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화
“확인해 봐야 할 것들이 많겠네.”
협회에서 돌아오고 이틀 뒤에 처용은 예약된 던전에 도착했다.
얼마 전 B급 소형 도시급 던전 하나가 새로 발견되었다.
태민이 노력해준 덕분에 빠르게 일정을 잡아낸 것이었다.
그리고 협회 내부의 배신자들을 잡아낸 뒤 많이 안정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었다.
“슬슬, 준비를 시작해도 될 것 같네.”
악신들에 대항할 전초기지로 협회를 선택한 처용이었다.
이젠 계획된 일들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타이밍이었다.
“스테이터스.”
처용은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 중간 점검의 시간을 가졌다.
[이름 : 한처용]
[레벨 : 77]
[칭호 : 반신]
[클래스 : 계승자]
[생명력 : 3420]
[마나 : 2150]
[근력 : 146]
[민첩 : 128]
[체력 : 192]
[마력 : 132]
[신력 : 250]
아직 갈 길은 멀었다.
하지만, 다른 헌터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이었다.
‘신력은 25% 정도 회복한 건가?’
문제는 신력의 회복 속도가 눈에 띄게 더뎌졌다는 것이었다.
물론, 처용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레벨을 올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겠지.’
본래 처용의 신력은 498레벨이라는 드높은 경지의 육체에 담긴 에너지였다.
그런 에너지가 고작 77레벨의 육체에 다 담길 리가 없었다.
처용이 다른 헌터들보다 육체의 스펙이 높다고 해도 레벨은 중요했다.
‘100레벨까지만 올려도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텐데.’
처용은 아쉬움을 토하면서도 마음을 다잡고 게이트에 입장했다.
아쉬워할 시간에 더 바쁘게 움직여야 레벨을 더 빠르게 올릴 테니까.
-우웅!
게이트에 입장하자 1미터가 넘는 크기의 긴 갈대 수풀들이 펼쳐져 있었다.
“흠…….”
수풀에 뒤덮여 앞을 가리는 던전의 환경을 감상한 처용이 중얼거렸다.
“고생물 던전인가?”
처용은 던전의 환경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길고 두꺼운 갈대밭.
종종 보이는 2미터가 넘는 길이의 고사리.
그리고.
“이거 잘하면 가재 만한 놈들도 있겠는데?”
바닥에 찍혀 있는 발자국을 바라본 처용이 중얼거렸다.
대충 봤을 때 이 발자국의 주인은 8미터에 가까운 덩치로 예상되었다.
갈대를 해치며 앞으로 쭉 나아간 처용이 걸음을 멈추었다.
-스스…….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가 기어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주변에서 움직이는 것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처용은 왼손 주먹을 쥐고 아래에서 위로 어퍼컷을 내질렀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내지른 주먹이었지만.
-빠악! -케에엑!
무언가가 맞는 타격음과 동시에 괴성이 울렸다.
처용의 왼쪽에 있던 환경이 일렁거리며 흔들렸다.
아무것도 없어 보였던 장소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은 거대한 뱀이었다.
[클로킹 아나콘다]
[등급 : B급]
[특징 : 자신의 모습을 주변 환경과 동화시켜 은신하는 몬스터.]
[먹이가 근처에 다가오면 몰래 다가가 기습하여 잡아먹는다.]
[스킬 : 위장 피부, 소음 억제, 마비 숨결…….]
녀석의 비늘은 검은색, 흰색, 녹색 등 여러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주변 환경에 맞게 몸의 색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위장 피부’의 효과였다.
-사각!
처용은 화염의 절을 뽑아 녀석의 머리를 깔끔하게 날렸다.
“투명 망토 비슷하게 만들면 좋겠네.”
대충 평가를 마친 처용은 사체를 챙기고 앞으로 나아갔다.
-쏴아아!
나아가다 보니 물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자 넓은 계곡이 드러났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수심이 깊었고
-꾸물꾸물.
