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화
핵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동시에 폭포 전체가 에너지 폭발에 휩쓸렸다.
터져 나간 에너지 폭발이 괴수와 처용, 폭포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슈우우.
폭발의 여파가 점점 가라앉았고 처참하게 변한 환경이 드러났다.
물을 끊임없이 쏟아내던 드높은 폭포의 절반이 통째로 사라졌다.
“크, 커허억!”
부유석 위에 가까스로 서 있던 처용이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종말의 백야를 막았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중상이었다.
“쿨럭! 커헉!”
주저앉은 처용이 앞으로 비틀거리며 피를 토해냈다.
손을 앞으로 뻗어 몸을 지탱하려 했지만, 오른쪽 팔밖에 보이지 않았다.
왼팔은 팔꿈치 아래가 없었고 뼈가 드러나 있었다.
오른팔은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뼈가 보일 정도로 피부가 타 있었다.
‘본래 위력의 1/4도 되지 않거늘…….’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사용한 대가는 너무나 컸다.
그나마 항마의 화신으로 반동을 줄였기에 살아남은 것이었다.
‘실패한…… 건가?’
처용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고 싶었지만, 목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정도로 무리를 했는데도 시험을 통과했다는 시스템이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더는 정신을 붙잡고 버틸 수 없었다.
‘젠장…… 1분 안에…… 죽겠군.’
처용이 쓰러짐과 동시에 가까스로 남아있던 발판, 부유석마저 흩어졌다.
힘없이 아래로 추락하기 직전.
-툭.
무언가가 추락하는 처용을 받쳐주었다.
[아오! 무식한 놈.]
처용을 받쳐준 것은 괴수의 그을린 듯한 촉수였다.
[이런 무식하고 재밌는 인간이 다 있네?]
괴수에게서 황당함이 가득한 음성이 들려왔다.
동시에.
-스믈스믈.
종말의 백야를 막았을 때처럼 물방울들이 처용에게 모여들었다.
처용은 자신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안개가 걷히고 눈앞의 괴수의 실루엣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설마 내 분신에게 이정도 타격을 입힐 줄은 꿈에도 몰랐어.]
눈앞의 괴수를 관찰하기 바쁜 처용은 괴수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괴수의 집게발과 다리가 절반 가까이 부수어져 있었다.
크라켄과 같은 촉수는 자신을 받쳐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부 찢어지고 그을려 있었다.
“……결과는?”
처용은 괴수를 응시하며 물었다.
[……칫, 그래 합격이다.]
괴수의 말에 처용이 미소를 지었다.
[최종 시험에 통과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을 달성합니다.]
[칭호 ‘한계를 돌파한 자’가 재생성 됩니다.]
[태룡전이 성장합니다.]
[모든 스텟이 30 증가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하, 하하.”
시스템 창을 확인한 처용이 헛웃음을 흘렸다.
시험에 통과한 보상으로 99레벨을 돌파했다.
추가로 레벨이 더 올라 105레벨이 되었다.
‘하긴 이건 하급 악신보다 더하면 더했지…….’
눈앞의 괴수는 하급 악신보다도 막강한 상대였다.
아마 그런 상대가 내린 시험을 통과한 것으로 조건을 충족한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처용은 순수하게 감사를 전했다.
하급 악신을 찾아다닐 필요도 없이 한계를 돌파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그래도 쓰러뜨리지는 못했네요.”
[나를 이기기에는 아직 일러.]
“언젠가는 이길 겁니다.”
[하하, 뭐 이런 놈이 다 있는지.]
괴수에게서 처용의 승부욕이 마음에 든다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시험을 통과했으니 이젠 알 권리가 있습니다.”
처용이 괴수를 향해 말했다.
시험을 통과하면 괴수가 누구인지 알려준다고 했으니까.
[좋아, 나에 대해서 알려 주는 건 문제없지. 내 분신을 상대로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분……신?”
처용은 괴수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그때.
[카투라가 당신을 초대합니다.]
-슈우우!
물방울들이 파도처럼 모여들더니 처용을 집어삼켰다.
마치 게이트에 빨려 들어가 사라지는 것처럼 처용이 사라졌다.
“여긴?”
어두운 장소에 나타난 처용의 의문을 내뱉자.
-뽀그르르르-
공기 방울들이 위로 솟아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물속, 아니 심해인가?’
해저가 희미하게 보이는 아주 깊은 물속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숨이 쉬어졌다.
[내 레어에 누군가를 들이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마치 공간 전체가 울리듯 괴수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여긴 어디입니까?”
[음…… 태룡전의 허가를 받고 만든 내 집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군요.”
처용은 괴수의 말을 대강 이해했다.
태룡전이라는 거대한 공간 안에도 보물전과 안식전 등 별도의 공간들이 존재한다.
