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50화 (50/726)

#050화

“이거, 잘 풀린 건가?”

백호가 궁금한 듯 처용에게 물었다.

“성자는 자신이 한 말을 지킬 겁니다.”

처용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이야기했다.

교단에서의 성자가 가지는 지위와 권한은 막강했다.

그런 그가 처용과의 마찰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걱정은 덜었다.

“성자는 현명한 사람입니다.”

처용이 좀 전에 만난 성자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 먹통들의 수장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요.”

“크하하. 먹통들이라. 정말 어울리는 말이구만.”

처용의 말이 재밌었는지 백호가 웃으며 말했다.

백호 역시 오랜 헌터 생활을 하며 교단과 부대낄 일이 많았었다.

그래서 교단의 헌터들이 답답할 정도로 꽉 막힌 이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교단의 모든 이들이 성자의 의견에 따르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협회장이 걱정을 표하며 처용에게 말했다.

성자가 교단에서 지닌 지위는 막강하나 모든 고위 사제들이 그를 따르는 건 아니었다.

“교단과의 마찰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협회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불과 오늘만 해도 교단의 조사관으로 온 고위 사제가 험한 꼴을 당했으니까.

그들이 처용에게 앙심을 품을 수도 있었다.

“걱정은 감사합니다만 문제는 없을 겁니다.”

처용은 자신감을 가득 담아 말했다.

“성자가 어떤 존재입니까?”

“교단의 수장, 에픽 클래스 헌터 일까요?”

처용의 말에 태민이 대답했다.

“네 그는 S급 헌터, 신을 모시는 신관입니다. 그럼 저는요?”

“……그렇군요.”

처용의 말에 태민이 이해했다는 듯 말하며 안경을 들어 올렸다.

‘그 역시 성자와 같은 신관, 에픽 클래스 헌터다.’

거기에 처용의 성좌는 빛의 신과 같은 최상위 신격이었다.

성자 역시 처용을 ‘신관’이라 말하며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처용을 자신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한 것이다.

“성자가 저에 대해 파악한 이상 교단에서 절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겁니다.”

처용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교단은 실속을 따지는 길드였다.

길드가 없는 개인이라 해도 신관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 방침이었다.

특히, 최상위 신격을 성좌로 둔 신관이라면 더더욱 조심히 행동한다.

커맨더가 길드가 없는 개인임에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용은 성자가 보는 앞에서 고위 사제를 힘으로 압박한 것이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설사 빛의 신이 나선다고 해도.”

사람들이 처용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문제는 전혀 없으니까요.”

자신감이 넘치는 처용의 말이 울리자 협회장이 생각에 잠겼다.

빛의 신은 최상위 신격 중에서도 손꼽히는 성좌였다.

처용은 그런 성좌조차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처용의 성좌 역시 빛의 신에 전혀 꿇리지 않는 신격이라는 것이다.

그의 무력과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들을 보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허허, 정말 든든하군요.”

협회장은 그런 자신감 넘치는 처용을 보며 웃었다.

성자와 대등한 에픽 클래스가 협회를 도와주고 있었으니까.

“성자 덕분에 잘 해결이 되었네요.”

처용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말을 이었다.

“교단이 뱀파이어들을 적대하면 부딪힐 생각도 했었는데 말이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태민이 진심이라는 듯 대답했다.

왠지 처용이라면 수틀리는 순간 교단과 싸울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아! 맞다.”

처용이 무언가 생각난 듯 질문했다.

“혹시 테이머 계열 헌터들의 몬스터는 어떻게 관리되죠?”

“테이머요?”

처용의 질문에 태민이 되물었다.

“테이밍이 된 몬스터를 말씀하시는 거죠? 음…….”

태민이 생각하는 듯 말을 흐렸다.

현재 협회 내에는 테이머 계열 헌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타입이냐에 따라서 다를 겁니다.”

몬스터를 지배하여 수하로 만드는 헌터인 소환사와 네크로멘서 등.

