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84화 (84/726)

#084화

닥터 화이트, 그의 스킬인 백병원이라는 공간 안.

마치 병동처럼 새하얀 복도가 이어져 있고 각 병실로 이어지는 문들이 있었다.

그리고 각 병실 안에서는.

“제, 제발 살려…….”

“아래쪽에 감각이 없…….”

닥터가 구출한 마인들 중 중상을 입은 이들이 고통에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때.

-위이잉.

복도 끝, 응급실의 입구로 보이는 자동문이 열렸고.

“이, 이게…… 도대체.”

리더가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병동에 들어섰다.

자신이 의회 본부에 상황을 보고하고 대책을 마련하려 자리를 비운 사이 일어난 참사.

그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때.

“하아, 늦으셨군요. 리더.”

피곤한 듯 눈을 반쯤 감은 닥터가 한숨을 쉬며 다가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아지트 중 한 곳이 조커에게 습격을 받았습니다. 마녀는 그를 막으려다가…….”

닥터가 리더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마녀는? 살아 있는 건가?”

“후우, 따라오시죠.”

리더의 말에 한숨을 내쉰 닥터가 그를 병동 끝으로 안내했다.

다른 병실보다 더 넓고 쾌적한 1인 병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삑- 삑- 삑-

병상 위에서 각종 의료 장비에 의지한 마녀가 옅은 숨을 쉬고 있었다.

마치 며칠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한 듯 입술이 메말라 있었고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와 있었다.

“이번엔…… 진짜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닥터가 안경을 들어 올리며 리더에게 죽겠다는 듯 말했다.

“하아, 그녀가 성물을 사용했다고? 게다가 권능까지?”

리더가 마녀를 바라보며 닥터에게 말했다.

“네, 게다가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썼습니다.”

닥터 역시 마녀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답했다.

“……믿을 수 없군.”

그의 입에서 마녀가 성물을 사용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게다가 S급 마인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성물의 권능까지 사용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말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알았다.”

리더는 닥터의 말을 알아듣고 생각을 그만두었다.

성물은 성좌가 직접 허락하지 않는 한 절대로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마녀와 성좌 간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성좌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마녀보다 직급이 높다고 해서 그녀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남은 이들은…… 얼마나 되나?”

리더는 어두운 얼굴로 닥터에게 현 상황을 물었다.

“이쪽에 남은 마인들은 이제 50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제길…….”

조커에게 너무 많은 수의 마인들이 죽어버렸다.

심지어 고위 간부 중 하나인 마녀는 또다시 혼수상태.

그나마 그녀가 성물까지 사용했기에 전멸을 면했다고 할 수 있었다.

“다행히 실험장을 지키는 오거 쪽은 아직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더군요.”

“……오거는 이 사달이 나는 동안 뭘 한 거냐?”

“일부러 그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었습니다.”

닥터가 어깨를 으쓱이며 리더에게 말을 이었다.

“마녀가 방해되면 되었지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동의했고요.”

“……옳은 판단이다.”

진지하게 생각해 본 리더가 닥터의 말에 긍정했다.

오거는 이런 비상 상황임에도 협력보다는 자기 고집대로 밀고 나갈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오거의 무식한 생각과 성향은 독이 될 것이 분명했다.

만약 오거의 세력까지 조커와 맞붙었으면 피해가 더욱 커졌을 것이다.

“의회 본부에서는 어땠습니까?”

닥터가 이 상황을 타개할 희망을 찾듯 리더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원을 약속받긴 했다. 내가 오자마자 사용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

답답한 듯 이마를 부여잡은 리더가 작은 해골 모양의 아티팩트를 꺼내었다.

“집행자께서 직접 한국에 오신다고 하더군.”

리더가 의회 본부에 상황을 전달할 당시.

-그 광대 새끼의 모가지는 내가 따버리겠다.

의회주 중 하나인 집행자가 직접 나서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리더가 꺼낸 아티팩트는 무려 의회주 중 하나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아티팩트였다.

비상 상황이거나 조커가 나타난다면 집행자가 바로 출동할 수 있도록 말이다.

“리더…….”

닥터가 리더를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문제라도 있나?”

“어쩌면…… 집행자께서 오시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리더는 닥터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그는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생각할 줄 아는 마인이었으니까.

“아까 이것까지는 말씀을 못 드렸었는데…….”

닥터는 리더가 오기 조금 전 휘하 마인에게서 받은 보고를 리더에게 전했다.

