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화
[후후, 마음에 드나 보네?]
“정말 감사합니다.”
처용은 진심으로 카투라에게 감사를 전했다.
99레벨 돌파와 레전더리 등급의 영약, 거기에 계승된 능력까지.
그녀 덕분에 얻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보다도…….”
처용은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와 카투라에게 물었다.
그녀에게 너무나도 궁금한 것이 많았으니까.
“카투라 님, 스승님하고는 어떤 사이이신 겁니까?”
처용의 질문에 카투라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과거에 함께 했었던 인연. 아니, 악연이라고 해야 할까? 하하.]
“그렇군요.”
[애초에 잘 자고 있던 날 여기로 끌고 온 게 여래거든.]
“끌려…… 왔다고요?”
처용의 입에서 황당함이 가득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카투라의 본체를 본 입장에서 과연 그것을 강제로 끌고 오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하하, 내가 형제들 중 가장 크다곤 해도 싸움은 잘 못 해.]
황당한 표정을 짓는 처용을 보며 웃음을 지은 카투라가 말을 이었다.
[내가 여래보다 강할 것 같니?]
“……이해했습니다.”
처용은 카투라의 말을 듣고 ‘헌터’로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녀의 본체 크기는 그야말로 거대하다 못해 압도적이다.
그저 굴러다니기만 해도 도시, 아니 나라가 초토화될 정도이니까.
하지만.
덩치가 크다고 하여 무조건 싸움에서 이기는가?
답은 절대 ‘아니’였다.
‘전성기의 내가 상대한다면?’
처용은 레벨 498의 헌터, 회귀 전의 자신을 기준을 판단해보았다.
‘……이길 수 있다.’
단순 자신감만이 아닌 냉정하게 전력을 판단한 결과였다.
처용이 속으로 전투 시뮬레이션을 하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흐음? 내 본체를 상대로 싸울 생각을 하고 있나 보네?]
카투라가 처용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이길 수 없는 상대와 싸워서 이겨야 하거든요.”
처용은 조금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카투라는 그런 처용을 보며 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마음에 드네.’
절망적인 불가능에 몸을 던지면서 가능성을 실현하려 하는 처용의 모습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마치 반신이었을 때의 여래와 처용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
카투라가 처용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태초의 마수가 무엇입니까?”
처용은 카투라에게 크타니드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은 이해했다.
크타니드는 태초신의 이름.
때문에, 태초신과 태초의 마수 간의 관계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태초의 마수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머릿속에 어떤 의문이 계속 떠오르고 있었다.
[가장 처음 만들어진 생명체들.]
카투라가 처용에게 대답했다.
태초의 마수는 태초신이 각 원소들의 근원을 떼어 만든 생명체였다.
[‘물의 근원’을 지니고 태어난 나는 모든 물에 사는 생명체들의 시조라고 할 수 있지.]
카투라의 말대로라면 물에 사는 모든 생명체는 그녀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우린 실패작이자 버려진 자식들이야.]
설명을 해주던 카투라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태초신이 다양한 생명체를 만들기 위해 프로토타입으로 창조한 것.
그것이 태초의 마수였다.
그런 태초의 마수들을 베이스로 다양한 생명체들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었다.
[내가 다른 선천적 신격들과는 많이 다르잖니?]
“……그렇군요.”
카투라에게 대답한 처용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이 더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 의문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태초의 마수는 마인들이 만들어 내는 ‘마수’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처용이 알고 싶어 하던 것은 이거였다.
‘관련이 없는 건가?’
처용이 생각하고 있을 때.
[마인들이 만들어 내는 마수와 내가 관련이 있는지 궁금해?]
마치 처용의 생각을 알아챈 듯 카투라가 이야기하자 처용의 눈이 커졌다.
[관련이 있을 거야.]
“네?!”
처용이 크게 놀란 듯 되물었다.
[음, 미안하지만 지금은 자세히 말해줄 수가 없어. 나도 정확히 알지 못하거든.]
카투라의 말에 다시 처용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조만간 여래가 알려주지 않을까? 그가 나를 여기에 데려온 이유 중 하나일 것 같아서 말이야.]
“그렇군요.”
카투라에게 대답한 처용의 얼굴에서 복잡한 표정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기다리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카투라가 미소를 지었다.
[여래에 대한 믿음이 강한걸?]
“무조건 믿습니다.”
[……여래가 부러운 적은 처음이네.]
처용의 망설임 없는 대답과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마주한 카투라의 미소가 진해졌다.
