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화
[흠, 포기한건가?]
폭포의 안쪽, 둥지에 자리한 카투라가 먼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하, 그럴 리가?]
카투라의 맞은편에 있는 여래가 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다섯 번째 이후로 오질 않잖아?]
카투라의 목소리에는 아쉬움과 심심함이 묻어났다.
[그런데 놀랍긴 해, 그 어린 인간이 신격까지 가지고 있을 줄이야.]
카투라가 처용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눈앞의 여래 또한 인간에서 신으로 승천한 이였지만.
그가 반신까지 도달하는 과정만 해도 오랜 세월이 걸렸었다.
그러나 처용은 이제 고작 20년 정도 살아온 인간이었다.
[말해주지 않았나. 우리가 겪어온 수련에서 장점만을 골라 전수했다고 말이야.]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겠지?]
여래의 말에 카투라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우며 대답했다.
[제자 녀석이 돌아온 것 같군.]
[고작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별 차이 없지 않을까?]
[하하, 직접 보게나.]
여래가 사라지고 얼마 안 있자 정말로 처용이 다시 나타났다.
‘음?’
카투라가 분신을 통해 처용을 관찰하자 의문이 튀어나왔다.
처용의 분위기가 무언가 달라진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재밌네? 그렇다면.’
시험이 시작되고 카투라는 이전처럼 집게를 들어 가볍게 내리쳤다.
그런데.
‘피하지…… 않는다고?’
처용은 집게가 들어 올려지는 것을 보자마자 피할 준비부터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른손 주먹을 쥐며 정권을 내지르려 하고 있었다.
이내 집게가 내리쳐지고 처용은 그런 집게를 향해 뛰어오르며 정권을 내질렀다.
“파쇄격!”
-쿠쿵!
집게에 맞은 처용이 지면으로 곤두박질쳐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밀렸다고?’
카투라는 경악하고 있었다.
내질렀던 집게발이 처용과 부딪혔을 때, 살짝 밀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처용은 있을 수 없는 일을 현실로 해내었다.
“칫, 이걸로는 부족한가.”
지면에 처박혔던 처용이 벌떡 일어나더니 다시 솟구쳐 올라왔다.
그것 역시 놀라운 상황이었다.
이전의 처용이라면 저 시점에서 이미 탈락이었다.
짧은 시간, 녀석은 터무니없이 변한 상태로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하, 하하하.’
처용을 지켜보는 카투라가 미소를 지었다.
여래 이후로 다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인간.
카투라는 자신의 흥미를 자극하는 인간을 보며 재밌다는 듯 더 몰아붙였다.
-촤아아!
집게발이 열려 물줄기 칼날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위이잉!
카투라가 자신의 초월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처용이 지금까지 1단계조차 통과하지 못하게 만든 백색의 광선.
‘이번에는 벗어날 수 있을까?’
카투라는 묘한 기대감을 품고 처용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처용은 공격을 피하면서 백색의 광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만 이전과는 다르게 다급함이 없었고 오히려 침착한 듯 보였다.
-!!
이윽고 백색의 광선이 처용을 집어삼켰다.
‘역시 무리인가?’
카투라는 사라진 처용을 보며 중얼거렸다.
대단하긴 해도 상대는 고작 20년을 산 인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를 한 탓인가? 처용이 실망스러웠다.
그때.
[시험자가 1단계 구간을 통과했습니다.]
[2단계 시험이 준비됩니다.]
‘……뭐?’
시스템을 확인한 카투라가 어리둥절한 듯 주변을 살폈다.
처용은 분명 자신의 초월기에 맞아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듯 보였던 것이다.
‘내가…… 인간의 움직임을 놓쳤다고?’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며 처용을 찾을 때.
“이야, 아슬아슬했네.”
100미터 높이로 올라와 부유하는 바위에 올라선 처용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의 다리에는 샛노란 스파크를 뿜어대는 번개가 휘감겨 있었다.
“다음 시험은 뭔데?”
처용은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카투라를 향해 말했다.
‘정말…….’
얼굴에 황당함이 가득했던 카투라는 이내 미소를 지어냈다.
‘재미있는 인간이구나.’
이내 즐거운 감정이 차오른 카투라가 다음 시험을 시작했다.
[2단계 시험을 시작합니다.]
[공격을 맞지 않고 200미터 높이까지 올라가십시오.]
‘이번엔 제대로 확인해주마.’
카투라는 이번 시험을 통해 처용이 어떻게 움직인 것인지 파악할 생각이었다.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리 분신을 조종하여 처용을 상대한다 해도 인간의 움직임을 놓쳤으니까.
추가로 2단계 시험의 난이도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푸화화!