계곡 외곽에는 암모나이트와 투구게 형태의 몬스터들이 보였다.
“고생물 던전이 확실하네.”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고생물 던전은 고대의 환경이 재현된 곳이었다.
그러니 그만큼 다양한 자원을 얻을 수 있었다.
처용은 50cm정도 크기의 암모나이트 하나를 들어보았다.
암모나이트는 반항하거나 공격하려는 기미 없이 껍질에 다리들을 숨기며 움츠렸다.
‘청소부를 굳이 잡을 필요는 없겠지.’
관찰을 끝낸 처용이 계곡을 향해 암모나이트를 던지고 뒤돌아 가려는 순간.
-풍덩~ 콰직.
미세하게 들려오는 뒷소리에 처용이 계곡 안을 응시했다.
처용은 다리에 수류부를 붙이고 물 위를 걸어 다가갔다.
그러자 거대한 그림자가 푸른 눈을 빛내며 점점 가까워졌다.
미소를 지은 처용이 화염의 절을 들고 공격하려는 순간.
[신수의 격이 발동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울림과 동시에 다가오던 그림자가 멀리 사라졌다.
“뭐야? 도망친 거야?”
물속에서 점점 다가오던 푸른 눈의 거대한 그림자.
녀석은 처용을 먹이로 인식하고 다가온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자기 화들짝 놀란 듯 물속으로 줄행랑쳤다.
처용은 놈을 추적해서 잡을까 하다가 관두었다.
단념한 처용은 등을 돌려 몬스터의 기척이 다수 느껴지는 하류를 향해 나아갔다.
하류를 따라 걷던 처용의 발걸음이 돌연 멈추었다.
-콰드득! 으드득!
4미터가 넘는 크기의 몬스터들이 거대한 아나콘다를 뜯어먹고 있었다.
[스톤 리저드사우르스]
[등급 : B급]
[특징 : 탄탄한 비늘과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고대 도마뱀.]
[다수가 짝을 이루어 사냥을 다니는 습성이 있다.]
[스킬 : 스톤 스케일, 발톱 절단, 물줄기 칼날…….]
이족보행을 하는 도마뱀 형태의 몬스터.
마치 뚱뚱한 리저드맨의 모습과 같았다.
놈들은 처용이 다가온 것을 눈치챘는지 뱀을 뜯어먹다 말고 경계하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루나.”
처용은 곧장 공격하지 않고 루나를 불렀다.
그러자.
-우웅!
붉은색의 게이트가 열리더니 그 안에서 루나가 걸어 나왔다.
처용과 루나는 피의 서약으로 상호 협력 관계를 약속한 사이였다.
이 게이트는 피의 서약자끼리 서로의 위치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저것들을 정리하면 되는 거야?”
상황을 파악한 루나가 처용에게 물었다.
“네가 어느 정도 싸울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하니까.”
눈앞에 있는 몬스터들 정도면 테스트는 충분할 것이다.
“왜 버거워?”
처용이 루나를 향해 도발하듯 웃으며 말하자.
“그럴 리가.”
루나가 망설임 없이 몬스터들을 향해 걸어 나갔다.
-캬아악!
도마뱀들이 날카로운 손톱을 뽑아 들고 루나에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덩치들이 다가오는데도 루나는 태연하게 걷고 있었다.
날카롭게 세워진 손톱이 루나를 갈가리 찢어버릴 기세로 쇄도했다.
-후웅!
손톱에 할퀴어진 루나가 마치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도마뱀들이 어리둥절할 때 루나는 그들의 위에서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양팔을 펼친 루나의 손끝에서 피들이 뿜어져 나왔다.
-꾸물꾸물.
뿜어져 나온 피들이 뭉치더니 루나와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분신인가?”
처용이 흥미롭다는 듯한 눈으로 분신들을 바라봤다.
뱀파이어 중에서 자신의 피로 분신을 만들어내는 녀석은 없었다.
