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4화
“여자애가 왜 이렇게 상처가 많아졌어…….”
오랜만에 얼굴을 보인 연화에게 어머니가 걱정을 담아 말하자.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죠.”
연화가 어깨를 으쓱이며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자리한 연화는 정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머니와 연아 역시 오랜만에 만난 연화를 반겨주었다.
다만 처용만이 미소를 짓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표정이 자꾸 일그러지는 것을 가까스로 참는 중이었다.
그녀의 스테이터스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절반으로 내려간 모든 스텟.
강등된 클래스.
사라진 스킬들.
그리고.
[칭호 : 가호 박탈자, 전쟁신의 가호(임시)]
빛의 신이 아닌 전쟁신의 가호가 임시로 붙어있는 상황.
[박탈자라, 빛의 신에게 버림받은 것인가?]
처용의 시야로 연화를 바라본 미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대로 ‘가호 박탈자’는 신이 병사를 버리면 생기는 칭호였다.
각성자의 각성을 유도한 신이 내렸던 힘을 다시 거두는 것이었다.
완전히 일반인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약해지고 레벨을 올릴 수가 없게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처용은 도저히 가족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기가 힘들었다.
머리가 너무나 복잡했다.
[네 누이의 자질은 좋은 편이다. 헌데 왜?]
‘……저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미륵의 말에 처용이 복잡한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빛의 신은 실리는 따지는 자이긴 해도 악과는 절대로 타협하는 신이 아니다.
마인에게 가담한 병사가 아닌 이상 신도를 버리지 않는 신이다.
하지만, 연화에게선 그 어떤 악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정직한 사람이었다.
쓰레기 같은 길드 놈들과는 마인드 자체가 달랐다.
처용은 그녀가 왜 헌터의 길을 걷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빛의 신에게 버림받은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왜 하필이면 저 개새끼의 가호를.’
임시로 붙어있는 전쟁신의 가호.
처용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제대로 알아봐야겠습니다.’
어차피 곧 길드들을 털 것이다.
그중 아레스의 길드인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는 최우선 목표였다.
놈들을 잡아내다 보면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예상과는 다르게 교단 쪽에서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었다.
빛의 신의 성격이나 성향은 알아도 그의 신도들을 전부 아는 것은 아니었다.
연화가 교단 내부에서의 경쟁이나 권력 다툼으로 인해 숙청을 당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었다.
빛의 신은 교리에만 신경 쓸 뿐, 병사들끼리의 권력 다툼을 신경 쓰지 않는다.
선천적 신격인 빛의 신.
회귀 전 그가 악신들과 맞서 싸워줬다고 해도 처용은 그를 싫어하는 편이었다.
그 역시 인간을 도구로 취급하는 ‘순혈자’ 중 하나였으니까.
‘교단이 터무니없는 이유로 연화를 내버린 것이라면…….’
처용이 속으로 차가운 분노를 다스리고 있을 때.
“협회에서 대우가 좋나 보네? 씀씀이가 커진 거 보니까?”
연화가 웃는 얼굴로 처용에게 말했다.
잠시 연화를 바라본 처용은 마음을 다스리려는 듯 짧고 깊은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어머니 생신이니 이후에 생각하자.’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 처용이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 생신에 자신 혼자 일그러진 표정을 지을 순 없었다.
“대우가 좋다 못해 넘치거든.”
처용은 미리 레스토랑의 비용을 지불했었던 자신의 카드를 보여주었다.
연화는 처용의 블랙카드를 바라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대단한데? 교단에서도 그거 가지고 있는 사람 드문데.”
처용은 연화의 말에 다시 표정이 일그러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연화는 이제 교단 소속이 아님에도 교단에 있는 것처럼 말했으니까.
그때.
“아, 엄마 생일 선물 줘야지!”
연아가 깔끔하게 포장된 상자를 꺼내며 말했다.
그녀가 준비한 선물은 깔끔한 디자인의 옷이었다.
“나는 이거.”
연화 역시 무언가를 꺼내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그녀가 꺼낸 것은 네 잎 클로버 모양의 작은 장식품이었다.
[작은 행운의 장식 / 아티팩트]
[등급 : 노말]
[파이어 해머 마법 공방에서 제작한 양산형 제품.]
[최하급 버프 두 가지가 인첸트 되어있습니다.]
-최하급 활력 상승.
-최하급 행운 상승.
연화의 선물은 놀랍게도 아티팩트였다.
헌터가 쓰기에 그리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일반인인 어머니가 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너는 준비한 거 없어?”
연화가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설마 파티 주최자가 생일 선물을 빼먹지는 않았겠지?”
“……그럴 리가.”
처용은 연화를 향해 웃어 보이고는 미리 준비했던 선물을 꺼냈다.
