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화
처용은 전위가 사라진 자리를 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그가 건네준 월극이 눈에 들어왔다.
“용님의 무기에 비해 그리 좋지는 않네요.”
아타가 월극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더 대단한 거야.”
처용이 월극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오래된 월극 / 아티팩트]
[뛰어난 영웅이 다뤘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아무 능력도 없는 오래된 양산형 무기.
화염의 절에 비해 상당히 질이 낮은 무기였지만, 처용의 눈에는 낮게 보이지 않았다.
무인들이 살아오며 쌓아온 신념과 투쟁의 흔적.
처용은 전위라는 영웅이 싸워온 흔적들을 무기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최정상의 경지에 도달한 무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과 비슷했다.
그리고.
[파쇄격 / 액티브]
[무기의 공격력이 영구적으로 강해집니다.]
[마나를 모아 강력한 일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중장 무기를 사용할 시 효율이 더욱 좋아집니다.]
- 방어 관통 및 방어스킬 해제
전위가 넘겨준 힘은 충전 강타의 상위호환 스킬이었다.
그가 사용했던 파쇄격은 강철 방벽 다섯 개를 부수고도 남았었다.
여기에 중장 무기 마스터리라는 패시브까지.
말 그대로 대검이나 해머 등 무거운 무기를 더 효율적이고 자연스럽게 다루는 스킬이었다.
처용은 이미 모든 종류의 무기를 다룰 수 있었지만.
최근 대 괴수용으로 중장 무기들을 다수 만들었기에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력을 제외한 모든 스텟이 20 증가했다.
처용은 레벨이 오를 때마다 신력을 제외한 모든 스텟이 1씩 올랐다.
그러므로 무려 20레벨이 오른 것과 같은 효과였다.
‘감사합니다. 편히 쉬십시오.’
처용은 월극을 쥐고 가볍게 묵념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타, 마인들의 사체를 한 곳으로 모아 줘.”
그리고 하나하나 지시하며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아, 일단 알려야겠지.”
한숨을 내쉰 처용이 태민과 연락하기 위해 던전을 빠져나갔다.
***
“이, 이게 도대체?”
현장에 도착한 태민과 협회 조사대가 경악을 내질렀다.
난장판이 되어 있는 사원 내부.
족히 80명은 넘어 보이는 마인들의 사체.
그리고.
-척척척.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개미들까지.
“적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처용은 전위와 연옥에 관한 일들을 제외하고, 있었던 일들을 대략 설명해 주었다.
“처용 님의 소환수들입니까?”
태민이 정말 궁금한 듯 물었다.
“흠…… 소환수라기 보다는…….”
처용이 설명하기 애매한 듯 말을 흐렸다.
아타와 개미들이 소환수가 아닌 건 확실했다.
그들은 단순한 부하가 아닌 태룡전의 식구가 된 이들이었으니까.
“성역을 관리해주는 이들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네요.”
처용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개미들은 성역을 깔끔하게 유지하고 청소하는 이들이었으니까.
“……?”
태민이 처용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흠…… A급인가?”
철벽이와 거대 개미들을 관찰한 백호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렇죠.”
“허허, 유진이 이후로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구만.”
백호가 웃으며 처용에게 말을 이었다.
“이래서 저번에 테이머에 관한 걸 물은 건가?”
“아무래도 이런 상황에서는 이들을 활용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처용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네가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구만.”
처용과 같이 주변을 둘러본 백호가 말했다.
마녀가 만들어 둔 함정.
무려 S급 몬스터와 천 명의 미라들 그리고 백 명의 마인들까지.
헌터 하나가 절대로 상대할 수 없는 군대였다.
“어떻게 보면 제가 온 게 천만다행이었어요.”
처용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자네에겐 미안하지만, 동의하네.”
백호 역시 냉정하게 생각해 보고 처용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했다.
만약 자신이 공격대를 이끌고 왔다가 이 함정에 빠졌다면?
자신은 몰라도 함께 온 헌터들의 생사는 장담할 수 없었다.
아무리 개인이 강하다 해도 천이 넘는 적을 상대로 모두를 지킬 순 없다.
“마녀를 또 놓친 게 너무나 아쉽군요.”
처용의 말에 백호가 한쪽 눈썹을 크게 올리며 속으로 놀라움을 감추었다.
홀로 이 정도의 적을 상대해 놓고 마녀를 놓친 걸 아쉬워한다?