이들은 소환수만을 보관하는 아공간 계열 스킬이 있었다.

정령을 다루는 정령술사는 스킬로 정령을 불러내어 함께 싸우는 이들이었다.

“소환수를 굳이 저희가 파악하거나 관리하지는 않습니다.”

‘소환’이라는 능력 자체가 스킬로 취급되기 때문이었다.

“유진이 역시 직접 소환수들을 관리하니까.”

백호가 커맨더의 이름을 언급하며 말했다.

“흠, 그렇군요?”

처용은 테이머에 관해서는 잘 몰랐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회귀 전에는 테이밍과 비슷한 능력조차 없었다.

하지만 아타와 병정개미들, 뱀파이어들에 거북이까지.

지금은 자신의 휘하에 들어온 이들이 있었다.

언젠가는 이들을 세상에 공개해야 했으니까.

“뱀파이어 때문에 그런 건가?”

백호가 처용을 보며 짐작하듯 물었다.

“뭐 그렇죠.”

처용은 그 말에 대답하며 말을 이었다.

“서로 간에 도움을 주기로 약속을 했거든요.”

“하긴 그들도 마인들에게 피해를 받았으니까.”

백호가 이해한다는 듯 대답했다.

“한번 만나 보고 싶구만.”

“뱀파이어에 관한 편견이 퍼져있어서 그렇지 나쁜 종족은 아닙니다.”

처용이 웃음을 지으며 뱀파이어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들이 피만으로 살아가는 종족이 아니라는 정보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편견을 많이 지울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처용이 그리는 미래를 위해서 이종족들에 관한 편견을 지우는 것은 중요했다.

“그들 역시 저희와 비슷한 식사를 한다는 게 흥미롭군요.”

처용의 말을 들은 태민이 흥미롭다는 듯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백호와 협회장 역시 나쁜 반응은 없어 보였다.

‘예상은 했지만, 다들 오픈마인드라 다행이네.’

이들은 맹목적인 교리만을 따르는 교단과는 달랐다.

“이종족들도 사람이라네. 유진이와 같이 그들과의 마찰을 중재하고 다니면서 깨달았지.”

백호가 과거를 회상하듯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지구에 나타난 이종족들과의 싸움을 중재한 S급 헌터들 중에는 커맨더도 있었다.

그의 파티원이었던 백호 역시 함께 중재를 도왔었다.

‘이종족들을 합류시키는 건 어렵지 않겠네.’

미소를 지은 처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잠시만요. 처용 님.”

협회장실을 나가려는 처용을 태민이 불러 멈춰 세웠다.

“던전 일정 잡아놨습니다.”

태민이 웃음을 지으며 한 말에 처용 역시 입가에 미소가 실렸다.

***

예약된 던전 확인까지 끝마친 처용은 협회를 빠져나왔다.

처용은 곧장 돌아가지는 않았다.

서울에서 중요한 볼일이 남았으니까.

“과장님이 알려줬던 곳이……, 이쪽인가?”

핸드폰의 지도를 보고 찾아간 처용은 곧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총 4층으로 구성되어있는 넓은 건물이었다.

고개를 든 처용은 도착한 가게의 간판을 보았다.

[77계 치킨 – 강남본점]

강남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브랜드 치킨집이었다.

기대감에 미소를 지어 보인 처용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점원의 인사와 함께 처용이 식당 내부를 둘러봤다.

아직 낮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찾으시는 메뉴라도 있으신가요?”

처용은 점원의 말을 듣고 간판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기 있는 모든 종류의 치킨을 각각 백 개씩.”

마지막으로 점원을 본 처용이 말을 마쳤다.

“가능합니까?”

“……네?”

처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점원이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저기 있는 모든 메뉴 백 개씩 달라고 했습니다.”

다시 한 번 또박또박 이야기한 처용의 말을 들은 점원은 어디론가 달려갔다.

달려갔던 점원은 누군가와 함께 돌아왔다.

40대로 보이는 조리모를 쓴 남자.