“이런 젠장!”

닥터의 말을 들은 리더가 노성을 내질렀다.

“박철민 그 멍청한 새끼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던 길드 중 하나인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

그 길드의 한국 지부장이 백호에게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고 잡혀 들어갔다는 소식이었다.

심지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마기로 만든 일회용 아티팩트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권백호가 눈에 불을 켜고 길드들을 들쑤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망할…….”

“그가 왜 갑자기 이렇게 과격하게 행동했는지는 조금 의문입니다만.”

“충분히…… 그럴 만했으니까.”

리더는 닥터의 말을 듣고 백호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는 듯 긍정했다.

“리더는 권백호를 잘 아는 것 같습니다?”

닥터가 리더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보며 묻자.

“너무나 잘 알고 있지.”

같은 식구였으니까.

리더는 뒤에 이어질 말을 삼켰다.

“아무튼, 재료를 조달해 주는 멍청한 놈이 잡혀버렸으니 마수 실험도 문제가 생기겠군.”

박철민은 단물을 다 빨아먹고 몸만 남은 헌터들 중 일부를 마인들에게 실험체로 팔기까지 했었다.

마인들은 그 덕분에 마수 실험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었지만.

박철민이 구속된 이상 일이 쉽지만은 않게 되었다.

“문제가 커졌군.”

리더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우선 내가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장을 만나보겠다.”

그리고 닥터와 마녀를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우선 마녀만큼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

“안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자네가 없었으면…… 아니, 정말 고맙군.”

리더가 마인 답지 않게 닥터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비 전투직임에도 불구하고 조커를 상대로 부상을 입은 마녀와 마인들을 구출했다.

거기에 죽을 뻔한 마녀의 목숨을 여러 번 살려주고 있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한국에서의 작전은 완전히 망해버렸을 것이다.

마인이 되고 나서는 잊어버렸었던 파티원의 중요성.

그중에서도 힐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하, 리더에게 감사 인사를 받으니 감개가 무량한데요?”

닥터는 옅은 웃음을 보이며 리더에게 말했다.

“그럼.”

닥터에게 짧게 대답한 리더가 병실을 나가자.

“하아.”

닥터가 입가에 그렸던 미소를 거두고 슬픈 듯한 표정으로 마녀를 바라봤다.

“왜 이렇게 다쳐서 오는 거야. 레나.”

마녀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낸 닥터가 말을 이었다.

“네가 다치면 그 약속이 아무 의미가 없는데…….”

그리고 소매에서 검붉은 뿌리 식물을 하나 꺼내었다.

불길한 오오라를 내뿜는 검붉은 색의 산삼과 같은 형태를 가진 영약.

“천년악령삼(千年惡靈蔘).”

닥터가 꺼낸 천년악령삼은 마계에서도 극히 보기 드문 영약이었다.

악령이 깃든 마계삼이 천년의 세월을 지나 성장한 것이었다.

굉장히 발견하기가 힘들뿐더러 발견한다 해도 상급 악마조차 쉽게 채취할 수 없는 영약이었다.

이것을 캐려면 천년이나 힘을 축적한 악령을 이겨야 했으니까.

“이걸 얻으려고 내 성좌님의 멱살까지 잡았다니까? 하하.”

닥터는 누워있는 마녀에게 들으라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

“잘 버텨낼 거라고 믿어. 레나.”

천년악령삼을 마녀의 가슴 위에 올려놓은 닥터가 마기를 끌어 올렸다.

“내가 도와줄 테니까.”

안경 너머로 비치는 닥터의 눈빛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

박철민을 포함한 워 글래디에이터 한국 지부의 주요 헌터들이 모두 잡혀들어간 다음 날.

“하…….”

책상 양옆에 서류를 쌓아 둔 협회장의 입에서 땅이 꺼질 정도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서류를 보며 어제 일어났던 일이 다시금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미안하우……. 형님.”

앞에 자리한 백호가 침통함과 분노를 섞은 듯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때문에 계획이 어그러졌어.”

“아니 너 때문에 그런 게 아니야.”

협회장은 백호의 자책에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역시 이 정도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분노를 참는 듯 살짝 끓는 목소리로 말한 협회장이 시선을 내려 서류를 바라봤다.

처용이 탈취한 서류 중 하나이자 백호가 분노한 이유가 되는 서류.

“한국에서 장기매매라니…… 그것도 헌터들을 대상으로…….”

-탁.

