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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81화 (81/726)

#081화

거대한 폭발과 함께 폭삭 무너져 버린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 본부.

“…….”

본부장 박철민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입을 벌린 채 멍해 있었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길드 창고에 보관되어있는 자원들은?

길드 헌터들이 사용해야 할 아티팩트들은?

각종 포션과 영약 등 소모품들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모든 것들이 눈앞의 화마 속에서 잿더미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 장부는? 지령서는?’

절대로 잊어버려서는 안 될 중요한 것들도 있었다.

“크흠, 설마 자폭을 하는 데스나이트가 있을 줄이야…….”

백호가 당황스러운 척 기침을 하며 말했다.

“부장님.”

반면에 백호에게 다가온 태민의 표정은 침착했다.

마치 이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다행히 사망자는 없는 것 같습니다.”

태민이 백호에게 현 상황을 보고했다.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길드 본부에 있던 모든 헌터가 밖으로 나와 수비를 했고.

그 결과 폭발에 휘말려 죽은 헌터가 한 명도 없었다.

우연이었지만, 그야말로 하늘이 도왔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 만큼은 태민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다행!? 이게 지금 다행인 상황으로 보여!?”

태민의 말을 들은 박철민이 분노를 내비쳤다.

본부가 완전히 박살 나 버렸다.

길드가 보유하고 있던 재산들이 전부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박철민은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데스나이트를 상대로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 아니면 뭡니까?”

태민은 박철민을 쏘아보며 말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 새끼가? 기껏 한 마리 막아줬건만.”

백호 역시 인상을 크게 구기며 박철민을 쏘아보았다.

“젠장…….”

둘의 말에 박철민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데스나이트를 상대로 길드원들이 한 명도 죽지 않은 것은 천운이 맞았다.

하지만.

“당장 불부터 꺼! 화재부터 수습해 당장!”

박철민이 길드원들을 향해 호통쳤다.

“워터 붐!”

“아이스 샷!”

마법사 클래스 헌터들이 수 속성과 빙 속성 마법으로 화재를 진압하기 시작했다.

다른 클래스들 역시 잔여물들을 치우며 화재를 진압하고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희도 잠깐만 돕죠.”

태민의 말에 백호와 협회 헌터들이 정리를 돕기 시작했다.

“아, 감사합니다.”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원들은 자신들을 도와주는 협회 헌터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가장 위험한 순간 백호와 함께 달려와 자신들을 구해주기도 했으니까.

다만 이 상황에서 한 사람 만큼은 표정이 더욱 구겨지다 못해 썩어가고 있었다.

“당신들이 도와줄 필요는 없습니다.”

박철민이 태민을 향해 짜증을 담아 말했다.

그 말에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의 일반 헌터들도 박철민을 향해 눈총을 보냈다.

자신들을 도와주는 협회 헌터들을 왜 굳이 매정하게 대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길드원들의 눈총을 받는 박철민은 이 와중에도 속이 까맣게 타고 있었다.

‘전부 불타버렸을 가능성이 높지만…… 아니 차라리 불타 없어지는 게 낫다.’

박철민은 협회 헌터들에게 발각되면 안 되는 것들이 있기에 이러는 것이었다.

“당신 좋으라고 도와주는 거 아닙니다. 이래야 우리 일이 편해지기 때문입니다.”

태민은 박철민의 짜증을 무시하면서 백호를 향해 눈치를 보냈다.

태민의 시선을 알아챈 백호가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척, 잔해를 치우던 중.

“……뭐야 이건?”

잔해를 들어 올린 백호가 일부러 연기하듯 외쳤다.

동시에 바닥을 바라보자 그늘진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옅게 꿈틀거리던 그림자가 조금 그을린 서류철을 뱉어냈다.

백호는 능청스럽게 바닥을 향해 손을 뻗어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미납 대출 체납자 현황?”

백호가 일부러 큰 목소리로 서류 읽으며 한 장 한 장 넘기자.

