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화
“정신 똑바로 차려!”
마녀가 방황하는 마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동시에 그녀가 쥐고 있는 성물, 지팡이의 머리 부분에서 요사스러운 보랏빛이 흘러나왔다.
“일어나라!”
마녀가 마치 명령을 내리듯 외치자 보랏빛이 사방으로 흩어져 안개를 형성했다.
동시에.
-그어어!
-크으어!
보랏빛 안개 속에서 미라들이 나타났다.
천 명이 넘는 B급 미라와 백 명이 넘는 A급 장갑병들 그리고.
-크아아아아!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는 화려한 갑옷의 미라가 나타났다.
[저주받은 장군]
[등급 : S급]
[특징 : 저주를 받고 이름을 잃어버린 장수.]
[생전에는 뛰어난 실력을 지닌 명장이었다.]
[아주 깊은 내면에 갇힌 영혼은 속박의 저주에 저항하고 있다.]
[스킬 : 전술 지휘, 대국 창술, 파쇄격…….]
2미터가 넘는 거구.
그는 창에 도끼날이 부착되어있는 형태인 ‘월극’을 굳게 쥐고 있었다.
저주받은 미라를 본 처용의 표정이 굳어졌다.
녀석이 S급 몬스터라는 것에 주춤한 것이 아니었다.
[연옥에 있어야 할 영혼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마치 처용의 생각을 대변하듯 미륵의 호통이 들려왔다.
처용은 미륵이 분노한 이유를 지금 눈으로 보고 있었다.
통찰의 눈으로 보이는 저주받은 장군.
처용에게는 저 미라의 내면에 갇혀 고통받고 있는 영혼이 보였다.
영혼은 자신을 통제하는 사슬에 묶여 꼭두각시처럼 명령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 사슬을 벗어나려 지금도 몸부림치고 있지만.
사슬의 근원은 마녀가 쥔 성물. 저 영혼은 악신의 힘에 반항하지 못하고 억압받고 있었다.
“연옥에 있어야 할 영혼을 어떻게 끄집어낸 건가?”
처용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으며 마녀에게 물었다.
회귀 전 처용은 지옥과 연옥을 가 본 적이 있었다.
연옥은 영혼이 환생하기 전 임시로 머무르며 휴식을 취하는 장소였다.
영혼은 연옥에 머무르며 생전의 한을 풀고 다시 환생할 준비를 한다.
다만 오영철 같은 악인의 경우는 저승의 신들이 관리하는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 영혼에 쌓인 죄업이 깨끗하게 사라져 다시 순백이 될 때까지 형벌을 받는다.
연옥과 지옥의 역할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영혼을 깨끗하게 세탁하고 다시 세계로 환생시키는 장소였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대략적인 역할은 이러했다.
그리고 연옥은 저승의 신들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개입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회귀 전, 미륵에게 듣기로는 태초신이 만든 것 중 연옥이 가장 정교하다고 들었었다.
연옥은 대신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장소였다.
“대답해라 마녀.”
마녀는 처용의 표정을 보고 웃음을 되찾았다.
“네놈을 죽이기 위해 특별히 준비했다!”
성물을 치켜든 마녀가 처용을 향해 비웃듯 말했다.
“그래, 네가 친절하게 말해줄 리가 없지.”
처용의 눈빛이 날카롭게 바뀌었다.
“다 죽여버리고 직접 알아내지 뭐.”
가볍게 내뱉듯 말한 처용이었지만 마인들에게는 전혀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놈을 죽여!”
마녀가 성물을 들고 처용을 향해 겨누며 외쳤다.
천 명이 넘는 미라들과 백 명이 넘는 마인들 그리고 S급 미라까지.
압도적인 숫자의 적들이 처용을 둘러싸고 공격을 준비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처용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없었다.
‘기왕 조커로 계속 의심받는 거 제대로 헷갈리게 해주마.’
조커의 정확한 능력은 모르지만, 그가 타인의 기술을 흉내 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처용은 그런 조커를 따라 할 생각이었고 그 방법도 가지고 있었다.
“명환부.”
처용의 두 손에 각각 네 장의 명환부가 만들어졌다.
‘성자의 흉내부터 시작해 볼까?’
총 여덟 장의 명환부를 하나로 합치자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크윽!
-그아아!
처용을 포위했던 마인들과 미라들이 고통스러워하며 뒤로 물러났다.
“설마!”
처용이 내뿜는 빛을 본 마녀가 식은땀을 흘렸고.
“다들 막아!”
급하게 고함을 내지르듯 명령을 내리며 성물을 휘둘렀다.
“다크니스 마나 사이클.”
성물에서 흘러나온 검보랏빛 기운이 마녀에게 힘을 더하듯 그녀에게 흡수되었다.
“그레이터 디펜시브!”
마녀가 방어 스킬을 발동하자 마치 검은 보자기가 미라들과 마인들을 보호하듯 감싸졌다.
뒤늦게 마인들도 각자 방어 스킬을 펼치며 뒤로 물러났다.
그때 처용이 두 손을 떼며 준비한 기술을 발동했다.
“저지먼트 헤븐.”
