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화
백호가 붉게 핏발이 선 눈으로 박철민을 노려보며 노성을 질렀다.
“이 개새끼가…….”
그런 스파크를 내뿜는 백호를 향해 태민이 실드를 켜고 다가왔다.
“부장님!”
빛 속성 실드를 만들어내는 아티팩트 덕분에 태민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실드 바깥으로 섬뜩하게 튀어 오르는 스파크가 보였다.
백호가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봐라.”
태민이 백호에게서 서류를 건네받아 빠르게 훑자.
“이런…… 미친?”
태민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좀 전에 수술 자국이 있는 오민수를 보며 대충 예상은 했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상상 이상이었다.
서류의 내용은 도저히 한국에서 일어났다고는 믿을 수 없는 범죄들이었다.
마치, 소말리아가 절로 연상될 정도의 규모였다.
‘이해는 되지만…….’
태민이 백호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소말리아에서 있었던 일들은 커맨더의 파티원 전원에게 트라우마를 안겨 준 악몽이었다.
비록 자신은 그 당신 현장에 없었지만.
사후 처리를 위해 서류와 증거를 확인하면서 그 상황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미안하다, 태민아.”
백호는 태민을 향해 미안하다 전하고.
“이번만큼은…… 도저히 못 참겠다.”
손아귀에 쥐고 있던 구겨진 마지막 서류 한 장을 건네었다.
태민이 구겨진 서류를 펴 확인하자 환하게 웃고 있는 여성의 사진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녀가 당한 일들과 현재 죽었다는 것까지도…….
“……젠장.”
결국, 태민이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는 소말리아에서 백호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고 있었다.
차마…… 그만두라고 말릴 수가 없었다.
지금 상황을 파악한 태민조차 이성이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박철민 지부장! 당신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태민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박철민을 향해 묻자.
“뭘 무슨 짓을 해!?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오히려 역으로 화를 내며 윽박지르고 있었다.
그러자.
“무슨 짓을 했냐고?”
백호가 박철민을 향해 싸늘한 음성을 내뱉고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쿠르릉!
손끝에서 뻗어 나간 벼락 줄기가 박철민을 향했다.
“으윽!”
“크윽!”
박철민 근처에 있던 워 글래디에이터의 A급 헌터 두 명이 백호의 번개를 막아섰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이건 뭐냐?”
백호가 태민의 손에 들린 서류철을 눈짓하며 말했다.
“고작 ‘그딴 서류’ 가지고 영장도 없이 감히 우리를 공격해?”
“그딴…… 서류라.”
백호가 박철민의 말을 곱씹으며 눈을 잠시 감았다.
끔찍한 범죄의 사실이 담겨 있는 서류를 ‘그딴 서류’라고 말하는 박철민.
그 말에 백호의 이성이 끊어졌다.
“지금부터.”
백호는 주변을 둘러보며 잘 들으라는 듯 말했다.
“오민수처럼 저 개새끼에게 피해를 받았다거나, 말려들고 싶지 않은 이들은 모두 물러나라. 아니.”
했던 말을 정정한 백호가 이를 아득바득 갈며 박철민을 노려보고 잘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박철민 총알받이 아닌 새끼들은 그냥 전부 나가! 뒤지기 싫으면.”
“협회 헌터들은 전부 물러나세요. 당장!”
백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태민이 외쳤다.
동시에 오민수를 포함한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원들도 대부분 물러났다.
애초에 B급 이하 헌터들은 백호가 내뿜는 기세조차도 정면으로 받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하급 헌터 대부분은 오민수처럼 박철민에게 착취를 당했던 이들.
박철민의 범죄가 드러난 이 상황에서 그를 위해 몸소 방패를 자처하는 바보는 없었다.
결국, 박철민의 곁에 남은 이는 길드에 광신도처럼 충성하는 A급 헌터 5명이 전부였다.
“길드장님이, 올림포스에서 가만있을 거 같나?”
박철민이 자신의 지위를 내세워 보기도 했지만.