아마 왕족, 혹은 루나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일 것이다.
“블러드 재블린.”
일곱 명으로 늘어난 루나의 손에서 피의 창들이 만들어져 도마뱀들에게 쏟아졌다.
-푸우욱!
웬만한 강철 화살은 흠집도 낼 수 없는 단단한 비늘을 가진 도마뱀들이었다.
그런 도마뱀들의 몸에 피의 창들이 박혀 들기 시작했다.
도마뱀들은 몸을 웅크리고 그저 방어 태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움직이지 못하는 도마뱀들 앞에 분신이 아닌 ‘진짜 루나’가 나타났다.
루나는 오른손에 압축되어 있던 피를 도마뱀들을 향해 휘둘렀다.
“기요틴 커터.”
루나의 손에 압축되었던 피는 거대한 칼날을 형성하며 뻗어 나갔다.
그리고 피로 만들어진 거대한 칼날이 도마뱀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서걱! 촤아아!
뭉쳐 있던 도마뱀들이 가로로 이등분되며 쓰러졌다.
도마뱀들이 모두 죽자 루나가 손을 뻗었다.
루나의 손에서 나간 피의 칼날이 다시 루나의 손으로 흡수되듯 되돌아왔다.
일곱 명의 분신들 역시 피로 변하며 루나의 손끝으로 흡수되었다.
“이야! 잘 싸우는데?”
처용이 감탄하며 루나에게 다가왔다.
루나의 전투 수준은 생각보다 높았다.
환영을 만들어 적들을 유도하고.
분신을 만들어 적들을 한곳으로 뭉치게 몰아넣는다.
그리고 조용히 강력한 한방을 준비한 본체가 적들을 단번에 쓸어버린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사용했던 마나를 다시 몸으로 되돌리기까지 했다.
최종적인 에너지 소모를 0으로 만든 것이었다.
“마지막에 사용한 그 기술은 검기보다도 세겠는데?”
루나가 사용한 피의 마나를 극한으로 뭉쳐 칼날을 만들어내는 기술.
기요틴 커터의 공격력은 처용이 화염의 절로 사용한 검기보다 강했다.
“왕족이라 그런가? 다른 뱀파이어들과는 스타일이 다르네?”
루나는 처용이 지금까지 봤었던 뱀파이어들과는 전투 스타일이 조금 달랐다.
뱀파이어들은 어둠을 틈타 기습하는 것이 주 전투 스타일이었다.
헌터로 따지면 암살자 클래스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루나의 스타일은 암살자라기보다는 전투 마법사에 가까웠다.
“나도 싸울 수 있다니까.”
루나는 표정 변화 없이 말했지만, 말투에 의기양양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 든든하네.”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 처용이 던전 탐사를 위해 나아가자 루나가 뒤따랐다.
“음? 따라오게?”
루나가 돌아갈 줄 알았던 처용이 묻자.
“구경.”
루나가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처용을 따라왔다.
그녀가 따라와도 딱히 상관은 없었기에 처용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계속 나아갔다.
어차피 이 던전에는 자신 혼자 들어왔기에 누군가를 마주칠 걱정도 없었다.
마주치는 몬스터들을 잡아내며 깊은 숲으로 이동하자 보스 몬스터를 만날 수 있었다.
-크라아아!
보스는 크기로 따지면 가재보다 거대한 크기를 지닌 공룡이었다.
[폭룡 이블 티라노]
[등급 : A급 던전보스]
[특징 : 고대의 숲을 지배하는 최상위 포식자.]
[강철조차 뜯어버리는 치악력을 지니고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스킬 : 철갑 비늘, 강철 이빨, 광폭화…….]
겉모습은 흔히 잘 알려진 티라노 사우르스와 비슷했다.
하지만, 시커먼 비늘과 붉게 번들거리는 눈동자, 화난 듯한 인상 등.
티라노 사우르스가 순둥이로 보일 정도로 험악한 포스를 가진 놈이었다.