-샤아아!
악을 멸하는 심판의 빛이 처용의 손을 중심으로 뻗어 나갔다.
-쩌저적! 와장창!
마녀와 마인들이 펼친 방어가 마치 유리가 깨지듯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어어!
-크아아!
마인들과 미라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빛을 견디지 못한 미라들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마인들은 하나둘 눈, 코, 입에 피를 쏟아내며 절명했다.
처용이 성자를 흉내 낸 스킬, 저지먼트 헤븐은 그가 사용하는 신성 마법 중 하나였다.
마법사의 경지로 따지면 8서클에 해당하는 대마법.
주변의 모든 마를 몰아내고 소멸시키는 성자의 대표 스킬 중 하나였다.
물론, 처용이 명환부와 파마의 힘이 담긴 신력으로 똑같이 재현하기는 했지만.
흉내에 불과했기에 원본보다는 위력이 조금 떨어졌다.
그러나 흉내에 불과해도 적들은 모두 어둠을 지닌 자들, 효과는 매우 탁월했다.
“이런…… 젠장!”
성물을 움켜쥔 마녀가 부서진 실드를 재생하며 겨우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빛이 닿는 모든 영역을 방어할 수 없었다.
‘아직 성물을 다루는 게 미숙하군.’
처용은 마녀를 보며 냉정하게 판단했다.
회귀 전 마녀는 저지먼트 헤븐 정도는 거뜬히 막아내었었지만.
지금 그녀는 성물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버거워 보였다.
저지먼트 헤븐이 끝나고 빛이 서서히 사라지자.
“허억! 허억!”
마녀가 성물에 의지한 채 숨을 몰아쉬었다.
“으드득!”
저지먼트 헤븐의 결과를 마주한 마녀가 이를 갈며 분노했다.
천 명이 넘던 B급 미라들이 고작 이백 정도만 남았다.
최전방에서 빛을 막아섰던 A급 미라들도 고작 삼십이 남았다.
이들의 희생 덕분에 마인들은 백 명 중 이십 명만이 죽었다.
S급 미라, 저주받은 장군 역시 살아있었지만, 갑옷이 여기저기 깨져 있었다.
“Bro들 덕분에 마나를 절반이나 써 버렸네?”
처용은 가벼운 말투로 진실을 이야기했다.
이 동공 전체를 범위로 저지먼트 헤븐을 사용했으니까.
“이 새끼가.”
그 말을 도발로 받아들인 마녀가 분개했다.
“진형을 갖추고 머릿수의 이점을 살려! 어차피 놈은 혼자다!”
마녀가 성물을 이용해 미라들을 지휘하며 마인들에게 명령했다.
마인들과 마녀가 상황을 수습하고 다시 진형을 갖출 때.
“하하.”
웃음을 지은 처용은 철벽부를 사용해 기역 모양의 철제를 네 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허공에 움직여 마치 입구를 상징하듯 네모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태룡전의 열쇠로 게이트를 열었다.
쓸데없는 연출이었지만, 이럴 필요가 있었다.
“내가 혼자라고?”
처용은 마녀를 향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군단’ 하면 생각나는 헌터가 있지 않나?”
처용이 만든 게이트를 바라본 마녀의 얼굴이 굳었다.
“설마…….”
처용이 만들어낸 네모난 기계에 둘러싸인 형태의 게이트.
그것은 커맨더가 자신의 군단을 소환할 때 만들어내는 게이트와 같은 모양이었다.
“저놈을 빨리 죽여!”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마녀가 성물을 겨누며 명령했다.
미라들이 처용을 향해 돌진하며 달려오자.
-케에엑!
게이트 안에서 철벽이가 나타나 돌진해오며 미라들을 들이받아 날려 버렸다.
동시에 철벽이와 같은 크기를 지닌 개미들이 브레스를 뿜으며 나타났다.
처용이 만들어낸 게이트에서 개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타는 처용의 도움으로 병정개미들을 꾸준히,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최대 수까지 만들었었다.
철벽이를 포함한 A급 개미 다섯 마리.
속성을 지닌 B+급 개미가 오십 마리.
일반 개미가 백 마리 정도.
지금 남아있는 적들과 얼추 머릿수가 맞았다.
‘아타, 너도 이쪽으로 와.’
-알겠습니다. 용님.
처용의 부름에 아타도 직접 전장으로 나왔다.
“이걸 써서 개미들을 지휘해.”
아타에게 낡은 책을 건네주며 처용이 말했다.
바로 좀 전에 얻은 아티팩트, 대국의 병법서였다.
병법서를 펼치고 아티팩트의 지식을 받은 아타가 지휘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타는 백인장처럼 지휘만 하지는 않았다.
“뢰옥탄.”
아타의 손 위에 번개 속성 마나가 합쳐지더니 야구공 크기의 구슬이 만들어졌다.
처용이 사용하는 뢰옥탄을 속성 마나를 이용해 똑같이 따라 만든 것이었다.
아타는 병법서를 이용한 지휘를 이어감과 동시에 불리한 진형에는 마법으로 직접 지원했다.
그렇게 전선이 유리하게 잡혀가고 있을 때.
