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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60화 (60/726)

#060화

“어째서 라이센스를 발급해 주시기로 한 겁니까?”

태민이 협회장에게 궁금한 듯 물었다.

이종족에게 헌터 라이센스라니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WHU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WHU는 World Hunter Union, 세계 헌터 연합을 뜻하는 말이었다.

각 국가에 있는 원수들과 헌터 협회의 협회장들, S급 헌터들.

그리고 150레벨 이상의 최상급 헌터들이 이 연합에 속해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헌터들의 UN이라고 할 수 있었다.

“WHU에서 이종족과 관련된 주제로 회의를 한 적이 있었지요.”

WHU의 임원 중 하나인 황제일 협회장.

“이종족들을 적대할 것이냐를 주제로 말이죠?”

태민이 기억한다는 듯 말했다.

“그렇지요.”

협회장이 눈을 감고 기억을 떠올리듯 말했다.

이종족들과의 마찰이 심해지자 세계 주요 인사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지구는 우리 인간의 것입니다!

교단의 고위 사제들을 주축으로 한 찬성파가 이종족들을 몰아내자 말했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는 최악의 결과만 불러올 뿐입니다.

커맨더가 반대표를 던졌다.

그리고 커맨더와 같은 생각을 지닌 일부 헌터들이 그에 동의했고 우선 대화를 해 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교단과 다른 길드의 대표들이 분개하며 커맨더의 의견에 반대했지만.

-커맨더 님 말씀대로 우선 대화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성자가 커맨더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로 인해 커맨더가 대표로 이종족들과의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커맨더의 발로 뛰는 노력 덕분에 이종족들과 작은 교류가 시작되었다.

“그 일이 일어나지만 않았더라면 이종족들과 친교를 맺을 수도 있었을 것을…….”

협회장이 안타까운 감정을 한껏 담아 한숨을 내쉬었다.

이종족 노예매매 사건.

커맨더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이종족들과 끝내 벽을 허물지 못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인간만큼 참으로 간사하고 욕심이 많은 존재도 없을 겁니다.”

협회장의 얼굴에는 혐오감과 비참함이 가득 드러나 있었다.

대략 3년 전 있었던 사건.

일부 부호들이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엘프와 수인족 등 이종족 노예를 원했고.

불법을 일삼는 헌터들이 막대한 돈을 받고 그들을 납치한 사건이었다.

납치된 이종족들은 구속 아티팩트를 차고 정신을 마모시키는 고문을 당했다.

커맨더가 뒤늦게 이 일을 알아차리고 나섰지만…….

이미 그들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망가진 상황이었다.

“그때 그 망할 놈들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냐. 백호야?”

협회장의 입가에서 비웃는 듯한 웃음이 나왔다.

“잊을…… 수 없지.”

백호는 협회장의 말에 이를 아득바득 갈며 대답했다.

“나는 그 말을 그 면상 앞에서 직접! 들은 사람이니까!”

커맨더가 이미 정신이 망가져 버린 이종족들을 앞에 두고 좌절할 때.

-허허,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딨습니까?

정신이 망가진 엘프 하나를 밟으며 마치 우월감을 뽐내듯 말한 부호.

이종족들을 노예로 사서 부리던 부호가 커맨더에게 막대한 금화를 들이밀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들은 인간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 결과, 커맨더의 눈이 뒤집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노예를 거래한 부호들의 집을 닥치는 대로 초토화시켰다.

부호들을 산 채로 잡고 이종족들에게 찾아가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종족들에게 부호들을 내던지며 그들에게 심판을 맡긴 것이었다.

커맨더의 폭주로 세계의 부호들과 주요 인사들이 이종족들의 손에 사형을 당했다.

전 세계가 난리가 났지만, 커맨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일에 연관된 모든 이들을 지금부터 ‘몬스터’로 간주할 것이다.

커맨더가 전 세계를 향해 선언했다.

그 선언과 동시에 이종족들의 납치를 의뢰받고 그들의 정신을 부순 길드, 아니 나라.

불법이 판치는 국가 소말리아를 향해 커맨더의 ‘군단’이 진격했다.

폭주하는 커맨더를 제지하기 위해 다수의 S급 헌터가 개입했지만.

그를 막지 못하고 전부 중상을 입은 채 물러났다.