처용은 그런 놈을 보며 마치 마음에 든다는 듯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타.”
처용이 입을 열어 아타를 부르자.
-네, 용님.
신수의 격으로 처용의 무리에 속한 아타가 전음으로 대답했다.
“철벽이를 준비해.”
-이미 대기하고 있습니다. 용님.
“좋아!”
처용은 태룡전의 열쇠를 꺼내 게이트를 열었다.
그러자 황금빛 게이트 안에서 보스 몬스터와 맞먹는 크기를 지닌 개미가 걸어 나왔다.
[아이언 앤트리스 제너럴]
[등급 : A급]
[특징 : 앤트리스 퀸이 공들여 만든 최정예 개미.]
[철벽부의 힘을 받아 태어났습니다.]
[철벽부를 활용한 일부 기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킬 : 강화 강철 갑각, 철벽 태세, 갑각 재생…….]
마치 방패처럼 넓고 두꺼운 모양의 다리들.
어떤 공격도 거뜬하게 받아낼 듯 보이는 탄탄하고 육중한 몸체.
이전 처용이 만든 철벽부를 부여한 가재 방패를 베이스로 탄생한 개미였다.
처용이 ‘철벽이’라고 이름을 지어 줄 만큼 견고하고 탄탄한 녀석이었다.
-크라아!
-키이이!
두 거대 괴수가 서로를 마주하고 괴성을 지르며 격돌했다.
-쾅!
티라노의 이빨이 철벽이의 앞다리를 물었다.
철이 휘어지듯 날카로운 소음이 울렸지만, 철벽이의 앞다리는 뜯어지지 않았다.
-콰쾅!
티라노를 밀어낸 철벽이가 앞다리로 땅을 찍었다.
-쾅! 푸슈숫!
땅에서 솟구친 강철 가시들이 티라노에게 박혔다.
처용이 철벽부로 사용하는 기술인 ‘철산 가시지옥’이었다.
이번엔 입을 우물거리더니 티라노를 향해 천라지망을 뱉어냈다.
티라노는 날아오는 그물을 입으로 낚아채 으스러뜨리고 뱉어냈다.
자신을 찔러대는 가시들을 물어 모조리 부숴버린 티라노가 철벽이에게 달려들었다.
-쾅!
티라노는 어떻게든 철벽이를 물어 으스러뜨리려 했지만.
철벽이의 방어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하하하.”
처용은 창과 방패의 싸움을 구경하며 재밌다는 듯 웃고 있었다.
“가시지옥에 천라지망까지 흉내 낼 줄이야.”
철벽이의 실전 테스트는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티라노와 철벽이가 계속 부딪히고 서로 물러난 순간.
처용이 게이트를 열었다.
-키아아!
-키이익!
황금빛 게이트 안에서 철벽이와 같은 크기를 지닌 개미들이 나왔다.
[플레임 앤트리스 제너럴]
[라이트닝 앤트리스 제너럴]
[프로즌 앤트리스 제너럴]
[샤이닝 앤트리스 제너럴]
전원 철벽이와 같은 A급 개미.
아타가 처용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최정예 개미들이었다.
처용은 순서대로 숯불이, 벼락이, 겨울이, 반짝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새로 나타난 네 마리의 개미들이 철벽이에게로 합류했다.
-크르르르!
다섯 마리의 개미들에게 둘러싸인 티라노가 당황했다.
티라노는 가장 약해 보이는 새하얀 개미 ‘반짝이’를 향해 돌진하며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화아악!
반짝이에게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티라노는 정면을 응시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눈을 찌푸렸다.
그 순간 철벽이가 티라노의 앞을 가로막고 붙잡았다.
그리고 사방에서 화염과 번개, 얼음들이 자연재해처럼 쏟아져 나왔다.
-크라라라락!
집중포화를 당하는 티라노가 억울함을 가득 담아 울부짖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