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온갖 명품을 입은 50대의 남자가 중환자실의 문을 거침없이 열어젖혔다.
그리고 격리된 병상에 누워있는 처참한 몰골의 이진태를 바라보았다.
“아, 진태야…….”
남자가 떨리는 손으로 이진태가 보이는 유리 벽에 손을 뻗었다.
“진태야, 애비 말 들리느냐?”
그가 간절함을 담아 이진태를 향해 말을 걸었지만.
무수한 주삿바늘에 연결되어 약을 투여받는 이진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분노가 치밀은 남자가 뻗은 손을 거두고 옆에 있는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야 이! 개새끼야! 어떻게 된 거야! 왜 내 아들이 이렇게 된 거냐고!”
중환자실에 나타난 50대의 남자, 그는 이진태의 아버지인 이원춘이었다.
“이, 이원춘 의원님…….”
멱살을 잡힌 남자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이원춘을 불렀다.
“길드장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왜 네놈만 와 있는 거야!”
“다, 다친 길드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길드장님은 이 일을 수습하느라…….”
멱살이 잡힌 남자는 이원춘을 향해 변명하듯 말했다.
“그럼 너는! 지부장이라는 새끼인 너는 뭘 한 거야!”
이원춘은 멱살이 잡힌 남자,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의 한국 지부장을 거침없이 흔들며 소리쳤다.
그때.
또 한 번 중환자실의 문이 열렸고.
“의원님도 계셨군요.”
태민이 정중한 목소리로 말하며 들어왔다.
“네놈이 왜 여기를?!”
이원춘은 태민을 마주하자마자 지부장의 멱살을 놓고 인상을 확 구기며 말했다.
뒤의 길드 지부장 역시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지부장님도 있으셨군요. 전에는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덕분에 일이 많았거든요.”
태민은 자신을 향해 불편함을 드러내는 지부장에게 비웃는 듯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의 한국 지부장 박철민.
그는 이전 처용이 협회에 왔을 때 태민과 통화를 하던 인물이었다.
황금 골렘을 확보하기 위해 C급 헌터들을 희생시키려던 자.
협회를 아주 바쁘게 만든 주범 중 하나였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여길 온 겁니까!”
박철민이 인상을 확 구기며 태민을 경계하듯 말했다.
“대형 사고가 터졌는데 당연히 제가 직접 상황을 파악해야죠.”
태민은 안경 속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말했다.
“협회가 내 아들한테 무슨 볼일이야!”
이원춘은 태민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
그가 알기로 아들인 이진태와 협회는 불편한 관계.
하지만.
“이진태 헌터가 당한 비극을 조사하기 위해서입니다.”
태민은 이원춘을 향해 적대감이 없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도대체 ‘불법 던전’에서 이진태 헌터에게 ‘무엇을 지시한’ 겁니까?”
태민은 이원춘 뒤에 있는 길드 지부장 박철민을 향해 적대감을 드러냈다.
“무, 무슨 소리야?! 내가 뭘 지시해!”
“이진태 헌터가 자발로 불법 던전에 들어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그건.”
태민이 박철민을 향해 쏘아보듯 말하자 그가 말을 더듬거렸다.
지금 이 자리에는 이진태의 아버지 이원춘이 같이 있다.
자칫 말을 잘못하면 자신이 이진태를 위험에 처하게 만든 것이 되어버릴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협회에서 구출한 이들 모두가 지부장의 명령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태민이 씨익 웃으며 박철민에게 말했다.
그러자.
“너 이 새끼 사실이야!?”
이원춘이 박철민을 향해 분노를 드러내며 소리쳤다.
“오, 오해입니다. 의원님! 저는 이진태 헌터의 승급을 위해…….”
박철민이 필사적으로 이원춘을 향해 변명했다.
“이건 정말 재수 없이 일어난 던전 사고였습니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사고입니다!”
그는 마치 작은 사고로 인해 재수 없게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태민은 박철민의 변명들을 듣고 비웃음을 담아 말했다.
“한국에서 데스나이트가 출현했습니다. 그리고 사라졌죠.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아십니까?”
“뭐가 심각한 일이야!? 그까짓 몬스터 따위.”
“백호 헌터님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A급 몬스터가 데스나이트인데 그까짓 몬스터?”
박철민의 말에 태민이 표정을 굳히며 강하게 말했다.
“한국 최강의 헌터도 잡기 힘든 몬스터를 ‘그까짓 몬스터’라고요?”
“그…….”
“당신 지부장, 아니 정말로 A급 헌터 맞습니까?”
태민은 박철민을 향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심지어 그 데스나이트가 던전에서 사라졌습니다! 당신 때문에 일어난 대형 사고란 말입니다!”
“그게 왜…….”