커맨더는 대신(大神), 기계 장치의 여신을 모시는 신관.

그는 S급 헌터들 중 한 손에 꼽히는 무력을 가진 헌터였다.

단 하루 만에 소말리아라는 국가가 세계 지도에서 사라져 버렸다.

결국, 커맨더를 진정시키기 위해 성자가 다른 신관들을 모아 중재에 나섰다.

- 이 일에 연루된 모든 이들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히 처벌하겠습니다.

그는 교단과 성자의 이름을 걸고 커맨더와 이종족들에게 약조했다.

그 후 성자가 직접 재판을 이끌자 비로소 커맨더의 폭주가 겨우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고 WHU를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이종족들과 조약을 맺었다.

“나는 말이우, 형님? 지금도 유진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당시 백호도 커맨더와 같이 소말리아를 공격했었다.

소말리아 내부에서는…….

아직도 납치된 이종족들을 노예화하기 위해 그들을 고문하고 있었다.

-‘상품’들은 버려!

소말리아 범죄자들이 도망가면서 하던 말.

그들은 납치된 이종족들을 상품이라고 표현했었다.

그 외에도 사망한 헌터들의 시체를 이용한 불법 장기매매와 몬스터로 만든 마약 등.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일들이 가득했다.

“그것들은 인간이 아니었어, 인간의 탈을 쓴 ‘몬스터’들이지.”

백호는 그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열불이 났다.

이종족들과 화합하기 위한 커맨더의 노력이.

그 같잖은 돈과 권력을 지닌 인간들의 욕망 때문에 무너졌다.

항상 밝고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던 커맨더, 임유진 헌터.

-내가! 내가! 지켜주기로 약속했는데!

그날 커맨더는 정신이 부서진 이종족들을 앞에 두고 비참하게 울부짖었었다.

“같은 비극이 반복되는 일은 사양이우.”

“나 역시 마찬가지다.”

협회장이 백호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한처용을 믿고 뱀파이어들을 도와주는 거다.”

협회장은 후회하는 일이 하나 있었다.

커맨더가 이종족들과 대화를 할 당시.

그는 이종족들 중 일부를 데리고 한국에 와도 되냐고 물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협회장에게 WHU에서 눈치를 줬었다.

이종족들을 혐오하는 교단의 교위 사제들과 일부 거대 길드에서.

결국, 커맨더가 더 보다 못하고 협회장에게 한 제안을 스스로 철회했다.

자신의 요구 때문에 협회장이 곤란한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WHU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도와주었더라면…….”

그때 커맨더를 믿고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면 어땠을까?

그에게 힘이 되어주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형님 잘못은 하나도 없잖수.”

“내 마음이 불편한 것이지.”

협회장이 생각을 하듯 눈을 감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눈치를 보지 않기로 했네.”

눈을 뜬 협회장의 말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협회장은 뱀파이어들에게 신분을 만들어 달라는 처용을 보고 그의 의도를 대강 눈치챘다.

처용은 이전에 악신들이 이종족들에게도 검은 손길을 뻗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뱀파이어들은 그 악신들에게 피해를 받은 피해자들.

그는 처용이 이종족들을 규합시켜 함께 악신에게 맞설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편견이 있는 뱀파이어도 차별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어.”

처용이 이종족들을 대하는 모습은 커맨더와 비슷하기도 했다.

그의 의도를 대강 파악한 협회장은 처용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놈들 눈치를 보려고 협회장 자리에 앉은 건 아니니 말이야.”

협회장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말했다.

WHU든 그 누구든.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커맨더에 비해 한처용은 그리 ‘착한 인물’이 아니지.”

협회장이 작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인간의 끝없는 추악함을 마주한 커맨더가 폭주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선하고 착한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다.

반면에 처용은?

“한처용 헌터는…… 무서운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태민이 안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커맨더가 성군이라면, 처용은 폭군이자 패왕과 같았다.

상대가 도덕성이 없는 악이라면 더 악한 방법으로 상대를 짓밟아 버리고.

힘으로 가로막는다면 더 압도적인 힘으로 그것을 부수고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무려 교단의 고위 사제를 힘으로 짓눌러 버리는 짓도 서슴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래서 솔직히 걱정이우.”

백호가 걱정을 담아 말했다.

