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45화 (45/726)

#045화

처용은 묘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협회장실에 모인 이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하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상석에 앉아있던 협회장에게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종족…… 뱀파이어 종족이라고요?”

복잡한 표정을 지은 협회장의 말에 처용이 대답했다.

“네, 저희가 아는 그 뱀파이어 맞아요.”

“혹시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협회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처용에게 물었다.

지구에 나타난 새로운 이종족이었다.

굉장히 조심스럽게 대처하고 처리해야 할 문제였으니까.

“제 성좌님이 거주하는 성역으로 보냈으니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군요.”

신이 거주하는 성역이라는 말에 협회장이 당황했다.

협회장의 예상으로는 처용의 성좌는 최상위 신이었다.

그런 신이 거주하는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시…… 신들이 사는 곳에 갈 수 있나요?”

태민 역시 당황한 듯 처용에게 물었다.

“허락을 받으면 갈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태민과 협회장이 당황하고 있을 때.

“흠.”

백호는 놀라지 않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침묵하고 있었다.

‘커맨더의 파티원이니 짐작은 했나 보네.’

처용이 알기로는 커맨더 역시 그가 모시는 성좌의 성역으로 갈 수 있었으니까.

백호는 처용의 예상대로 커맨더를 생각하고 있었다.

‘유진이가 가끔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게 그것 때문이었나?’

생각이 끝났는지 백호가 처용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는 그 뱀파이어들을 믿는 건가?”

“네, 믿습니다.”

처용은 백호의 말에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피의 서약을 맺은 이상 그들은 처용과 동맹이었다.

“마인들이 뱀파이어들을 완전히 장악하는 건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하, 진절머리 나는 새끼들.”

백호가 머리를 잡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종족들에게까지 손을 댈 줄이야. 참나!”

“뱀파이어만으로는 안 끝날 겁니다.”

처용이 경고를 전하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인들의 목적 중 하나가 이종족들을 분열시키고 그들을 병사로 쓰는 것이니까요.”

“염병…….”

백호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도대체 그놈들은 진짜 목적이 뭐길래 지랄이야?”

백호의 말에 처용이 말을 흐렸다.

“마인들의 목적…이라기보다는.”

처용은 잠시 고민한 후 입을 열었다.

“백호 님. 마인들의 최고 수뇌부가 누구인지 아시나요?”

처용이 검지를 세우고 위를 가리키며 백호에게 말했다.

“S급 마인들 아닌가? 유진이하고 같이 싸워본 적이 있네.”

백호가 과거를 회상하듯 눈을 감으며 말했다.

“악신의 신관들을 이미 만난 적이 있나 보네요?”

“악신?”

처용의 말에 백호가 의문을 표했다.

차원의 균열이 발생하고 몬스터가 나타난 지 10년도 되지 않은 시기.

아직 마인들에 대해 정확히 알려지기 이전이라 악신에 대해서도 잘 모를 때였다.

“헌터들에겐 성좌가 있죠?”

“그렇지…… 아, 그렇구만.”

처용의 말에 대답한 백호가 깨달았다는 듯 외쳤다.

“이번 일은 악신 중 하나가 직접 공들여 작업한 것 같습니다.”

“악의…… 성좌인가요?”

태민이 참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초월적인 존재가 뒤를 봐주지 않고서는 마인들이 그만큼 강한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악신이라니…… 답이 안 나오는군요.”

인상을 찌푸리며 사기가 꺾인 태민에게 처용이 웃으며 말했다.

“그 악신들을 사살하는 것이 제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정확히는 악신들을 포함한 그들의 정점 크타니드가 목표였다.

“네?”

처용의 말에 놀란 것은 대답한 태민뿐 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경악을 담아 처용을 보고 있었다.

“신을 죽이는 것이 가능합니까?”

“죽여 봤는데요?”

“네?!”

“저도 죽을 뻔했지만…….”

“…….”

사람들의 멍한 표정을 본 처용은 옅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신은 전지전능하고 무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수호신 처용’ 역시 아무도 지키지 못하고 실패했으니까.

“성좌든 악신이든 불로(不老)는 몰라도 불사(不死)의 존재는 아니니까요.”

처용은 지금까지 죽여왔었던 악신들을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머리를 날리든 심장을 찌르든 치명적인 공격을 받으면 죽습니다.”

악신들과 직접 싸워야 할 일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미리 알려서 경각심을 심을 필요는 있었다.

“정말로 헌터가 악신을 죽이는 것이 가능하다면.”

침묵하고 있던 백호가 처용을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가능한가?”

처용은 백호의 말에 옅은 웃음을 보였다.

상대가 악의 성좌임에도 사기가 꺾이지 않고 이길 방법을 찾는다.

그런 그의 태도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처용은 곰곰이 생각을 마친 후 입을 열었다.

“일부 S급 헌터들은 그나마 맞설 수 있을 겁니다.”

