨린 미남의 얼굴이 나타나 모건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헤리스.”

팔짱을 낀 모건이 거울 속의 남자를 향해 이름을 말했다.

거울 속에 나타난 남자의 정체는 태양 마차 길드장 헤리스였다.

-보아하니 안부 인사 전하러 우리 길드 지부에 방문한 건 아닌 것 같은데?

헤리스가 서글서글한 미소로 모건에게 말하자.

“맞아.”

모건이 고개를 끄덕이며 본론을 말했다.

“태양 마차를 빌려줘야겠어, 헤리스.”

모건이 말하는 태양 마차는 말 그대로 마차였지만.

평범한 마차가 아닌, 네 마리의 썬un) 페가수스가 이끄는 하늘을 달리는 마차였다.

태양 마차 길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성물.

모건은 그 성물의 기능 중 하나인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는 능력을 원한 것이었다.

-하아, 이봐 모건? 태양 마차는 택시가 아니라고?

“추후, 우리 길드의 무력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군말 없이 도와주겠다.”

-흐음…….

거울 속에 비치는 헤리스가 고민하는 듯 턱을 잡으며 침묵했다.

전쟁신의 가호를 받은 헌터들은 모두 전투에 특화된 클래스를 가진 헌터.

올림포스의 최상위 길드를 제외하면 헌터들의 무력이 강한 편이었다.

그런 이들을 이끄는 전쟁신의 신관에게 빚을 지워두면 추후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신관인 내 권한으로는 삼성 마차가 고작이야.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헤리스, 그저 신전에 빨리 가야 할 일이 생겨서 그러는 거니까.”

-이성 마차를 빌려주지.

“고맙다 헤리스. 추후 필요한 일이 생기면 도와주겠다.”

모건의 말을 마지막으로 거울 속 헤리스가 사라졌다.

약속대로 이성 태양 마차, 두 마리의 선 페가수스가 이끄는 마차가 도착했다.

겉보기에는 사람 네 명 정도만 탈 수 있을 크기의 마차였지만.

내부에는 최고급 호텔 방에 버금갈 정도로 넓은 공간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마차를 이끄는 신수, 썬 페가수스.

평범한 말보다 다섯 배는 거대한 덩치에 마치 태양처럼 타오르듯 일렁이는 깃털을 가진 날개.

우람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신수의 목에는 붉은 구속구가 씌워져 있었다.

“크, 우리 신님도 어디서 신수 하나 잡아 왔으면 좋겠군.”

모건이 썬 페가수스를 보며 욕망이 담긴 감탄사를 흘렸다.

‘아니 곧 생기려나? 흐흐.’

오션 엠퍼러 길드장에게 받은 지령이 생각난 모건은 조소를 흘렸다.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가 한국에서 몰래 조사하고 있던 일.

그 일을 진행하던 박철민이 잡혀들어가는 바람에 중단되었지만, 곧 다시 진행할 수 있었다.

“전원 태양 마차에 탑승하라!”

모건이 가장 먼저 태양 마차에 탑승하고 휘하 길드원들이 짐들을 나르며 탑승했다.

그리고.

-스르르.

탑승할 헌터들 중 한 명의 그림자가 아주 작게 일렁였다.

‘태양 마차인가? 오랜만에 보는군.’

그림자 속에 숨은 처용이 태양 마차를 보며 중얼거렸다.

회귀 전 딱 한 번 타본 경험이 있었다.

‘아폴론 새끼가 지랄 염병을 했었지.’

감히 하계종 출신 주제에 자신의 마차를 타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라며 시끄럽게 떠들었었다.

‘머저리 같은 순혈자들.’

처용은 올림포스의 태양신, 아폴론을 욕하면서 신수 썬 페가수스를 바라보았다.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어.

신수의 격이라는 권능 때문인지 회귀 전에는 몰랐던 썬 페가수스들의 감정이 느껴졌다.

