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76화 (76/726)

#076화

리빙 데드 던전 내부.

처용이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의 헌터들과 같이 사라졌고.

연화는 남은 사람들의 대피를 유도하고 있었다.

모두가 게이트 밖으로 허둥지둥 탈출하고 연화와 기절해 있는 여성 한 명만이 남아있었다.

“괜찮아요?”

“으…….”

연화가 기절한 여성을 부축하며 말을 건네자 신음성이 들려왔다.

처용이 지진의 일격을 사용했을 때 무너져 내린 바위 파편을 맞고 기절한 여성이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여성이 깨어나질 않자 연화가 업으려는 순간.

-척.

아직 검은 갑옷을 해제하지 않은 처용이 나타났다.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들을 모조리 밖에 내버리고 연화를 찾았지만.

던전 밖에서 그녀가 감지되지 않았기에 다시 던전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젠장!”

연화가 쓰러진 여성을 지키려는 듯 가로막으며 양산형 검을 처용에게 겨누었다.

“스킬만 쓸 수 있었어도!”

인상을 찌푸린 연화가 처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차캉!

처용은 해머의 머리 부분을 마치 방패처럼 활용하여 검을 막아 내었다.

‘기절한 건가?’

처용이 연화 뒤에 쓰러진 여성을 통찰의 눈으로 살펴보았다.

동시에 날카롭게 찔러 오는 연화의 검을 피해냈다.

‘기본기는 훌륭하네.’

처용은 스킬 없이 검을 휘두르는 연화를 보며 작게 감탄했다.

기교나 화려함은 없었지만, 기본기가 잡혀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상대에게 겁먹고 뒤로 물러서 소극적으로 싸우지 않았다.

바로 지금처럼.

-차캉!

연화는 거리를 벌리지 않고 처용에게 바짝 붙어있었다.

상대가 주 무기인 해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싸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만.”

-까강!

처용이 연화가 휘두르는 양산형 검의 날을 맨손으로 잡아채 부러뜨렸다.

누이의 검을 조금 더 관찰하고 싶었지만, 이 상황의 해결이 먼저였다.

검이 부러진 연화가 낭패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러났을 때.

“해제.”

처용이 몸에 두른 갑옷을 해제했다.

“여.”

미소를 지은 처용이 연화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리며 인사를 건넸다.

“……너?!”

연화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성을 내질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연화는 입을 뻐금거리며 당황했다.

처용은 그런 연화를 향해 검지를 들어 자신의 입에 가져다 대었다.

동시에 뒤에 쓰러져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연화는 처용의 뜻을 눈치챘는지 조용히 침묵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혼란이 가득 차 있었다.

“다행히 많이 다치진 않았네.”

쓰러진 여성에게 다가간 처용은 짧게 자비의 손길을 사용해 주었다.

의식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머리 부분의 찢어진 상처가 아물었고 표정이 조금 편안하게 바뀌었다.

“어떻게?!”

연화는 쓰러진 여성을 치료한 처용을 보고 다시 한번 경악했다.

몇 번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처용이 사용한 스킬은 ‘힐’이었으니까.

처용이 쓰러진 여성을 안아 들자.

“너 정말로 처용 맞아?”

옆에서 혼란이 가득한 연화의 목소리가 울렸다.

“레스토랑에서 가족들과 밥 먹고 웃고 떠들던 동생이 여기 있으니까 신기하지?”

“…….”

“날 도와주면 모든 걸 설명해 줄게.”

처용이 연화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때?”

잠시 침묵하던 연화가 고개를 끄덕였고 처용은 미소를 지었다.

“일단…… 놀라실 수도 있으니.”

처용은 여성을 안아 든 상태로 왼손을 살짝 앞으로 뻗어 라이센스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처용 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라이센스에서 태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과장님 지금 사무실인가요?”

-네, 아직 사무실에 있습니다만.

“주변에 아무도 없죠?”

-여기에 허락 없이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부장님이나 협회장님 아니면 처용 님뿐입니다.

“사무실에 게이트가 생성될 겁니다. 놀라지 마세요.”

-네?

처용이 성장하면서 태룡전이 성장했고 열쇠의 기능 또한 강화되었다.

현재 열쇠의 기능으로 만들 수 있는 게이트는 총 열 개였다.

이전 태민의 사무실에 있을 때 그 장소를 열쇠에 미리 등록해 놨었다.

“일단 내가 얘기하기 전까진 아무것도 묻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처용은 연화에게 양해를 구하듯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와 대화를 먼저 끝마치고 싶었지만.

