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화
처용은 루나의 손을 쥐고 시스템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보았다.
[피의 서약자 블라디미르 로 루나리스가 스킬석 ‘금속화’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하나하나 제대로 읽어보며 살펴보았다.
스킬석은 시스템과 연결되어있는 헌터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회귀 전, 이종족 동료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지 알아봤었지만,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이 났었다.
그랬기에 이 시스템 메시지가 믿어지지가 않았다.
[습득 시 선인의 육체에 영향을 받아 변형되어 적용됩니다.]
그 밑에 이어진 메시지 역시 당황스러운 내용이었다.
‘뭐지? 내 선인의 육체가 무작위로 변형시키는 걸 말하는 건가?’
처용의 고민이 이어지고 있을 때.
“뭔데? 왜 그래?”
루나가 살짝 당황한 듯 물었다.
처용이 갑자기 자신의 손목을 잡아채더니 스킬석이라는 돌덩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처용은 루나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고뇌에 빠져 있었다.
“으음…….”
“왜 그러세요. 용님?”
고민하는 처용에게 아타가 궁금한 듯 물었다.
생각을 이어가던 처용이 아타를 빤히 바라봤다.
“아타, 이리로 와봐.”
아타는 처용의 말을 듣고 가까이 다가왔다.
처용은 루나를 잡던 손을 내리고 아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하이 앤트리스 퀸 아타가 스킬석 ‘금속화’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습득 시 선인의 육체에 영향을 받아 변형되어 적용됩니다.]
“허허, 이게 도대체?”
아타의 어깨에서 손을 뗀 처용이 이마를 짚으며 헛웃음을 내었다.
이 메시지가 나타난 건 스킬석을 쥔 상태에서 다른 사람과 접촉했기 때문인 것은 알았다.
하지만, 회귀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
스킬석을 얻은 자신을 동료들이 축하한다며 어깨를 두드리거나.
구경을 하겠다는 말에 처용이 손수 넘겨주기도 했었으니까.
그때는 이런 시스템 알람이 나타난 적이 없었다.
‘도대체 뭐지? 왜 이런 현상이?’
처용이 답답한 듯 머리를 박박 긁었다.
루나와 아타에게 사용이 가능하다고 해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선인의 육체에 영향을 받는다는 시스템의 메시지.
이것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예측이 되지 않았다.
이럴 때는 현명한 사람들의 조언이 필요했다.
‘스승님.’
혼자서 고민한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기에 성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다행히 모두 태룡전 안에 있었는지 처용의 도움 요청에 모두 응답했다.
작금 일어난 상황을 처용이 모두 설명하자.
[흠, 신기하구나.]
여래가 스킬석을 쥔 처용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현상은 처음이라…… 원인조차도 모르겠습니다.”
처용의 말에 잠시 생각한 여래가 입을 열었다.
[지금의 너는 다른 게 하나 있지 않느냐?]
여래의 말을 이해한 처용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회귀 전과 지금의 자신이 무엇이 다른가?
“신수의 격?”
처용은 바로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정답이다.]
여래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 아이들이 반응한 건 너와 연결되어있기 때문인 것 같구나.]
“아타는 그렇다 쳐도 루나는…….”
처용이 의문을 표했다.
아타는 신수의 격으로 ‘처용의 무리’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루나는 아니었다.
[신수의 격 못지않은 선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느냐?]
미륵이 처용와 루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처용과 루나가 짙은 붉은색의 선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으니까.
참고로 처용의 무리에 속해 있는 아타와 거북이는 녹색의 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피의 서약 때문이네?”
루나가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인은 알았지만…….”
처용이 스킬석을 바라보며 말을 흐릴 때 아타가 처용에게 물었다.
“용님, 그 스킬석 강철의 힘이라고 하셨죠?”
“어, 내가 쓰는 철벽부하고 비슷해.”
“음, 그렇다면 저는 딱히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말을 마친 아타가 오른손 검지를 들어 올리자.
-쩌저적!
은빛 마나가 뭉쳐 들더니 작은 강철 구슬이 만들어졌다.
“저는 이미 용님에게 강철의 힘을 받았으니까요.”
“아! 그렇군.”
처용이 이해했다는 듯 말했다.
아타는 다양한 자원을 받아들여 병사들을 만든다.
철벽부를 부여한 재료를 아타에게 건네고 철벽이를 탄생시킬 때 강철 속성 마나를 얻은 것이었다.