“그건 길드의 대외비입니다!”

박철민이 기겁한 표정으로 백호에게 달려왔다.

‘하필이면 왜 저게!’

백호가 들고 있는 서류철은 절대로 밝혀져서는 안 될 문서였다.

“정식 절차도 없이 길드의 대외비를 함부로-.”

“……닥쳐 이 개새끼야!”

박철민의 말을 끊은 백호의 입에서 욕설을 담은 호통이 울려 퍼졌다.

“부장님?”

태민이 당황한 듯 백호를 불렀다.

사실 이 모든 상황은 처용과 사전에 협의해 만들어진 조작이었다.

백호의 손에 들린 서류 역시 처용이 그림자 속에서 은밀하게 전해 준 것이었다.

태민이 아닌 백호에게 전달한 이유는 박철민이 함부로 뺏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 서류철을 빌미로 박철민을 압박하여 그를 현장에서 체포하는 것이 계획.

그러나.

“박철민.”

백호의 입에서 당장이라도 박철민을 죽일 듯한 낮은 음성이 울려 퍼졌다.

서류를 확인한 백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는 처용 역시 당황했다.

‘왜 저러지?’

처용은 서류 중 아무거나 하나를 집어 백호에게 건넸을 뿐이었다.

하지만 서류의 내용이 무언가 문제가 있는 듯 보였다.

“너…… 이거 뭐냐?”

백호는 박철민을 향해 마치 맹수의 울음소리와 같은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그…….”

박철민이 대답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자.

“오민수, 오민수가 누구냐?”

백호가 주변을 향해 큰 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저, 접니다.”

순둥하게 생긴 외모에 동그란 안경을 쓴 마법사 클래스 헌터가 다가왔다.

그는 백호가 말한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 소속 C급 헌터 오민수였다.

“너 길드에 돈 빌렸어?”

“그…….”

오민수가 대답을 망설이고는 박철민을 힐끔거렸다.

그가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백호가 박철민의 시야를 가로막고 오민수 앞에 섰다.

“저 새끼 눈치는 보지 말고 날 똑바로 봐라.”

오민수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백호의 흔들림 없는 눈빛을 마주했다.

“내가 네 앞에 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박철민의 개입을 막아주겠다는 것.

백호의 말을 알아들은 오민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에 돈 빌렸나?”

백호가 오민수를 응시하며 진지하게 묻자.

“……네.”

용기를 다진 듯 주먹을 쥔 오민수가 작게 대답했다.

“얼마나?”

“삼천만 원 좀 안 되게 빌렸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갚아야 하는 빚은?”

“…….”

“내 눈에 보이는 이 서류에는 네가 갚아야 할 빚이 3억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백호의 물음에 오민수가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건 잘못된 서류입니다!”

박철민이 백호의 말을 가로막으며 따지듯 묻자.

“아깐 이게 대외비라며?”

백호가 이를 아득바득 갈며 박철민을 향해 읊조렸다.

“그…….”

당황한 박철민은 백호의 손에 들린 문서를 뺏거나 없앨 생각도 했다.

하지만.

-파지직.

백호의 전신에 미세하게 스파크가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박철민이 서류를 뺏거나 훼손하려는 것을 이미 눈치챈 듯 보였다.

섣불리 움직여서는 절대로 백호에게서 저 서류를 탈취할 수 없었다.

그는 A급 헌터들 중에서도 차원이 다른 강함을 지닌 헌터였으니까.

백호는 박철민을 향해 흉흉한 시선을 주고는 다시 오민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윗옷 걷어 봐.”

“네, 네?”

오민수가 당황하자 백호가 왼손을 뻗어 그의 옷을 강제로 들어 올렸다.

오민수의 맨 가슴과 복부가 훤히 드러났다.

문제는.

“뭐냐…… 이건?”

백호가 오민수의 복부를 바라보며 인상을 세차게 구겼다.

