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46화 (46/726)

#046화

처용이 뱀파이어들을 데리고 나타난 곳은 산신각이었다.

태룡전을 제외하면 이 장소가 가장 조용하고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아,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게이트를 빠져나오자 루나가 처용을 노려보며 말했다.

“루나 님은 위대하신 존재들을 처음 뵈어서 그런 겁니다.”

류마가 처용과 루나의 눈치를 볼 때.

“피의 서약까지 했으니 너희들에게만 알려주지.”

처용은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듯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신들을 모시는 태룡사와 이 장소를 지키는 처용의 가문.

그리고 그 신들에게 선택받아 배움을 얻고 수련을 하는 자신.

숙적인 마인들, 악신들과 맞서는 헌터.

“대충 이런 사람이야.”

처용은 간결하게 자신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은인께서 강한 인간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더 대단하신 분이었군요.”

“그리고 내 이름은 은인이 아니야.”

처용은 계속 은인이라고 말하는 류마에게 이름을 알려주었다.

자꾸 은인, 은인이시여 라고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알겠습니다. 용님.”

아타가 자신을 부를 때와 같은 말이 류마에게서 나왔다.

‘용이라는 단어 때문인가?’

시스템의 번역상 마지막 글자가 ‘용’이니 드래곤으로 들리는 건가 싶었다.

“그래 뭐, 그보다도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대수롭지 않게 넘긴 처용은 본론을 이야기했다.

“너희 말고 도망친 다른 뱀파이어들은 어디로 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도 도주하던 중 습격을 받은 터라.”

“지구로는 어떻게 넘어온 거야?”

“이곳이 지구라는 곳이로군요. 제나 후작이 포탈을 열어주었습니다.”

류마는 군주의 측근 중 마법에 뛰어난 이가 공간 이동을 도와주었다고 했다.

그가 포탈을 열 때 습격을 받아 모두 흩어지게 된 것이었다.

“제나 후작? 확실해?”

“예, 왕족 못지않은 마법 실력을 가진 이입니다.”

처용은 류마가 말한 측근의 이름을 듣고 인상을 구겼다.

“그놈이 배신자일 확률이 높겠네.”

단호하게 말한 처용의 목소리에 류마가 놀란 듯 물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나 후작은 저보다도 오래 군주님을 섬긴 자입니다.”

“포탈을 열 정도의 실력자가 ‘실수로’ 대피하는 사람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다? 그럴 리가 없지.”

처용은 대마도사라고 불리는 마법의 지존과 여러 연구를 했었다.

공간 계열 마법을 다루는 자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실수가 발생하면 시전자가 죽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는.

‘제나 후작, 마르크의 심복.’

회귀 전, 처용이 싸운 뱀파이어 중 하나가 바로 제나 후작이었다.

“너희들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잘…… 모릅니다.”

류마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습격을 피해 도망치고 숨기에 급급했었다.

다시 차원을 넘어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몰랐다.

“하아.”

처용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너희가 살던 세계의 이름이나 대륙의 이름이 있나?”

“에스라 대륙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네.”

처용은 류마의 말에 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안도했다.

에스라 대륙은 처용이 잘 알고 있는 세계였다.

‘에스라 대륙과 이어지는 국가급 규모의 던전은 대략 3년 이후에 나타났던가?’

뱀파이어들의 세계로 갈 방법은 찾았다.

하지만 문제는.

“뱀파이어 군주가 잘 버티기를 바랄 수밖에 없나?”

회귀 전, 뱀파이어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기는 지구가 멸망한 이후.

이 정보로 생각해 봤을 때 시간이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변수라는 것은 어떻게 발생할지 모른다.

“군주님은 강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야.”

처용을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루나가 말했다.

“무엇보다 그분이 잘못되면……, 내가 느낄 수 있어.”

뱀파이어 왕족은 서로의 생명을 느낄 수 있는 특성이 있었다.

만약, 군주가 사망한다면 직계 혈족인 루나가 알아챌 수 있었다.

“하, 당장 뭘 어쩔 방법은 없네.”

처용이 답답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밤의 성채로 가기 전까지 용님을 돕겠습니다.”

류마가 처용을 향해 말했다.

“하하, 그렇게 확실하게 말해주니 고마운데?”

처용이 류마를 향해 웃어 보이며 말했다.

비록 루나와 피의 서약으로 약속된 사항이긴 하지만.

류마의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인들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뱀파이어와 무수히 싸워본 처용이기에 그들이 얼마나 강한 종족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류마는 A급 뱀파이어, 무려 백작급 귀족이었다.

“나도 도울 거야.”

대화를 듣던 루나가 처용에게 말했다.

“그리고, 부탁이 있어.”

“뭔데?”

잠시 침묵한 루나가 처용을 향해 말했다.

“내 성장을 도와줘.”

“성장?”

루나에게 되물은 처용은 무언가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아직 성장 중이라고.’

통찰의 눈으로 그녀를 봤을 때 아직 성장 중이라는 정보가 있었다.

“지금의 난 약해…….”

고개를 숙인 루나가 분하다는 듯 입술을 물며 말했다.