그는 이곳에서의 전투가 전혀 버겁지 않았다는 뜻이다.
‘과연 에픽 클래스인가, 아니 유진이와 같은…….’
커맨더는 에픽 클래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강하고 특별한 헌터였다.
눈앞의 처용은 그런 커맨더와 같은 특별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헌터였다.
백호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용님, 그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타가 처용에게 다가와 말했다.
처용이 태민에게 연락하기 전 지시한 사항을 모두 마쳤기 때문이었다.
마인들이 지녔던 아티팩트 중 쓸 만한 것들을 모두 챙기고.
A급 미라들 중에서도 검이나 방패 등 아티팩트를 드랍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생했어, 아타.”
처용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인 아타가 게이트를 타고 태룡전으로 돌아갔다.
다른 개미들 역시 아타를 따라 게이트로 들어갔다.
“저 아가씨도 이종족인가?”
“그렇죠.”
“흠, 처음 보는 종족인데…….”
백호가 아타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커맨더와 같이 다닌 만큼 많은 이종족들과 만나봤었다.
그런데 아타는 생전 처음 보는 종족이라 신기했다.
머리 위의 더듬이와 곤충의 날개로 봐서는 개미들과 연관이 있어 보였다.
‘며칠 전에 새로 태어난 이종족이니…….’
처용은 굳이 그것을 백호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백호님은 다른 던전에 가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처용이 궁금한 듯 물었다.
자신이 백호를 대신해 여기에 온 이유가 그가 바빠서였으니까.
“그게, 자네가 출발하고 곧 팀을 꾸려서 가려 했는데…….”
처용이 출발한 다음, 백호 역시 다른 헌터들과 던전 공략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막 출발하려는 찰나 태민이 처용의 연락을 받았고.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여 이곳에 먼저 온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마인, 그것도 마녀가 다시 나타난 것이니까.
그리고.
“하필이면 한국에 S급 마인이 나타나다니…….”
백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과거 커맨더가 거슬리다 판단된 마인들이 그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
무려 두 명의 의회주가 포함된 기습.
백호 역시 커맨더와 같이 현장에 있었고 S급 마인 중 하나와 맞붙었었다.
놀랍게도 백호는 S급 마인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우는 것을 넘어서 그를 몰아붙였었다.
S급 마인과 맞붙어 싸울 수 있는 극소수의 A급 헌터 중 하나.
이것이 커맨더가 백호를 한국에 둔 이유였다.
“자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구만.”
백호가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강하다 해도 혼자서 마인들의 음모를 전부 저지할 수 없었다.
커맨더는 현재 위험한 던전을 틀어막고 있기에 한국에 바로 올 수 없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제외하고 S급 마인을 막을 수 있는 처용은 큰 힘이 되었다.
“후, 일단 현장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습니다만.”
태민이 어두운 얼굴로 처용과 백호에게 다가왔다.
“하필이면 이럴 때 마인들까지…….”
협회의 일이 너무나 바쁘게 돌아갈 때 이런 일이 터져 버렸다.
태민이 골치가 아픈 듯 머리를 잡으며 말했다.
“하아, 일단 현장 감시할 인원을 배치하고 던전 일정을 다시 짜야겠습니다.”
무려 마인들의 아지트였던 장소였다.
그러므로 다른 곳보다 엄중히 관리하고 통제해야 하는 곳이었다.
문제는 협회의 일정이 더 빠듯해졌다는 것이었다.
“흠…….”
처용은 그런 태민을 보고 잠시 고만하다가 말했다.
“그냥 여기는 제가 감시하고 있을까요?”
“네?”
태민이 처용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혼자서 여기를 감시하겠다는 것인가 했지만.
“개미들을 불러내서 감시하면 될 것 같은데요.”
처용의 말에 태민이 생각에 잠겼다.
“입구 쪽에만 협회 직원들을 두면 되겠군요.”
처용의 도움 덕에 태민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 그리고 처리해야 하는 던전 중 일부는 저한테 넘겨주세요.”
“네?”
태민이 처용의 말에 반문했다.
오늘만 무려 A급 던전, 아니 마인들의 함정에 당해 격한 싸움을 한 처용이었다.
‘에너자이저도 아니고 뭐 지치지도 않는 건가?’
태민은 의문이 들었지만, 처용은 목적이 있기에 요구한 것이었다.
‘1레벨만 더 올리면 된다.’
