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화
“어?”
마녀의 입에서 의문 섞인 음성이 나왔다.
무엇에 당했는지 바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목 부근에 날카롭고 서늘한 무언가가 파고들었고.
몸에서 어떤 것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눈동자를 힘겹게 돌리자 검은 머리의 소녀가 자신의 목을 물고 있었다.
‘하, 하필이면 로브가 덮지 못하는…….’
마녀가 입은 로브, 방어구 아티팩트는 이전보다 더욱 강화된 상태였지만.
루나는 그런 로브가 덮어주지 못한 목 부근을 문 것이었다.
‘잘했어, 루나.’
처용은 루나의 기습을 확인하고 웃음을 지었다.
저번에도 마녀는 로브 덕에 여러 번 치명상을 피했었다.
추가로 처용은 마녀의 로브가 이전보다 더 강화되어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때문에, 루나에게 물리적인 공격보다는 뱀파이어만이 할 수 있는 공격.
마녀의 목을 노리고 흡혈을 하라 지시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훌륭했다.
“크윽!”
기습을 당한 마녀가 고통을 참듯 신음을 내었다.
마치 마비가 온 듯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힘겹게 왼손 검지를 들어 루나의 머리를 향해 겨눴다.
“다, 다크니스 레이저.”
마녀의 손끝에서 발사된 검은 레이져가 루나의 머리를 향했다.
-위이잉! 푸화학!
루나의 머리가 마치 풍선이 터지듯 터지며 흩어졌다.
“으, 으윽! 젠장!”
마녀가 고통을 참고 신음하며 잠시 안도한 순간.
-스르릉!
어둠 속, 양옆에서 클로를 착용한 루나가 나타나 달려들었다.
“다크니스 디펜시브!”
마녀는 급하게 방어막을 전개하며 방어를 했지만.
-사각! 촤아아!
루나의 클로는 검기보다도 절삭력이 강한 기요틴 커터가 응축된 칼날이었다.
마녀의 실드가 갈라지고 어깨와 옆구리, 허벅지 부근에 피가 옅게 튀었다.
“꺄악!”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 마녀가 반쯤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칫!”
루나가 자신이 공격한 결과를 보고 혀를 찼다.
마녀의 로브는 옅게 찢어졌을 뿐 클로의 날이 완전히 파고들지 못했다.
기요틴 클로라면 마녀를 끝장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처용이 미리 말했었던 대로 마녀의 로브는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으윽!”
마녀는 가볍지 않은 중상을 입었음에도 손에서 성물을 놓지 않았다.
고통을 참고 견딘 마녀는 이를 악물며 마법을 영창했다.
“다, 다크니스 니들 아머!”
검고 날카로운 가시들이 마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촤자자작! 퍼펑!
클로를 착용한 두 명의 루나가 가시에 마구잡이로 관통되며 터져 나갔다.
“어……디냐!”
마녀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응시하고 경계했다.
앞서 자신을 공격한 정체불명의 소녀가 가짜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러자 정면에서 또다시 클로를 착용한 루나가 나타났다.
“섀도우 러커!”
루나가 만들어낸 어둠의 가시들이 마녀의 가시들을 부수며 나아갔다.
“다크니스 월!”
마녀는 어둠의 벽을 세워 가시와 루나를 막아 세웠다.
-사각!
루나의 클로에 마녀가 세운 벽이 허무하게 쪼개졌다.
마녀는 벽이 쪼개져 갈라진 순간 성물을 겨누며 마법을 발동했다.
“월 버스트!”
-콰콰쾅!
루나에 의해 쪼개진 벽들이 부풀더니 폭발을 일으켰고 루나를 집어삼켰다.
“블링크.”
마녀가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나 그녀가 자리를 벗어났다 해도 여전히 판데모니움의 어둠 속이었다.
-콰직!
마녀가 안도한 순간 왼쪽 목덜미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녀가 도망칠 만한 위치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진짜 루나가 기습한 것이었다.
마녀는 또 한 번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서늘한 감각과 함께 정신이 아찔해져 왔다.