비록 성자가 처용과 적대하지 않겠다 했지만.

다른 멍청한 인간들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심지어 처용은 커맨더와 같은 대신을 모시는 신관.

“유진이는 나라 하나를 지도에서 지워버렸었지.”

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처용이 커맨더처럼 폭주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내 감인데, 그 친구는 나라 한두 개 멸망시키는 것으로 안 끝나.”

백호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커맨더가 세상을 놀라 들썩이게 했다면.

처용은 세상을 뒤집어엎어 버릴 것 같았다.

“저도 솔직히 그럴 것 같습니다.”

태민 역시 백호의 말에 동의했다.

처용은 커맨더와 비교했을 때 더욱 잔혹하고 자비가 없는 인물이었으니까.

특히, 상대가 악인이라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다.

“만약, 뱀파이어들이 납치되고 그걸 한처용 헌터가 알게 된다면…….”

머릿속에서 끔찍한 상상이 펼쳐지자 태민이 고개를 흔들었다.

“허허, 지옥도(地獄道)가 펼쳐질 수도 있겠지요.”

협회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끔찍할 것이다.

그러나 욕망에 눈이 먼 악인들과 몬스터, 악신 등이 판치는 이런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는.

성도(聖道)보단 패도(霸道)의 길을 걷는 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곧장 맡은 일을 처리하러 온 처용이 루나와 함께 게이트에 입장하자.

“오랜만이네.”

그가 던전의 모습을 감상하며 말했다.

A급 던전 저주받은 군영.

벽돌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성채의 내부와 같은 모습.

중간중간 횃불과 낡은 깃발, 병장기 진열대가 나열되어 있었다.

오랜 옛날 병사들이 주둔하던 성의 내부와 같은 모습이었다.

복도를 쭉 걸어 나아가자 입구로 보이는 문이 보였다.

거기에 옛날 중국 사극에서 볼 법한 구식 갑옷을 입은 병사 둘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 둘, 여기까지는 똑같네.”

멀리서 봤을 때에는 몬스터가 아닌 인간처럼 보였지만.

-그으으.

-꺼거걱.

처용의 존재를 눈치챈 두 명의 병사가 가래가 끓는 듯한 기괴한 소리를 내며 경계했다.

마치 언데드 같은…….

-통과할…… 수…… 없다.

두 명의 병사는 창을 X자로 교차하며 입구를 가로막았다.

투구 밑에 드러난 병사의 얼굴은 미라처럼 삐쩍 말라 있었다.

그리고 말라 없어져 버린 눈 대신에 보랏빛 안광이 요사스러운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곳은 C급 헌터가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 던전.

비실비실해 보이는 미이라지만 놈들의 등급은 B급, 예상보다 강한 전투력을 가진 놈들이었다.

두 경비병을 마주한 처용은 딱히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류마.”

처용의 말과 동시에.

-스르륵.

처용의 그림자 중 일부가 은밀하게 경비경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두 경비병 사이에 류마가 솟아 올라왔다.

-사각! 사각!

류마는 어둠 속성 마나를 마치 칼날처럼 휘둘러 두 경비병을 순식간에 도륙했다.

“처리했습니다.”

“가지.”

처용이 앞장서 걸어 들어갔고 류마와 루나가 뒤따랐다.

“혹시 동족이 느껴진다거나 이질적인 어둠이 느껴진다면 바로 말해.”

루나와 류마를 이 던전에 데려온 이유는 탐색을 위해서였다.

이들은 어둠 속성의 축복을 받은 뱀파이어 종족.

처용보다 어둠 속성 마나를 더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이들이었다.

“용님, 강한 저주가 느껴지는 곳입니다.”

“이 던전의 이름이 저주받은 군영이니까.”

이 던전의 주인이 금지된 흑마법을 사용했었고.

그로 인해 병사들 전부가 저주를 받았다는 사전 조사 결과가 있었다.

하지만 류마가 말하려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저희에게 걸렸던 저주와 비슷한 무언가가 또 느껴집니다.”

“맞아. 육체를 서서히 갉아먹는 듯한 이질적인 어둠이 있어.”

류마의 말에 루나 역시 동의하며 의견을 더했다.

“……뭐?”

처용은 놀란 듯 되물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뱀파이어들을 데려온 효과가 나타났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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