이 장소 또한 그것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제 질문에 대한 대답은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너를 여기로 불렀어.]
처용의 질문에 카투라가 답했다.
[네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면 분신이 아닌 내 본체를 보여줄 필요가 있거든.]
“그게…… 분신이었다고요?”
역시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 거대한 괴수가 분신이라면 도대체 본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처용이 고뇌에 빠져 있을 때.
-쿠구구!
해저가 울리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해저의 일부가 갈라지더니 보랏빛의 새어 나왔다.
“……이게 무슨?!”
처용은 해저가 갈라지고 나타난, 보랏빛을 내뿜는 것의 정체를 확인하자 경악이 튀어나왔다.
해저가 갈라지며 나타난 것은 눈이었다.
문제는 그 눈의 크기가 좀 전까지 마주했던 초거대 괴수와 맞먹는 크기였다.
그런 눈이 대충 시야에 보이는 것만 수십 개였다.
“설마……?”
처용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감각을 넓히고 해저를 살펴보았다.
정확히는 해저라고 생각했던 바닥 전체를 침착하게 살펴보았다.
“하, 하하…….”
처용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 나왔다.
해저라고 생각했던 것은 땅이 아닌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
눈앞의 생명체의 크기는 거의 소행성에 맞먹는 크기로 느껴졌다.
[대단하긴 하네? 내 본체를 마주한 인간 중 제정신을 유지한 이들은 드문데.]
머리로 짐작되는 부분이 보라색 안광을 빛내며 처용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미가 납니다만?”
소행성과 맞먹는 크기의 생명체가 자신을 바라보며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리 산전수전을 다 겪고 강인한 정신을 가진 처용이라 해도 아득한 심정이 밀려왔다.
괴수의 말 대로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벌써 기절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하, 재미있는 인간이구나.]
웃음소리를 낸 괴수가 말을 이었다.
[이제는 네 눈으로 보일 거야.]
“……통찰의 눈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관리자가 네게 준 능력.]
“관리자?”
분명 괴수가 말하는 것은 미륵이었다.
그런데 그를 이름이나 관철의 신이라는 신명이 아닌 관리자라고 말했다.
거기에 의문이 들었지만.
[태룡전이라 해도 이곳은 나의 영역, 내가 장막을 거뒀으니 가려졌던 일부가 보일 거야.]
이어진 괴수의 말에 생각을 잠시 뒤로 미루었다.
“감사합니다.”
처용이 통찰의 눈을 사용하자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투라-크타니드]
[등급 : ■■…….]
[칭호 : 태초의 마수]
[특징 : 태초신의 파편 ‘물의 근원’을 품고 태어난 최초의 생명체 중 하나.]
[태초신 ■■의 ■…….]
[스킬 : ■■■…….]
괴수, 카투라의 말대로 전부 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처용은 방금 확인한 정보로 인해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중 가장 경악할 만한 것은.
“크타니드!?”
어째서 저 괴수의 이름에 악의 종주와 같은 이름이 들어가 있는가?
[크타니드는 아버지, 태초신의 이름이기도 하니까.]
“그렇……군요.”
회귀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정보였다.
[이 모습으로는 대화하기가 힘드네.]
카투라의 말이 끝나자 처용의 주변에 물이 회오리치며 점점 시야가 바뀌었다.
-쏴아아!
시야가 바뀌자 처용에게 익숙한 환경이 드러났다.
‘안식전?’
처용이 다시 나타난 곳은 안식전의 가장 높은 층이었다.
[안녕?]
옆에서 들려온 괴수의 목소리에 처용이 고개를 돌렸다.
바다와 같은 푸른 머리를 한 여성이 테이블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서 있지 말고 앉지 그래?]
처용은 눈앞의 여성, 카투라의 말대로 테이블에 다가가 앉았다.
가까이 보니 단순 푸른 머리카락의 여성이 아니었다.
‘인어족? 아니, 많이 다르군.’
귀 대신 보이는 생선의 지느러미와 아가미를 보고 인어족이라 생각했지만 다른 점이 많았다.
머리 위에 산호와 같은 뿔이 있었고 등 뒤에는 가재의 집게발 네 개가 달려 있었다.
[이 모습이면 이야기하기 편하지 않을까?]
카투라가 보라색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처용은 카투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보고만 있어도 멀미가 나는 그녀의 본체와 대화하는 것보다 훨씬 나으니까.
[음, 내가 줄게 이거밖에 없네.]
카투라가 등 뒤의 집게를 움직여 컵에 대자 집게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왔다.
-쪼르르륵.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본 처용은 얼떨결에 그녀가 건네주는 물을 받았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를 전한 처용이 그녀에게 받은 물을 눈으로 확인하자.
“……이거 보통 물이 아닙니다만?”
속으로 놀람을 감추며 카투라에게 물었다.