이들이 아폴론에게 강제로 복종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는 명분이 없었고 아폴론이 나쁘지 않은 대우를 하는 것 같아 신경을 껐었지만.

이들의 감정을 직접 느낄 수 있게 되니 생각이 달라졌다.

‘……꼭 도와주마.’

처용은 썬 페가수스들을 향해 속으로 위로를 건넸다.

어차피 아폴론 역시 추후 전쟁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 신이었다.

악의 종주에게 겁먹고 도망치다가 결국 자신의 형제들과 같이 투신한 병신(病神).

처용이 평가한 아폴론은 그런 신이었다.

‘혹시 포세이돈 새끼가 신수를 찾는 것과 관련이 있나?’

처용은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에서 탈취한 문서가 생각났다.

[신수 사냥 프로젝트]

느낌상, 올림포스 순혈자들이 준비하는 중요한 무언가 같았다.

무엇보다 한국에 ‘청룡’이라는 신수가 존재한다는 것.

청룡을 올림포스가 확보하게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다만 문제는 자신 역시 청룡을 찾을 방법이 없다는 것.

처용이 고민하고 있을 때.

[그녀에게 도움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

‘네?’

처용의 고민을 알아차린 여래가 전음을 보내왔다.

[카투라에게 도와달라고 말해 보거라. 제자야.]

‘그분이 청룡을 찾을 방법을 알고 있을까요?’

[그녀가 직접 자신에 대해 말해 주었을 텐데?]

‘……그렇군요.’

태초의 마수 카투라는 모든 ‘물과 관련된 생명체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존재.

그녀라면 무언가 방법이 있을 수도 있었다.

‘이 일을 처리하는 대로 물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처용은 여래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윽고 처용이 몸을 숨기고 있는 헌터가 태양 마차에 오를 때.

‘류마, 너는 돌아가서 김태민 과장을 도와줘라.’

-알겠습니다. 용님.

처용은 조용히 따라오던 류마를 돌려보내고 홀로 태양 마차에 탑승했다.

태양 마차 안은 아폴론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

어둠이 일족인 류마가 들어서면 놈이 알아차릴 가능성이 있었다.

처용 역시 들킬 가능성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방법이 있었다.

[선인의 육체 / 패시브]

- 생명력 증가 : 2500

- 마나 증가 : 1250

- 원소 피해를 20% 감소

그동안 많은 노력으로 꾸준히 회복하고 성장한 처용의 육체.

그리고 얼마 전에 보법을 되찾은 덕분에 생긴 선인의 육체의 부가기능이 있었다.

[주변의 환경에 맞게 선인의 육체가 적응하고 변화합니다.]

-동화경(同化境) 사용 가능.

자연신보의 능력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속성 저항력’이었다.

반면에 선인의 육체에 새로 생긴 동화경은 주변 환경에 맞춰 적응하고 변화하는 능력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속성 친화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환경을 무시하는 힘이 아닌 환경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

그것이 동화경이었다.

지금 처용은 자기 자신의 개성을 지우고 ‘순수한 그림자’가 된 상태였다.

탐지 계열의 특화된 최상위 헌터라 해도 지금 상태의 처용을 알아차리기에는 힘들 것이다.

그렇게 아무도 처용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태양 마차는 전쟁신의 신전이 있는 장소.

독일의 베를린으로 출발했다.

올림포스의 일을 총괄하는 본부는 미국에 있었지만.

올림포스 신들을 모시는 신전은 각각 따로 떨어져 있었다.

본부를 미국에 둔 이유는 그저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었고 일을 총괄하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한 시간 정도 뒤, 마차가 독일, 아레스의 신전에 도착했다.

원래 한국에서 독일까지 비행기를 탄다고 해도 열 시간이 걸리는 거였지만.

하늘을 달리는 태양 마차가 빠르긴 했는지 열 배는 빠르게 도착했다.

마치 올림포스의 역사를 재현한 듯 그리스 양식의 신전과 같은 모습.