S급 헌터들은 성좌가 선택한 병사들의 대장이니만큼 그나마 맞서 싸울 수 있었다.

“특히, 성자나 성녀라면 더 가능성이 있겠네요.”

처용의 말을 들은 백호가 궁금한 듯 질문했다.

“에픽 클래스를 제외한 헌터들은 맞서는 것이 불가능한가?”

“맞서 싸울 수는 있을 겁니다. 다만.”

백호의 말에 대답한 처용이 잠시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가장 약한 악신이 상대라고 가정한다면, 적어도 200레벨 이여야 맞설 수 있을 겁니다.”

백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현재 지구에서 200레벨이 넘는 헌터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유진이의 레벨이 나보다 조금 더 높지만…….’

S급 헌터 커맨더조차도 200레벨이 아니었으니까.

처용은 그런 백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성좌는 시스템에 의해 지상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것이 제한됩니다. 악신들도 마찬가지고요.”

시스템이 정확히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신의 힘이 지상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막는 세계의 의지 같았다.

“문제는 악신들도 성좌들처럼 신내림이나 화신체로 현신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죠.”

“미치겠구만.”

처용의 말을 들은 백호의 인상이 구겨졌다.

신내림은 성좌가 자신의 신관, S급 헌터의 몸을 지배해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 오래 유지할 수는 없지만, 이 순간만큼은 신이 신관을 통해 직접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화신체.

특정 의식을 통해 신이 지상에 분신을 만들어 보내는 것이었다.

단, 이 능력은 신이 자신의 영역으로 선포한 성지에서만 가능했다.

“다행히 아직 악신들과 싸울 일은 없을 겁니다.”

“언젠가는 싸워야 한다는 거로군?”

“그러니 대비하자는 차원에서 말씀드린 겁니다.”

처용이 아공간에서 명환부가 붙여진 검은 구슬을 꺼내며 말했다.

“이미 악신들은 움직임을 보였으니까요.”

“그건 뭔가요?”

태민이 검은 구슬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과장님 감정 스킬로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처용이 태민에게 구슬을 내밀자 태민이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구슬을 바라봤다.

그리고 안색이 점점 창백하게 변해갔다.

“이게 대체 뭐길래?”

백호가 의문을 가득 담아 말하면서 불길한 느낌이 전해오는 검은 구슬을 노려봤다.

태민은 설명하지 않고 자신의 스킬을 발동했다.

“탐정의 보고서-감정 결과.”

태민의 손에 서류가 만들어지면서 문자들이 나열되었다.

“제 눈에 보이는 이것의 정체입니다.”

태민이 모두가 볼 수 있게 책상 위에 서류를 올려놓자 사람들이 그것을 확인했다.

백호의 표정이 점점 구겨지고 협회장의 안색이 싸늘해졌다.

“어둠의 일족인 뱀파이어마저 괴물로 만들어 버리는 저주의 파편입니다.”

처용이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저조차도 이 저주를 해제하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자네가 아니었으면 현아하고 다른 헌터들이 큰일 날 뻔했다는 건 들었네. 정말 고맙네.”

백호가 처용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게 악신이란 존재가 만든 저주인가요?”

태민의 말에 처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단에 연락해서 이걸 보여주고 협력을 요청하세요.”

그들은 이것이 악신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볼 것이다.

“악신이 직접 행동한 증거가 있는 이상 그들도 적극적으로 나설 겁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빛의 신, 그자의 성격이라면 이 상황을 구경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빛의 신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악신들과 마인들의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그 사이 뱀파이어부터 시작해서 이종족들에게 뻗어지는 악신의 손길을 차단하고 그들을 규합해야 했다.

‘생각처럼 잘 되었으면 좋겠지만.’

생각을 정리한 처용이 말을 이었다.

“단, 뱀파이어에 관한 말은 그들에게 하지 마세요.”

“문제라도 있습니까?”

처용의 말에 협회장이 질문했다.

“뱀파이어는 어둠의 종족이니까요. 그들이 어떻게 대할지 모릅니다.”

“그놈들 성격이라면 이교도라면서 배척할 수도 있겠군.”

백호의 말대로 교단은 빛의 신이 전파하는 교리를 믿고 따르는 이들.

그들은 뱀파이어를 좋게 보지 않을 것이다.

“백호 님 말이 맞습니다.”

처용이 백호에게 대답한 후 협회장을 바라보았다.

“일단 뱀파이어에 관한 문제는 제가 맡고 있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하하, 감사합니다.”

협회장의 말에 처용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협회의 일이 끝난 처용은 곧장 태룡전으로 향했다.

뱀파이어들과 얘기해야 할 것들도 많았으니까.

‘바쁘네.’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게이트를 열고 태룡전에 들어가자.

“음?”

처용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의문이 들었다.

미륵 앞에 낮게 부복한 채로 쩔쩔매는 류마와 보살 뒤에 숨어 잔뜩 움츠려 있는 루나가 보였다.