“성채가 습격받을 때 아무것도 못 했어.”

“루나 님…….”

류마가 안타까운 눈으로 루나를 바라봤다.

“군주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일족을 이끌어야 돼.”

루나의 아버지, 뱀파이어 군주를 말할 때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

그럼에도 처용을 똑바로 마주 보며 강하게 말했다.

“도와줘.”

처용은 그런 루나를 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좋아.”

고귀한 신분으로서 책임감을 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처용 역시 그녀에게 도움을 받을 부분이 있었다.

“대신 너도 내 수련을 도와줬으면 좋겠어.”

“알았어.”

루나가 처용의 말에 흔쾌히 대답했다.

“일단 오늘은 쉬고 내일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정말 고마워.”

루나가 처용을 향해 웃어 보이며 감사를 전했다.

“일단 오늘은 둘 다 여기에 있어 거처는 내가 알아볼 테니까.”

“그럼 잘래, 피곤해.”

루나의 주변에 어둠 속성 마나가 피어났다.

어둠의 마나는 루나를 감싸더니 화려한 관으로 변했다.

‘뱀파이어들이 잠을 청하는 방식인가?’

처용은 그 모습을 보며 ‘침대가 필요 없어서 좋겠다’는 심드렁한 감상이 들었다.

“오늘 일 정말 감사했습니다.”

류마 역시 처용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하고는 루나와 같은 방식으로 관에 들어갔다.

“흠.”

뱀파이어의 관과 산신각 내부의 모습을 본 처용의 고개가 기울었다.

“산신들을 모시는 신성한 사당 중앙에 뱀파이어의 관이라…….”

상황이 뭔가 이상해 보였지만 처용은 개의치 않았다.

이곳의 진짜 주인인 성좌들도 뭐라고 하지 않았으니까.

***

하루를 쉰 처용이 뱀파이어들을 데리고 보물전에 들어왔다.

루나는 아직 처용의 성좌들을 두려워했지만.

보물전은 신들이 거주하는 곳과는 다른 장소라고 말하자 안심한 듯 따라왔다.

“어서오세요. 용님.”

아타가 처용을 반기며 다가왔다.

“제가 임의로 정리를 했는데 이대로 유지할까요?”

아타의 말을 들은 처용이 보물전을 둘러보았다.

처용이 가져온 자원들이 깔끔하게 종류별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리고.

-삭삭.

앞발에 빗자루를 움켜쥔 개미들이 여기저기를 쓸고 있었다.

1미터 정도 크기의 일개미로 등급은 무려 B등급이었다.

“훨씬 깔끔하네. 잘했어.”

“감사합니다. 뒤에 계신 분들은 손님인가요?”

“날 도와줄 사람들.”

처용은 아타에게 뱀파이어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환영합니다. 아타라고 합니다.”

이종족 간에도 상성상 사이가 좋지 않은 이들도 있었지만.

아타와 뱀파이어에게 그런 기류는 없어 보였다.

“손님분들에게 대접할 게 이거밖에는 없네요.”

아타가 뱀파이어들에게 종이컵에 담긴 무언가를 건넸다.

처용이 대량으로 구매해 쌓아두었던 믹스커피를 타온 것이었다.

이전 보물전에서 믹스커피를 마시는 처용을 보며 아타가 먹어봐도 되냐고 물었었고.

처용에게 허락을 받았었다.

-정말 맛있어요!

처용은 예상하지 못한 아타의 반응에 웃어 보였고 원하면 하나씩 먹어도 좋다고 했었다.

아타가 뱀파이어들에게 건넨 믹스커피를 확인한 처용은 만류할까 했지만.

“음! 이거 정말 맛있습니다!”

“……뭐?”

류마의 말에 처용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맛있다고?

“예! 이런 고급스러운 차가 있었다니.”

처용은 류마의 말에 황당한 듯 웃음이 나왔다.

이건 원가 200원짜리 믹스커피였다.

뱀파이어가 그걸 마시고 고급스러운 차라고 한다.

이 무슨 어이가 하늘 높이 승천하는 소리인가?

처용이 이번엔 루나를 바라보자.

-호로록.

그녀는 믹스커피가 마음에 드는지 환한 미소를 지으며 홀짝이고 있었다.

머리에 혼란이 찾아온 처용이 이마를 잡으며 말했다.

“뱀파이어는 피 외에는 못 먹는 거 아니었나?”

뱀파이어는 인간 혹은 강한 몬스터의 피를 섭취하는 것으로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고위 뱀파이어일수록 햇빛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다.

이것이 뱀파이어에 관해 처용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순수한 피가 힘과 양분을 얻기엔 좋지만, 저희가 피만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류마가 뱀파이어들의 식(食)에 대해 말해주었다.

“특히 귀족들은 연회나 만찬이 열리면 다양한 요리를 즐깁니다.”

고위 뱀파이어로 올라갈수록 피와 힘에 대한 갈증이 옅어지기 때문이었다.

“루나 님만 해도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미식가입니다.”

“미식가?”