신전의 정면 입구에는 10m 크기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칼과 방패를 들고 있는 황금으로 도금된 아레스의 전신 동상.

신전 앞에 도달한 헌터들이 마치 신에게 경배하고 허락을 구하듯 동상 앞에 서서 고개를 조아렸다.

이윽고 모건이 신전 안쪽으로 들어서자 돌로 조각된 제단들이 나타났다.

“제단 위에 다친 놈들을 놓고 다 나가!”

마치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듯 제단 위에 이진태와 다친 헌터들이 올려졌다.

일을 마친 헌터들이 모두 나갈 때.

-스르륵.

헌터의 그림자 하나가 아주 은밀하게 떨어져 나와 신전 기둥 그림자에 들어갔다.

그리고 준비가 끝난 듯 모건이 신탁의 제단 한가운데에 섰다.

“위대하신 전쟁신님의 신관이 뵙기를 청하오니…….”

모건이 아레스를 만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이윽고 모건의 말이 끝나자.

-쿠구구구구-

신탁을 받는 제단 내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슈화아아!

모건의 앞에 빛이 모이더니 누군가가 나타났다.

온몸이 밝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남자.

그는 전쟁신 아레스의 화신체였다.

[무슨 일로 나를 부른 것이냐?]

아레스가 화난 듯 강한 목소리로 모건을 향해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레스 님!”

모건은 아레스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부탁을 했다.

그러자.

[무능한 하계종 놈!]

아레스에게서 호통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내가 병사를 잘못 고른 것 같구나!]

“죄송합니다. 아레스 님!”

모건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이번 일만 마치면 저희 영향력을 드높일 기회가 있습니다.”

[이번에 실수하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모건을 못마땅한 듯 쳐다본 아레스가 바위 제단 위에 올려져 있는 헌터들을 향해 손짓했다.

[광전사의 축복.]

아레스의 권능이 헌터들에게 향하자.

-화르르륵!

헌터들의 몸이 불타오르며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몸이 부수어지고 팔다리가 짓이겨졌던 헌터들이 멀쩡한 모습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크아아!

-으아아!

하나둘 괴성을 지르며 몸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헌터들.

마지막으로 피부가 불에 달궈진 듯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이진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슈우우우!

돌연 이진태에게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뭐, 뭐냐 이건!]

아레스가 이진태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느끼고 당황한 듯 소리쳤다.

[하계종 네놈! 도대체 무엇을 달고 온 것이냐!]

격노한 음성으로 아레스가 모건에게 소리쳤다.

“무, 무슨 일입니까?”

이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는 모건 역시 크게 당황했다.

이진태에게서 시작된 검은 기운이 점점 번져나가더니 다른 헌터들에게도 닿았다.

-크아악!

-케에엑!

광전사가 된 헌터들이 몸을 크게 비틀면서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마치 ‘구울’처럼…….

[왜 대악마의 기운이 여기에? 아, 안 돼! 크아악!]

아레스의 화신체에게도 검은 기운이 닿자 아레스가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렀다.

[이, 거대한 어둠은? 아, 안 돼! 치, 침식당한…….]

-치지지직.

아레스의 화신체가 점점 검게 물들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계종 네놈! 당장 다른 올림포스 길드들과 신관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거라 당장!]

“무, 뭐라고 전합니까?”

[대, 대악마가 우리를 공격……, 당장 전하…….]

화신체의 목소리에 점점 노이즈가 끼었다.

[안개로부터…… 보호…… 권능을 주마. 당장…… 전하거라!]

아레스의 화신체가 모건에게 손짓하자 그가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아레스가 검은 안개로부터 신관을 보호할 권능을 내린 것이었다.

아무리 맘에 들지 않아도 신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신에게도 타격이 가기에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서둘러라 당장!]

이 말을 마지막으로 비틀거리던 아레스의 화신체가 검게 물들더니 완전히 소멸했다.

그러자.

“꼴 좋구나. 아레스.”

그림자 속에 숨은 누군가가 진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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