“이!”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은 마녀가 가슴께로 손을 올리고 로브자락을 움켜잡았다.
“다크…… 쇼크 웨이브!”
마녀가 입고 있는 로브의 아티팩트 스킬이 발동했다.
-쾅!
마녀를 중심으로 검은 기운이 퍼지며 루나를 밀어내었다.
“칫!”
혀를 찬 루나가 아쉬워하며 뒤로 물러났다.
“으허억!”
마녀의 입에서 피를 쏟아냈다.
입고 있던 로브, 강화된 아티팩트가 아니었으면 진작 죽었을 것이다.
“브, 블링크.”
다시 한 번 마녀가 이동 마법을 사용했다.
이번에 그녀가 이동한 위치는 판데모니움의 안개가 없는 지역이었다.
“정말 맛있는 피네?”
루나가 입술을 할짝거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마녀가 쏟아내 바닥에 흩어진 피를 마치 아깝다는 듯 빨아들였다.
“이런…… 미친!”
욕을 내뱉은 마녀가 루나를 노려봤다.
‘뱀파이어…… 들은 적은 있지만.’
자신을 습격한 루나의 정체도 대략 파악했다.
마인들보다 어둠에 더 자유롭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종족.
뒤늦게라도 알아채고 어둠을 벗어났지만, 너무 늦어 버렸다.
‘도대체…… 어떻게?’
왜 뱀파이어가 저 남자와 함께 있는지 너무나 의문이었다.
그러나 의문을 계속 이어나가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크악!
-아아악!
또 다른 뱀파이어, 류마에 의해 마인들이 계속 당하고 있었다.
휘하의 마인들은 이제 절반도 채 남지 않았다.
심지어 이들을 이끌어야 하는 자신은 심각한 부상을 입어 버렸다.
지금도 양팔과 다리가 후들거리며 떨리고 있었다.
“으……흑.”
성물을 지팡이 삼아 의지한 채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극심한 피로감에 자꾸 눈이 감겼지만, 눈을 감는 순간 끝장이었다.
마녀는 천 근 같은 눈꺼풀을 겨우 치켜뜨고 처용과 루나를 경계했다.
“단순히 물리적인 공격만 막아주는 아티팩트가 아닌가 보네?”
전위와의 싸움에서 잠시 물러난 처용이 마녀를 흘끗 보며 말했다.
“너무 욕심이 많은 것 아닌가?”
정확히는 마녀가 입은 로브를 응시했다.
“성물도 모자라 세례를 받은 아티팩트라니 말이야.”
마녀가 입은 로브는 단순히 성능 좋은 아티팩트가 아니었다.
악신의 세례를 받은 아티팩트.
악신이 직접 마기를 부여하여 축복한 아티팩트였다.
성물급은 아니지만, 드랍 아티팩트인 상위 유물급의 성능을 보여주는 무구였다.
“바알이 많이 이뻐해 주나 봐. Bro?”
“너, 너어……!”
마녀의 목소리는 기운이 없었지만 커다란 경악을 담고 있었다.
-나 종말의 첫 번째 사도이자 절망의 대악마 바알.
자신을 선택해준 거대한 어둠이 직접 알려준 그 자신의 진명.
-네가 마음에 드는구나, 이 바알이 직접 네 ‘학살’을 도와주마.
의회주 중에서도 단 한 명, S급 마인 중 최강자인 의회장만이 아는 이름이 처용의 입에서 나왔다.
“너…… 너어!”
마녀의 입에서 놀란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처용과 처음 마주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실드 밖에서 그분의 이름을 불렀었어!’
처용이 자신을 보호하는 실드를 부수려 할 때 바알의 이름을 외쳤었다.
조커에 대한 경각심 때문이었는지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했었지만.
“내가 바알 놈의 이름을 아는 게 신기한가. 마녀?”
처용은 대악마인 바알의 이름이 벌 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했다.
“그분을 모욕하지…… 마라.”
