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83화 (83/726)

#083화

“일단 맞고 시작하자.”

분노가 가득 차오른 듯 핏발 선 백호의 눈동자가 박철민을 향해 이글거렸다.

“기, 기다려!”

기세가 완전히 꺾여버린 박철민은 더 이상 백호와 싸울 수 없었다.

“나는 올림포스 소속이야! 헌터 변호사를 요청한-.”

그가 자신의 지위를 내세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변호사라면 여기에 있다.”

백호가 그 말을 단칼에 잘라 버렸다.

-우드득!

그리고 뇌전이 한가득 뿜어져 나오는 오른손 주먹을 들어 보였다.

동시에 뇌호 역시 뇌전이 타오르는 앞발을 들어 올렸다.

-파지지직!!

“우리 ‘뇌호’ 변호사라고. 인사해.”

핏줄이 붉어질 정도로 거세게 쥐어진 백호의 주먹이.

-타아앙!

박철민의 안면을 강타했다.

“커허헉!”

단 한 대 맞았을 뿐임에도 박철민의 얼굴이 움푹 파이며 피와 이빨 파편이 튀어 올랐다.

백호가 손을 거두고 박철민을 위로 살짝 던지자.

-크허헝!

백호가 소개한 변호사 ‘뇌호’가 무시무시한 스파크를 뿜어대는 앞발을 내리쳤다.

-타앙! 콰르릉!

뇌호의 앞발에 가격당한 박철민이 땅을 찍고 다시 튀어 올랐다.

백호는 튀어 올라 공중에 떠오른 박철민의 멱살을 다시 잡았다.

“그- 커헉……!”

박철민은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좀 전에 받은 충격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직이다.”

낮게 읊조린 백호는 재차 오른손 주먹을 거세게 쥐었고 이번엔 아래에서 위로 박철민의 턱을 후려쳤다.

-타아앙! 후두두둑!

턱이 깨지고 충격을 버티지 못한 이빨들이 팝콘처럼 튀어 올라 떨어졌다.

위로 올려 쳐진 충격으로 박철민이 다시 떠오르자.

-크허엉!

뇌호가 떠오른 박철민을 다시 앞발로 내리쳤다.

강력한 충격을 받고 땅을 찍은 박철민이 다시 떠오르자.

-텁.

떠오른 박철민의 멱살을 다시 백호가 잡아챘다.

“그……그, 그만.”

박철민은 성대를 쥐어짜며 겨우 한 마디를 뱉었지만.

“너는 그만뒀냐?”

-콰아앙!

백호가 박철민의 복부를 아래에서 위로 힘껏 가격해 올려 쳤다.

“그 어린 애들이 제발 그만두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을 때!”

박철민이 백호의 노성을 들으며 또 한 번 허공으로 떠올랐다.

“네놈은 그만두었냐고!!”

-크허엉!

뇌호가 백호의 감정에 동조하듯 분노의 포효를 내질렀다.

동시에 허공으로 떠오른 박철민을 다시 앞발로 내리찍었다.

-콰쾅!

이번엔 내리친 것이 아닌 앞발로 내려찍은 것이기에 박철민이 땅에 처박혔다.

-콰콰콰쾅!

뇌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땅에 처박힌 박철민을 스파크가 가득한 앞발로 마구 내려찍었다.

무자비하게 쏟아지던 뇌호의 공격이 멈추자.

-그, 그으-으어.

마치 좀비가 낼 법한 바람 빠진 곡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그만한 공격을 받았음에도 박철민은 살아 있었다.

그가 레벨이 높고 좋은 아티팩트를 장비한 A급 탱커인 이유도 있었지만.

“아직이다.”

백호가 ‘강제로 살아 있도록’ 조절했기 때문이었다.

유리관에 담겨 자신을 죽여달라 외치던 소녀가 당한 것처럼.

박철민이 피해자들을 오랫동안 착취하기 위해 했던 짓을 그대로 돌려주고 있었다.

“사, 사, 살려.”

박철민이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려 말했지만.

“안 들려.”

-콰직!

백호가 그 손을 밟아 부러뜨렸다.

“커, 그-어, 내, 내가 자, 잘못-.”

고통 속에서 기어 다니는 박철민이 다시 한번 겨우 입을 열었지만.

-콰쾅!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뇌호가 앞발을 내리찍었다.