군체여왕 아타.
그녀는 하나이자 앤트리스 종족 전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처용의 말과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루나에게로 향했다.
“으, 으음?”
사람들이 시선이 모이자 루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을까요?”
스킬석과 루나를 바라본 처용이 여래를 향해 물었다.
루나가 강해진다면 처용에게도 역시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애초에 그녀의 성장을 도와주기로 약속도 했었으니까.
다만 문제가 있다면 선인의 육체가 어떻게 작용할지는 모른다는 것.
[괜찮을 것이다. 제자야.]
여래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선인의 육체는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굳이 더 담지 않을 뿐이다.]
이미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스킬석이라 해도 힘을 더 얻을 수는 없었다.
[선인의 육체가 스스로 부작용을 만들어내는 일은 없다.]
“그렇군요.”
여래의 말은 사실이었다.
선인의 육체가 지금까지 부작용을 일으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당사자의 의견은 물어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할게요.”
보살의 말에 루나가 각오를 다진 듯 말했다.
루나는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상황을 파악한 상태였다.
“이 스킬석이 어떻게 적용될지는 알 수 없어.”
처용이 다시 한번 의사를 확인할 겸 물었지만.
“괜찮아.”
루나가 단호하게 대답하며 처용에게 손을 내밀었다.
흔들림이 없는 루나의 붉은 눈동자를 마주한 처용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사용한다.”
[블라디미르 로 루나리스가 스킬석 ‘금속화’를 습득합니다.]
[선인의 육체가 금속화의 힘을 변형시킵니다.]
처용이 시스템 메시지를 승낙하자 스킬석의 기운이 루나가 아닌 처용에게로 흘러들어왔다.
[대상에 알맞게 금속화의 힘을 변형하여 적용 중입니다.]
처용의 육체를 한 바퀴 돌던 스킬석의 마나가 루나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루나는 눈을 감으며 자신에게 흘러들어오는 새로운 마나를 받아들였다.
금속화의 힘이 담긴 은빛 마나가 루나의 핏빛 마나에 섞여들기 시작했다.
[혈기와 어둠 속성에 강철의 기운이 추가됩니다.]
[고유 능력 혈옥(血玉)이 각성합니다.]
스킬석의 기운을 모두 받아들이자 루나가 눈을 떴다.
동시에.
[피의 서약이 더욱 견고해집니다.]
[선인의 육체가 성장합니다.]
처용 역시 의외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어때?”
궁금한 듯 루나를 향해 처용이 물었다.
“직접 보여줄게.”
루나는 자신의 피와 머릿속에 흘러들어온 지식을 다시 되새기며 혈기를 끌어냈다.
“블러드 재블린.”
혈기를 이용해 만들어낸 투창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더 정교해졌는데?”
처용이 피의 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전 루나의 혈기는 ‘피’의 기운답게 액체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녀가 사용했었던 블러드 재블린은 피가 뭉쳐진 이쑤시개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금 만들어 낸 피의 창은 명확하게 창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더 길어진 형태와 날카롭게 세워진 창끝.
마치 붉은 광석을 이용해 만들어진 창처럼 보였다.
그녀가 다루는 액체 형태의 혈기가 강철의 힘을 받고 고체의 성질을 가진 것이다.
“조금 더 연습을 해 봐야 할 것 같아.”
루나가 만들어냈던 붉은 창을 피로 되돌리며 말을 이었다.
“혈옥은 아직 잘 모르겠어.”
어렴풋하게 알 것은 같지만 설명하기는 힘들었다.
육체 내면에 그 기운이 느껴졌지만, 끌어낼 수 없었다.
“강해진 것 같아 다행이네.”
“고마워.”
루나가 처용을 향해 웃음을 보이며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스킬석을 구할 수 있는 대로 구해봐야겠네.”
처용은 즐겁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신수의 격으로 스킬석을 헌터가 아닌 이들에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이것은 추후 다시 맞이할 동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선인의 육체가 성장하는 것은 덤이었다.
“일단은 새로운 힘에 익숙해지도록 해.”
“응. 이걸 제대로 다루면 그 녀석을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루나가 말하는 그 녀석은 소룡이었다.
그녀가 몇 번을 도전해도 유용한 타격 하나 입히지 못한 채 당했었으니까.
처용은 루나가 소룡을 넘어서기에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 열심히 해봐.”
