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62화 (62/726)

#062화

“후.”

마녀가 마치 불안감을 몰아내듯 한숨을 쉬었다.

“젠장……. 하필 이럴 때 어딜 간 거야!”

불만을 내뱉듯 중얼거린 마녀가 ‘성물’을 꽉 움켜쥐었다.

리더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오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협조적인 닥터는 지금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이 기지에 남은 고위 간부는 자신뿐.

마인들의 요충지 중 하나인 이 비밀기지는 반드시 지켜야 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녀석과 같이 묻어버리는 수밖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마녀가 모여 있는 휘하 마인들에게 명령했다.

“전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리들 지켜!”

“예!”

고위 간부, 마녀의 명령에 일제히 대답한 마인들이 흩어졌다.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는 것도 좋지만…….”

이 아지트는 던전을 위장막 삼아 만들어진 장소였다.

그것도 어둠과 저주의 기운이 퍼진 던전이니 장막의 역할은 훌륭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마녀는 자신의 말을 철회했다.

저 남자의 정체가 조커든 아니면 정체불명의 누군가이든.

공들여 심어놓은 협회의 간자들을 뿌리째 뽑아버린 놈이었다.

“이번엔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짐하듯 말한 마녀가 눈을 감으며 집중했다.

‘벌써 절반 지점까지 돌파했다.’

마녀는 이 던전의 지배권을 가진 성물을 이용해 침입자, 처용을 관찰하고 있었다.

성물이 던전의 지배권을 장악하면 여러 기능이 생기는데 그중 하나가 미니맵 능력이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 던전의 지도와 ‘유일하게 어둠이 아닌 존재’의 위치가 표시되고 있었다.

침입자가 던전에 깊이 들어올수록 더 뚜렷하게 그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혼자서 온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이를 아득바득 갈아대며 마녀가 침입을 방어할 준비를 보강했다.

***

-우뚝.

백인장을 쓰러뜨리고 다음 복도로 나아가던 처용이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하하, 이것들 봐라?”

던전에 퍼진 마나에 아주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몬스터와 던전에서 느껴지는 어둠이 아닌 마인들의 마기가 감지됐다.

“류마, 루나.”

걸음을 멈춘 처용이 두 뱀파이어를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나오라고 말하지 않는 한 그림자에서 나오지 마.”

“왜?”

“무슨 일 있습니까?”

루나와 류마가 의문을 표하자.

“어떤 새끼가 우리를, 아니 날 감시하고 있거든.”

처용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탐지 마법은 안 느껴지는데?”

루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 던전처럼 어둠이 가득한 장소에서는 뱀파이어들의 기감이 더욱 넓어진다.

때문에 처용보다도 먼저 이 던전에서 마인들의 흔적을 느낀 것이니까.

“너희는 같은 어둠에 속하니 반응하지 않는 거야.”

처용은 마인들의 탐지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마기를 퍼트려 같은 마기를 지닌 이들을 아군으로 인식했다.

반대로 마기가 없는 이들은 적으로 인식한다.

생각보다 간단하고 단순한 방법이었다.

이 사실은 회귀 전 처용이 마인을 잡아 고문하여 알아낸 정보였다.

“뱀파이어의 어둠은 마기와 비슷하니까.”

재밌는 사실은 뱀파이어들이 지닌 어둠도 마기에 가깝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시조가 마계에서 왔다는 건 알고 있어.”

루나가 처용의 의견에 동의하며 말했다.

뱀파이어의 시조가 마계, 판데모니움의 대악마 중 하나라는 전설이 있었다.

그 대악마가 마계를 빠져나와 중간계에 정착하고 만들어낸 일족이 뱀파이어의 유래였다.

‘그래서인지 유독 시너지가 어마어마했지.’

처용이 회귀 전 뱀파이어와의 싸움을 생각했다.

마인들과 뱀파이어의 협공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시너지가 높았다.

‘하지만, 이제 그 어둠의 칼날은 놈들의 편이 아니다.’

눈을 빛내며 웃어 보인 처용이 두 뱀파이어에게 말했다.

“아무튼, 여기서부터는 둘 다 숨어 있어.”

“알겠어.”

루나와 류마가 그림자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이들은 처용과 조금 떨어져 은밀하게 따라올 것이다.

그러면 마인들은 처용을 혼자라고 생각하고 대비할 것이다.

처용이 복도 안쪽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A급 던전 속에 감춘 것으로 보아 저것이 놈들의 아지트일 가능성이 컸다.

혹은 감추어야 하는 중요한 시설이라든가.