“치킨을 백 개 주문하셨다고요?”

처용이 그의 명찰을 확인하자 이 가게의 사장임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백 개가 아니라 모든 메뉴 백 개씩 주문했습니다.”

사장이 볼 때 처용은 농담으로 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계산 먼저 도와드리겠습니다. 할부로 해드릴까요?”

사장은 마지막 확인 겸 계산을 요구했지만.

“일시불로 해주시죠.”

처용은 망설임 없이 카드를 내밀었다.

VIP라는 문자가 금색으로 번쩍이는 검은 카드.

처용의 카드를 확인한 사장의 눈빛이 바뀌었다.

“……모든 메뉴 백 개씩 주문받았습니다.”

계산을 끝낸 사장이 처용을 향해 말했다.

“양이 많은 만큼 조금 시간이 걸립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 정도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처용은 대기석에 앉아 눈을 감고 조용히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본 사장은 곧장 오더를 내렸다.

“모든 튀김기 풀 가동시켜.”

“사, 사장님? 정말 모든 메뉴 백 개씩 만드시게요?”

점원이 처용을 힐끗거리며 말했다.

“그 카드 ‘헌터 전용 블랙카드’다.”

헌터 전용 현금거래 카드.

협회장이 헌터들의 복지와 혜택을 위해 만든 정책의 산물이었다.

마일리지 적립이나 연말정산 등 소비에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중 블랙카드는 상위 헌터들 중에서도 협회의 인정을 받은 헌터만이 가질 수 있는 VIP 카드였다.

태민에게 라이센스를 받을 때 함께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사장은 처용의 왼손에 끼워진 반지, 헌터 라이센스도 확인했다.

“아마 레이드에 필요한 보급품일 거야.”

치킨집 사장은 헌터들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블랙카드를 지닌 상위 헌터가 치킨을 대량으로 주문했다.

던전 일과 관련된 것이 분명했다.

‘헌터들이 먹어야 하는 치킨을 대충 만들 수는 없지.’

사장은 그들에게 관심이 많은 만큼 큰 고마움도 가지고 있었다.

헌터들이 몬스터와 싸워주고 있기에 자신이 편안하게 장사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사장이 팔소매를 걷고 조리실로 돌아갔다.

일개 튀김 조리사로 시작해 치킨집 사장까지 올라온 그였다.

그 16년의 세월을 걸고 단 하나의 불량품 없이 제대로 만들 생각이었다.

“헌터들이 먹어야 하는 치킨이다. 실수 없이 똑바로 해!”

“예!”

사장의 말에 조리실에 있는 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처용이 즐거운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던 중 점원이 처용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 지금 나온 것들은 그냥 둘까요? 아니면 어디로 보내드릴까요?”

처용은 치킨이 눅눅해질 수 있다는 점원의 말에 곧장 눈을 뜨고 가져오라고 했다.

‘눅눅한 상태로 둘 수는 없지.’

치킨이 나오는 족족 보물전으로 집어넣었다.

얼마 전 ‘정지장’이 생긴 진열대 쪽으로 말이다.

이것으로 보물전에 보관된 치킨은 ‘바삭한 상태’를 계속 유지할 것이다.

‘흐, 흐흐흐.’

처용은 치킨들을 챙길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처용은 주문했던 모든 치킨을 얻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점원이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며 큰 손님(?)을 배웅했다.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은 처용이 태룡전으로 돌아와 정지장을 확인했다.

치킨 박스와 콜라, 맥주가 가득 쌓여 있었지만, 아직 비어있는 공간은 넉넉했다.

“뭔가를 많이 챙겨오셨네요. 용님.”

마침 보물전을 정리하던 아타가 다가왔다.

“아주 중요한 것들이지.”

“정지장에 두실 정도면 정말 중요한 것들이겠네요?”

정지장 진열대는 처용과 성좌들 외에는 손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타는 정지장 안에 놓인 상자들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타를 지켜본 처용은 정지장 안에서 치킨을 한 상자 꺼냈다.

