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59화 (59/726)

#059화

“신기한 세상이야.”

헌터 협회 건물을 올려다본 루나가 중얼거렸다.

에스라 대륙에서도 모든 시간을 밤의 성채에서만 보냈던 그녀였다.

그런 집순이(?)였던 루나였기에 새로운 세상의 환경은 정말 신기하게 다가왔다.

마법보단 과학이 더 발전되어 있는 문명.

아주 복잡하게 느껴지는 도시였지만 규칙을 갖고 질서 있게 돌아가고 있었다.

“잘 따라와.”

처용이 루나를 보며 말하자.

“난 애가 아니야.”

루나가 붉은 눈동자를 가늘게 뜨며 대답했다.

그런 루나의 대답에 처용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현재 그녀는 어둠 속성을 활용한 환영 마법으로 날개와 귀를 감춘 상태였다.

겉으로 보면 검고 긴 머리의 어린 소녀 모습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한다면 이질적인 부분도 있었다.

“송곳니하고 눈동자 색은 감출 수 없는 거야?”

“난 몽마가 아니야.”

아직 루나의 수준으로는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 감추는 것이 한계였다.

“뭐, 상관없겠지.”

처용은 문제는 없다고 판단했다.

각성자들이 등장하고 난 후 인류의 겉모습에도 작은 변화가 있었다.

예를 들면 화염 마법사 클래스로 각성한 헌터의 머리카락이 붉게 변하거나.

탱커 클래스 헌터의 몸집이 커지고 키가 2미터 이상 자라는 등의 일들 말이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작은(?) 변화가 생기는 헌터들이 종종 있었다.

때문에, 루나의 겉모습은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아! 처용 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고 했었는데.”

처용을 본 태민이 정말 반갑다는 듯한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이 아이는 누구인가요?”

태민은 처용의 옆에 있는 낯선 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처용이 누군가와 같이 다니는 광경을 처음 봤기에 누구인지 궁금했다.

“난 애가 아니야.”

아이라고 생각했던 소녀가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찰나의 순간 그녀의 입에서 날카로운 송곳니 끝이 보였다.

“마침 부장님도 돌아오셨으니 협회장실로 안내하겠습니다.”

태민은 눈앞에 있는 소녀의 정체를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

-호로록.

“흐흥.”

앞에 나온 핫초코를 한 모금 마신 루나가 즐거운 듯 웃음을 지었다.

-아작.

“맛있는 게 많아. 이 세계 정말 마음에 들어.”

루나가 협회장실에 배치된 다과, 마카롱 하나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맛있다니 다행이네.”

옆자리에 앉은 처용이 작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

“…….”

“…….”

이 광경을 협회장과 백호, 태민이 황당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괜……찮은 겁니까?”

태민이 핫초코와 마카롱, 루나를 번갈아 보다가 처용을 향해 말했다.

“문제는 없습니다.”

처용은 어깨를 으쓱이며 무슨 문제가 생기겠느냐는 듯 말했다.

“맛있어.”

“…….”

처용의 대답에 이어 루나가 말하자 태민이 할 말을 잃은 듯 잠시 침묵했다.

“이전에 알려주시긴 했지만, 직접 마주하니 당황스럽군요.”

태민은 눈앞에 있는 소녀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전 처용에게 뱀파이어 종족에 대한 설명을 들었음에도 기존의 인식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우리 같은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치킨도 맛있게 먹던데요.”

“치킨이요?”

처용의 말에 태민이 당황한 듯 물었다.

뱀파이어가 치킨을 먹는다?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싶었지만.

“그건 훌륭한 요리였어.”

“…….”

루나의 말에 태민이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아니, 편견이겠구나.’

태민이 생각을 바로잡으며 안경을 고쳐 썼다.

비단 태민뿐 아니라 협회장과 백호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하, 엘프들보다 더 인간적이구만.”

백호가 옛날 기억이 났는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커맨더의 파티원인 그는 엘프들의 마을에 며칠 지낸 적이 있었다.

엘프들은 문화와 종족 특성상 육식을 하지 못하는 이들.

그런 그들의 특성을 모르고 마을 안에서 육포를 뜯다가 싸움이 일어날 뻔한 일도 있었다.

“저희에게 이 아가씨를 데려오신 이유가 있는 건가요?”

협회장이 루나를 향해 눈짓하며 처용에게 물었다.

“블라인드 좀 내리겠습니다.”

처용은 협회장실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려 햇빛을 차단했다.