처용이 황당한 표정으로 다시 루나를 바라봤다.

루나는 아타의 한잔 더 주냐는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받고 있었다.

“하, 하하.”

처용의 입에서 황당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애초에 뱀파이어와 싸움만 했지 그들의 생활이나 문화에 대해서는 몰랐으니까.

“……편견인가?”

단순히 편견이라기엔 뭔가 이상했지만…….

“뭐, 다행이네.”

이들이 피를 섭취하지 못해 문제가 발생한다면 혈액 팩 같은 것을 구하러 다녀야 했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 귀찮음을 덜었다고 할 수 있었다.

잠깐의 티타임이 지나가고 처용이 본격적으로 수련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너 미쳤어?”

루나가 황당한 눈빛으로 처용을 보며 말했다.

“안 미쳤으니까 내가 말한 대로 해봐.”

“아니…….”

루나가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잡으며 말을 흐렸다.

처용이 자신의 수련을 위해 부탁한 일 때문이었다.

“날 물어. 하수인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강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은 처용이 루나에게 말했다.

처용이 수련을 위해 루나에게 부탁한 것은 자신을 물라는 것이었다.

뱀파이어가 평범한 인간에게 자신의 피를 주입하면.

그 인간은 뱀파이어의 명령을 따르는 충실한 종이 되어 버린다.

“용님, 이건 위험합니다. 루나 님이 어리다고 해도 왕족입니다.”

류마 역시 처용에게 걱정을 표했다.

다른 뱀파이어도 아니고 무려 왕족의 피였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야.”

처용이 괜찮다는 듯 확신을 담아 말했다.

[흠, 재미있는 걸 생각하고 있구나. 제자야?]

“스승님.”

처용의 앞에 여래가 나타났다.

“위대하신 분을 뵙습니다.”

류마가 여래에게 부복하려 하자.

[괜찮다. 그러지 말거라.]

여래가 만류했다.

“감사합니다.”

류마는 여래에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루나는 아직도 신들이 두려운지 두 손을 모으고 경직되어 있었다.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여래는 그런 루나를 보고 옅게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 말에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루나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주인님도 드릴까요?”

[고맙구나. 아타야.]

아타가 건네는 커피를 받은 여래가 루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제자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거라.]

“그…… 정말 괜찮은 건가요?”

루나가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내 제자가 평범한 인간일 리가 없지 않느냐? 걱정하지 말거라.]

“스승님 말씀대로 문제는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처용이 확신을 담아 말하자 루나가 결정을 한 듯 주먹을 쥐며 다가왔다.

“어, 어떻게 돼도 난 몰라!”

처용의 뒤로 다가온 루나가 목덜미를 물었다.

-콰득!

눈을 감고 집중한 처용은 체내에 침투한 뱀파이어의 피를 느꼈다.

[뱀파이어의 피가 체내에 침투했습니다.]

[선인의 육체가 뱀파이어의 피에 저항합니다.]

루나가 물은 목덜미를 시작으로 검붉은 핏줄들이 붉어지며 번져나갔다.

루나와 류마는 불안한 눈빛으로 처용을 바라봤지만.

[따로 조언할 필요는 없겠구나.]

여래는 여유롭게 웃으며 처용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용은 육체를 관조하며 마나와 신력을 움직였다.

‘회귀 전엔 저항만 했었지. 하지만 이젠 다르다!’

체내를 순환하는 마나와 신력들은 침입한 뱀파이어의 피를 죽이지 않았다.

날뛰지 못하게 눌러놓음과 동시에 육체에 서서히 융합시켰다.

마치 스킬석을 흡수할 때와 비슷한 감각으로 피에 담긴 힘을 흡수하자 검붉게 번져가던 핏줄들이 점점 사라져 갔다.

[선인의 육체가 뱀파이어의 피를 육체에 걸맞게 변형시킵니다.]

[자연부에 ‘암영(暗影)부’가 생성되었습니다.]

[뱀파이어 전용 스킬 ‘박쥐 소환’이 선인의 육체에 흡수됩니다.]

[자연부에 식신(式神)부가 생성되었습니다.]

[보물전 일부 진열대에 정지장 능력이 추가됩니다.]

[선술에 어둠 속성 마나가 깃듭니다.]

[피의 서약자 루나와의 유대가 강해집니다.]

[신수의 격이 성장합니다.]

“좋아!”

시스템을 확인한 처용이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지었다.

회귀 전, 뱀파이어들과 싸울 당시 후작급 뱀파이어 하나가 자신을 문 적이 있었다.

그때 선인의 육체가 뱀파이어의 피에 저항하면서 그 힘을 일부 흡수했었다.

그때 얻은 것이 암영부였다.

뱀파이어들처럼 어둠을 타고 은밀하게 이동할 수 있는 능력.

이제 처용은 어둠과 그림자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나머지는 처음 보는 것들이네.’

이번엔 무려 뱀파이어 왕족의 피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확인할 겸 처용이 일어서는 순간.

[죄악의 근원이 꿈틀댑니다.]

‘……뭐?’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에 처용은 눈을 부릅떴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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