물줄기 칼날을 발사해대던 집게가 위를 향하더니 분수처럼 물을 뿜어댔다.
그리고 위로 솟구친 물줄기가 아래를 향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촤자자자작!
물론, 평범한 비가 아니었다.
물줄기 칼날처럼 빗방울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관통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심상치 않은 빗줄기를 바라본 처용이 긴장한 듯 자세를 낮추었다.
“풍신보.”
처용의 다리에 번개가 아닌 바람이 휘감겼다.
빗줄기가 처용을 향해 덮치는 순간!
-휘리릭!
바람처럼 사라진 처용이 허공을 밟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위로 솟구쳤다.
‘전부 피한다고?’
처용은 쏟아지는 빗줄기를 단 하나도 맞지 않고 허공을 밟으며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카투라는 때를 기다리듯 조용히 자신의 초월기를 충전했다.
처용이 빗줄기를 뚫고 2단계 시험을 거의 통과하려는 순간!
-!!
다시 한번 카투라의 초월기가 발사되었다.
처용은 백색의 광선이 시야를 덮는데도 침착한 모습이었다.
백색의 광선에 처용이 지워지기 직전.
“뢰신보!”
-파직!
처용의 다리에 번개가 휘감기더니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백색의 광선이 지나간 것은 그다음이었다.
‘하나는 바람처럼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고 다른 하나는 번개처럼 신속하게 움직이는 건가?’
처용의 스킬을 확인한 카투라가 웃음을 지었다.
‘놀랍구나.’
그 어떤 세계에서 고작 20년을 산 인간이 저 정도의 경지를 보여줄 수 있을까?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처용을 바라본 카투라는 준비해 둔 시험들을 일부 바꾸었다.
처용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정도로 성장했으니 그에 맞추어서 난이도를 더 올릴 생각이었다.
‘후후, 기대하렴.’
이번엔 어떤 놀라운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며 다음 시험을 시작했다.
***
[3단계 시험을 시작합니다.]
[현재 위치를 중심으로 일정 범위 이상 이동이 불가능해집니다.]
[다가오는 모든 공격을 회피하거나 방어하십시오.]
[제한 영역에서 일정 시간 살아남으면 다음 단계로 진입합니다.]
[남은 시간 : 5분]
“이번엔, 버티기인가?”
3단계 시험은 일정 시간을 버티는 것이었다.
시험이 시작되자 처용을 중심으로 반지름 10미터 정도의 구가 생성되었다.
시험자인 처용이 빠져나갈 수 없는 결계였다.
-쿠구구.
괴수의 집게발이 모두 열리기 시작했다.
아마 빠져나가지 못하는 자신을 상대로 융단폭격이 쏟아질 것이다.
“대지의 손.”
처용은 침착하게 대지의 손 네 개를 만들어 주변에 띄웠다.
그 순간.
-쏴아아! 촤아! 촤아!
괴수의 폭격과도 같은 공격들이 처용을 향해 쏟아졌다.
“수류태극권.”
본래 처용의 손을 물로 코팅하여 사용하는 기술이 수류태극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처용의 손이 아닌 대지의 손이 물로 코팅되었다.
“반탄의 원!”
네 개의 대지의 손이 손바닥을 펴며 처용 위로 떠올랐다.
대지의 손 하나는 처용의 머리 위를 우산처럼 덮으며 쏟아지는 빗줄기를 튕겨내었다.
남은 세 개의 대지의 손은 처용 주변을 돌며 쇄도해오는 물줄기 칼날들을 튕겨내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공격이 너무 많았고 전부 막아낼 수는 없었다.
-퍼엉! 사각!
결국, 코팅이 벗겨지면서 대지의 손 하나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처용은 코팅이 벗겨진 대지의 손을 뒤로 빼고 다시 코팅을 씌우며 방어를 준비했다.
그 순간 물줄기 칼날 하나가 처용의 빈틈을 노리고 날아왔다.
-차캉!
칼날이 닿은 처용의 어깨 부근에서 날카로운 소음이 울렸다.
원래는 물줄기 칼날에 닿자마자 깊은 상처를 입어야 하지만.
처용의 어깨는 긁힌 자국만 생겼을 뿐 멀쩡했다.
이전 강철 피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방어 스킬 덕분이었다.
[금강불괴 / 패시브]
[육체의 단단함이 궁극으로 달한 형태 중 하나.]
[일정 경지 이하의 물리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습니다.]
[체력 스텟이 높을수록 효과가 더 강해집니다.]
-물리 피해 면역.
-절단, 관통, 무기류 공격에 면역.
방어 계열 스킬 중 최강인 금강불괴.