자신이 저지른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준비가 먼저라고 판단했다.

“그래.”

다행히 연화가 처용의 마음을 헤아려 줬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대답을 들은 처용이 미소를 지었고 태룡전의 열쇠를 사용했다.

-우웅!

처용의 앞에 황금빛의 게이트가 열렸고 세 사람이 들어갔다.

***

태민의 사무실에서는 황금빛 게이트가 나타났다.

그리고.

“지, 진짜로 오실 줄이야…….”

처용과 연화가 게이트에서 나타나자 태민이 경악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동시에 쓰러진 여성을 안고 있는 처용과 다친 듯 보이는 연화를 보고 표정을 굳혔다.

“무슨 일 있으셨군요.”

“하아,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우선 이분부터 의무실로…….”

처용의 말에 태민이 수화기를 들어 대기 중이던 직원을 호출했다.

호출을 받고 온 사람은 처용도 알고 있는 김상민 헌터였다.

“이분을 의무실로 데려다주세요.”

“알겠습니다.”

상민은 처용을 보고도 아무것도 묻지 않고 태민의 지시에 따랐다.

그 역시 현아처럼 애초에 협회장 측 헌터였던 인물.

그리고 상민 역시 처용에 대해 대략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상민이 기절한 여성을 의무실로 데려가고 사무실에 처용과 태민 연화만이 남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그리고 이분은…….”

태민이 연화와 처용을 번갈아 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제 친누나입니다.”

“그렇군요.”

“사정을 설명하자면 좀 긴데…… 우선 이진태라는 놈을 아십니까?”

처용에게서 이진태라는 이름을 들은 태민의 표정이 잠시 일그러졌다.

“그 망할 망나니 때문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이로군요.”

태민의 목소리에 작은 분노가 섞이며 이진태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의 유망주인 이진태.

그는 전쟁신의 병사답게 인성이 개 같은 것으로 유명했다.

레벨이 낮고 약한 헌터들을 경멸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재산을 갈취해 왔었다.

그리고…… 단순히 거슬린다는 이유로 다른 헌터들을 살해하는 일까지 종종 있었다.

“제가 따로 알아낸 이진태의 살인 전과만 열 건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길드라면 이진태를 처벌하거나 파면해야 했지만.

이진태가 올리는 실적이 좋은 만큼 그가 길드에 가져다주는 이득이 많았다.

거기에 A급을 앞둔 99레벨의 헌터이기 때문에 올림포스 내에서도 나름의 기대를 받는 인물이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올림포스 길드에서 그가 일으킨 사건 사고를 덮어주었다.

“이진태는 길드들의 불법 행위를 이끄는 행동대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갖 불법에는 다 손을 대며 이득을 취해왔던 쓰레기.

심지어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협회를 압박하는 일까지 있었다.

“협회에서 제지하기 힘들 정도입니까?”

처용이 태민에게 궁금한 듯 물었다.

협회는 헌터들을 자체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으니까.

“하아, 그놈 아버지가 국회의원입니다. 그리고 이진상 기억하시죠?”

“전 배신자는 잊지 않습니다.”

태민의 말에 처용이 싸늘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진상이 이진태의 작은 아버지입니다.”

“……그렇군요?”

처용은 태민의 말을 들으며 몰랐던 사건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이진상이 잡혀 들어갈 때, 그의 형이자 국회의원인 이원춘이 다른 국회의원들을 이용해 방해했었다.

이진상을 구하기 위해 인맥과 여론까지 동원했지만.

워낙 증거가 명확했기에 협회장이 내리는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이원춘은 그 일 이후로 협회에서 진행하는 일마다 방해를 하는 중이었다.

이번엔 황금 골렘 사태에 개입하는 협회를 방해하기 위해 아들인 이진태를 도와주고 있었다.

“그냥 죽일 걸 그랬나…….”

처용이 살기를 담아 낮게 읊조렸다.

“네?”

처용이 작게 읊조린 말을 제대로 못 들었는지 태민이 되물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 이원춘이라는 놈이 문제인 건가요?”

“하아, 이원춘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쪽 집안에 대기업이나 법조계 쪽 사람이 많아서…….”

태민은 연화를 보면서 잠시 망설였다.

“비밀 유출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처용은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태민이 말을 이었다.

“다른 거대 길드뿐 아니라 교단의 고위 사제들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습니다.”

태민이 연화를 보며 말을 망설인 이유는 그녀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용의 누나인 한연화, 그녀는 교단 소속 헌터로 알려져 있었으니까.