“박철민, 네놈 혼자서 이런 규모의 일을 할 리가 없지.”
백호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듯 뇌전의 힘을 키웠다.
“올림포스고 길드장이고 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미쳤군!”
박철민은 격노를 내뿜는 백호를 보며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지만.
곁에 선 A급 헌터들을 보고 자신감을 되찾았다.
자신까지 포함하여 A급 헌터 여섯 명, 반면에 백호는 강하다 해도 혼자였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애초에 난 네가 맘에 안 들었어!”
박철민이 백호를 향해 분노를 내보이며 전투를 준비했다.
‘아무리 강해 봐야 저놈은 S급 헌터가 아니다.’
박철민은 냉정하게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의 길드장 역시 S급 헌터.
그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A급 헌터 여섯 명이라면 충분히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멍청한 새끼들.”
백호는 박철민과 그를 보호하는 A급 헌터들을 보며 비웃었다.
“결전기(決戰技)-뇌호(雷虎).”
-쿠르르릉!
백호의 주변에 거센 벼락 줄기가 모여들어 어떤 형상을 만들어냈다.
-크르! 크허엉!
백호의 몸을 마치 갑옷처럼 감싸며 만들어진 형상은 번개로 이루어진 거대한 호랑이였다.
“부장님이 결전기를…….”
태민이 떨리는 음성으로 백호를 바라보았다.
딱 한 번 보았었던 백호의 결전기.
백호는 웬만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 결전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결전기를 쓰는 경우는 딱 두 가지.
정말 위험한 상황이거나.
아니면 정말로 화가 났다거나.
지금 상황의 경우는 후자였다.
“뒤질 각오 해라!!”
마치 사자후처럼 격렬한 노성을 내지른 백호가 박철민을 향해 돌진했다.
“막아!”
백호의 흉흉한 모습을 본 박철민이 A급 탱커 한 명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견고한 성벽!”
박철민을 지키려는 듯 A급 헌터가 사용하는 방어 스킬이 발동되었고.
백호는 벽을 세우는 A급 헌터를 향해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내질렀다.
-쾅! 파지직!
두꺼운 방패와 백호의 주먹이 맞닿았고 날카로운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백호의 주먹을 맞았음에도 방패는 멀쩡해 보였다.
“막았-.”
막았다고 생각한 순간!
-크허헝!
백호 위에 있던 뇌호가 방패를 든 A급 헌터를 거대한 앞발로 내리찍었다.
-콰쾅! 쿠르릉! 쿠릉!
뇌호의 앞발이 땅을 찍을 때마다 하늘에서 벼락 줄기가 내리쳤고.
이미 무너져 폐허가 되어버린 곳이 더더욱 망가지기 시작했다.
뇌호의 공격은 물리 공격도 상당한 편이었지만.
감전을 일으키고 사방을 태워버리는 뇌 속성 공격 또한 강력했다.
“커헉! 크허억!”
백호의 공격을 연속으로 받은 A급 헌터는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해냈다.
뇌호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살갗이 그을리고 터져 나갔다.
결국, 버티지 못한 A급 헌터가 고꾸라졌고.
-콰지직! 으드득!
뇌호가 그를 물어 으스러뜨리고는 멀리 던져 버렸다.
“이런 썅!”
그 모습을 본 박철민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백호의 전력을 완전히 잘못 평가했다.
방금 나가떨어진 헌터의 레벨은 128, 박철민을 제외한 A급 헌터들 중 가장 강한 이였다.
그런 그가 백호의 공격을 단 3초도 버텨내지 못했다.
A급 헌터 하나가 쓰러지자마자.
“박철민!!”
높이 뛰어오른 백호가 오른쪽 다리를 치켜들고 박철민을 향해 내려찍었다.
“젠장! 전장의 방벽!”
박철민은 권갑이 끼워져 있는 팔을 교차하듯 들어 올렸다.
그가 착용한 권갑은 강력한 방어 능력을 가진 유니크급 아티팩트.
백호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콰쾅!