“뒤에 숨어 흉계나 꾸미는 놈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처용이 비웃음을 한껏 담아 대답하자 마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녀에게 있어서 바알은 단순히 힘을 준 악의 성좌가 아니었다.
바알은 자신의 복수를 도와준 악의 성좌이자 앞으로의 복수를 도와줄 고마운 후원자였다.
세상 모든 인간들이 자신을 외면할 때, 유일하게 구원을 손을 내밀어 준 자.
그자가 대악마라는 것은 전혀 상관없었다.
마녀는 인간과 성좌를 믿을 바엔 악마를 신용하고 신봉하는 인물이었다.
그만큼 그녀가 인간과 성좌에게 가지는 증오가 컸으니까.
“내가…….”
그렇기에 여기에서 주저앉을 수 없었다.
“내가 여기에서!”
반드시 죽여 버려야 하는 놈들이 즐겁게 웃으며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여기에서 죽을 순 없다!”
-쿵!
성물을 바닥에 내려찍은 마녀가 성물의 기능 중 하나를 발동했다.
‘이것만큼은 절대로 쓰고 싶지 않았는데.’
이를 악문 마녀가 전위를 향해 성물을 겨눴다.
“악령 지배.”
그 순간, 처용과 대치하던 전위의 안광이 검게 물들었다.
전위가 전투를 중지하고 마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칫!”
마녀의 수작을 막기 위해 처용이 전위에게, 루나가 마녀에게 달려들었지만.
-슈우우.
마녀의 몸이 마치 검은 안개처럼 흩어지더니 전위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검게 물들어진 전위의 안광에서 붉은빛이 섞여들었다.
악령 지배는 자기 자신이 악령으로 변신하여 대상에 빙의하는 스킬이었다.
성자의 아바타와 비슷한 빙의 스킬이었지만.
마녀의 빙의는 대상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는 강제적이고 억압적인 스킬이었다.
그리고.
“이것만큼은 절대로 하기 싫었는데.”
전위에게서 마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녀는 부패한 언데드의 몸으로 들어가는 건 죽도록 싫었지만.
지금은 연옥에서 빼내온 이 강력한 영혼의 힘이 필요했다.
“죽여 주마!”
마녀가 분노를 한가득 담아 말했다.
‘빠져나가서 알려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악령 지배라.”
처용이 전위를 조종하는 마녀를 향해 말했다.
마녀와 수십, 수백 번을 싸워본 처용은 마녀가 사용하는 빙의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 자기 자신을 악령으로 만들어 부하 마인이나 마수의 육체를 빼앗는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을 때 아주 효과적인 스킬이었다.
악령이 되면 육체에 가해지는 통증과 피로에서 벗어나니까.
기껏 마녀에게 가한 치명상이 무로 돌아갔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거 알아 마녀?”
처용은 빙의 중인 마녀를 향해 비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빙의는 네 두 번째 최악의 선택이라는 걸.”
마녀의 빙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처용은 그 스킬을 제대로 엿 먹일 방법 역시 알고 있었다.
“개소리야!”
마녀가 월극을 움켜쥐고 처용에게 달려들었다.
-챙!
위에서 내리찍어오는 월극을 화염의 절로 맞받아친 처용이 몸을 앞으로 밀착시켰다.
빙의 중인 마녀와 붙어있을 필요가 있었으니까.
‘당신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용은 전위를 향해 속으로 말을 건넸다.
‘그 고통을 끝내드리겠습니다.’
마인들에 의해 연옥에서 강제로 나와 고통받고 있는 영혼.
처용이 봤을 때 전위는 생전 뛰어난 활약을 펼친 영웅의 혼이었다.
그런 영혼이 마인들에 의해 고통을 받는 것이 안타까웠다.
처용은 왼손을 뻗어 전위의 목을 잡아채고 몸을 최대한 밀착시켰다.
“무, 무슨 짓을!”
마녀는 불길한 느낌이 들어 처용을 떨쳐내려 했다.
“자비의 손길.”
그러나 처용의 행동이 더 빨랐다.
-우우웅!