그래서 놈들이 모르게 두 뱀파이어를 숨기고 혼자인 척 해야 했다.

놈들이 방심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처용이 복도를 따라 쭉 걷자.

-쿵! 쿵! 쿵!

좀 전에 백인장이 다루던 장갑병 다수가 몰려왔다.

마치 사기를 높이듯 군화로 땅을 치며 절도있게 걸어오는 놈들.

그리고 그 사이에.

-히히힝!

철갑을 두른 군마 그 위에 장갑병보다 화려한 갑옷을 입은 미라들이 나타났다.

[저주받은 돌격기마대]

[등급 : A급]

-돌격…… 하라!

일렬로 나열된 기마병들이 처용을 향해 일제히 돌격하자 그 뒤를 장갑병들이 따랐다.

처용은 날카로운 장창을 겨누며 돌진해오는 기마병들을 보고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화염부, 토류부.”

왼손과 오른손에 각각 화염부와 토류부를 세 장씩 만들어 합장했다.

여섯 장의 부적이 하나로 합쳐졌고 오른손으로 쥐어 땅을 향해 짚었다.

“화산지뢰(火山地雷)”

부적이 땅으로 스며들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미라들이 처용의 지척에 다가온 순간!

-쿠쿠! 콰콰쾅!

미라들의 발밑에서 불꽃들이 터지며 용암들이 튀어나왔다.

이 기술은 지면 밑에 폭탄을 숨겨 놓고 적이 다가오는 순간 폭발시키는 지뢰와 같았다.

마치 여러 개의 작은 화산들이 분출하듯 지면이 솟아오르며 폭발과 함께 용암을 뿜어댔다.

-콰콰쾅!

뭉쳐서 돌진해오는 놈들을 중심으로 폭발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폭발에 휘말린 놈들의 대열은 무너졌고 사방에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처용은 아공간에서 화염의 절이 아닌 3미터 크기의 거대한 해머를 꺼냈다.

단단한 갑각을 지닌 괴수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아티팩트, 파괴의 무게추였다.

-붕! 붕! 붕!

해머를 양손으로 잡고 머리 위로 올려 돌리자 무거운 중량이 느껴지는 바람이 일어났다.

동시에.

“풍신보.”

처용의 다리에 바람이 휘감겼다.

덕분에 무거운 병기를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었다.

처용은 가장 가까이 나자빠져 있던 기마병의 옆으로 순식간에 다가갔다.

머리 위로 돌리며 회전력을 더한 해머를 크게 한 바퀴 휘두른 다음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내리쳤다.

-콰쾅!!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을 땅에 때려 박은 듯한 굉음이 울렸다.

미라의 두꺼운 중장갑은 해머의 파괴력을 막지 못하고 완전히 박살 났다.

해머에 정통으로 맞은 놈은 땅속으로 처박힘과 동시에 터져 나온 용암에 뒤덮였다.

-치이이!

용암에 묻어진 녀석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콰쾅!!

처용은 마치 두더지 잡기를 하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미라들을 내리찍었다.

살아남은 미라들은 어떻게든 폭발의 충격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치이이!

땅에서 스며 나온 용암으로 인해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었다.

반면에 처용은 용암이 사방에 깔려 있어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환경에 제약을 받지 않는 자연신보 덕분이었다.

-콰쾅!!

폭발이 터지고 1분도 채 되지 않아 절반이 넘는 미라들이 죽었다.

-그으으!

그래도 A급 몬스터의 이름값은 하는지 용암을 해치고 남은 녀석들이 일어났다.

놈들이 처용을 향해 일제히 공격할 때.

“빙결부-설녀의 숨결.”

처용이 빙결부 세 장을 던지며 물러나자 사방을 얼리는 한기가 몰아쳤다.

미라들의 갑옷에 달라붙어 놈들을 태우던 용암이 식었고 딱딱하게 굳었다.

-그…… 그으!

미라들이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

처용이 해머를 양손으로 강하게 쥐고 미라들을 향해 던졌다.

-붕붕붕! 와자자작!!

부메랑처럼 날아간 해머는 굳어버린 미라들을 마치 석고상을 부수듯 처참하게 부수었다.

놈들은 폭발로 인한 피해와 더불어 용암까지 뒤집어썼다.

겨우 견디고 일어났지만, 냉기를 맞아 용암이 굳으며 속박되었다.

동시에 용암으로 달궈진 갑주가 확 식으면서 놈들의 방어력이 떨어졌다.

그 상태에서 충전 강타와 방어를 부수는 옵션이 있는 해머의 공격은 견딜 수 없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깔끔하네.”

다수의 A급 몬스터를 정리한 처용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역시 강하네.”