형광등은 상관없지만, 햇빛은 막을 필요가 있었다.

“류마.”

처용이 부르자 처용의 그림자가 일렁이며 류마가 서서히 솟아 올라왔다.

왕족인 루나는 햇빛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류마는 귀족이라고 해도 햇빛에 조금씩 영향을 받았다.

때문에, 처용의 그림자에 몸을 숨겨 따라온 것이었다.

갑자기 등장한 류마에 의해 백호와 태민이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백호는 협회장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 인물.

‘내가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백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속으로 동요를 감추었다.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류마를 경계하며 스킬을 준비했지만.

“부르셨습니까.”

류마가 처용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인사해, 우리를 도와줄 사람들이야.”

“반갑소. 용님의 지인들이여, 블러디아 소 류마라고 하오.”

처용의 말에 류마가 사람들을 향해 정중히 말했다.

“……놀랍구만.”

백호가 류마를 보며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는 상대의 기량을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패시브 스킬 ‘기감’이 있었다.

눈앞에 있는 류마의 수준은 A급 몬스터 이상이었다.

“류마는 백작급 뱀파이어입니다. 루나는 왕족이구요.”

처용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둘은 그 저주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뱀파이어입니다.”

처용은 뱀파이어들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현재 반란으로 인한 내전과 마인들의 개입.

그리고 내전을 피해 대피한 뱀파이어들이 뿔뿔이 흩어진 상황까지.

“안타깝군요.”

협회장이 눈을 감으며 정말 유감이라는 듯 말했다.

“혹시라도 이전 던전과 비슷한 정황이 발견되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그런 정황이 보인 즉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처용의 말을 바로 이해한 태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들과 서로 돕기로 약속했으니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해야 할 일이라면?”

“마인들 그리고…….”

처용은 협회장의 물음에 답하면서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길드들.”

“길드들까지 말인가?”

백호가 처용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처용 님은 거의 확신하고 계시는군요.”

반면에 태민은 이마를 부여잡고 인상을 쓰며 말했다.

“설마…… 마인들에게 협력하는 길드가 있다는 말씀인가요?”

말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챈 협회장이 태민과 처용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사실 태민은 길드들의 몇 가지 수상한 정황을 포착한 상태였다.

우선 숙청된 임원들과 집행반을 지원하던 생산직 길드인 ‘레드 스미스’길드.

임원들과 집행반이 배신자임이 완전히 드러나고 전부 잡혀들어가자.

그들은 길드를 정리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듯이 말이다.

태민은 레드 스미스 길드가 모은 자금과 재료들을 추적해 봤지만.

몇몇 거대 길드와 거래한 정보 외에는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길 바랐습니다.”

인상을 찌푸린 태민이 참담함을 담아 말했다.

마인을 돕는 길드가 있다? 정말 최악이었다.

“대충 어느 길드인지 짐작은 가지만 더 정확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처용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뱀파이어는 어둠을 타고 잠입하는 것에 베테랑인 이들입니다.”

“처용 님 설마?”

태민의 말에 웃음을 보인 처용이 대답했다.

“진실을 어둠 속에 숨겼으면 그 속에서 꺼내면 됩니다.”

“하하하, 뒤를 캐는 건가?”

처용의 당당한 뒷조사 선언에 백호가 웃어 보였다.

“그래! 그 시커먼 놈들한테 정정당당할 필요는 없지.”

백호는 정말 마음에 든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애먼 길드를 의심했다가는 오히려…….”

태민은 걱정을 담아 말했다.

“무리하지 않는다면 들킬 염려는 전혀 없습니다.”

길드 내에 신관이 상주하지 않는 이상 들킬 리가 없었다.

“백호 님은 류마가 제 그림자에 있었다는 걸 아셨나요?”

“자존심이 상하는구만, 전혀 몰랐네.”

백호는 인상을 구기면서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류마가 과장님의 조사를 도와줄 겁니다. 그리고.”

처용은 협회장을 바라보며 두 번째 본론을 꺼냈다.

“이 둘에게 협회 소속 신분을 만들어주실 수 있나요?”

“이유가 있을까요?”

협회장의 말에 처용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저희를 돕는 이 둘에게도 보증된 신분이 필요할 테니까요.”

이 말은 대충 둘러댄 것이었고 사실은 후일을 도모하는 계획을 위해서였다.

협회를 중심으로 이종족들과 회귀 전 인연들을 모아 하나의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이종족에게 신분이라…….”

태민이 고민하듯 중얼거렸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참고로 웬만한 A급 헌터들은 루나와 류마의 상대가 안 될 겁니다.”

