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47화 (47/726)

#047화

[죄악의 근원이 꿈틀댑니다.]

분명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처용은 머리를 흔들고 다시 똑바로 메시지를 마주 봤다.

-스스.

시스템 메시지가 점점 사라지더니 눈앞에서 없어졌다.

마치 처용에게서 자신을 숨기려는 것처럼.

‘어떻게 된 거야!?’

처용은 눈을 감고 육체의 내면을 관조했다.

‘이상한 점은 없다.’

하지만, 육체에 이상한 점이 없다는 게 더욱 이상하게 느껴졌다.

시스템 역시 분명하게 죄악의 근원을 감지했다.

얼마 안 가 사라져 버렸지만…….

‘어둠의 마력에 반응한 건가?’

뱀파이어는 어둠의 마나에 축복을 받은 종족이다.

일반 뱀파이어도 아닌 왕족의 피였기 때문에 근원이 반응한 것일 수도 있었다.

여래는 그런 처용의 혼란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근원이 반응했느냐?]

“어떻게 아셨습니까?”

여래의 말에 처용이 놀라 대답했다.

[아주 미세하게 전과 같은 느낌을 받았느니라.]

이전 튜토리얼 던전에서 처용이 무언가에 사로잡혔을 때처럼.

여래는 순간적으로 그때와 같은 ‘순수한 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뭐가 느껴져야 조치를 취하든 할 텐데 말이죠.”

[이전에 이야기했던 조치 외에는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겠구나.]

신력을 계속 회복하는 것.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는 그것뿐이었다.

“문제가 있는 겁니까?”

류마가 걱정된 듯 물었지만.

“문제는 없어. 아니, 루나가 도와준 덕분에 더 많은 걸 얻었어.”

이대로 억누르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 죄악의 근원이었다.

언젠가는 근원의 실체와 제대로 마주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처용이 손을 들어 올리자 검은 문자가 새겨진 부적이 만들어졌다.

“암영부-그림자 은신.”

어둠의 마나가 피어나 뭉쳐 들더니 처용의 몸을 두르기 시작했다.

-스르르.

어둠에 감싸진 처용의 몸이 점점 사라졌다.

정확히는 근처에 있는 그림자에 몸을 숨긴 것이었다.

“어, 어떻게 저희들의 능력을?”

“뱀파이어들의 능력을 참고한 기술이긴 해.”

눈앞에서 사라졌던 처용이 류마의 뒤에 나타나며 말했다.

정확히는 류마의 그림자 쪽으로 은밀히 이동해 있다가 나타난 것이었다.

처용이 뱀파이어들과 수십 번을 싸우며 그들의 기술을 훔쳐 배운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모르던 건데.”

알고 있던 암영부 말고 더 얻은 능력이 있었다.

[식신(式神)부]

[속성이 담긴 자연부를 다양한 형체로 변형시켜 식신을 만듭니다.]

[더 많은 자연부를 중첩 시킬수록 더 강한 식신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식신의 능력치는 소환사의 스테이터스의 일부만큼 측정됩니다.]

처용이 화염부를 한 장 만들어 식신을 만들어보았다.

화염부가 타오르며 덩치를 키우더니 불타는 새의 형상을 갖추었다.

“오?”

감탄한 처용은 자신이 만든 불새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명령을 내려 보았다.

“대지의 손하고 느낌이 비슷하네.”

새는 처용의 명령에 따라 허공을 비행하다가 대장간 화로로 날아가 불을 뿜었다.

[이건 많은 부분에서 활용할 수 있겠구나.]

여래가 재밌다는 듯 불새를 바라보며 말했다.

처용 역시 여래의 말에 동의했다.

자연부 자체만으로도 많은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던 처용이었다.

여기에 더 많은 전략적 가능성이 열린 셈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보물전에 정지장이 생겼네요.”

보물전 진열대 일부가 투명한 막에 쌓였다.

정지장의 능력은 재료가 손상되지 않게 신선한 상태 그대로 보관하는 기능이었다.

회귀 전에는 크게 쓰임새를 찾지 못한 기능이었지만.

“이 기능이 정말 필요했습니다.”

[생각해 둔 것이 있나 보구나.]

“예.”

처용은 이 기능을 아주 요긴하게 활용할 부분을 생각해 두었다.

“그럼,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 내가 도와줄 차례네?”

처용이 루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받은 것이 큰 만큼 충분히 돌려줄 생각이었다.

“네가 성장하려면 뭐가 필요하지?”

“빠르게 성장하려면 우선 피가 필요해.”

“예상은 했지만, 정확히 어떤 피가 필요한데?”

“강한 존재의 피 그리고 어둠에 가까울수록 좋아.”

뱀파이어다운 방법이었다.

“나는 어때?”