“먹어 볼래?”

일회용 포크로 치킨 한 조각을 꺼낸 처용이 아타에게 내밀었다.

“식량이었나요?”

아타가 의외라는 듯 처용에게 되물었다.

중요한 물건이 식량일 줄은 몰랐으니까.

‘냄새가?’

아타는 처용이 내민 치킨 조각을 받고는 홀린 듯 입으로 가져갔다.

-바삭!

튀김이 부서지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거 정말 맛있어요!”

아타가 환하게 웃으며 크게 외쳤다.

손에 들렸던 치킨 조각은 순식간에 없어졌다.

“아…….”

빈 포크를 확인한 아타의 더듬이가 너무나 아쉬운 듯 축 늘어졌다.

그러고는 처용의 들고 있는 치킨 박스를 간절하게 바라봤다.

“하하하.”

그 모습을 본 처용은 웃음을 터트리며 치킨 조각을 하나 더 내밀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용님!”

아타의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그게 뭐야?”

루나가 보물전에 들어오며 처용에게 물었다.

그녀를 뒤따라 온 류마는 처용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루나! 이거 정말 맛있어요!”

아타가 치킨 박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처용은 다가온 루나를 보며 생각하다가 그녀에게도 치킨을 건넸다.

“너도 먹어 볼래?”

처용이 건넨 치킨을 받은 루나는 냄새를 확인하더니 입을 열었다.

“칠면조인가?”

밤의 성채에서 나온 만찬 중 비슷한 냄새를 풍긴 음식이 있었다.

“그거와는 차원이 다를 거야.”

치킨을 평가하는 루나를 본 처용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흐음? 날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을 텐데?”

처용과 치킨을 번갈아 본 루나가 말했다.

그녀는 뱀파이어들 사이에서 미식가라고 불릴 정도로 입맛이 까다로웠다.

칠면조 요리는 겉보기와는 다르게 질기고 마른 식감이었다.

그래도 처용이 준 것이니 제대로 평가하며 먹어 볼 생각이었다.

치킨 조각에 별 기대는 하지 않고 입에 넣은 순간.

-바삭!

딱딱해 보였던 튀김은 마치 과자처럼 잘게 부서지며 바삭한 소리를 냈다.

“으음~ 흠!?”

그 튀김 속에 숨겨져 있던 촉촉한 닭고기의 육즙이 입안으로 뿜어져 나왔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맛의 향연이 입안에 휘몰아쳤다.

루나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리고.

“맛있어!!”

보물전이 울릴 정도로 큰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헙!”

뒤늦게 자신이 내뱉은 말을 인식한 루나가 입을 막았지만.

이미 뱉은 감탄사는 아직도 메아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하하. 맛있지?”

처용의 말에 얼굴이 달아오른 루나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치킨을 한입 더 물었다.

창피하긴 해도 이 음식의 맛은 정말 훌륭했으니까.

“이럴…… 수가!”

루나를 뒤에서 지켜보던 류마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왕족인 그녀는 밤의 성채에서 수많은 만찬을 경험했었다.

마음에 들면 그저 침묵을 지키며 먹는 편이었지 단 한 번도 ‘맛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 도도한 자존심을 가진 뱀파이어 미식가 루나가 저 요리 앞에 무너졌다.

도대체 저것이 어떤 맛을 지니고 있길래?

“아…….”

치킨을 삼킨 루나의 얼굴이 아쉬움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아타와 같이 처용이 들고 있는 치킨 박스를 응시했다.

“하하.”

치킨을 갈망하는 두 꼬마(?)를 본 처용이 웃음이 나왔다.

류마 역시 이 치킨의 맛이 정말 궁금한 듯이 보고 있었다.

‘애초에 먹으려고 많이 산 거였으니까.’

처용이 정지장 안에서 치킨 박스를 종류별로 두 개씩 꺼내었다.

그러자 마치 해바라기가 피어나듯, 사람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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