“명령에 따라 움직여라!”
마녀가 S급 미라, 저주받은 장군을 향해 성물을 겨누자.
-시……싫, 크아아!
괴성을 내지른 장군이 전선에 난입했다.
월극을 굳게 쥔 장군은 개미들을 일도양단할 목적인지 가로로 크게 휘둘러왔다.
그것을 본 아타가 막아내기 위해 철벽이를 움직였다.
-콰쾅!
앞으로 나선 철벽이가 두꺼운 다리를 겹쳐 세우며 막아내었지만.
앞다리가 크게 뜯어졌고 상처를 입으며 쓰러졌다.
장군이 철벽이를 완전히 끝장내려 월극을 들어 올려 내리치려는 때.
“뢰신보!”
번개처럼 나타난 처용이 아공간에서 해머를 꺼내 월극을 쳐내었다.
-쾅!
해머와 월극이 충돌하고 처용과 장군이 동시에 물러났다.
처용이 철벽이를 향해 자비의 손길을 사용하려는 때.
“괜찮아요.”
아타가 처용을 만류하며 말했다.
아타의 머리 위 작게 피어난 연꽃에서 녹색의 마나가 퍼지고 있었다.
-우웅!
녹색의 마나가 철벽이에게 스며들더니 철벽이의 상처가 아물었다.
그리고 다리가 잘리고 상처를 입은 다른 개미들도 서서히 치료되었다.
처용은 그 기운을 보고 속으로 놀라움을 표했다.
이전 처용이 사냥한 이무기와 비슷해 보이는 능력이었지만.
그 기운에는 무려 자비의 손길과 같은 느낌이 났다.
‘보살님의 신력을 받아 태어나서 그런 건가?’
처용은 아타를 향해 잠시 눈짓한 후 다시 눈앞의 적에게 집중했다.
-싫…… 크! 크어어억!
재차 괴성을 내지른 장군이 처용을 향해 월극을 휘둘러 왔다.
처용은 해머를 집어넣고 화염의 절을 꺼내 들었다.
-챙강!
월극의 날과 화염의 절이 충돌했다.
‘조종을 받고 있어서 그런가, 움직임이 단순하군.’
장군은 S급 개체답게 월극의 위력이 강력했다.
그러나 강제로 조종을 받기 때문인지 움직임이 너무나 단순했다.
녀석은 창술을 사용하는 게 아닌 그저 마구잡이로 월극을 휘두를 뿐이었다.
처용은 위에서 내리찍어오는 월극을 향해 화염의 절을 비스듬히 세웠다.
-챙강! 스르릉!
월극의 날을 가볍게 빗겨내듯 흘려내고 놈의 목을 날리기 위해 화염의 절을 휘둘렀다.
장군의 머리가 날아가기 직전.
“데몬 스피어!”
처용의 머리 위로 새까만 창 다섯 개가 날아왔다.
“칫.”
-챙! 챙!
처용은 도를 거두고 위를 향해 한 바퀴 크게 휘둘러 검은 창을 쳐냈다.
짧게 뒤로 물러난 처용은 화염의 절에 검기를 가득 불어 넣었다.
그리고 제단 위에 있는 마녀를 향해 검기를 발사했다.
-우웅!
검기가 반달의 형상을 그리며 마녀에게로 쏘아지자.
“막아라!”
-그어어!
마녀의 명령에 장군이 검기를 가로막으며 월극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월극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콰쾅!
월극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기운, 오염된 창기가 검기를 상쇄시켰다.
그리고.
-파……쇄격!
장군은 오염된 창기가 가득 실린 월극을 들어 올려 땅을 향해 내리찍었다.
-콰쾅! 쿠구구!
지면을 부수며 쇄도하는 창기가 처용을 향해 나아갔다.
처용은 창기에 담긴 힘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대비했다.
“철벽부-다중 강철방벽!”
철벽부 다섯 장을 꺼낸 처용은 창기를 막기 위해 다섯 겹의 벽을 만들었다.
-쾅! 콰쾅!
창기가 벽에 닿자마자 첫 번째 벽이 순식간에 박살 났다.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벽도 허무하게 부서졌다.
이윽고 마지막 벽이 부서진 순간.
-우웅!
처용은 화염의 절에 검기를 불어넣고 다가오는 창기를 향해 날을 비스듬히 세웠다.
“흐읍!”
그리고 창기가 지척에 다가온 순간 아래를 향해 찌르듯 화염의 절을 내질렀다.
-챙! 쏴아아!
창기가 화염의 절의 검 끝에 닿자 두 갈래로 갈라지며 사라졌다.
처용은 철벽부를 세워 창기를 약화시키고 가장 불안정한 부분을 찔러 갈라낸 것이었다.
창기가 사라지자 장군이 재차 처용에게 달려들었다.
다시 한번 월극과 화염의 절이 충돌한 순간.
-나를…….
미라가 된 장군이 처용을 향해 말을 걸어왔다.
-나를 멈춰다오…….
뻥 뚫린 안구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 전위를…… 죽여다오!
미라가 되어버린 장군, 전위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처용에게 부탁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