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화
여왕개미가 알에서 태어난 지 이틀이 지났다.
“아타.”
대장간에서 작업 중이던 처용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듯 말하자.
이름이 불린 여왕개미, ‘아타’가 처용에게 다가왔다.
대신들에게 거주를 허락받은 여왕개미를 그냥 개미라고 부르기 좀 그랬기에 처용이 붙인 이름이었다.
옛날에 봤었던 만화의 개미 캐릭터 이름이 생각나 붙인 것이다.
그렇게 이름을 지어주는 순간.
[신수의 격이 발동합니다.]
[하이 앤트리스 퀸 아타가 무리에 합류하기를 원합니다.]
[앤트리스 종족이 무리에 합류합니다.]
거북이 때처럼 신수의 격이 발동했고 아타와 희미하게 정신이 연결되는 것이 느껴졌다.
이름과 거주지를 받은 아타는 자신이 도울 일은 없는지 물었었다.
그런 아타를 보살이 데리고 다니며 많은 것을 알려 주었다.
악신들, 마인들, 그리고 계승자인 처용에 대해서 말이다.
보살은 아타에게 처용을 도와주지 않겠냐 물었고 아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용 역시 태룡전의 새 거주자가 된 아타를 받아들였고 지금은 그녀를 도와주고 있었다.
“이건 어때?”
처용이 아타에게 거대한 방패 형태의 무구 원형을 내밀었다.
가재의 갑각을 가공하고 철벽부의 힘까지 부여해 만든 원형이었다.
“가능할 것 같아요.”
아타가 처용에게서 거대한 방패를 받고 낑낑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두 손을 방패에 댄 아타가 마나를 흘려보내자.
-파사사삭-
마나의 기류에 방패가 들어 올려지더니 마나로 점점 감싸졌다.
방패를 완전히 감싼 아타의 마나는 점점 둥그런 형체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형체는 거대한 알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번엔 좀 단단한 녀석이 나오겠네.”
처용은 지금 아타가 수하 병정개미를 만드는 것을 돕는 중이었다.
“후, 이것보다 강한 기운은 힘들 것 같아요.”
“흠, 가재 정도에 자연부 세 장이 한계인가?”
아타가 수하 개미들을 만들어내는 방법.
그것은 아티팩트를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했다.
질 좋은 자원과 에너지를 더해 알을 만들어내고 부화시키는 것.
자원과 에너지가 좋을수록 더 강하고 유용한 병정개미가 태어났다.
-푸화화!
지금 대장간 화로에 불을 뿜으며 열기를 높여주고 있는 개미처럼 말이다.
2미터 정도 크기를 가진 붉은 개미의 등급은 무려 B+, 거기에 엘리트 등급이었다.
크기는 개미굴의 왕개미보다 훨씬 작지만, 더 강력한 개체였다.
처용이 화염부를 부여한 무구 원형을 토대로 만들어진 녀석이었다.
“이정도 등급의 병정개미는 이제 한계인 것 같아요.”
“다른 일개미 숫자하고는 별개인가?”
“모르겠어요. 만들어 봐야 알 것 같아요.”
또 하나 아타와 이야기하면서 알아낸 사실은 그녀의 특성인 군체여왕에 관해서였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개미들은 모두 군체의식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들은 모두 아타라는 여왕의 정신에 하나로 연결되어 움직인다.
아타의 존재 자체가 앤트리스라는 종족 전체라고 할 수 있었다.
“흠, 대충 A급 다섯 마리에 B급 엘리트 열 마리 정도인가?”
처용이 짐작했던 것보다 아타의 능력은 잠재력이 뛰어났고 유용했다.
아직 성장 중인 아타가 더 성장한다면 앞으로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었다.
“슬슬 시간도 시간이니 이쯤 해야겠네.”
좀 전에 태민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던전 관련 일로 협회에 방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용님.”
“용……, 아니다.”
아타는 처음 처용을 보며 다른 신들을 부를 때처럼 ‘주인님’이라고 불렀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거북해진 처용이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자 ‘도련님’이라는 칭호로 바뀌었다.
안 되겠다 싶어 처용이 이름을 알려주자 ‘용님’이라는 호칭으로 굳혀졌다.
적어도 앞서 부르던 말들보다는 나았기에 처용도 그냥 넘어갔다.
“어지럽히지 말고 얌전히 있어.”
“제가 여기를 청소해도 될까요?”
“맘대로 해.”
처용이 게이트를 열고 나가자 아타가 다녀오라는 듯 고개를 숙였다.
