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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71화 (71/726)

#071화

항마의 화신이 부서짐과 동시에.

-후우우-

종말의 백야 역시 힘을 다한 듯 사그라졌다.

강력한 파괴력의 공격이 지나간 뒤의 흙먼지가 점점 가라앉았다.

먼지가 가라앉자 처용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4단계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으, 으허-억!”

처용이 피를 토해내며 무릎을 꿇었다.

몸 여기저기가 그을려 있었고 마치 피를 뒤집어쓴 듯 피투성이 상태였다.

“진……짜, 가까스로…… 막았네.”

힘에 부친 듯 중얼거린 처용이 비틀거렸다.

왼쪽 눈이 부상을 입었는지 매우 쓰라렸고 눈이 떠지지 않았다.

시야가 흔들리니 집중력도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용은 지금 자연신보로 허공을 밟고 있는 상태였다.

집중력이 흔들리게 되면 마나가 흩어진다.

-휘청-

처용이 바닥으로 추락하기 직전.

-쩌저적!

처용의 발밑에 부유석이 뭉치더니 발판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우우웅!

주변에 물방울들이 떠올라 처용에게로 뭉쳐 들었다.

정확히는 처용의 상처 부위로 뭉쳐 점점 스며들었다.

-스스스-

스며든 물로 인해 육체 곳곳에 고통을 유발하던 화상 자국과 찢어진 상처들이 아물기 시작했다.

“……이건?”

처용은 자신을 회복시키는 물방울들의 근원을 확인하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물방울에서 느껴지는 기운의 근원은 바로 눈앞의 괴수였다.

처용이 어리둥절한 듯 괴수를 바라볼 때.

[놀라워, 정말 대단해.]

괴수에게서 물소리처럼 맑은 미성이 들려왔다.

“……?!”

처용은 좀 전에 들려온 음성이 정말 괴수에서 들려온 것이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역시, 여래가 칭찬할 정도야.]

“말을…… 할 수 있으셨군요.”

잠시 당황했던 처용은 침착함을 되찾고 눈앞의 괴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여래가 그간 바쁘게 움직인 이유.

최근 태룡전을 방문한 손님.

달라진 고행탑과 여래가 자신을 위해 준비한 수련 등.

하지만 생각을 통해 떠오른 불완전한 정보들로 인해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졌다.

[하하, 여래가 정말 나에 대해서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았구나?]

“……당신은 누구십니까?”

처용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눈앞의 괴수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여래를 가볍게 부르는 것을 봐서는 그의 지인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회귀 전에는 눈앞에 괴수를 본 적도 여래에게 들은 적도 없었다.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음…… 여래라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내 시험을 통과하라고 했을 것 같은데?]

“……맞습니다.”

정말로 여래의 지인이 맞는지 그가 했었던 말을 정확히 짚어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겠지?]

괴수의 음성이 끝남과 동시에.

[5단계 시험이 시작됩니다.]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십시오.]

시스템이 울리며 시험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쿠구구!

폭포가 흔들리며 무언가가 치솟아 올라왔다.

거친 물줄기를 뿜으며 올라온 것은 마치 문어와 같은 두족류의 촉수였다.

웬만한 빌딩의 두께와 맞먹는 크기를 가진 여덟 개의 다리.

문제는 그 촉수의 크기가 크라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크고 두껍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나도 최선을 다할 거야.]

마치 즐겁다는 듯한 음성이 괴수에게서 울려왔다.

[그러니까. 끝까지 날 재밌게 해주길 바라.]

“……좋습니다.”

처용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얀 섬광, 종말의 백야라는 괴수의 초월기까지 막아냈다.

이제 두려운 건 없었다.

“뢰신보.”

-파직!

처용이 번개처럼 사라진 순간.

-콰콰쾅!

그가 있던 자리를 세 개의 촉수가 채찍처럼 내리쳤다.

처용은 폭격처럼 쏟아지는 공격들을 피하며 괴수의 패턴들을 분석했다.

“풍신보.”

처용의 다리에 바람이 휘감기며 허공을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였다.

-후웅!

괴수의 촉수는 집게발과는 다르게 더 유연하고 빠른 공격을 했다.

설사 피했다 해도 부드럽게 방향을 꺾어 재차 공격을 했다.

추가로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줄기와 물줄기 칼날들까지 더해졌다.

점점 거세게 가해지는 공격들은 점점 처용을 조여 왔다.