[시험은 끝났지만, 가끔 찾아와서 나랑 놀아줬으면 좋겠어.]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초거대 괴수와의 전투는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
[잘 가~. 널 만나서 재밌었어.]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처용의 정중한 인사를 마지막으로 카투라가 마주 인사하듯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주변에 물들이 파도가 치듯이 모이더니 처용을 집어삼켰다.
처용이 사라지자.
-우웅!
주변이 일렁이더니 여래가 나타났다.
[이야기는 끝났나 보군.]
여래가 카투라의 앞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내 제자를 얕보지 말라고 말이야.]
[그래, 네 제자를 얕본 건 인정해, 설마 내 분신한테 그만한 피해를 줄 줄은 몰랐어.]
카투라는 왼손으로 턱을 괴고 짜증난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기는 잊지 않았겠지?]
[아 알았어, 주면 되잖아.]
처용이 카투라를 찾아오기 전 둘은 작은 내기를 했었다.
처용이 이번에 시험을 통과할 것인지 못 할지를 놓고 말이다.
그 결과 제자를 믿었던 여래가 이긴 상황이었다.
[나도 인간 하나 키워볼까?]
[가능…… 하겠는데?]
[헛소리니까 진지하게 듣지 마.]
카투라는 실없이 내뱉은 말을 진지하게 받아주는 여래에게 손을 휘저었다.
***
카투라의 시험을 끝낸 처용이 던전 결과 보고를 위해 협회를 찾아갔다.
“후, 이제 정말 한시름 놨군요.”
처용이 처리했던 던전의 결과 보고서를 확인한 태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부장님 일이 끝나진 않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겠죠.”
처용이 확신을 담아 말했다.
권백호가 간 이상 문제가 생긴다 해도 걱정은 없었다.
“그리고 백호 님이 오시면 본격적으로 시작하죠.”
“길드들…….”
태민은 처용의 말에 대답하며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부여잡았다.
겨우 길드들의 바보짓을 수습했더니, 이젠 배신한 길드들을 잡아내야 했다.
“길드를 뒤지는 건 류마가 할 겁니다. 시간이 나면 저도 직접 움직일 거고요.”
“네, 안 그래도 답답했었는데,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태민은 처용의 말에 자신감을 얻었다.
자신 혼자서는 길드들의 불법을 파해 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백호조차 감지하지 못했던 뱀파이어 백작과 처용이 직접 움직인다면?
제아무리 길드장이라 해도 이들을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태민이 미소를 지으며 머릿속에 계획을 짜고 있을 때.
“아, 과장님 저번에 알려주신 치킨집이랑 비슷한 가게들이 또 있나요?”
“대형 프랜차이즈 음식점이요?”
처용의 질문을 듣고 궁금증을 섞어 대답했다.
그가 왜 갑자기 음식점을 찾는 것인지 궁금했다.
“네 먹거리를 좀 많이 사야 할 일이 있어서요.”
“혹시 얼마 전에 치킨을 종류별로 백 개씩 구매한…….”
태민은 처용의 말을 듣고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협회 직원 중 하나가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었던 소식.
어떤 헌터가 블랙카드로 치킨을 무지막지하게 사 갔다는 말이었다.
심지어 그 치킨집은 자신이 처용에게 알려준 음식점.
그리고 처용은 블랙카드를 지닌 헌터였다.
“제가 맞을 겁니다. 식구가 좀 많아져서요.”
“아! 그렇군요.”
태민은 처용의 말에 무언가 생각난 듯 대답했다.
처용이 말하는 식구에는 이종족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뱀파이어가 치킨을 먹는다는 게 아직도 적응되지 않지만…….’
실없는 생각을 털어낸 태민은 대량의 주문도 받을 수 있는 음식점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뱀파이어분들이 사용할 라이센스도 곧 나올 겁니다.”
“다행이네요. 사실 무리일 거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한국은 아직 이종족들을 배척하는 교단과 길드의 영향력이 컸다.
때문에 자신의 부탁이 좌초될 수도 있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협회장이 힘을 써준 탓인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저는 솔직히 이종족들을 차별하고 싶지 않습니다.”
태민이 처용에게 솔직함을 담아 말했다.
인간이 이종족들에게 가졌던 추악한 욕망.
태민 역시 그 추악한 모습들을 가까이서 목격했었다.
커맨더가 좌절한 것도…….
그리고 같은 인간으로서 그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줬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다.
“다행이군요.”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 처용이 방을 나가려는 찰나.
“아, 참고로 내일은 제가 쉽니다.”