처용이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한 존재, 그리고 좀 전에 되찾은 어둠 속성 마나로 어둠에 가까워야 한다는 요구도 충족했다.

루나가 말한 조건에는 딱 맞는 셈이었지만.

“지금은…… 무리야.”

루나가 아쉬운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처용의 목덜미를 물었을 때 알 수 있었다.

송곳니를 통해 느껴지는 처용의 피는 지금의 그녀가 흡수하기엔 무리였다.

그리고.

“섞여 있는 게 너무 많아! 어떻게 그 많은 종류의 마나가 한 몸에 있는 거야?”

루나가 처용을 보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좀 특별하긴 해.”

“그것만이 아니야…… 너도 신격을 가지고 있었어?”

어제 처용이 자신에 대해 말할 때는 대략적으로만 말했기에 이들은 몰랐었다.

“맞아.”

“저, 정말입니까?”

루나의 말에 처용이 긍정했고 류마는 놀란 듯 대답했다.

“사정이 있어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신들과 같은 권능을 쓸 수 있어.”

처용이 황금빛 신력을 뿜어내자 루나와 류마의 눈에 놀라움이 일렁였다.

“아쉽네, 가능하면 내 피로 빠르게 끝내는 건데.”

처용은 진심으로 아쉬운 듯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루나는 속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신격이 흐르는 피.

피로 성장하는 루나에게 있어 최고의 영약과도 같았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영약을 먹는 건 맹독을 들이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아쉬워도 불가능해. 아마 내가 죽을 거야.”

루나는 고개를 저으며 단념했다.

“잠깐! 어둠에 가까운 피라고?”

잠깐 생각에 잠겼던 처용이 무언가 번뜩인 듯 말했다.

“동족은 제외하고.”

“밤의 성채를 습격한 놈들. 그놈들은?”

처용의 말에 루나가 잠시 생각했다.

“흑마법을 다루는 인간의 피라면 딱 좋을 거야.”

루나의 말을 들은 처용이 웃음을 지었다.

그녀에게 갖다 줄 아주 좋은 식재료 후보들이 있었다.

“마인…….”

그들의 피라면 루나에게 딱 맞는 영양식(?)이 될 것이다.

“마인을 잡는 대로 피부터 뽑아야겠네.”

“제가 필요하면 말씀만 하십시오. 용님.”

류마가 자신감을 보이며 처용에게 말했다.

마인은 이들에게 있어서도 원수였다.

거기에 루나의 성장에 필요하니 적극적으로 돕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싸울 수 있어.”

처용은 루나의 말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겉모습은 아타와 비슷한 나이 때로 보이는 어린아이였지만.

그녀의 등급은 A급, 거기에 왕족이니 일반 뱀파이어와는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을 것이다.

처용이 루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지금의 루나 님은 아마 저와 비슷할 것입니다.”

“그래?”

류마와 비슷한 수준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되고도 남는다.

“다음 던전 일정이 잡히면 전체적으로 확인을 해야겠네.”

새로 얻은 기술들과 뱀파이어들의 전력 등 확인할 것들이 많았다.

가용 가능한 전력을 미리 파악해 둬야 무슨 일이 발생하면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오늘 볼 일은 다 끝난 것이냐. 제자야?]

“무슨 일이 있습니까?”

처용이 궁금한 듯 물었다.

[열쇠를 잠시 줘 보거라.]

“알겠습니다.”

여래는 새로운 전각을 열어주기 위해 처용을 찾았던 것이었다.

처용은 태룡전의 열쇠를 꺼내 여래에게 넘겼다.

“안식전인가요?”

[잘 아는구나?]

“그 전각이 열리는 조건은 알고 있었습니다.”

처용의 말에 웃어 보인 여래가 신력을 뿜으며 열쇠에 힘을 주입했다.

[안식(安息)전이 개방되었습니다.]

시스템을 확인하자 처용이 예상한 전각이 개방되었다.

보물전을 나와 확인하자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전각이 눈에 보였다.

대신들이 거주하는 중앙의 가장 큰 전각, 성역의 이름과 같은 태룡전.

그 왼쪽에 자리한 보물전.

그리고 오른쪽에 자리한 새로운 전각, 안식전이 나타났다.

-끼이이.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벽과 천장에 걸려 있던 연등에 불이 들어오며 내부가 환해졌다.

고급스러운 한옥식 디자인의 넓은 로비.

정면에 연등을 따라 쭉 이어진 복도가 보였다.

그리고 로비의 양옆에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마치 한옥 호텔과 같은 분위기.

복도를 따라 걷자 복도 양옆에 나열된 미닫이문들이 보였다.

-드르륵.

근처 미닫이문 하나를 열자 넓은 방에 배치된 소파와 상 등 각종 가구와 편의 시설들이 보였다.

