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화
연아가 서울로 돌아가고 이틀 뒤 혁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처용이 인첸트를 맡겼던 대 괴수용 무구들의 마감이 모두 끝났다는 연락이었다.
곧장 지하 재고관리 센터에 방문하자 혁수가 처용을 반겼다.
“자네 왔는가?”
“다 만들어졌다고 해서요.”
“자네 물건은 언제나 1순위야! 하하하!”
혁수가 진열된 물건들을 보여주며 자신 있게 웃었다.
투박한 투창 원형은 무엇이든 뚫을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움이 빛났고.
3미터에 육박하는 대검은 무엇이든 반토막 내버릴 것 같은 묵직한 예기를 빛냈다.
처용은 3미터 크기의 묵직한 전투 해머를 들어 보았다.
[파괴의 무게추 / 아티팩트]
[등급 : 유니크]
[충전 강타와 지진의 힘이 담겨 있습니다.]
[해머 추에 정통으로 타격 시 상대의 방어를 크게 낮추고 방어 스킬을 해제합니다.]
-지진의 일격 상시 적용.
“흠!”
성능은 아주 훌륭한 편이었다.
만약 가재와 싸울 당시 이 아티팩트가 있었다면 사냥이 매우 쉬웠을 것이다.
“역시! 훌륭합니다.”
무구들은 전부 화염의 절과 같은 유니크급 무구들이었다.
“자네가 좋은 걸 가져다줘서 그런 거 아닌가?”
혁수도 만들어진 작품이 마음에 드는지 기뻐 보였다.
“자네 덕분에 내 스킬 레벨이 오르겠어. 하하.”
“그거 희소식인데요?”
처용이 볼 때 혁수의 실력은 충분히 더 성장할 수 있어 보였다.
그가 더 성장한다면 분명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아, 처용 님. 마침 여기에 계셨군요.”
공방의 문이 열리더니 태민이 들어왔다.
“무슨 일 있나요?”
처용은 드디어 던전이 배정된 것인가 했지만.
곤란한 듯 보이는 태민의 얼굴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교단에서 처용 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이 있습니다.”
“교단에서요?”
며칠 전에 처용이 저주의 근원 중 하나를 건네면서 교단에 연락하라고는 했었다.
아마도 그 일 때문인 것 같았다.
“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합니다만…….”
태민이 그간 사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한국에 있는 교단 지부에 저주의 파편을 보내자 곧장 연락이 왔었다.
답신이 오기까지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었다.
심지어 답신이 온 곳은 한국 지부가 아닌 바티칸에 있는 교단의 본부.
다른 것도 아닌 악신의 흔적이니만큼 교단은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교단의 본부에서는 즉각 한국으로 사람들을 파견했다.
이 일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생각보다 너무 적극적으로 움직였는데?’
처용이 팔짱을 끼며 잠시 생각했다.
“만나 보죠.”
“괜찮을까요?”
태민이 걱정되는 듯 말했지만.
“안 괜찮을 건 없죠.”
처용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교단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인지 직접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태민을 따라 협회장실로 올라가자 백호와 협회장 그리고 처음 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교단의 사제 옷이라기보다는 연구원처럼 보이는 흰 가운을 입은 두 명.
오른쪽에 외눈 안경을 쓴 30대로 보이는 검은 머리의 남자.
그리고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갈색 머리의 남자애였다.
“이분들인가요?”
처용이 둘을 응시하며 말했다.
외눈 안경을 쓴 남자가 일어나더니 성호를 그리며 인사를 건넸다.
“사제 박지원이라고 합니다.”
겉모습을 보고 예상했었지만, 그는 한국 사람이었다.
[이름 : 박지원]
[레벨 : 107]
[칭호 : A급 헌터, 빛의 가호]
[클래스 : 성역의 사제]
[특징 : 신성력을 활용한 결계 마법을 다루는 전투 사제입니다.]
[다양한 결계를 만들어 적을 고립시키고 아군을 유리하게 만드는 유니크 클래스입니다.]
[스킬 : 회복의 결계, 차단의 결계, 샤이닝 레이저……]
박지원을 본 처용의 눈이 가늘어졌다.
‘성역의 사제 중 하나가 직접 왔다?’
성역의 사제는 교단에 존재하는 유니크 클래스로 ‘정예병’으로 취급되는 이들이었다.
교단의 정예들은 A급이 되는 순간 고위 사제의 지위를 얻는다.
눈앞의 박지원처럼 말이다.
“고위 사제께서 저를 왜 찾으시죠?”
처용의 말에 지원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저 이름만 밝혔을 뿐인데 자신이 고위 사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말했으니.
“당시 상황을 들을 수 있을까 해서요.”
지원을 잠시 바라본 처용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굳이 제가 아니어도 여기 계신 분들이 다 말씀해 주셨을 텐데요?”
처용은 지원의 말에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당사자에게 직접 듣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제가 거기서 듣고 본 것들은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이야기한 것들입니다만?”
교단의 조사관을 상대로 처용이 삐딱하게 나오자 협회장실의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
교단은 거대 길드 중에서도 한 손가락 안에 드는 세력이었다.