“뢰신보.”

처용은 괴수의 공격에 코너로 몰리기 직전 뢰신보로 빠르게 빠져나왔다.

처용이 다시 나타난 그 순간.

괴수의 눈동자가 보랏빛을 번쩍이며 처용을 응시했다.

-키잉!

괴수의 눈동자에서 보랏빛의 레이저가 순식간에 뿜어져 나왔다.

“흡!”

처용이 다리를 박차 뛰어오르며 회피하자 보랏빛 레이저가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치이이!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도 금강불괴를 되찾은 처용의 피부가 그을렸다.

‘그 하얀 섬광의 소형 버전인가?’

예사롭지 않은 괴수의 새로운 공격 패턴에 처용이 잠시 당황했다.

그때.

-키잉!

괴수의 보랏빛 눈동자들이 재차 빠르게 점멸했다.

“이런!”

괴수의 눈은 총 여덟 개.

방금 레이저를 발사한 눈을 제외하고 일곱 개의 눈동자가 처용을 응시하고 있었다.

“뢰신보-초신속!”

처용은 뢰신보의 속도를 극한으로 높였다.

-파직! 위이잉!

처용이 사라짐과 동시에 일곱 개의 보라색 레이저가 지나갔다.

“버겁네.”

처용의 입에서 침음성이 나왔다.

그러나 입가로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렇게 자신에게 극한의 상황을 안겨줄 수 있는 수련이 어디 있을까?

이런 극한의 상황을 반복하고 계속 이겨낸다면.

더욱 빠른 속도로 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터!

처용이 무아지경에 빠진 듯 괴수의 맹공격을 전부 피해내고 있을 때.

[최종 높이에 도달했습니다.]

어느 순간 시스템 알림이 울렸고 시험을 통과했음을 알 수 있었다.

[5단계 시험이 종료됩니다.]

[곧 최종 시험이 시작됩니다.]

드디어 처용은 괴수의 머리 부분과 눈높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정말, 놀라워.]

괴수의 여덟 개의 눈동자가 처용을 응시하며 말을 건넸다.

“하하…….”

괴수의 생김새는 온갖 갑각류들을 뭉쳐 만들어진 키메라처럼 보였다.

그런 괴수에게서 들려오는 잔잔한 듯 맑게 울리는 말소리가 아직도 적응되지 않았다.

[다른 인간들 중에도 너처럼 재밌는 이들이 있으려나?]

“있……을 겁니다.”

처용은 괴수의 말에 잠시 고민한 후 대답했다.

당장 백호만 해도 자신 못지않은 강자였으니까.

그리고 커맨더를 포함한 S급 헌터들도 나름 지구의 강자들이었다.

[네가 사는 세계는 정말 재밌는 세상이네?]

괴수의 말이 끝냈을 때.

[최종 시험이 시작됩니다.]

최종 시험이 시작된다는 시스템 알림이 울려왔다.

[아쉬워, 여기에서 끝내기에는 너무나 아쉽단 말이야.]

괴수에게서 마치 웃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에겐 미안하지만, 아직 이건 통과할 수 없을 거야.]

처용은 괴수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마지막이 도대체 뭐길래…….”

[여래가 부탁했거든. 너를 몰아붙여도 되니 성장에 도움을 주라고.]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처용은 순순히 인정했다.

눈앞의 괴수의 도움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괴수를 만나기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진 것이 사실이었다.

때문에, 마지막 시험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다.

[내가 내리는 마지막 시험은 이거야.]

괴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최종 시험이 시작됩니다.]

[괴수를 공격하여 일정 이상의 피해를 입히십시오.]

[기회는 단 한 번입니다.]

최종 시험을 확인한 처용의 눈이 일그러졌다.

“……스승님하고 무슨 사이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장난합니까?”

그 하얀 섬광, 종말의 백야를 막으라고 하는 것에서부터 쌓인 불만이 폭발했다.

[너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사실 카투라는 처용과 보내는 이 시간을 조금 더 늘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 시험이 끝나면 그가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으니까.

때문에, 처용이 통과하기 힘든 무리한 시험을 내준 것이었다.

[솔직히 네가 내 초월기를 막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 하핫!]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좀 전엔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냈잖아?]

괴수에게서 웃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 네, 덕분에 죽을 뻔했지만요.”

고행탑 안이라 죽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굳이 맞지 않아도 되는 공격을 맞게 만든 것이 짜증 났을 뿐이었다.