발을 들어 올린 뇌호가 다시 내려찍으려 할 때.

“나, 날…… 죽여-어.”

박철민의 길고 늘어지는 곡소리를 듣고 멈추었다.

“씨부럴 새끼!”

-콰쾅!

백호가 내뱉은 욕과 동시에 뇌호가 박철민을 내리찍었고.

-파지지직!

뇌호는 서서히 스파크가 번지듯 흩어지며 사라졌다.

동시에 어두운 얼굴로 돌아선 백호가 현장을 벗어나 걸어 나갔다.

“……미안하다. 태민아.”

“고생하셨습니다. 부장님. 걱정은 마십시오.”

백호의 말에 대답한 태민이 바닥에 쓰레기처럼 나자빠져 있는 박철민과 A급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으…… 으어…….”

마치 좀비처럼 바람 빠진 신음소리를 내는 박철민에게 태민과 협회 헌터들이 다가왔다.

“박철민 지부장.”

태민이 박철민을 내려다보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을 불법 고리대금 및 불법 장기매매 혐의, 그리고 마인들과 내통한 혐의로 체포합니다.”

협회 헌터들은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진 박철민에게 헌터 전용 수갑을 채우고 연행해갔다.

“당신들 역시 같은 이유로 체포합니다.”

박철민과 더불어 백호에게 맞서다 호되게 당한 A급 헌터들도 연행되었다.

태민은 백호에게서 넘겨받은 서류를 다시 한번 잠시 살펴보았다.

“하아…….”

서류를 다시 눈에 담자 태민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지금 자신의 손에 들린 서류.

이것은 처용이 탈취했던 서류 중 하나에 불과했다.

서류의 내용을 모두 합하면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한국에서 벌어진 일 중 역대급 규모가 될 수도 있겠군.’

태민은 이 사건의 규모를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일단 현장 수습부터 하자.’

우선 지금의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태민은 남아 있는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 헌터들을 향해 외쳤다.

“지금부터 제가 호명하거나 길드에 피해를 받은 헌터 분들은 앞으로 나오십시오.”

서류를 천천히 살펴보며 태민이 사람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민수를 포함한 피해자 헌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거기에.

“보, 본부장이 시켰습니다.”

“협박을 당해서 어쩔 수 없이…….”

피해자가 아닌 헌터들 중에서도 서로 고발하겠다고 나선 이들도 있었다.

길드에서 대우를 받기 위해 박철민을 조금이라도 도왔던 이들.

그들은 박철민이 썩은 동아줄로 변해버리자, 가차 없이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철저한 검증과 증거로 판단할 겁니다.”

태민은 단순 자수와 고발만으로 지은 죄를 봐주는 인물이 아니었다.

이 장부에 적혀 있는 끔찍한 일들에 가담한 것만으로도 무거운 처벌감이기 때문이었다.

“단, 자수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상 침착 여지는 있습니다.”

그러나 태민은 그들을 완전히 몰아붙이지는 않고 갱생할 기회를 주었다.

백호에게서 넘겨받은 서류와 진실판별로 길드 헌터들의 증언을 들어본 결과.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가 지금까지 어떻게 운영된 것인지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이들은 철저한 약자멸시와 강자독식의 신념을 가진 길드였다.

강자는 약자에게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살인까지도 용서받을 수 있었다.

더 악질적인 것은 길드의 방식에 불만을 품거나, 따르지 않는다면.

길드에서 철저하게 ‘약자’로 만들어 버린다.

착취를 당하기 싫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강자가 되어야 했다.

길드원들은 약자였을 때의 멸시당한 공포 때문에 절대로 강자의 권리를 놓으려 하지 않았다.

힘겹게 성장하여 올라온 이들은 다시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악독한 마음을 품었다.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는 헌터들을 마치 중세시대의 검투사처럼 운영한 것이었다.

‘악질 중에 악질이군.’

태민이 머리를 박박 긁으며 답답함을 표했다.

이 길드는 이전 처용이 말했었던 대로 있어 봐야 도움이 되지 않는 길드였다.

태민은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가 두 번 다시 지부를 세우지 못하게 하리라 다짐했다.

***

백호는 현장에서 조금 떨어져 나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아, 젠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몽과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스스스.

잔해 밑 그림자에서 처용이 불쑥 솟아 올라왔다.