“굉장합니다. 동방 제국의 황궁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여기가 굉장한 장소이긴 하지.”

놀라움을 표하는 류마에게 처용이 웃으며 대답했다.

루나 역시 신기한 듯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굉장히 넓어, 우리 일족 전부가 들어와도 될 것 같아.”

루나의 말대로 안식전은 많은 이들이 거주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한 개의 층에는 100여 개의 미닫이문이 있었고 총 10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호텔로 따지면 천 개의 방이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이미 생성된 보물전이 추가로 성장하는 것처럼.

안식전도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이제 손님을 홀대할 일은 없겠군요.]

“보살님.”

위층을 보고 오는 길인지 계단에서 보살이 내려왔다.

처용은 여기저기를 구경하는 뱀파이어들을 바라보며 보살에게 말했다.

“저들을 데려와서 안식전이 개방된 것이지요?”

[알고 있네요. 계승자.]

회귀 전, 이종족들을 재앙으로부터 대피시키기 위해 그들을 태룡전에 들인 적이 있었다.

안식전은 그 일이 있고 얼마 후에 개방되었었다.

[이 성역은 여러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처용은 보살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았다.

“방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처용이 태룡전에 대해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 성역은 세 명의 대신이 종말에 대비하여 만든 장소라는 것.

[맞아요.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악신들과의 전쟁 당시.

태룡전은 생존자들의 마지막 안식처이자 최후의 저지선이었던 성역이다.

그때는 크타니드와 배신자들의 손에 무너져 버렸었지만…….

“여기가 무너질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처용이 두 주먹을 강하게 쥐며 말했다.

“두 번 다시는!”

보살은 처용을 말을 듣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처용은 이곳이 무너지는 것을 직접 경험한 당사자였다.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처용에게서 아린 감정이 느껴졌다.

[계승자…….]

“이번엔 다를 겁니다.”

처용의 목소리에서 분노가 사라지고 침착함이 되돌아왔다.

그 당시를 분노하고 슬퍼한다고 해서 종말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제가 반드시 막을 겁니다.”

[계승자는 혼자가 아닙니다.]

보살이 처용의 손을 잡아주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려 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보살님.”

처용은 진심으로 감사를 담아 전했다.

그녀에게서 전해져 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으니까.

“그보다 보살님도 자리를 비우셨던 겁니까?”

여래와 미륵이 자리를 비울 때도 그녀만큼은 태룡전에 있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원래 태룡전의 열쇠를 개방해 주는 역할도 보살이 했었다.

그런데 그녀를 대신해 여래가 와서 개방해 주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것이 최근 성좌들이 자리를 비우는 이유와 관련이 있어 보였다.

[손님이 왔었다고 해야 할까요?]

“손님이요?”

다른 신이 이곳에 방문했던 것인가 생각했지만.

누구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조만간 계승자에게도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하하.”

처용은 굳이 더 캐묻지 않았다.

성좌들이 하는 행동은 아마 자신을 위해, 더 나가아 종말을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위대하신 분을 뵙습니다.”

구경이 끝났는지 류마와 루나가 처용에게 다가왔다.

[계승자를 도와주는 동안 이곳에서 지내는 것은 어떤가요?]

“이, 이렇게 훌륭한 곳을 써도 괜찮은 겁니까?”

[빈방은 많으니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류마가 감격한 듯 감사를 전했다.

처용 역시 별다른 이견은 없었다.

이들을 산신각에 계속 두는 것도 애매했었으니까.

‘어머니하고 마주칠 수도 있고.’

산신각에 청소하러 오셨다가 이들을 마주치면 놀랄 것이다.

“당분간 여기서 지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부르지.”

“알겠습니다. 용님.”

안식전의 첫 번째 거주자가 뱀파이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하지만, 처용에게 있어서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뱀파이어 종족의 일을 해결하고 이들을 아군으로 만들 수 있다면.

오크나 엘프 못지않은 강한 전력이 될 것이다.

“이 넓은 곳을 관리도 해야 하는데…….”

처용이 안식전 내부를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그건 문제가 없을 것 같군요. 계승자.]

“네?”

보살이 웃으며 한 말에 처용이 의문을 제기하자.

-척척척.

안식전의 입구에서 아타와 함께 일개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타는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일개미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괜한 걱정이었네요.”

아타와 일개미들이라면 이곳을 관리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저 아이는 앞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계승자.]

처용은 보살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생각해 보니 뱀파이어만이 아니었군요.”

처용의 편에서 움직일 수 있는 전력 중에는 아타도 있었다.

정확히는 처용의 도움을 받아 공들여 만든 알.

그 알에서 곧 부화할 병정개미들이었다.

태어나면 최소 A급으로 추정되는 최정예 개미들.

그 개미들만 해도 뱀파이어 못지않은 전력이 될 것이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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