의지를 불태우는 그녀를 향해 작은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의지를 갖고 수련해야 하는 것은 처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루빨리 보법을 완성해야 그 거대 괴수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테니까.
“할 일이 많네.”
심지어 멍청한 길드들 덕분에 당분간 던전 사냥의 일이 많아졌다.
던전 토벌과 보법 수련, 그리고 거대 괴수의 도전까지.
바쁘게 움직여야 했지만, 처용은 전혀 힘들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자신의 성장이라는 결과로 돌아왔으니까.
***
처용이 던전의 처리 결과를 알려주기 위해 협회로 돌아오자.
“이럴…… 수가.”
태민이 입을 떡 벌린 채 멍하니 있었다.
그의 손에는 5개의 던전 토벌 처리 결과 서류가 들려 있었다.
믿어지지가 않는지 계속 서류를 넘기는 것을 반복하며 보고 있었다.
“정말로 하루 안에 가능하리라고는…….”
“제가 오늘 안에 다 처리한다고 했잖아요?”
처용은 마치 산책을 다녀온 듯 가벼운 분위기로 말했다.
“하나는 중형 도시급인데…… 아니, 아닙니다.”
더 이해하기를 포기한 태민이 말을 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숨통이 트였습니다.”
태민은 처용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처용 덕분에 C급 헌터들이 희생될 일 없이 무사히 던전 토벌 일을 마쳤다.
“내일도 이런 일이 발생할까요?”
처용은 겉으로는 걱정을 비추었지만, 내심 기대하며 물었다.
오늘만 다섯 개의 던전을 독점한 덕에 레벨을 많이 올렸으니까.
빨리 99레벨에 도달하여 잃어버린 칭호를 다시 얻어야 했다.
레벨이 올라가면 보법과 잃어버린 힘을 되찾는 일도 더 수월할 것이다.
100레벨을 돌파할 조건 또한 알고 있기에 우선 레벨을 빠르게 올릴 필요가 있었다.
“오늘로 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태민이 이마를 부여잡고 인상을 쓰며 말했다.
“후, 처용 님이 토벌을 가시고 계속 소식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태민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벌써 내일 처리해야 할 일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황금에 눈이 멀어 해야 할 일을 내팽개친 길드 때문에 협회가 뒤처리에 애를 먹고 있었다.
“각 거대 길드의 본부에서는 뭐라고 안 합니까?”
처용이 아레스의 길드를 생각하며 태민에게 질문했다.
“올림포스 본부에 연락은 해 보셨나요?”
올림포스의 본부는 미국에 있었다.
태민이 소식을 전했다면 그곳에서도 한국에서 길드장이 벌이는 멍청한 짓을 알 것이다.
“하아, 당연히 전했죠.”
처용이 토벌을 떠나고 이 일을 따지기 위해 올림포스 본부에 연락을 했었다.
그곳에서 온 답신에는 각 지부의 방침에 함부로 개입할 수는 없다는 말과.
한국지부에 연락은 전해 보겠다는 말이 끝이었다.
태민은 연락을 기다려보긴 했지만.
“귀찮은 듯한 태도였습니다.”
아마도 연락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워 글레디에이터 길드가 황금 골렘을 다수 잡았더군요.”
태민이 따로 조사를 해 보자 그 황금 골렘 중 일부가 올림포스 본부로 흘러 들어갔다.
“흐, 뇌물인가?”
태민의 말에 코웃음을 친 처용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통짜 황금으로 이루어진 골렘을 받았으니 한국의 일을 모른 척하는 것이다.
“머저리 새끼들.”
처용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처용이 욕한 대상은 길드장과 올림포스 본부뿐만 아니었다.
그들이 모시는 올림포스 성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테나가 이 사실을 알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올림포스의 임시 수장 아테나.
처용이 알고 있는 그녀는 이런 일을 방관할 성격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테나에게 이 일이 흘러가지 않도록 다른 성좌가 막는 것이 분명했다.
그 성좌는 아레스와 올림포스 내 순혈자들일 것이다.
“하아, 문제는 다른 길드들도 이런 방식을 쓰고 있습니다.”
태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일이 끝나면 그 길드들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안경을 고쳐 든 태민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협회의 던전 관련 행정을 총괄하는 태민에게 찍힌 이상.
그 길드들은 앞으로 피곤한 일이 많아질 것이다.
‘계획을 좀 앞당겨도 되겠군.’
처용은 그런 태민을 보며 기대하듯 웃고 있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