때문에 한 나라의 통수권자도 교단의 조사관은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협회장과 태민은 불안한 눈빛으로 처용을 바라봤지만.
처용은 이유가 있어서 이러는 것이었다.
성역의 사제는 전투에 특화된 ‘전투 사제’이다.
말로는 조사라 했지만 분명 누군가와의 전투를 상정하고 온 것이었다.
“저는 교단 본부에서 정식으로 파견을 나온 조사관입니다. 협조해주시죠.”
지원이 처용을 노려보며 말했다.
“협조가 아니라 협박처럼 들리는데요?”
처용이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그 모습에 지원의 눈가가 조금 일그러졌다.
“간 보면서 시간 질질 끌지 마시고 본론을 꺼내시죠. 저는 바쁘니까.”
처용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말했다.
지원은 그 모습에 못마땅한 듯 안경을 올리고 입을 열었다.
“저희한테 숨긴 정보가 있지요?”
“없는데요?”
능청을 떨며 대답한 처용을 보며 지원의 미간이 구겨졌다.
처용은 눈앞에 있는 조사관에게는 제대로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누군가의 대리인에 불과했으니까.
지원의 옆, 표정 변화 없이 아래를 바라보며 간판처럼 가만히 서 있는 소년.
처용은 지원이 아닌 그 소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피차 답답한 상황 만들지 맙시다.”
소년을 응시하며 말한 처용은 그의 정체를 입에 담았다.
“성자(聖姿).”
처용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다른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지원은 점점 커지는 눈에 경악을 담았고 백호는 설마 하는 눈빛으로 소년을 바라봤다.
“대리인 세우지 말고 나오시죠?”
처용이 소년을 노려보며 말하자.
“어떻게…….”
소년의 입에서 어린아이라고 할 수 없는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알아본 겁니까?”
소년 ‘성자’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처용은 성자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처음 소년을 통찰의 눈으로 응시했을 때.
[토마스 폴]
[해당 인물은 각성자가 아닙니다.]
[현재 ‘아바타’에 빙의중입니다.]
각성하지도 않은 소년.
그러나 소년의 몸에서는 강한 신성력이 느껴졌다.
추가로 통찰의 눈에 비친 ‘아바타’라는 정보.
아바타는 성자가 독실한 믿음을 지닌 일반 신도의 몸을 빌릴 수 있는 스킬이었다.
신들의 권능 ‘신내림’의 하위 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스킬로 성자가 직접 지부에 방문하지 않고 명령을 하달하거나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누가 날 염탐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눈앞의 소년, 성자를 바라본 처용이 생각했다.
‘아바타를 쓰면서까지 직접 움직일 줄이야.’
처용은 이들을 만나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두 번째 에픽 클래스 헌터가 나타날 줄은 몰랐습니다.”
성자의 말에 처용이 웃음을 지었다.
그의 능력 중에 성좌와 연결된 이들을 알아보는 스킬이 있었다.
처용이 신관은 아니라 해도 성좌들과 연결된 것은 맞았기에 신관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성자가 앞으로 나와 처용과 마주했다.
“빛의 신님을 보시는 신관, 부족하지만 성자라 불리고 있습니다.”
“한처용이라고 합니다.”
처용은 성자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항상 꽉 막히고 답답한 모습을 보이던 교단이었다.
그런 교단에서 성자는 유연하고 효율적인 생각을 하는 이였다.
회귀 전에도 그와는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성녀’ 때문에 그를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도 있었다.
“정말 성자이신 겁니까?”
협회장이 성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속여서 죄송합니다. 저도 은밀하게 온 것이라서요.”
성자는 협회장과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전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본 겁니까?”
처용을 바라본 성자가 정말 궁금한 듯 물었다.
“오히려 제가 궁금하네요. 어떻게 절 알고 찾아온 것인지?”
“그 사악한 저주를 봉인한 기운은 커맨더의 것이 아니더군요.”
처용은 저주의 파편에 명환부를 붙여 사악한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게 막았었다.
성자는 명환부의 기운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그 기운의 주인을 알아본 것이었다.
‘아티팩트를 만들고 담았어야 했나? 아니. 아니다.’
성자는 이번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움직였다.
아티팩트를 만들었다고 해도 명환의 힘이 담긴 이상 성자는 그 기운을 알아볼 것이다.
“그래서, 볼일은 저를 직접 확인하는 게 전부입니까?”
처용은 본론을 이야기했다.
자신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난 것이면 가장 좋은 상황이었지만.
“그 던전을 조사해 봤었습니다.”
성자의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저주에 변이된 괴물들은 원래 뱀파이어라는 종족이더군요.”
처용은 표정 변화 없이 성자를 바라봤다.
“그래서요?”
“던전에 있던 관의 숫자랑 사체의 수가 맞지 않더군요.”
성자의 말에 협회장실에 있는 사람들이 뜨끔했다.
그러나 처용의 표정은 평온했다.
“제가 열 몇 마리 정도는 가루로 만들어 버렸습니다만?”
처용의 말은 사실이었다.
현아와 헌터들을 구할 때 몰려든 구울들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그렇군요.”