[네 방어능력과 회피는 나조차도 놀라울 정도야. 하지만.]

괴수에게서 마치 도발하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방어만 해서는 적을 이길 수 없잖아?]

“……하하.”

처용은 괴수의 말을 듣고 웃음을 흘렸다.

“제가 공격이 약하다는 말은 난생처음 듣습니다?”

눈을 날카롭게 번뜩인 처용이 괴수를 향해 말했다.

자신이 누군가를 지키는 것에 특화된 ‘수호신’이었던 것은 맞았다.

수호신으로서 항상 전장의 최전방에 섰고 동료들을 ‘보호’하며 싸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장에서 마주한 적들을 가장 많이 죽인 것도 바로 자신이다.

거대한 벽과 같은 강한 적들이 자신을 가로막아도 그 벽을 부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처용에게 ‘공격이 약하다’라는 말은 충분한 도발이 되었다.

“아무리 고행탑이라 해도 이것만큼은 자제하려고 했는데…….”

회귀 전 처용이 동료들과 서로의 기술을 공유하며 수련할 당시.

서로의 전투 기술과 마법에만 몰두하지는 않았다.

처용이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다른 신격들의 권능이었다.

그 권능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혹은 각 신격마다 어떤 성질과 개성을 가진 신력이 있는지 등.

친한 동료들끼리 정말 많은 교류와 수련을 했었다.

처용은 그 과정에서 항마의 화신 말고도 얻은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대지의 손.”

처용은 강철로 코팅한 대지의 손 여섯 개를 만들어 띄워 올렸다.

거기에.

“항마의 화신.”

처용에게서 뿜어져 나온 신력이 여래의 형상을 갖추었다.

처용이 주먹을 쥐고 양손을 앞으로 뻗자 항마의 화신 역시 두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파지지지직!

항마의 화신이 뻗은 두 주먹 사이에 속성 마나와 신력이 섞이며 뭉쳐 들었다.

파괴력이 강한 화 속성과 뇌 속성이 뭉치고 풍 속성을 추가해 증폭시켰다.

터질 듯 불안정해진 에너지를 명 속성이 감싸며 안정시키고, 지 속성을 더해 단단하게 압축시킨다.

그리고 심지가 될 암 속성 마나를 얇게 뽑아내어 이어 붙였다.

-쿠구구구!

불안정하게 모인 에너지가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마구 흔들렸다.

흔들리는 에너지 주변에 네 개의 대지의 손이 감싸듯 모이며 안정감을 더했다.

나머지 두 개는 처용의 뒤를 지지하듯 받침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처용은 집중의 끈을 놓지 않고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에너지를 터지지 않게 붙잡았다.

“각오 단단히 하십시오.”

처용이 버겁다는 듯 일그러진 표정으로 괴수를 향해 말했다.

괴수의 도발을 받아준 이상 뒷감당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의 결과는 저도 감당이 안 되니까.”

다양한 개성을 가진 신격들 중에는 유독 ‘공격력이 막강한’ 성좌도 있었다.

지금 처용이 사용하려는 기술.

아니, 정확히는 어떤 성좌의 권능을 자연부와 항마의 화신으로 재현하는 중이었다.

무신전의 성좌 중 강완(强腕)의 무신이라 불리는 자.

-내 권능? 별거 없어! 그냥 힘을 모아서 한방 크게 휘두르는 거, 그게 전부야! 하하하!

그가 오른손에 힘을 모아 내지르면 전방의 모든 것이 초토화된다.

악의 종주, 조크-크타니드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권능조차도 밀어냈었던 그의 일격 필살기.

“천지붕괴(天地崩壞)!”

하늘과 땅을 뒤흔들고 전방의 모든 적을 쓸어버리는 힘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처용은 폭탄의 심지처럼 이어져 있는 암 속성 마나를 뽑아내었다.

그러자.

-!!

괴수의 초월기 종말의 백야에 버금가는 굉음이 울려 퍼졌고.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뭉쳐 있던 에너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갔다.

“크…… 크아악!”

처용이 비명을 내질렀다.

파괴력을 전방에 집중했다지만, 난폭하게 날뛰어대는 에너지를 끝까지 감당할 수 없었다.

-쿠구구!!

이윽고.

폭포 전체를 집어삼킬 듯 퍼져 나간 폭발력이 처용과 괴수를 집어삼켰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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