더 보기 힘들다는 듯 서류철을 덮어버린 협회장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괜찮으냐, 백호야?”

백호의 트라우마를 잘 아는 협회장이 나지막하게 묻자.

“후, 안 괜찮수.”

백호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솔직히 지금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구먼.”

“이해한다.”

인상을 확 구긴 백호가 중얼거리자 협회장이 이해한다는 듯 눈을 감으며 말했다.

“길드장이 어떻게 나올지가 관건이군요.”

협회장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긴 듯 보이는 처용을 향해 말했다.

“박철민한테 덮어씌울 겁니다.”

처용은 확신한 듯 단호하게 말했다.

모든 것은 박철민이 욕심을 품고 독단으로 저지른 짓이다.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와 올림포스는 이 일과 아무 연관이 없다.

굳이 결과를 기다리지 않아도 비디오였다.

“허허, 이만한 양을 고작 지부장 혼자서 저질렀다라…….”

협회장이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때.

협회장실 문이 열리며 태민이 들어왔다.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장이 내일 한국으로 입국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민이 말을 잠시 끊고 인상을 팍 구겼다.

“모든 일은 박철민 혼자서 저질렀다고 하더군요.”

태민의 말에 백호의 인상이 험악해졌고 협회장이 눈을 감았다.

동시에 처용이 비웃듯 말했다.

“어찌 예상을 벗어나질 않네.”

“……안 되겠군요.”

감았던 눈을 뜬 협회장의 인상이 분노한 듯 크게 일그러졌다.

“제가 웬만해선 좋게 가려고 했고, 또 많이 참아 왔습니다.”

-탁. 탁. 탁.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잠시 침묵한 협회장이 말을 이었다.

“WHU에 이번 사건을 조사할 것을 정식 안건으로 올리겠습니다.”

더 참다못한 협회장은 올림포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 일을 크게 키울 생각이었다.

그는 커맨더의 고향이자 소중한 터전인 한국을 지키기 위해.

이 나라를 지키는 헌터들을 위해 크게 무리하지 않고 언제나 평화로운 해결을 추구했었다.

올림포스나 교단 같은 거대 세력들의 눈치와 기분을 나름대로 맞추면서 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이 벌어졌다.

“올림포스고 교단이고 도저히 못 참겠군요.”

“……알겠습니다.”

“과장님도 말리지 않는군요?”

“어떻게 말립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는데…….”

태민은 협회장의 말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오히려 이 일을 더욱 키워 전 세계의 화제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침착하고 냉정한 성향의 태민 역시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일단 협회장님이 WHU와 협상을 하는 동안 길드장을 어떻게 해야겠군요.”

“그 개새끼가 허튼짓을 하면 내가 짓밟아 버릴 것이야.”

태민의 말에 백호가 주먹을 거세게 쥐며 말했다.

“백호 님이 있는 한, 대놓고 멍청한 짓을 저지르지는 못할 겁니다.”

처용이 무언가를 생각하듯 진지하게 말했다.

‘놈은 권백호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처용은 아레스의 신관이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절대로 무력적으로 나오지는 않을 겁니다.”

“뭔가 알고 있으시군요?”

처용의 말에 태민이 궁금한 듯 물었다.

“그냥, 전쟁신의 신관 놈이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 대략 알고 있으니까요.”

처용은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장이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확실히…… 처용 님 말이 사실이라면 섣불리 무력을 행사하지는 않겠군요.”

“그놈은 머저리에 겁쟁이입니다.”

처용이 비웃음을 담아 말을 이었다.

“철저하게 ‘약자’라고 판단된 이들에게만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겁쟁이.”

반드시 ‘이긴다’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 이상 함부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반면에 약자라고 판단되면 쓰레기 같은 인성이 기어나온다.

워 글래디에이터의 길드장은 그런 인물이었다.

“그럼 한국에는 왜 직접 오는 걸 까요?”

백호는 길드장을 포함한 A급 헌터 여섯 명을 혼자서 박살 냈다.

태민은 이 소식을 알고 있을 그가 왜 한국에 오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얕보고 있는 거겠죠. 백호 님을 실제로 본 적도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리고 길드장은 S급 헌터였죠.”

태민이 이해가 되었다는 듯 말했다.

S급 헌터가 직접 보지도 못한 A급 헌터를 무서워할 리가 없었으니까.

“아 그리고 놈이 아마 이런 제안을 할 겁니다. 그러면…….”

처용은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놈에게 건네기 위해 밑 작업을 시작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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