“훌륭한 전략이었습니다. 용님.”

처용의 전투를 그림자 속에서 지켜본 루나와 류마가 감탄했다.

“우리는 계속 빠져 있는 거야?”

루나가 불평하듯 처용에게 말했다.

“너희는 마인들이 방심한 순간 결정타를 날려야 해.”

처용이 밑의 일렁이는 그림자를 향해 말했다.

“오래 안 걸릴 거야.”

“알겠습니다. 용님.”

류마의 대답과 동시에 처용이 앞으로 나아갔다.

“아마 여기가 마지막일 텐데.”

복도가 끝나자 이전보다 더 넓은 공동이 드러났다.

벽면에 세워진 거대한 병사들의 동상과 중간중간 놓인 횃불.

그리고 중앙에 보이는 네모난 제단.

마치 지하 신전과도 같은 분위기였다.

“……뭔가 이상한데?”

처용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 공동에 발을 들이자 지독한 마기가 풍겨왔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적들은 없었다.

처용은 더 움직이지 않고 마기의 근원들을 하나하나 추적하듯 기감을 넓혔다.

“아하?”

그리고 마치 알았다는 듯한 말과 동시에.

“명환부-여명의 등불.”

명환부 두 장을 합쳐 농구공 크기의 밝은 구를 만들어 띄웠다.

위를 향해 부유한 하얀 구체가 밝은 빛을 퍼트리자.

“크윽!”

“으윽!”

사방을 가려주던 어둠이 걷어지고 모습을 감추던 마인들이 드러났다.

“숨어서 뭣들 하냐?”

씨익 웃으며 모습을 드러낸 마인들을 하나하나 노려본 처용은 제단 위를 바라봤다.

“잘 지냈나. 마녀?”

제단 위 하얀 뼈 지팡이를 든 붉은 머리의 마인.

마녀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처용을 노려봤다.

“너 이 새끼.”

끓어오르는 분노를 곱씹는 듯한 음성이 마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조커가 아니었어!”

처용은 마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씨익 웃을 뿐이었다.

“겁도 없이 혼자서 온-.”

“어이 이봐?”

마녀의 말을 끊은 처용이 웃음을 지우지 않고 물었다.

“내가 조커인지 궁금해?”

처용의 말에 마녀의 표정이 아주 살짝 굳어졌다.

그런 마녀의 표정 변화에 처용의 웃음이 진해졌다.

마녀는 처용을 향해 확신하듯 조커가 아니라고 했지만.

그녀는 처용의 반응을 보기 위해 떠본 것이었다.

‘크크, 아직도 확신하지 못하나 보네?’

처용이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자신조차도 조커의 흉내가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다.

그만큼 마인들이 가지는 조커에 대한 경각심이 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작해!”

마녀가 불안감을 떨쳐내듯 외친 순간.

처용이 들어온 입구가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다.

‘공간 격리인가?’

작금 일어난 상황을 알고 있기에 처용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여러 명의 마인이 힘을 모아 거대한 결계를 구축하면 그 장소는 마기에 쌓인 별도의 공간으로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다.

다만 의문이 드는 점은.

‘S급 마인도 집중해서 겨우 만드는 것이 공간 격리인데…….’

고민하던 처용은 마녀를 관찰하다가 곧장 답을 알아냈다.

“이야~ 악신의 성물도 쓸 줄 알고 생각보다 대단한데?”

“……!!”

처용이 마녀의 지팡이를 응시하며 말하자 마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 어떻게 성물을?”

마녀의 연기가 모두 깨지고 진심 어린 당황이 드러났다.

“내가 조커인지 궁금하지?”

숙적의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자 절로 웃음이 나온 처용이 말했다.

동시에 어둠 속성 마나를 끌어냈다.

자연부를 쓰지 않고 그저 어둠 속성만을 끌어내 내뿜을 뿐이었지만.

-마기라고?

-저놈도 마인이었어?

-말도 안 돼! 방금은 빛 속성 스킬을 썼다고!

효과는 탁월했다.

어둠 속성 마나를 내뿜는 처용을 보며 마인들의 혼란이 가중되었다.

특히.

“아니야…….”

마녀가 마치 이 상황을 부정하듯 중얼거렸다.

빛과 어둠을 모두 다루는 자.

지금 시기에는 딱 한 명만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치 광대처럼 타인의 기술을 흉내 내어 사용하는 정체불명의 괴인.

“내가 조커인지 아닌지.”

처용은 혼란에 빠진 이들을 향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번 맞춰봐 Bro.”

처용의 미소를 마주한 마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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