99레벨까지 단 하나만은 남겨둔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빨리 이것들을 처리하고 길드들을 파야 해서요.”
처용의 말에 태민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한숨 돌릴 수 있겠군요.”
동시에 처용에게 고마웠다.
만약 처용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그가 해결했었던 일들을 협회가 맞이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마 지금쯤 협회가 많이 흔들렸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협회가 무너졌을 수도…….
“그럼 부탁드립니다.”
태민의 말에 처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타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타, 반짝이를 포함해서 일부 개미들을 보내.’
처용이 게이트를 열자 새하얀 몸집의 반짝이를 포함한 병정개미들이 걸어 나왔다.
“전 성역에 잠시 갔다가 협회로 가겠습니다.”
“네, 던전에 대해서는 오시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태민의 대답을 들은 처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
처용이 태룡전으로 돌아오자 세 명의 성좌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했어요. 계승자.]
“감사합니다.”
처용은 따뜻하게 맞이 해주는 보살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곧장 표정에 그늘이 졌고 월극을 들어 보였다.
[안타깝구나.]
여래가 월극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연옥에서 영혼을 빼낸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나도 궁금하구나, 연옥은 대신조차 간섭할 수 없거늘…….]
여래가 눈을 감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는 연옥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구나.]
“직접 가 본 적이 있으니까요.”
미륵의 말에 처용이 과거를 생각하며 말했다.
[……어떻게 간 것이냐?]
미륵이 의문을 표했다.
대신들조차 간섭할 수 없는 장소를 직접 가봤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의문이었다.
“바알 놈의 함정에 당해서 제가 지옥에 떨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회귀 전, 처용은 바알의 함정에 당해 지옥에 떨어진 적이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정신이 붕괴할 정도로 온갖 고통과 고문, 비명이 가득한 곳이었다.
성좌들조차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기가 힘든 곳이었지만.
처용은 남아서 싸우는 동료들을 생각하며 버티고 지옥을 유랑하였다.
심지어 지옥의 끔찍한 환경을 수련으로 이용하기까지 했다.
끊임없이 타오르는 강.
모든 것이 얼어붙는 만년설(萬年雪) 속.
칼날이 끊임없이 솟구치는 피의 웅덩이 등.
그렇게 지옥훈련(?)을 하며 빠져나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고생이 많았군요. 계승자…….]
아무 잘못도 없는 처용이 지옥의 형벌을 경험했다는 것에 보살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다행히 지옥 고문관들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처용이 보살을 향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옥에서 적응한 처용을 신기하게 생각한 고문관들이 처용을 찾아왔다.
그들은 뒤늦게 처용이 지옥에 와서는 안 될 살아있는 사람임을 알아차렸고 저승의 신들에게 이를 보고했다.
그러나 아무리 저승의 신들이라 할지라도 지옥에 떨어진 이를 곧장 보낼 순 없었다.
저승의 신들은 지옥을 나눠 감시하고 관리하는 이들일 뿐.
지옥의 시스템을 마음대로 다룰 순 없었으니까.
“염라께서 영혼의 통로를 알려주었고 그 길로 나갔어야 했지만…….”
저승의 신 중 하나인 염라, 그가 영혼들이 이동하는 통로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인지 지상이 아닌 연옥으로 빠져 버렸다.
[흠, 신기하구나.]
처용의 이야기를 들은 여래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처용의 경험담은 그 어떤 신들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었으니까.
[그 연옥에서는 또 어떻게 나간 것이냐?]
미륵이 정말 궁금한 듯 물었다.
“연옥의 시련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나도 알고 있느니…… 네놈 설마?!]
경악한 표정을 지은 미륵을 향해 처용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연옥의 인정을 받고 다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영웅의 자격을 가진 영혼이 시련을 받고 성좌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는 것.
이것이 연옥에서 나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참…… 터무니없는 경험을 했구나. 하하.]
여래가 황당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 제자가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지옥을 경험한 것도 모자라 영웅의 혼 중 극히 일부만 통과한다는 연옥의 시련을 통과했다.
“뭐 덕분에 비교도 되지 않게 강해질 수 있었죠.”
처용이 그런 지옥훈련(?)을 견디고 돌아왔을 때.
그를 지옥에 보낸 당사자인 바알이 기겁한 듯 경악을 내질렀다.
-이 미친! 괴물 자식!
설마 처용이 지옥에서 살아 돌아올 줄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까.
처용이 악신들에게 공포의 상징이 된 순간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