박철민의 권갑에 백호의 발차기가 닿자 땅이 움푹 꺼져 들어갔다.
“커허헉!”
백호의 공격을 견디지 못한 박철민이 무릎을 꿇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윽고 백호 뒤에 있던 뇌호가 추가 공격을 가하려는 때.
뒤로 물러서 있던 A급 마법 클래스 헌터 두 명이 백호를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EMP 쇼크 웨이브!”
“펄스 붐!”
그들이 사용한 마법은 전격의 힘을 크게 약화시키는 디버프였다.
-우우웅!
무형의 파동이 일렁이며 뻗어 나가자 백호 주변에 퍼지던 스파크가 약해졌다.
마법사 헌터들은 백호에게 붙어 있는 뇌호도 없애기 위해 마법의 출력을 높였다.
그러나.
“뭐야? 왜 안 없어져!”
마법을 발동한 A급 헌터 하나가 당황한 듯 소리쳤다.
분명 백호가 내뿜는 뇌전이 약해진 것으로 봐 디버프가 통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디버프에 당한 뇌호는 아무 영향도 없다는 듯 멀쩡했다.
“머저리들.”
백호가 마법사들을 향해 조소를 흘렸다.
자신이 사용한 결전기 뇌호는 단순히 형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뇌호는 백호의 분신이자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무기와 같은 존재였다.
백호만이 다룰 수 있는 고유 정령이라고 할 수 있는 스킬.
그런 그의 결전기를 고작 디버프 마법으로 해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뇌호가 앞발을 들어 박철민을 내리찍었다.
-콰콰쾅! 쿠릉! 쿠르릉!
날카로운 벼락 줄기들이 박철민을 영혼까지 태워버릴 기세로 몰아쳤다.
“크아아아!”
박철민은 아티팩트의 성능을 믿고 버티고는 있었지만.
-쩌저적!
백호의 힘을 점점 견디기 힘들었는지 아티팩트 여기저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빠, 빨리 이놈을 죽여!”
박철민이 발악을 하듯 소리친 순간.
-피이잉!
날카로운 관통력을 지닌 화살 한 발이 백호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마법사들보다 더 뒤에 숨어있는 궁수 클래스 헌터가 쏘아 보낸 화살이었다.
“흡!”
백호가 박철민과 거리를 벌려 뛰어오르듯 화살을 피했다.
그때.
“핏빛 가르기!”
숨어서 몰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암살자 클래스 헌터가 백호의 뒤를 기습했다.
두 자루의 단도가 각각 백호의 목과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공중에서는 피할 수 없을 터!’
암살자가 확신을 담아 일격을 펼친 순간.
“뇌호.”
박철민을 공격하고 있던 뇌호가 순식간에 사라지듯 이동하여 암살자 앞을 가로막았다.
-크르르!
“뭣?”
뇌호는 정말 눈 깜빡할 순간 나타났다.
백호의 결전기 ‘뇌호’는 그 능력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 상황은 상대의 스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암살자의 실수였다.
그리고.
암살자는 실수에 대한 참혹한 대가를 받아야 했다.
-촤촤촤촤악!
뇌호의 날카로운 발톱이 암살자를 마구 난자하여 찢어발겼다.
“크허!”
전신에 피를 뿜으며 추락한 암살자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암살자가 쓰러짐과 동시에.
“벼락 질주.”
-파직!
백호는 ‘벼락 걸음’보다 더욱 빠른 속도를 가진 이동 스킬 ‘벼락 질주’를 사용했다.
“뭐, 뭔?”
후방에 있던 마법사 헌터의 입에서 당황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번개처럼 사라졌던 백호는 마법사 헌터 둘 사이에 나타나 있었다.
“벼락 차기.”
백호는 오른쪽의 마법사에게 번개가 휘감긴 돌려차기를 날렸다.
동시에 뇌호가 왼쪽의 마법사를 앞발로 내리쳤다.
-콰콰쾅!
뇌호의 앞발에 맞은 마법사 헌터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처박혔다.