멀리서 지켜보던 처용이 백호를 따라온 것이었다.

“자네 덕분에 불법 행위의 증거를 찾을 수 있었어.”

백호는 어두운 표정에서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처용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맙구먼.”

백호의 감사 인사에 처용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아, 증거라기보다는 종양 덩어리를 발견한 기분입니다.”

처용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백호가 격노하는 모습을 본 처용은 자신이 탈취한 서류를 빠르게 확인해봤었다.

“쓰레기 같은 놈들이라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놈들이 저지른 끔찍한 만행.

처용조차도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동시에 백호가 왜 분노가 폭발했는지도 알았다.

-아직도…… 내가 죽인 그 소녀의 얼굴이 떠오르거든…….

회귀 전 커맨더가 자신에게 해 주었던 말.

커맨더는 처용에게 소말리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준 적이 있었다.

“미안하네, 내가 참지 못한 탓에 계획이 어그러졌구먼…….”

처용은 백호의 사과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같았으면 박철민을 살려두지 못했을 겁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백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가까웠던 이들의 끔찍한 죽음.

처용 역시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악몽과도 같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나 역시 그 개새끼를 죽여버리고 싶었네.”

백호의 표정에 다시 분노가 일렁였다.

“저것들은 인간이 아니야…….”

“맞습니다.”

처용이 백호의 말에 긍정하며 말을 이었다.

“인간의 탈을 쓴 몬스터들이지요. 아니, 차라리 몬스터들이 더 순박해 보일 정도입니다.”

“흐흐, 자네 말이 백번 맞아.”

백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표정을 보니 탈취한 서류들을 확인한 모양이구만?”

백호가 침착한 목소리로 처용을 향해 진지하게 물었다.

“……고름 덩어리 정도라고 생각했었습니다만, 오산이었습니다.”

서류의 내용들을 떠올린 처용이 끔찍하다는 듯 눈을 감았다.

“이미 암세포가 번질 대로 번져 있습니다.”

한숨을 내쉰 처용이 단호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대수술이 필요할 정도입니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한국이라는 환자가 암세포에 뒤덮이고 죽을 수도 있다.

“내가 그동안 너무 안일했었던 것 같구만.”

백호의 말 속에는 자책감이 묻어 있었다.

“유진이가 나를 믿고 고향을 맡긴 만큼 조심하기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했어.”

백호의 머릿속엔 자신이 더 완벽했으면 이러한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신도 완벽하지 않은 마당에 사람이 어떻게 모든 걸 완벽히 합니까?”

백호의 생각과 고민을 파악한 처용이 진지하게 말했다.

처용 또한 그러한 고민은 수도 없이 했었으니까.

“지난 과거를 후회하기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겠지요.”

“하하, 자네 말이 옳아.”

처용의 말에 웃으며 답한 백호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네.”

백호의 눈빛에 단호함이 깃들었다.

“올림포스고 나발이고 이 일과 연관된 놈들을 전부 밟아버릴 것이야.”

“적극적으로 도와드리지요.”

처용은 흉흉한 분노를 내뿜는 백호의 의견에 동의하며 말했다.

“저 역시 놈들에게 물어야 할 안부가 많으니까요.”

이미 박철민이 마인들과 내통했다는 증거를 직접 확인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박철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장, 아니 길드 전체를 넘어서 이들의 성좌까지.

전쟁신 아레스는 이미 악신들과 협력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아레스를 떠올린 처용이 이를 아득바득 갈아댔다.

‘우선 네놈의 신관부터 갈기갈기 찢어 죽여 주마.’

아레스의 신관을 죽이는 것.

처용이 반드시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회귀 전 아레스가 패륜을 저지르고 악신 측으로 전향할 때.

아레스의 신관은 그를 따라가 S급 마인이 되어 사람들을 학살했었다.

마치 숨겨두었던 본성을 드러낸 듯이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레스의 신관을 죽여야 하는 이유가 또 있었다.

신관은 성좌와 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중요한 병사였다.

신관이 사망한다면 성좌 역시 타격을 받게 된다.

‘조만간 내가 남긴 선물을 열어보겠군.’

이전 불법 던전에서 처용이 이진태를 묵사발 낼 때.

그의 몸속에 ‘아레스를 위한 선물’을 남겨두었었다.

처용은 놈들이 어서 그 선물을 열어보기를 기대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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