[HS 크로커다일 핸드백 / 아티팩트]
[등급 : 레어]
[블랙 스톤 크로커다일의 가죽을 재단하여 만든 핸드백.]
[각인된 사용자만 사용 가능합니다.]
[사용자를 보호하는 기능과 편의 기능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내부 무게 감소.
-공간 확장.
-위급 상황 시 긴급 프로토콜 발동.
처용이 선물을 꺼내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에 마치 검은 대리석처럼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악어가죽.
그리고 마정석을 세공하여 붙인 혁수의 이니셜, HS가 금빛으로 번쩍였다.
처용이 이전 블랙 스톤 크로커다일을 사냥하고 얻은 가죽을 이용해 만든 것이었다.
“너 이거 평범한 아티팩트가 아닌데?”
연화가 핸드백에서 인첸트된 마나의 기운을 느꼈는지 진지하게 관찰하며 말했다.
“내가 직접 사냥한 놈으로 주문제작 한 거야.”
“대단한데? 대충 봐도 만만치 않은 몬스터였던 거 같은데.”
연화는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핸드백의 가죽은 대충 예상해 봐도 B급 몬스터의 소재였다.
각성하지 얼마 안 된 처용이 B급 몬스터를 사냥했다는 것이니까.
물론 처용이 혼자서 잡았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좋은 파티원을 만나 운 좋게 사냥했다고 생각했다.
“그 안에 쓸만한 것들도 같이 넣어 놨으니까 쪽지 꼭 보세요.”
처용이 핸드백을 가리키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가방 안에는 비상용 포션이 종류별로 여러 개 들어있었다.
“포션이잖아? 그것도 중급 이상.”
연화가 붉은 액체가 찰랑이는 병을 보며 말했다.
“너 돈 많구나?”
보통 헌터들이 다치면 힐러의 치료를 받거나, 포션을 써 봐야 하급만 사용한다.
하급 포션 한 병만 해도 수십만 원, 가격이 비쌌으니까.
중급 포션은 한 병당 백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고급품이었다.
“내가 좀 잘 나가.”
처용은 놀라움을 표하는 연화에게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말했다.
“그래? 잘 나간다니 다행이네.”
연화는 처용을 향해 안도한 듯 웃음을 보였다.
자신과는 다르게 동생은 잘 나아가는 듯 보였으니까.
처용은 그런 연화의 웃음 속에 감추어진 감정을 읽었다.
재차 표정이 일그러질 뻔했지만, 미소를 유지했다.
“여기에 연화가 준 거 달면 되겠네.”
어머니는 선물이 마음에 드는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일단은 나중에 생각하자.’
처용은 가족들이 모여 즐겁게 이야기하는 지금 순간이 깨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리고 오늘만큼은 자신도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편안하게 쉬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처용이 공들여 준비한 파티는 순조롭게 마무리가 되었다.
“연아랑 먼저 들어가세요. 저는 연화랑 얘기 좀 하다가 갈게요.”
처용은 어머니와 연아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연화에게로 다가갔다.
“늦은 시간인데 돌아가야 한다고?”
“응, 교단에서 호출이 왔거든.”
거짓말이었다.
처용은 연화가 이제 교단 소속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호출을 한 곳은 교단이 아닌 전쟁신,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일 것이다.
그리고……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일단, 티 나지 않게 모른 척을 한 처용은 연화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응.”
연화가 힘없이 대답하자 처용은 속에 감추어진 어두운 감정을 읽어 낼 수 있었다.
묻고 싶은 말이 산더미 같았지만 말해 줄 거 같지 않았다.
“커피라도 한잔하면서 얘기라도 하고 싶었는데.”
처용은 아쉬움을 드러내며 말했다.
“후후, 다음에 보자.”
밝은 모습을 보여주며 웃은 연화가 처용에게 인사하고 뒤돌아 나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처용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암영부-그림자 은신.”
처용이 검게 물들더니 땅의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며 사라졌다.
앞으로 나아가는 연화의 뒤로 검게 꿈틀거리는 그림자가 뒤따라갔다.
***
인적이 드문 산속.
그곳에 이십 명 정도의 헌터로 보이는 인원들이 모여 있었다.
“왜 안 와! 씨발!”
헌터 전용 경갑을 착용한 남자가 땅을 걷어찼다.
“관대하게 휴가까지 내줬더니 빠졌나 봅니다. 팀장님.”
팀장이라고 불린 남자의 뒤로 헌터 전용 경갑을 입은 다른 남자가 아부하듯 다가왔다.
헌터들의 갑옷에는 올림포스를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가슴 쪽 교차된 쌍검 문양의 배지가 부착되어 있었다.