반면 백호의 돌려차기에 맞은 마법사 헌터는 몸이 기역 자로 꺾이며 어디론가 날아갔다.
“이런!”
더 후방에 있던 궁수 클래스 헌터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동료를 보고 당황한 듯 외쳤다.
전우애는 개나 줘 버린 듯 날아오는 동료를 받아주지 않고 피해버린 순간.
-파지직!
백호와 뇌호가 순식간에 다가왔다.
“자, 잠까-.”
궁수가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콰쾅!
백호는 더 듣지 않고 궁수를 밟아 지면에 박아 버렸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박철민이 백호에게 당한 부하들을 보며 경악했다.
불과 5분도 되지 않아서 A급 헌터 다섯 명이 나가떨어졌다.
왜 다른 길드들이 커맨더 못지않게 백호를 두려워하며 자극하려 들지 않는 것인지.
왜 ‘마인들이’ 백호만큼은 섣불리 건들지 말라는 것인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젠장!”
결국, 박철민은 상황이 좋지 않다 판단하고 도주를 결심했다.
-챙강! 푸슈슈.
소매에 숨겨두었던 연막 포션을 바닥에 던져 깨 버리고 긴급 탈출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이걸 쓰게 될 줄이야.’
자신들과 협력하는 마인들에게서 받은 일회용 긴급 마법서.
이것을 쓰게 되면 마인들과 내통했다는 걸 드러내는 꼴이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절대로 백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막은 아무 방해도 되지 않는다는 듯 백호가 순식간에 쇄도해왔다.
“늦었다!”
박철민이 스크롤을 찢는 순간.
어두운 마기로 이루어진 보호막이 그를 보호하듯 감쌌다.
동시에 발밑에 워프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어딜!”
백호와 순식간에 다가와 내려차기를 했지만.
-콰쾅!
검은 보호막은 살짝 금만 갔을 뿐 부서지지 않았다.
이어진 뇌호의 공격 역시 마찬가지로 보호막을 부술 순 없었다.
“하하하! 이건 부술 수 없을 거다 권백호!”
그 순간.
“브레이킹 실드!”
뒤에 있던 태민이 상대의 실드를 해제하는 보조 스킬을 사용했다.
“멍청한 새끼!”
박철민이 태민을 보며 조소를 흘렸다.
고작 B급 헌터, 게다가 비전투 클래스의 보조스킬이었다.
저런 스킬로는 ‘마인들’에게서 받은 힘을 절대로 뚫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태민이 쏘아낸 빛줄기가 백호의 발차기로 금이 간 실드에 닿은 순간.
-쩌저적!
마치 지진으로 땅이 점점 갈라지듯 금이 점점 크게 번져나갔다.
이윽고.
-파차창!
백호의 주먹에도, 뇌호의 공격에도 버텼던 견고한 실드가 유리창처럼 부서졌다.
“어?”
박철민의 입에서 멍청한 소리가 나왔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가 태민을 바라보자.
-화아악!
그의 오른손에 어둠을 몰아내는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게 보였다.
처용이 건네주었던 유니크 아티팩트의 능력이었다.
[악몽을 걷어내는 자 / 아티팩트]
[짙은 어둠을 걷어내는 명환의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아티팩트에 담긴 명환의 힘은 마기의 천적인 파마의 힘.
그 힘이 태민의 스킬을 대폭 강화해 준 것이었다.
“부장님!”
“잘했다. 태민아!”
태민을 칭찬한 백호가 멍청하게 서 있는 박철민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네 입에서…….”
마치 맹수처럼 흉흉하게 빛나는 백호의 눈이 박철민을 마주했다.
“죽고 싶다는 말이 나오게 해주마.”
백호는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을 죽여달라 말하는 소녀의 얼굴이 계속 떠오르고 있었다.
그 목소리가 마치 자신의 원한을 갚아달라는 듯 느껴질 정도였다.
핏줄이 붉어질 정도로 백호의 주먹이 거세게 쥐어졌다.
이제는 그 죽여달라는 말이.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의 입에서 나올 시간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