막 생각난 듯 태민을 향해 말했다.
“그런가요?”
태민은 처용이 쉰다는 말에 짐짓 놀람과 의문을 섞어 대답했다.
그는 쉼 없이 움직이며 자신을 단련하는 인물이었으니까.
처용이 먼저 쉬겠다고 말한 것도 처음이기에 뭔가 신기했다.
“내일 어머니 생신입니다.”
처용에게 있어 너무나도 중요한 일정이었다.
“하하, 정말 중요한 일정이 있으셨군요. 알겠습니다.”
태민은 처용의 말을 듣고 단번에 이해했다.
“그럼.”
사무실을 나온 처용은 곧장 협회 지하로 향했다.
얼마 전 혁수에게 재료와 설계도를 건네주고 맡긴 물건이 있었다.
“이정도면 꽤 괜찮지 않나?”
혁수가 처용에게 작업물을 보여주며 말하자.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훌륭합니다.”
처용이 엄지를 들어 올리며 만족한 듯 말했다.
“하하, 다른 것도 아니고 어머니 선물이지 않나. 공 좀 들였지.”
혁수에게 의뢰한 물건은 어머니 생신으로 드릴 물건이었다.
“내일 오전 중 완전히 마무리가 끝날 거야, 그때 찾아와.”
“감사합니다.”
제고관리 센터를 마지막으로 협회를 나온 처용은 태민이 알려준 음식점으로 향했다.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네.”
처음으로 어머니를 위해 제대로 준비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던 가족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었다.
나름대로 내일이 기대되는 처용이었다.
***
다음날 저녁.
처용은 어머니와 연아를 데리고 예약했었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뭐 이렇게 비싼 곳을 예약했니?”
“돈은 걱정하지 마세요. 아시잖아요?”
어머니의 말에 처용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처용이 100억을 어머니에게 줬다고 해도 아직 수십억이 남아있다.
그리고 협회에서 처리한 일들로 인해 자금이 차곡차곡 추가로 쌓이고 있었다.
“미리 준비는 다 되어있으니 편안하게 즐기면 됩니다.”
“아싸!”
처용의 말에 연아가 신난 듯 대답했다.
미리 예약했었던 창가 쪽, 전망이 좋은 자리에 처용과 가족들이 앉았다.
“연화도 오는 거 맞지?”
자리에 앉은 어머니가 처용을 향해 묻자.
“반드시 온다고 확답을 받았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에 오기 전 한 번 더 확인 전화를 했으니 올 것이다.
다른 가족들보다 더 오랜 시간 보지 못했던 누이.
하지만, 얼굴만큼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회귀 전 갑작스레 전해졌던 연화의 사망과 이어진 장례식.
시신조차 없던 장례식의 영정사진이 머릿속에 너무나 또렷하게 박혀 있기 때문이었다.
처용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띠리링-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난 처용이 레스토랑 입구를 향해 나아갔다.
입구에서 걸어오는 단발머리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치고는 큰 키와 단련한 흔적이 보이는 근육 잡힌 육체.
그리고 처용과는 조금 다른 세련된 강인함이 엿보이는 인상의 여성이었다.
“정말 오랜만이네.”
처용의 누나인 연화가 처용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래.”
그러나 처용은 오랜만에 마주하는 누이를 보고 인상을 크게 구겼다.
나름 긴 옷을 입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깨와 목 부근에 긴 흉터 자국이 보였다.
거기에 오른쪽 눈 부근에 세로로 이어진 흉터까지.
“왜 그래? 세상에 다친 데 없는 헌터가 어디 있다고?”
연화는 처용이 무엇을 보고 표정이 일그러졌는지 짐작하듯 말했다.
그러나 처용은 그녀의 상처만을 보고 표정이 일그러진 것이 아니었다.
[이름 : 한연화]
[레벨 : 82 -> 41]
[칭호 : 가호 박탈자, 전쟁신의 가호(임시)]
[클래스 : 성수의 기사 -> 검사]
[특징 : 가호를 잃어 본래 클래스를 잃었습니다.]
[클래스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절반으로 하락한 상태입니다.]
[스킬 : ■■……]
통찰의 눈으로 보이는 연화의 스테이터스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혼란이 가득한 처용이 연화를 향해 속으로 질문했다.
-내가 알기로는 성좌에게 파면당하는 경우 레벨이 하락하지.
레벨이 하락한 자신을 보고 백호가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처용 또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레벨이 하락한 헌터.
연화는 빛의 신에게 버림받고 가호를 박탈당한 상태였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