오민수는 그런 백호의 시선을 피해 눈을 아래로 내렸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묻잖아! 이게 뭐냐고!”

백호의 입에서 분노에 찬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가 바라보는 오민수 헌터의 복부에는 커다란 수술 자국이 있었다.

백호가 오른손에 쥔 서류, 그 안의 내용 중에는…….

대출 미납자에 대한 불법 장기 적출 수술이 기록되어 있었다.

“대출금 미납으로 인한 본인 동의서……?”

백호가 분노를 씹어 삼키며 눈에 보이는 내용을 소리 내어 읽었다.

구겨진 듯 보이는 수술동의서.

거기에는 손을 떨며 찍은 듯 흔들린 모양의 지장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가족 인적 사항, 자영업을 하는 부모에 여동생 둘, 협박이 필요할 시 유효…….”

백호는 모두가 들으라는 듯 서류의 내용을 읊었다.

“여동생 둘은 외모가 출중한 편, 추후 접대 작업장에 보낼 것을 요망…….”

서류를 쥔 백호의 손이 점점 거세게 흔들렸다.

결국, 서류를 읽다 만 백호가 붉게 핏발이 선 눈으로 박철민을 노려봤다.

“야 이 개새끼야.”

백호뿐 아니라 현장에 있는 대부분의 헌터들이 박철민을 노려봤다.

“감히 한국에서 이딴 짓을 저질러!”

백호의 입에서 마치 사자후처럼 노성이 뿜어져 나왔다.

백호는 소말리아에서 행해졌던 참상을 직접 목격했던 헌터.

지금, 이 상황은 그에게 있어 거대한 트라우마를 재현시킨 상황이었다.

***

-죽여주세요. 아저씨.

소말리아를 쓸어버릴 당시.

마치 실험체처럼 거대한 비커에 담긴 소녀가 백호를 향해 힘겹게 꺼낸 말이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산 채로 장기가 다 꺼내져 심장만 남은 상태였다.

심지어 그 심장에는 여러 기계 장치를 통해 알 수 없는 액체가 주입되고 있었다.

그리고 앞에 단상에는 무언가가 적힌 서류들이 있었다.

나이, 특징, 언제 각성했는지, 어떤 클래스를 가졌는지 등.

죽어가는 소녀에 대한 정보가 마치 실험 기록처럼 적혀 있었다.

[마법 클래스 각성자, 최상급 상품이므로 취급 주의.]

[각성자의 장기를 이식받은 일반인이 각성자가 될 경우는 미지수.]

[이를 미신처럼 이용하여 판매가치를 상승시키는 것은 효과적.]

눈앞에 있는 소녀의 장기가 누구에게 얼마에 팔렸는지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심장은 나중에 적출할 것.]

기록의 끝에는 왜 심장을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는지가 적혀 있었다.

눈앞에 있는 ‘상품’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강제로 살릴 필요성’이 있다고 쓰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심장이 누구에게 얼마에 거래되었고 언제 적출될지가 적혀 있었다.

-으드드득!

백호는 손에 들린 서류를 세차게 구기며 이를 갈았다.

인간이……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젠장! 어떻게 만든 것들인데!

-상품들은 버려!

-나중에 다시 구하면 돼! 일단 도망가!

이곳을 지키던 놈들이 도망치면서 꺼낸 말이었다.

같은 인간조차 ‘상품’이나 ‘재료’로 취급하는 놈들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도망치면서도 나중에 다시 구하겠다고.

이 참사를 또 일으키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백호가 볼 때 놈들은 인간이 아닌 괴물이었다.

인간의 탈은 쓴 몬스터들.

물론, 도망치던 놈들은 ‘전원 말살’하라 명령을 받은 커맨더의 군단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했다.

살아 있을 가치가 없는 죽어 마땅한 놈들이었다.

백호 역시 불법 아티팩트를 들고 반항하던 놈들을 죽였으니까.

하지만.

-제발 죽여주세요. 아저씨.

눈앞에 자신을 죽여달라고 비는 소녀의 소원을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었다.