“교단까지요?”

태민의 말에 처용이 반문했고 ‘교단 소속이었던’ 연화 역시 놀란 듯 눈이 크게 떠졌다.

“네. 교단의 고위 사제들뿐 아니라 추기경도 연결되어있더군요.”

태민이 재차 연화를 눈짓하며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확실히 함부로 건들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세력이었다.

“제 누이는 이제 교단 소속이 아닙니다.”

처용이 태민의 생각을 눈치채고 말해주었다.

“그렇……군요.”

태민은 처용과 고개를 숙인 연화를 보고 놀란 듯 대답했다.

그리고.

“그보다도 이진태와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가장 중요한 본론을 이야기했다.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처용이 이 시간에 자신을 찾아온 이유도 그 일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놈들이 불법 던전에 가는 것을 미행했는데…….”

처용은 좀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태민에게 설명했다.

가족들과 식사 이후 연화를 미행해 따라가 본 것.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가 불법으로 운영하는 게이트.

연화를 포함해 노예처럼 부려지는 헌터들.

결국, 참다못한 처용이 몬스터로 변장하여 놈들을 묵사발 낸 것까지.

모든 설명을 들은 태민의 낯빛이 노랗게 변했다.

“그, 그 무슨! 이걸 어떻게 해야…….”

당황스러움이 가득한 태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용에게 있었던 일은 그냥 사고 정도가 아닌 대형 사고였다.

그리고 연화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녀가 이제 교단 소속이 아니라는 말이 이해되었다.

그녀가 교단 소속이었다면,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에게 그런 취급을 받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교단 내부에서도 이 일과 관련된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태민이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부여잡았다.

탐정으로서의 감이 이 일은 대형 사고를 넘어서 초대형 사건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 망할 길드 놈들…….”

태민이 이진태를 포함한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를 향해 이를 갈았다.

“진정하세요. 어차피 곧 없애버릴 놈들이니까.”

“일단 대책부터 준비하겠습니다.”

이 일이 커지면 워 글래디에어터 길드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올림포스는 확실하게 개입할 것이다.

그들이 산하 길드를 버릴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여기에 교단까지 끼어 버리는 것은 최악이었다.

“적어도 교단에서만큼은 개입하지 못하게 해 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길드 놈들은 저를 ‘데스나이트’로 알고 있을 테니까.”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짓는 태민에게 처용이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가 직접 움직이면 교단이라고 해도 협회를, 저를 제지하지는 못할 겁니다.”

성자는 처용과 마찰이 일어나기를 원치 않았으니까.

“……그렇군요. 성자가 직접 말한 만큼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하겠군요.”

“저 역시 성자와 같은 에픽 클래스이니까요.”

“……!!”

대화를 듣던 연화가 속으로 경악을 겨우 삼켰다.

자신의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 들여왔었으니까.

‘처용이 에픽 클래스라고?’

처음에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처용과 대화하는 사람 역시 그가 에픽 클래스라는 것을 아는 듯 보였다.

‘헌터 협회 김태민 과장.’

교단에서 근무했을 때, 업무상 교단을 찾아온 그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협회의 행정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협회장의 최측근.

심지어 그런 태민이 처용에게 극진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도대체…….’

지금 당장 처용을 붙잡고 묻고 싶었지만, 참고 있었다.

그가 말해준다고 약속했으니까.

처용은 연화에게 잠시 눈짓한 후 태민을 향해 말했다.

“우선, 제가 본 불법 게이트와 노예처럼 부려지는 헌터들에 대해 조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저 역시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으니…….”

태민은 막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일단은 불법 게이트 조사보다도 현장에 있던 헌터들을 보호해야겠군요.”

그가 말하는 헌터들은 노예처럼 부려지던 사람들을 뜻했다.

“대기 중인 팀을 즉시 보내야겠습니다.”

처용은 태민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역시 과장님입니다. 저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들이 증인이 되어줄 수도 있으니까요.”

태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현장에서 노예처럼 부려졌던 헌터들.

그들을 보호하고 도와준다면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의 불법 행위를 폭로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다른 불법 행위를 이들을 통해 알아낼 가능성도 있었다.

“일단 협회장님과 부장님께도 알려야겠습니다.”

“그럼, 더 자세한 얘기는 내일 하시죠. 전 누이와 할 이야기가 있어서.”

처용이 집으로 이어지는 게이트를 열었고 연화와 같이 이동했다.

이제.

연화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아낼 시간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