박철민은 무어라 말해야 좋을지 머리를 세차게 굴렸지만, 마땅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진태와 함께한 공격대 중 유일하게 무사했던 힐러.
-데, 데, 데스나이트가 나왔어, 우, 우리를, 우리를 다시 찾아온다고 했어…….
그가 정신이 무너진 듯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말했다.
그리고 집중 치료를 통해 일찍 깨어난 헌터들도 같은 이야기를 했었다.
B급 던전에서 왜 데스나이트가 출연한 것인지는 너무나도 의문이었지만.
정황상, 그곳에서 데스나이트가 출연한 것은 사실이었다.
“B급 던전에서 데스나이트가 나온 걸 내가 어떻게 미리 파악해?!”
박철민이 발악하듯 외쳤다.
마치 자신의 잘못이 아닌 그저 우연한 사고일 뿐이라는 듯.
“하아, 협회가 던전을 사전 조사하는 이유가 이러한 위험을 미리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태민이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불법 던전을 운영한 당신들은 그 위험을 무시했고 그 결과가 이거입니다.”
처참한 몰골의 이진태를 눈짓한 태민이 박철민을 쏘아붙이듯 말을 이었다.
“이진태 헌터를 이렇게 만든 건 당신입니다.”
“이…….”
박철민은 지금 당장 태민에게 변명할 말이 없었다.
불법 던전을 운영한 것도 사실.
이진태의 승급을 위해 그를 불법 던전에 보낸 것도 사실.
던전에 데스나이트가 출몰해 이진태가 저렇게 된 것도 사실.
태민이 하는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박철민, 너 이 새끼!”
이원춘이 박철민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혀, 협회는 어떻게 이리 빠르게 파악한 겁니까?”
박철민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려 무슨 말이든 꺼내 봤지만.
“협회는 당신 길드처럼 안일하게 생각하는 기관이 아니야.”
태민이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말했다.
“도망쳤던 헌터 중 몇 명이 협회에 빠르게 신고를 해준 덕분입니다.”
태민과 협회장이 미리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
“마침 백호 헌터님이 대기하고 있었고 빠르게 출동하여 사람들을 구한 겁니다.”
“그, 그것도 이상하단 말이다! 우리 정예 헌터들만 다치고 그놈들은 정식 길드원도 아닌-.”
박철민이 마침 기회를 잡았다는 듯 말했으나 곧장 말이 끊겼다.
“마침 잘 되었습니다. 묻고 싶었는데 말이죠.”
오히려 역으로 기회를 잡았다는 듯 태민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살아남아 협회에 보호를 받는 헌터들은 정식 길드원들이 아니다.
그들은…….
“헌터들을 노예처럼 부리셨더군요? 약점을 잡아서?”
“…….”
“강제로 사채를 덤터기 씌우고 가족을 인질로 잡아 협박까지…….”
태민이 비아냥을 섞어 말했다.
이원춘도 태민의 말에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 역시,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와 불법적인 일들을 공유하는 사이였다.
아들인 이진태가 이러한 일로 자본을 쌓고 실적을 올리는 건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것을 지원하고 도와준 것이 바로 이원춘이었다.
그는 아들을 위해 길드가 저지르는 불법적인 일들을 지원했다.
심지어 아들이 저지른 살인까지 덮어주었다.
하지만.
“이런 위험한 짓거리의 행동대장으로 이진태 헌터를 이용했더군요?”
태민은 이원춘에게서 피어난 의심의 싹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이진태가 단순히 자본을 쌓고 실적을 올리는 것만이 아닌.
그것을 대가로 ‘길드의 명령’을 받아 위험한 일을 한 것처럼 말했다.
“불법 던전 관리에, 불법 사채 관리에, 아주 이용할 대로 이용했습니다?”
태민의 말이 끝나자 이원춘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내 아들을 그렇게 써먹었다?”
이원춘은 길드가 자신의 아들을 위험천만한 곳으로 밀어 넣은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가 일반인이긴 해도 아들인 이진태가 헌터이니만큼 기본적인 지식은 있었다.
99레벨인 아들이 헌터들 중 강한 편이라는 것 역시도.
그런데 그 아들이 이런 처참한 몰골로 돌아왔다.
그만큼 길드에서 위험한 일을 시켰다는 것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이 상황을 태민이 만들어낸 농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드러난 사실들로 인해 박철민에 대한 신뢰가 금이 간 상태였다.
“의원님이 직접 알아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태민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발걸음을 돌려 현장을 떠났다.
“여기에서 더 이상 조사할 건 없겠군요.”
태민이 문을 닫고 나가자.
-야 이 개새끼야!!
이원춘의 극대노가 방 안에서 울려 왔다.
등을 돌려 나아가던 태민의 입가에 차가운 비웃음이 걸렸다.
***
경기도에 자리한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의 한국지부.