성자가 웃음을 지으며 처용에게 말했다.
“혹시 도망간 구울이나 뱀파이어는 없었습니까?”
“도망친 놈들은 없었습니다.”
처용은 확실하게 말했다.
‘도망간’ 놈들은 없는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혹시 뱀파이어를 숨겨주거나 했다면…….”
옆에 있던 지원이 처용을 보며 말했을 때.
“제가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자가 지원의 말을 차단했다.
“죄송합니다.”
처용은 지원의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들이 뱀파이어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어둠에 속하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 자체가 ‘이종족’이라는 이유가 크기 때문이었다.
교단의 교리 중 하나가 바로 ‘인간제일주의’였으니까.
좋게 포장해서 ‘사람이 먼저다’라고 이들은 말하지만.
처용의 눈에는 그저 이종족들을 미개하다며 탄압하는 것으로 보였다.
마치 가증스러운 순혈자들처럼.
“뱀파이어들을 숨겨주었다면 뭐 어쩌실 겁니까?”
처용이 성자와 지원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말에 지원이 격하게 반응했다.
“그 사악한 놈들을 숨기다니! 제정신입니까!”
지원이 처용을 향해 소리쳤다.
“교리에 따라 당장 그 이단들을 잡아 심판해야-.”
“교리? 흐, 흐흐.”
그 말에 처용은 헛웃음이 나왔다.
정확히는 지원을 향해 비웃음을 보냈다.
그 모습을 본 지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웃은 겁니까?”
“그런데요?”
지원의 얼굴이 붉어지며 분노를 그려냈다.
“감히!”
그 모습을 본 처용이 낮게 한 마디를 읊조렸다.
“야.”
목소리에 신력을 섞어 말하자 마치 공기가 무거워진 듯 압력이 가해졌다.
그 압력이 지원을 짓누르고 있었다.
“경고하는데.”
처용의 입에서 더 이상 존대가 나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처용이 매섭게 지원을 내려다보았다.
신력이 섞인 처용의 목소리가 울리자 압력이 더 강해졌다.
“으윽…….”
지원은 신성력을 뿜어 저항하려 했지만.
‘신에게 빌린 힘’인 신성력으로는 처용이 가진 교유의 신력을 밀어낼 수 없었다.
“네놈들의 교리를 나한테 들이밀지 마라.”
이놈들에게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이래야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까.
빛의 신을 따르는 교단은 언뜻 정의로워 보였지만.
강한 세력을 가진 성좌들의 문화는 존중하고 약한 세력의 성좌들은 무시했다.
이 법칙에 맞게 교리를 적용하는 놈들이 교단이었다.
빛의 신은 악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지만.
성좌들과의 관계 등 다른 일들에서는 효율성과 실리만을 따지는 성좌였다.
처용이 볼 때 교단은 그저 자기들 입맛대로 사는 놈들이었다.
‘성녀에게 한 짓거리만 봐도…….’
그랬기에 눈앞에 있는 소년, 아니 어딘가에 있을 청년 성자가 안쓰러웠다.
처용이 신력을 갈무리하자 울려 퍼지던 압력이 사라졌다.
“으어-.”
압력에서 풀린 지원이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협회장과 태민은 그 모습을 불안하게 보고 있었다.
반대로 백호는 처용의 행동이 흥미로웠는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저희 사제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부하가 험한 꼴을 당했는데도 성자가 도리어 사과를 건넸다.
“그보다도 보통 신관이 아니셨군요.”
신의 기운에 민감한 성자이기에 처용의 수준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성자는 처용의 기운을 신이 빌려준 힘 ‘신성력’이라고 믿고 있었다.
“성자님의 사과는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처용이 성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교단의 잣대를 저한테 들이밀지 마십시오.”
“신의 신관한테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성자님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시겠죠.”
처용이 아직도 식은땀을 흘리는 지원을 노려봤다.
“교단의 성자로서 당신을 적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걸 교단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성자가 직접 자신의 입으로 말했으니 교단에서 귀찮게 물고 늘어질 가능성은 적을 것이다.
“그리고 저는 다짜고짜 뱀파이어들을 적대할 생각도 없습니다.”
“성자님!”
성자의 말에 지원이 놀란 듯 소리쳤다.
“저희가 그들에 대해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처용은 성자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뱀파이어가 커피를 마신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실없는 생각을 한 처용은 잡생각을 날리고 성자를 바라보았다.
“뱀파이어들보다는 마인들이나 악신에 신경 써 주시죠.”
“저희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말해 드리죠.”
처용은 성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뱀파이어들은 그 악신의 저주에 피해를 받은 피해자들이었습니다.”
“그렇군요.”
성자는 뱀파이어가 구울로 변한 것만 알아냈지 왜 변한 것인지는 알지 못했었다.
“정의를 집행하는 교단이라면 무엇이 우선인지 잘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처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성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처용 님과 만나 얘기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전 그저 그랬습니다.”
처용이 한 말에 성자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음엔 저와 직접 만났으면 좋겠군요.”
처용에게 인사를 건넨 성자는 지원과 함께 협회장실을 나갔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