“그 정도인가?”

백호가 한쪽 눈썹을 크게 올리며 놀라운 듯 말했다.

자신조차 기척을 감지하지 못한 류마는 그렇다 쳐도.

핫초코를 맛있게 홀짝이는 저 소녀의 힘이 그 정도라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처용 님과 같은 라이센스면 괜찮을까요?”

침묵하던 협회장이 처용에게 말했다.

“괜찮은 겁니까?”

태민이 내심 걱정하듯 말했지만.

“협회장인 내가 허가하는 거니 문제는 없네.”

협회장이 곧은 눈빛으로 처용을 바라보았다.

“믿고 있습니다.”

옅은 웃음을 지으며 협회장이 말했다.

그 짧은 말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처용이 지금까지 협회를 위해 해준 많은 일들과 그간 보여준 모습들.

그리고 소중한 협회의 직원들을 여러 번 구해주었던 처용을 향한 신뢰였다.

처용이 전부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고 믿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처용은 협회장의 눈빛과 미소에서 그 감정을 느끼고 감사를 전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제가 필요한 일이 있나요?”

처용이 태민을 보며 말했다.

그가 처용을 발견하고 올 때 그런 분위기였으니까.

“아, 그렇습니다.”

뱀파이어들에 관한 일도 만만치 않다 보니 바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게, A급 던전을 하나 맡아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A급 던전이요?”

“네, 원래는 부장님이 맡기로 했었던 곳이었지만…….”

처용이 의문을 표하자 태민이 태블릿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저주받은 군영?”

A급 던전 저주받은 군영.

미이라들이 출몰하는 던전으로 처용이 잘 알고 있는 던전이었다.

회귀 전, 이 던전에 문제가 생겨 완전히 무너뜨리는 작전이 세워졌고 처용이 여기에 참여했었다.

‘마인들이 던전에 수작질을 부린 것이었지.’

처용이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

“흠, 내 일을 떠넘기는 거 같아 미안하구만.”

“부장님은 다른 곳을 도와주셔야죠.”

백호가 중얼거린 말에 태민이 답했다.

원래 저주받은 군영은 백호가 직접 협회 정예들을 이끌어 토벌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최근 황금 골렘 사건으로 협회의 일이 많아지는 바람에 백호 또한 바빠졌다.

백호와 협회 정예들은 B급 던전 여러 개를 나누어 맡은 상황이었다.

“자네 혼자서 괜찮겠나?”

백호가 처용을 향해 진지하게 물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A급 던전이다.

B급과 A급은 한 단계 차이지만.

그 한 단계의 난이도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처용이 에픽 클래스라고 해도 아직 부상을 치료 중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걱정이 되었다.

“하하.”

처용은 백호의 말에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딱 좋네요.”

너무나도 좋은 상황이었다.

지금 처용의 레벨은 88.

슬슬 B급 이하의 던전으로는 경험치가 잘 쌓이지 않는 시기였다.

A급 던전이면 보다 레벨을 빠르게 올릴 수 있었다.

강력한 몬스터들을 상대로 할 질풍신뢰와 자연신보의 수련은 덤이었다.

그리고 마인들이 이미 수작을 부려 놓았다면 그것을 방해할 수도 있었다.

“참고로 저 혼자 가지는 않을 겁니다.”

처용은 옆의 루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핫초코를 마시던 루나가 시선을 느끼고 처용을 바라봤다.

“하하, 이 아가씨가 얼마나 잘 싸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부탁하네.”

“나도 싸울 줄 알아.”

루나가 웃는 백호를 향해 붉은 눈동자를 치켜뜨며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만, 루나의 전투를 보지 못한 백호는 그녀의 진지함이 딱히 와닿지 않았다.

“뭐, 바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가시려구요?”

곧장 출발하려는 처용에게 태민이 물었다.

다른 던전도 아닌 A급 던전이었다.

나름대로 준비를 갖추고 가야 할 만큼 위험한 던전이었지만.

처용은 여타 다른 던전을 가는 것과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빨리 처리하면 좋은 거 아닌가요?”

“그건 그렇지만…….”

“라이센스가 완성되면 연락 주세요.”

처용이 자리에서 일어서 나가자.

류마가 남은 사람들에게 작게 고개를 숙인 후 다시 처용의 그림자로 들어갔다.

루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서 처용을 따라갔다.

“행동력 하나는 끝내주는구만, 저 친구.”

백호가 처용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마음에 든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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