여러 대의 경계 초소들과 높은 담벼락, 그리고 마나 전류가 흐르는 차단막까지.
현대식 건물이라기보다는 마치 감옥 요새에 가까운 형태였다.
유일하게 마나 전류가 흐르지 않는 길드 본부의 정문.
그곳에서 출입을 확인하고 경계를 서는 길드원들이 떠들고 있었다.
“지금 길드 분위기 개판 났다며?”
정문을 지키는 헌터 하나가 같이 근무를 서는 이들을 향해 말했다.
“하아, 말도 마라 지금 휴가의 휴 자도 못 꺼낸다.”
“에효, 왜 우리한테 이런 불똥이 튀어가지고…… 야밤에 이게 뭐 하는 짓이냐.”
그 말에 불평을 쏟아내듯 다른 사람들이 대답했다.
“그나저나 데스나이트가 우리 길드로 찾아온다는 거 진짜야?”
경계 근무를 서던 이 중 하나가 두려움을 삼키며 말을 꺼냈다.
몬스터가 던전 밖으로 튀어나오는 경우는 던전이 폭주하는 것 외에는 거의 없었으니까.
“그 던전에서 겨우 살아남은 애 중 하나가 내 친구거든? 걔가 발작하면서 말하더라.”
“씨발, 협회에 아는 사람이 그러던데 그 던전 간 놈들이 뭘 잘못 건드렸다고 하더라고.”
“애초에 열 명이나 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게 뭐 때문이겠냐? 어휴.”
불평과 동시에 두려움이 담긴 대답들이 들려왔다.
“데스나이트가 그렇게 위험한가? 그래 봐야 몬스터잖아?”
헌터 하나가 별일 아닌 듯 가볍게 말하자.
“야 임마! 내 아는 A급 헌터가 그러는데 데스나이트는 차원이 다르다고 하더라.”
“너 그렇게 방심하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뒤지는 거야 병신아.”
여기저기에서 말을 꺼낸 헌터를 질책하는 대답들이 들려왔다.
“아니 그게 내 말은, 그 데스나이트가 여길 오겠냐고?”
질책을 받은 헌터가 짜증을 담아 말했다.
몬스터가 꺼낸 말에 휘둘려 길드 전체가 긴장하고 있는 모습에 짜증이 치밀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기 헌터가 얼마나 많은데 멍청하게 나타나겠-.”
-쿵. 쿵. 쿵.
불현듯 들려오는 소음에 헌터의 말이 끊겼다.
무거운 중장 무기를 땅에 찍는 듯한 소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뭔데?”
“무슨 소리야 이게?”
입구를 지키는 헌터들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했다.
칠흑처럼 깊은 어둠 속.
그곳에서 점점 무언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쿵쿵 울리던 소음이 확실하게 귀에 박힐 정도로 가까워졌고.
어둠 속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붉게 빛나는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나며 다가왔다.
그리고.
-쿵!
점점 다가오던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어버버…….”
헌터 하나가 믿기지 않는 듯 두려움에 떨었다.
칠흑 같은 갑주와 불길하게 일렁이는 검은 오오라.
투구 사이로 보이는 타오르는 지옥을 형상화한 듯한 붉은 눈동자.
무엇이든 박살 내 버릴 것 같은 흉측한 해머까지.
리빙 데드 던전에서 생존한 헌터들이 증언했던 모습과 같았다.
심지어 더 큰 문제는.
-쿵! 쿵! 쿵!
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데스나이트는 총 세 마리였다.
“데, 데, 데스나이트!”
“하, 하나가 아닌데? 왜 세 마린데?”
“야, 야 이 새끼야 정신 차려! 비상! 비상벨 울려! 당장!”
헌터들이 혼비백산하며 우왕좌왕할 때.
중앙에 있던 데스나이트가 해머를 들어 올렸다.
파괴력을 한껏 담은 검은 기운이 해머에 압축되기 시작했다.
“데스 블레이드.”
투구 사이로 싸늘한 음성이 울리듯 흘러나왔다.
데스 블레이드는 어둠의 마나를 압축하여 검기처럼 발사하는 데스나이트의 스킬이었다.
데스나이트는 충전이 끝나자 해머를 전방을 향해 힘껏! 내리찍었다.
-콰쾅!
강력한 파괴력을 발산하는 검은 기운이 전방을 향해 쏘아졌다.
“피, 피해!”
“도망쳐!”
겁을 한껏 집어먹은 헌터들이 끓는 물에 맞은 개구리처럼 사방으로 점프하며 도망쳤다.
이윽고 데스 블레이드가 길드 입구에 닿자.
-콰콰콰콰쾅!!
길드 입구에 세워진 문과 경비 탑이 처참하게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스스스.
검은 그림자가 무너진 길드 입구로 은밀하게 이동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