“유진아…….”

백호는 희망을 품고 커맨더를 바라봤다.

에픽 클래스인 그라면 무언가 방법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소녀를 바라본 커맨더 역시 참혹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여신님도 방법이 없다고…….”

커맨더는 당연히 자신의 성좌인 기계 장치의 여신에게 방법이 없는지 물었지만.

그녀는 커맨더에게 참혹한 진실을 알려 줄 뿐이었다.

“이 아이는…… 이미 죽은 것과 다름이 없대요.”

유리관에 실험체처럼 담긴 소녀는 온갖 약물을 통해 ‘강제로 살아 있도록 만든’ 것이다.

무한한 고통을 받으면서…….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정말…….”

결국, 커맨더가 참혹한 심정으로 소녀의 머리에 권총 아티팩트를 겨누었다.

“미안하다…….”

소녀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는 커맨더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고마워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커맨더가 아티팩트의 방아쇠를 당겼고 백호는 고개를 돌렸다.

“제엔-장!!”

백호가 주먹을 쥐어 바닥을 세차게 내리쳤다.

커맨더를 포함한 다른 파티원들 역시 백호의 심정을 십분 이해했다.

그러나 비극은 그 소녀뿐 만이 아니었다.

-저도…… 죽여주세요.

-제발…….

-너무…… 아파요.

‘살려주세요’가 아닌 ‘죽여주세요’라고 힘겹게 말하는 사람들.

조금 전 소녀와 같이 유리관에 갇혀있는 이들이었다.

심지어 장기 적출을 당한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팔과 다리가 사람의 것이 아닌 몬스터의 것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고.

끔찍한 형태로 신체가 변형되거나 뒤틀린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어떤 실험을 했는지가 적혀 있었다.

[각성자와 몬스터의 키메라 합성, 추후 병기로 활용할 가능성 있음.]

[마법과 생화학 병기의 결합, 판매상품 가능성 있음.]

대충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백이 넘어가는 숫자.

-제발! 우리를 죽여 줘!!

그날 참혹한 광경을 직접 마주했던 커맨더와 그의 파티원들에게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악몽과도 같았다.

***

악몽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난 백호가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

“박철민! 이 씨발 새끼가!!”

지금 백호가 보고 있던 서류의 내용은 오민수의 것이 아니었다.

[이름 : 김진희]

[나이 : 21]

백호가 들고 있는 인적 사항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소녀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현재 상태 : 사망]

[총 벌어들인 수입은…….]

마치 판매상품의 결과를 적어놓은 듯한 보고서.

눈앞에 서류로 보이는 소녀는 박철민에 의해 ‘상품’이 되어버렸고 끔찍하게 죽었다.

마치 소말리아에 있었던 ‘공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제발 죽여주세요.

백호는 서류에 보이는 사진 속 소녀가 자신을 죽여달라고 말하던 소녀와 겹쳐 보였다.

아직도 그때 눈으로 보았던 참상이 또렷하게 기억날 정도였다.

그런데 소말리아 같은 범죄 국가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한국에서 발생했다.

심지어 눈앞에 보이는 서류는 백호가 들고 있는 서류 뭉치 중 일부.

그리고 이 서류 뭉치는 처용이 탈취한 서류들 중 일부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있었다는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 개새끼들!”

-쿠르르! 쿠릉!

마치 백호의 분노가 하늘에 닿은 듯.

백호를 중심으로 땅과 하늘을 잇는 벼락 줄기들이 세차게 몰아쳤다.

백호는 지금까지 많이 참아 온 상태였다.

집행반이든 길드든 그들이 치사하고 더러운 짓을 할 때마다.

당장 찾아가서 다 때려 부수고 싶은 심정을 많이도 참아 왔었다.

그러나 오늘,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가 백호의 역린을 건드린 결과.

지금까지 잘 인내하고 참아오던 뇌호(雷虎)를 분노하게 만들고 말았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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