***
“드디어 빈 던전이 생겼나 보네요?”
“오래 기다리셨죠? 요즘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처용 앞에 믹스커피를 내려준 태민은 정말로 미안한 듯 얘기했다.
“이해합니다.”
처용은 태민을 탓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피곤한 듯 늘어지는 목소리와 눈에 드리워진 다크서클.
태민의 겉모습만 봐도 그간 바빴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번에 가실 곳은 새로 만들어지거나 이변이 생긴 던전은 아닙니다.”
“그럼요?”
“저희가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던전 중 하나입니다.”
태민이 태블릿을 꺼내 보여주며 설명을 해주었다.
협회의 역할 중 하나인 던전의 정기점검.
이번에 점검할 던전은 총 두 개였다.
C급 던전인 메마른 묘지와 B급 던전인 와이번 둥지였다.
언데드가 출몰하는 메마른 묘지는 협회 헌터들이 맡고 출발한 상태였다.
그리고 남은 와이번 둥지가 처용이 처리해야 할 몫이었다.
“이전에 만들어주신 아티팩트 덕분에 훨씬 수월할 것 같습니다.”
좀비나 스켈레톤 등 언데드계열 몬스터는 어둠 속성을 가지고 있다.
마기에 천적인 명환의 힘은 어둠 속성에도 강한 힘을 발휘했다.
“협회 헌터들도 레벨은 올려야 하니까요.”
처용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래서 남은 하나를 부탁드립니다.”
정기점검이라고 던전 공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스를 잡고 던전 내부의 몬스터 수를 줄이는 것.
그리고 다른 특이사항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전부였다.
“와이번이 많이 까다로운 몬스터이긴 하죠.”
처용이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특정 클래스들이 아니면 사냥하기가 매우 힘드니까요.”
익룡과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 와이번.
와이번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빠르게 공격하고 기습하는 몬스터였다.
따라서 파티를 구성할 때 근접 클래스보다는 마법사나 궁수처럼 원거리 클래스가 다수 필요했다.
그리고 이들을 지키고 시선을 끌어줄 군중 제어 스킬을 지닌 탱커 클래스 역시 필요했다.
“처용님은 문제가 없을 것 같았거든요. 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태민이 마지막으로 꺼낸 말은 반 농담 삼아 꺼낸 말이었지만.
“날 수 있습니다.”
처용은 별거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대답했다.
“날…… 수 있으셨군요. 하, 하하.”
태민은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처용이라면 정말 가능할 것 같았으니까.
“뭐, 금방 끝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처용님.”
이변을 조사하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던전 공략이었으니 처용에게는 별거 아니었다.
처용은 더 지체하지 않고 바로 던전으로 향했다.
와이번 둥지로 이어진 게이트에 입장하자 높은 산맥이 펼쳐진 환경이 드러났다.
“와이번이라.”
처용이 중얼거리며 산맥을 바라보았다.
등산이 아닌 등반을 해야 할 정도로 가파른 산맥이었지만.
등산도, 등반도 할 필요가 없었다.
처용에게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수단이 몇 개 있었다.
첫 번째 방법은 선인의 육체를 이용한 보법이었다.
전설 속 신선들처럼 공기를 밟고 이동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직 보법을 되찾지 못한 상태였다.
두 번째 방법은 자연부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저번 늪 던전에서처럼 다리에 바람 속성이 담긴 풍운부를 붙이고 질주하는 방법이었다.
이건 하늘을 난다기보다는 하늘을 달려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방법이자 처용이 선택한 방법.
“토류부-대지의 손.”
처용이 흙더미를 일으켜 대지의 손을 만들어내고 그 위에 올라탔다.
그러자 처용을 태운 대지의 손이 점점 떠오르더니 산맥 위를 향해 나아갔다.
처용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대지의 손을 타고 이동하는 방법.
이것이 세 번째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앞의 두 방법보다 이동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은 있었다.
하지만, 대지의 손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는 이상 추락할 일은 없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대지의 손을 탄 처용이 점점 산맥 위로 접근하자 무언가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캬아악!
-키악!
기괴한 괴성을 내지르며 처용을 향해 날아온 것들은 이 산맥의 몬스터 와이번이었다.
[그린 와이번]
[등급 : B급]
[특징 : 산맥을 영역으로 삼아 둥지를 만들고 활동하는 비행형 몬스터.]
[다수가 무리를 지어 활동한다.]
[공중을 날아다니며 합동하는 공격은 재빠르고 위험하기에 조심해야 한다.]
[스킬 : 비행 가속, 칼날 바람, 꿰뚫는 돌진…….]