회귀 전 상위 악신들을 상대로도 굳건하게 버티게 해주던 스킬이었다.
철벽부 역시 금강불괴의 영향을 받아 더욱 단단해졌다.
괴수의 공격을 얼마나 막아내었을까.
[남은 시간 : 0초]
[3단계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제한 시간이 끝나고 결계가 해제되었다.
동시에 괴수의 공격도 멈추었다.
“하하.”
처용은 웃음을 지으며 자신 있게 괴수를 바라보았다.
그 어떤 시험이라도 가뿐하게 통과할 자신이 있었다.
그때.
[4단계 시험이 시작됩니다.]
[초월기 ‘종말의 백야’를 막아내고 살아남으십시오.]
[최대 출력으로 충전을 시작합니다.]
“뭐?”
시스템을 확인한 처용의 입에서 반문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괴수의 입에서 하얀 에너지가 충전되기 시작했다.
“야이, 미친 새끼야!”
상황을 파악한 처용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그걸 피하려고 개지랄을 했는데 막으라고!?”
처용이 항의하듯 괴수를 향해 따져 들었지만.
괴수는 그런 처용을 무시한 채 계속 에너지를 충전했다.
“젠장!”
처용은 결국 자신이 가진 모든 수단을 이용해 방어 준비를 시작했다.
레벨 99에 도달하고 신력 회복과 금강불괴까지 되찾았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가만히 포기할 성격의 처용이 아니었다.
“철벽부.”
처용은 철벽부를 양손에 각각 네 장씩 만들어 합장했다.
“팔괴금강문(八魁金剛門)!”
-쿠구구!
처용의 앞, 정면에 20미터가 넘는 크기의 팔각형 형태를 한 거대한 문이 만들어졌다.
문의 양옆에는 마치 문지기처럼 거대한 금강역사 한 쌍이 문을 잡고 있었다.
무려 문 하나당 철벽부를 여덟 장이나 사용해야 하는 기술이었다.
처용은 지금까지 회복한 신력으로 인해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자연부의 수가 24개까지 늘어 있었다.
사용할 수 있는 자연부를 모두 사용하여 세 개의 팔괴금강문을 만들고 앞에 세웠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는 절대 막아내지 못한다.’
냉정하게 판단한 처용은 결국, 최강의 패를 꺼내 들었다.
“항마의 화신!”
처용에게서 황금빛 신력이 뿜어져 나오더니 여래의 형상을 갖추었다.
“자! 와라!”
모든 준비를 마친 처용이 호기롭게 외쳤다.
이윽고 괴수의 입에 모인 하얀 에너지가 최대치에 도달한 순간!
-!!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백색의 광선, 종말의 백야가 처용을 향해 발사되었다.
-콰콰쾅! -쩌적!
새하얀 섬광은 첫 번째 금강문을 순식간에 부수고 나아갔다.
-콰콰쾅!
이윽고 두 번째 금강이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버리고 세 번째 닿는 순간.
“철벽부-팔괴금강문!”
처용이 재빠르게 팔괴금강문 두 개를 만들어 앞으로 세웠다.
“금강종문(金剛縱門)!”
그리고 그냥 세우는 게 아닌 두 문을 삼각형 형태로 비스듬하게 세워 하나로 합쳤다.
이내 세 번째 금강문을 부순 종말의 백야는 처용이 새로 만들어 낸 금강종문에 도달했다.
-콰아아!
종말의 백야가 두 갈래로 갈라지며 흩어졌다.
성공적으로 막아내는 듯 보였으나.
-쩌저저적!
“젠장!”
새로 만들어 낸 금강종문에 균열이 빠르게 번져나갔다.
-파사삭!
이내 금강종문마저 가루가 되어 흩어진 순간.
“항마의 화신-반탄신장!”
처용은 항마의 화신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을 사용했다.
속성 공격만을 튕겨내는 일반 반탄장과는 달리.
반탄신장은 신력을 모아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반사 시키는 권능이었다.
항마의 화신이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다가오는 종말의 백야에 맞섰다.
-쿠구구!
항마의 화신이 거침없이 흔들리며 굉음이 울려 퍼졌지만, 거뜬히 막아내는 듯 보였다.
그러나 처용의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쩌적!
“젠장!”
처용은 항마의 화신에 균열이 간 것을 눈으로 확인하자 인상을 구겼다.
‘위력을 상쇄시키고 막아섰는데도…… 이 정도라니!’
급하게 신력을 끌어올리며 균열이 간 부분을 보수했지만.
-쩌적!
이내 새로운 균열이 생기고 그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쩌저적! 파장창!
결국.
항마의 화신이 유리가 깨어지듯 부서져 내렸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