***

“이건…… 말도 안 돼.”

루나의 입에서 떨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처용이 열어준 황금빛 게이트를 넘자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전각.

루나와 류마는 그 전각 앞에 주저앉은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루나는 어둠의 마력에 축복을 받은 뱀파이어 왕족.

왕족만이 가진 독특한 감각에는 이곳의 신력과 전각 안의 존재들이 더 거대하고 두렵게 느껴졌다.

두 뱀파이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끼이이

전각의 대문이 열리며 마치 자연을 형상화한 듯한 녹음빛 머리의 여성이 걸어 나왔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보살이 주저앉은 두 뱀파이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손길이 닿자 두려운 듯 요동치던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건 은인과 같은…….”

[계승자에게 자비를 가르친 것이 나이니 익숙하겠군요.]

류마는 보살의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위대하신 분을 뵙습니다.”

류마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까스로 바로잡았다.

눈앞의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그녀가 드높은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마 자신을 구해 준 은인이 모시는 신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가 안에 계신 분들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잠깐! 분들이라고?’

그렇다면 저 안에 다른 신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류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계승자의 손님을 밖에 세워둘 수는 없으니 안으로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류마가 보살을 따라가고 루나도 힘겹게 일어서 뒤따랐다.

루나는 아직도 두려움을 버리지 못한 상태였다.

자신과 류마를 이끄는 여신 외에도 거대한 두 존재가 느껴졌으니까.

전각 안으로 들어서자 금빛 용들이 휘감겨 있는 붉은 기둥들이 펼쳐져 있었다.

보살을 따라 쭉 걷자 드넓은 대전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중앙에 루나가 느끼던 거대한 두 존재가 있었다.

백발의 푸른 눈동자, 하얗고 신비한 분위기를 가진 여래와.

금색 용이 수놓아져 있는 검은 용포를 두른 미륵.

루나는 오른쪽 눈에 안대를 낀 미륵을 조심스럽게 보다가 그의 왼쪽 눈을 마주쳤다.

“히, 히익!”

미륵의 붉은 눈이 점점 거대해지며 덮쳐 들어오는 환상과 함께 마치 탈진한 듯 온몸에 힘이 빠졌다.

루나가 다시 주저앉았다.

[호? 그걸 감지했느냐?]

미륵은 흥미롭다는 듯 루나를 보며 말했다.

그의 권능은 주시한 대상의 존재를 통찰하는 것, 딱히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던 류마와는 달리 루나는 무언가를 느낀 듯 반응을 보였다.

[겨우 안정시킨 아이들에게 너무한 것 아닙니까?]

보살이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미륵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어둠의 종이 위대하신 분들을 뵙습니다.”

류마가 부복하며 정중함을 가득 담아 말했다.

“왕녀님은 위대한 존재를 직접 뵌 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너는 우리와 같은 이들을 마주한 적이 있나 보구나?]

“예.”

류마가 여래의 말에 대답했다.

“오래전 신격에 닿은 드래곤 로드를 군주님과 함께 만난 적이 있습니다.”

뱀파이어들이 사는 세계에는 신수, 드래곤들이 있었다.

그리고 드래곤 로드는 신격을 얻고 신수들의 왕이 된 존재였다.

[골드 드래곤……, 바하무트 일족인가?]

“그, 그 이름을 어찌…….”

미륵의 말에 류마가 크게 놀란 듯 말이 떨려왔다.

드래곤 로드의 이름에 ‘바하무트’가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내가 최초의 바하무트가 탄생하는 것을 지켜본 이이니라.]

태초신이 각 세계를 다스릴 신격들을 탄생시킬 때.

태초신을 옆에서 보좌하던 선천적 신격 중 하나가 미륵이었다.

류마의 어깨가 떨려왔다.

자신을 구해준 은인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모시는 신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이들이었다.

그렇게 류마와 루나가 쩔쩔매고 있을 때.

“음?”

일을 마친 처용이 돌아왔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상황을 잘 모르는 처용이 묻자.

[이 아이들이 우리를 너무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계승자.]

보살이 처용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군요.”

보살의 말을 들은 처용이 다시 게이트를 열었다.

원래는 이들과 함께 앞으로의 일에 대해 논의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 상태들을 보니 당장은 무리인 것 같았다.

특히.

“아으으…….”

보살 뒤에 숨어있는 루나를 보자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왕족의 도도한 모습은 어디 가고 저러고 있냐?’

뱀파이어 왕족이라 그런지 차가운 분위기와 도도한 모습을 보이는 루나였지만.

지금은 보살 뒤에 숨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애였다.

“보살님이 보모도 아니고.”

아타 때도 그렇고 지금 루나도 그렇고 다들 보살에게 매달렸다.

아마 그녀가 가진 온화하고 부드러운 특성 때문일 것이다.

참고로 현재 아타는 보물전에서 재료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일단 이들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처용이 류마와 루나를 데리고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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