“그리 강한 와이번들도 아니었네.”
와이번들은 색상에 따라 이름과 등급이 바뀌는 몬스터들이었다.
레드 와이번, 블랙 와이번 등.
눈앞의 그린 와이번은 다른 개체들에 비해 비교적 약한 놈들이었다.
“금방 끝나겠네.”
날아온 와이번들이 침입자인 처용을 공중에서 진형을 짜며 포위했다.
다른 이들이 봤을 때는 처용이 위험해 보였지만.
대지의 손 위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처용은 여유로워 보였다.
처용을 포위한 와이번들이 합동 공격을 위해 점점 가까이 다가온 순간.
처용이 팔짱을 풀었다.
“철벽부, 뇌격부.”
금속의 힘이 담긴 철벽부 두 장과 뇌전의 힘이 담긴 뇌격부 두 장을 만들어 하나로 합쳤다.
“뇌전 천라지망(雷電 天羅地望).”
처용이 합쳤던 두 손을 펼치자.
-촤르르륵!
처용을 중심으로 마치 어부의 어망이 펼쳐지듯 그물이 넓게 펼쳐졌다.
와이번들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채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그물은 생각보다 빠르게 펼쳐졌고 빠져나가기엔 너무 가까이 접근한 상태였다.
-캬악!
-꺄아악!
결국, 어망에 잡힌 물고기들처럼 와이번들이 그물에 갇혔다.
어떻게든 빠져나가 보려고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조악한 와이번의 발톱으로는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파지지직!
처용이 만든 그물은 뇌전 속성이 흐르는 강철 그물이었다.
-캬아아악!
뼛속까지 흐르는 전기에 와이번들이 덜덜 떨며 경련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물에 흐르는 뇌전으로 감전되던 놈들은 하나둘 축 늘어졌다.
“하하, 만선이네?”
처용은 잡힌 와이번들을 그물째로 아공간에 집어넣고 다시 산맥 꼭대기를 향해 나아갔다.
그러자 방금 잡은 녀석들보다 많은 숫자의 와이번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 와이번들 중심에는 유독 거대한 덩치를 지닌 와이번도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
이번에 사냥해야 할 대상인 보스 몬스터였다.
처용은 다가오는 물고기(?)들이 많이 보이자 입가에 웃음꽃을 피웠다.
이 산맥이 와이번들의 영역이라고 해도 애초에 그것들이 처용을 이기기엔 불가능했다.
와이번들도 원거리 공격 수단인 칼날 바람이 있었지만.
처용의 강철 피부를 뚫을 정도의 파괴력은 없었다.
유일한 승산은 대지의 손을 파괴해 처용을 추락시키는 방법뿐이었다.
하지만, 대지의 손 역시 칼날 바람으로 부수기엔 너무 견고했다.
결국, 바람을 타고 질주하며 돌진하는 꿰뚫는 비행으로 공격을 시도했으나.
가까이 접근하면 뇌전이 흐르는 그물이 펼쳐지며 바로 잡혀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보스 몬스터가 처용에게 잡히며 상황이 종결되었다.
“뭐, 이 정도면 충분 하겠지.”
처용이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몸을 풀고 던전을 빠져나갔다.
던전 의뢰가 너무 빨리, 맥 빠지게 끝났다.
싱겁긴 했지만, 던전이 아니어도 해야 할 일들은 많았다.
‘와이번 사체를 이용하면 아타가 나는 개미를 만들 수 있으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던전을 빠져나와 협회로 돌아가려는 순간.
불현듯 처용의 라이센스 반지가 점멸하며 울려왔다.
처용의 라이센스는 협회 간부들끼리 비상용으로 연락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라이센스를 활성화하자 수신자가 바로 확인되었다.
“네, 과장님.”
수신자는 태민이었다.
-아, 던전은 벌써 끝나신 거 같군요. 혹시나 했는데…… 다행입니다.
태민의 목소리에서 무언가 다급함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시죠?”
-도와주십시오. 급한, 아니 많이 급한 상황입니다.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무슨 일입니까?”
처용의 느낌상 무언가 좋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 것 같았다.
-협회 직원들이 들어간 던전에서 직원들의 신호가 끊겼습니다.
“네?”
-갑자기 신호가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강한 어둠 속성이 터지면서 던전 등급이 상향되었습니다.
“……던전이 어디에 있습니까?”
태민이 전해 준 상황은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심각한 상황이었다.
직원들의 실종, 증폭된 어둠 속성으로 인한 던전 등급 상향.
당장 처용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마인…….’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