푸르게 빛나는 물.
그것은 단순한 물이 아니었다.
[심해의 공청석유(空淸石乳)]
[등급 : 레전더리]
[백 년에 한 방울씩 바다의 정수가 모여 응축된 전설 속 영약.]
[심해의 아주 깊은 해저 동굴 속, 바다의 정수가 흐르는 곳에서 한 방울씩 떨어져 만들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레전더리 등급의 영약.
많은 영약을 봐온 처용조차 당황할 정도였다.
‘백년설삼하고는…… 비교가 안 되네.’
처용이 당황하고 있을 때.
[응? 네가 평생 마셔도 남아돌 만큼 많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렴.]
카투라는 레전더리 등급의 영약을 별것 아닌 것처럼 말했다.
“……감사합니다.”
처용은 더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그녀의 호의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꿀꺽!
물이 목으로 넘어가자 머릿속이 맑아지는 듯한 청량감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심해의 공청석유를 복용했습니다.]
[선인의 육체가 크게 성장합니다.]
[최대 생명력이 500 증가했습니다.]
[최대 마나가 300 증가했습니다.]
[모든 스텟이 20 증가합니다.]
[선인의 육체에 최대 생명력과 마나의 1%씩 재생하는 능력이 추가됩니다.]
“크으!”
처용의 입에서 청량감에 뒤이어 만족감이 가득 담긴 감탄사가 나왔다.
레전더리 등급의 영약답게 효과가 엄청났다.
[더 줄까?]
“네.”
처용은 카투라의 말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했다.
이런 영약을 물처럼 마실 기회가 또 어디에 있을까?
다만 영약은 같은 것을 복용하면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처용이 공청석유를 한잔 더 마신다고 해도 생명력이 회복되는 정도의 효과만 나타날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여래랑 다르게 예의가 바르네? 그는 날 물통 취급했었는데.]
카투라가 왼손으로 턱을 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보다도 시험에 통과한 보상을 줘야겠지?]
“네?”
카투라의 말을 들은 처용이 반문했다.
그녀의 시험을 통과해 한계를 돌파한 것으로 보상을 받았다.
추가로 레전더리 등급의 영약까지 얻어먹었다.
그런데 보상이 또 있다니?
[시스템의 업적 말고 내가 네게 주는 거 말이야.]
“그런 게 따로 있었습니까?”
[나랑 놀아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라고 생각해.]
카투라가 처용을 향해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마치 심해와 같은 짙은 청색의 신력이 흘러나왔다.
-스스스.
청색의 신력은 처용 주변을 돌며 배회하더니 점점 가까워지며 스며들었다.
그러자.
[카투라-크타니드의 능력을 계승합니다.]
[신수의 격이 성장합니다.]
[선인의 육체가 성장합니다.]
[마력 스텟이 30 증가합니다.]
[최대 마나가 200 증가합니다.]
[수 속성 마나의 힘이 크게 상승합니다.]
-절단 속성 추가.
-입자 가속 능력 추가.
[카투라의 초월기 ‘종말의 백야’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소환 : 카투라’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을 확인한 처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음…… 정말로 ‘계승’이 될 줄이야.]
카투라는 그런 처용을 향해 신기한 듯 웃음을 짓고 있었다.
반면에 처용은 카투라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계승 받은 힘으로 인해 얻은 두 가지 때문이었다.
[종말의 백야]
[태초의 마수, 카투라의 고유 능력인 초월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력과 신력 스텟이 높을수록 위력이 더 강해집니다.]
-24시간에 한 번 사용 가능.
종말의 백야.
전방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적들에게 종말을 고하는 하얀 섬광.
항마의 화신조차도 막을 수 없었던 그녀의 능력을 얻었다.
이 능력을 자신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웠지만.
“이럴 수가…….”
처용은 종말의 백야가 아닌 다른 것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소환 : 카투라]
[카투라의 분신을 소환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량의 물이 존재하지 않거나 제한된 공간에서는 소환할 수 없습니다.]
-168시간에 한 번 사용 가능.
“미친…….”
시스템 알림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던 처용은 카투라를 향해 물었다.
“제가 생각한 그게 맞는 거죠?”
[내 분신을 소환할 수 있는 거?]
“이게 사실입니까?”
[그럼 거짓말이겠니?]
“하, 하하…….”
처용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168시간, 일주일에 한 번이라는 제약이 있다 해도.
500미터가 넘는 크기의 초거대 괴수를 소환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 괴수의 전투력은 재앙급 마수들보다 높았다.
‘마인들의 아지트…… 아니, 의회 본부 한복판에서 이걸 쓴다면…….’
처용의 머릿속에서 이 능력의 활용법이 마구 떠올랐다.
적들에게 끔찍한 악몽을 선사할 생각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