대형 길드인 올림포스 소속,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의 배지였다.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길드 문양이 그려진 경갑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열 명 정도는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복장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은 길드 갑옷을 입은 이들처럼 자연스럽지 못했고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마치 억압당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망할 협회에서 지랄하는 바람에 던전도 몰래 가야 하다니.”
무리의 리더, 팀장이라는 남자가 눈앞의 게이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푸르게 일렁이는 게이트.
본래 게이트가 발견되면 협회에 신고를 하고 사전 조사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 앞에 있는 게이트는 협회에 신고되지 않은 불법 던전이었다.
“그 골렘 던전에 있을 때가 좋았는데 말이야.”
“망할 협회 새끼들이 지랄하는 바람에 이리된 거 아니냐?”
“그놈들 말 듣는 거 솔직히 마음에 안 듭니다. 그놈들이 하는 게 뭡니까?”
경갑을 착용한 헌터들이 협회를 향해 욕을 내뱉고 있을 때.
“이제서야 기어왔냐?”
팀장이 다가오는 연화를 보고 바닥에 침을 뱉으며 거칠게 말했다.
“이진태 팀장님.”
연화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휴가라고 말씀 드렸-.”
-짜악!
연화가 무리의 리더, 이진태를 향해 말하던 도중 말이 끊겼다.
뺨을 얻어맞은 연화의 고개가 돌아갔다.
“노예 새끼가 허락도 안 했는데 말을 하네?”
길드 갑옷을 입은 자들은 연화를 보며 낄낄대고 있었고.
평범한 복장의 이들은 불편한 눈치를 속으로 감추었다.
“오늘 네년 일당은 없다. 알겠어?”
연화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뭣들 해? 다들 들어가!”
이진태가 호통치자 연화를 포함한 평범한 복장의 사람들이 먼저 입장했다.
그들이 모두 들어간 걸 확인하자 이진태를 포함한 경갑을 입은 이들이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스스스.
이들의 뒤를 검은 그림자가 뒤따랐다.
‘불법 게이트인가?’
사람들을 따라 게이트에 들어간 처용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길드들이 협회에 신고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용하는 던전에 대해서는 처용도 알고 있었다.
처용은 연화의 뒤를 조용히 밟으며 계속 상황을 지켜봤다.
연화가 뺨을 맞을 때는 이진태라는 놈의 머리를 날려버릴 뻔했다.
그러나 함부로 개입한다면 연화를 제외한 여기 있는 이들 전부를 죽여야 할 수도 있었다.
통찰의 눈으로 본 이들 전부가 워 글래디에이터 길드원이었으니까.
처용은 일단 연화가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 파악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번엔 얼마나 죽으려나…….”
“기운 내세요. 이 던전은 B급이긴 해도 난이도가 높지는 않대요.”
연화와 같이 앞장서 걷는 사람들의 대화였다.
그리고 이들은 연화처럼 가호에 ‘임시’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빨리 앞장서! 이 새끼들아!”
“팀장님 이번에는 A급 달성하셔야죠! 하하!”
그들의 뒤로 얼굴에 우월감이 잔뜩 드러나 있는 이들의 대화를 들었다.
이들은 모두 정상적인 가호를 받고 있었다.
처용은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이진태라는 남자를 바라봤다.
[이름 : 이진태]
[레벨 : 99]
[칭호 : B급 헌터, 전쟁신의 가호]
[클래스 : 버서크 파이터]
[특징 : 스스로 폭주 상태에 접어들어 싸우는 근접 클래스입니다.]
[광란이 심해질수록 전투력이 상승하지만, 점점 피아식별을 가리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스킬 : 광란, 폭주의 일격…….]
‘한계의 벽에 닿은 놈인가?’
99레벨의 B급 헌터 이진태.
그는 처용처럼 한계를 돌파하지 않는 이상 레벨업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처용은 사람들의 대화와 이진태를 보고 대략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들이 불법 던전에 들어간 이유는 이진태의 승급을 위해서였다.
99레벨을 돌파하려면 던전을 꾸준하게 많이 공략해야 한다.
이것이 그나마 알려진 방법 중 하나였으니까.
문제는 연화를 포함해서 제대로 된 무구 없이 앞장서 나아가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던전 공략에 필요한 고기 방패이자 노예였다.
정식 길드원들이 ‘안전’하게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강제로 앞장서 나아가는 이들이었다.
몬스터의 패턴 파악이나 어그로 등.
몸을 던져 가며 소모품처럼 사용되는 이들이었다.
마치 중세 시대에 전쟁에 사용되던 노예 병사들처럼 말이다.
‘이 개새끼들이…….’
처용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동시에.
눈동자가 붉게 변하며 번들거렸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