전위의 목을 잡아챈 처용의 왼손에서부터 황금빛 신력이 퍼져나갔다.
처용이 전위를 향해 자비의 손길을 사용한 것이다.
“회복 스킬? 이걸 왜?”
이전 자비의 손길을 본 마녀가 의문을 표했다.
적에게 회복 스킬을 사용하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처용은 그런 마녀를 무시하고 자비의 손길에 힘을 더했다.
자비의 손길은 대상을 치유하기만 하는 권능이 아니었다.
[자비의 손길]
[신성한 신력을 지속적으로 주입해 상처를 회복시키며 부정한 기운을 몰아냅니다.]
부정한 기운을 몰아내는 것.
바로 디버프 해제가 있었다.
바알이 만든 살아있는 저주 역시 자비의 손길로 몰아낼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렇다면 악령으로 변해 전위를 지배하고 있는 마녀는?
“이, 이게 뭔?! 꺄아아!”
마녀가 갑자기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잖아 Bro.”
처용이 그런 마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최악의 선택이라고.”
악령이 되어 전위를 지배하고 있는 마녀는 그녀 자체가 디버프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전위에게서 흘러들어온 자비의 손길이 마녀를 몰아내는 것이었다.
-슈우우!
전위에게서 검은 연기가 빠져나갔다.
“이런 젠장!”
검은 연기가 뭉치더니 만신창의 상태의 마녀가 나타났다.
빙의가 풀리자마자 어떻게든 도망치려 했지만.
“안녕? 맛있는 피?”
루나가 마녀의 뒤를 급습했다.
-콰직!
“이!”
목을 물린 마녀가 마기를 뿜어 저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치명상을 여러 번 입은 상황에서 또다시 목을 물렸다.
어떻게든 저항해야 했지만, 이제 준비된 마법도 없었다.
“아…… 안 돼.”
정신을 붙잡으려 했지만, 뱀파이어의 흡혈로 점점 피가 빠져나갔고 눈앞이 흐려졌다.
“이……대로는.”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
대악마와 손을 잡으면서까지 삶을 연명한 목적을 위해서라도.
그러나 그런 마녀의 의지가 허무하게도 육체의 피로를 이기지 못한 눈꺼풀이 감겨왔다.
“미안해…… 모두.”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마녀의 눈이 감겼다.
그때.
-챙강!
마녀의 위에서 유리가 깨지듯 공간이 깨어졌고 백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새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남자가 떨어져 내렸다.
“메스.”
공간을 가르고 나타난 닥터.
그의 주변에 수술 도구인 새하얀 메스들이 생성되었다.
“리섹션!”
닥터가 손짓하자 메스들이 루나를 목표로 쇄도했다.
“뢰신보!”
-챙! 챙챙!
이변을 알아챈 처용이 루나의 곁으로 순식간에 다가와 칼날들을 쳐내었다.
“화이트 커튼!”
닥터가 새하얀 보자기를 만들어 처용과 루나를 덮으려 하자.
“뢰신보!”
처용은 루나를 잡고 즉시 빠져나왔다.
새하얀 커튼은 처용과 루나를 쫓지 않고 마녀를 감쌌다.
동시에 닥터가 지상에 착지해 마녀를 잡아 안았다.
“하아,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닥터가 쓰러진 마녀를 안아 들며 말했다.
위급하긴 상태이긴 했지만, 다행히도 아직 마녀가 죽지는 않았다.
“마인들이 한국에 이렇게 관심이 많을 줄이야.”
처용이 닥터를 노려보며 말했다.
“안 그래? 의사양반.”
화염의 절을 겨누며 말한 처용의 목소리에는 경계가 가득 서려 있었다.
갑자기 현장에 난입한 의사 모습의 마인.
한국에 파견된 마인들은 그를 A급 마인으로 알고 있었지만.
처용은 그의 모습과 스킬을 보고 진짜 정체를 파악했다.
“의회주(主) 중 하나가 직접 올 줄은 전혀 몰랐는데.”
처용의 말에 닥터가 웃음을 지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