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39화 (39/726)

#039화

[또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뒷짐을 진 여래가 무언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황당한 일이 벌어졌구나.]

희미하게 웃음을 담은 여래의 시선이 막 태어난 여왕개미에게 향하고 있었다.

현재 여왕개미는 더듬이를 축 늘어뜨린 채 보살 뒤에 숨어 있었다.

눈앞에 있는 신들이 드높은 존재라는 것을 본능으로 느낀 듯싶었다.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만?]

미륵의 눈이 여왕개미를 응시하자 여왕개미가 몸을 더 움츠렸다.

미륵의 시선이 다시 보살을 향했다.

정확히는 그녀의 머리 위 화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륵 역시 처용과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미륵의 눈에는 여왕개미가 가진 마나와 육체의 구조가 보일 것이다.

하지만, 결과만 보고 과정까지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다.

왜 여왕개미가 보살과 비슷한 모습을 하게 되었는가?

여왕개미를 관찰하고 있는 처용 역시 가장 궁금한 부분이었다.

[하이 앤트리스 퀸]

[등급 : A급]

[특징 : 신성한 환경과 에너지의 영향을 받아 고위 종족으로 진화한 개미.]

[아직 성장을 전부 마치지 않았습니다.]

[강한 자원을 섭취하면 보다 강한 병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스킬 : 여왕의 권위, 군체여왕, 재생…….]

“앤트리스 종족?”

통찰의 눈으로 여왕개미를 관찰한 처용의 의문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시스템의 설명대로라면 이 여왕개미는 개체의 진화를 넘어서 하나의 종족이 된 것이었다.

“이런 일이 가능한가요?”

처용이 미륵에게 물었다.

[짐작이 가는 것은 있다.]

미륵이 여왕개미를 날카롭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것의 독특한 능력과 관련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미륵이 처용의 질문에 대답해주고 있을 때.

[이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보살이 여왕개미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몰려들자 여왕개미가 더 움츠렸다.

“사, 살려 주세요.”

눈을 감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을 보면.

도저히 A급 몬스터 같지 않았다.

‘아니, 하나의 종족이 되었으니 몬스터가 아닌가?’

시스템의 설명대로라면 눈앞에 있는 여왕개미는 이제 몬스터보다 엘프나 오크와 더 비슷했다.

‘모르겠네…….’

여왕개미를 몬스터로 대해야 할지 종족으로 대해야 할지 헷갈렸다.

처용이 머리를 박박 긁으며 답답한 듯 인상을 구겼다.

“흐윽, 제발 살려 주세요.”

여왕개미는 지금 상황이 정말 두려운 듯 훌쩍거리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런 여왕개미를 향해 보살이 눈높이를 맞추며 앉았다.

[진정하거라 아이야.]

여왕개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옅게 웃어 보인 보살이 차분하게 말했다.

[널 해치지 않을 테니 울지 말거라.]

보살의 목소리에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여왕개미의 떨림이 멈추었다.

[대신 우리의 말에 대답해 줄 수 있겠니?]

“네…….”

여왕개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우선, 왜 그 모습으로 태어났는지 말해줄 수 있겠니?]

보살이 차분하게 물은 말은 이곳에 있는 모두가 궁금해하던 질문이었다.

훌쩍거림을 멈추고 진정한 여왕개미가 입을 열었다.

“여, 영향을 받아서 그래요.”

[영향?]

“저는 알에서 태어나기 전까지는 주변에서 에너지를 받아 성장해요.”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돼.”

처용이 여왕개미를 향해 물었다.

알이 주변의 에너지를 받아 성장한다는 것은 던전에서 이미 알아낸 정보였으니까.

“흐, 흐윽. 죄, 죄송해요…….”

처용의 목소리에 다시 두려움이 일었는지 여왕개미의 말이 떨려왔다.

[계승자.]

보살이 처용을 잠시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보살의 눈빛에 처용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야, 이름은?]

“이, 이름은 없어요…….”

[그렇구나, 그럼 우선 너에 대해서 말해 주지 않겠니?]

보살이 차분하게 이야기하자 여왕개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종족, 습성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야기는 곧 이곳에 있는 이들이 궁금해했던 주제로 나아갔다.

“알에 있는 동안은 주변의 에너지를 받아 성장해요.”

[어떻게 이곳에서 흐르는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었니?]

“너무 큰 에너지라 조금씩 받아먹었어요.”

태룡전은 세 명의 대신이 거주하는 성역.

맑고 신성한 신력이 끊임없이 흐르는 장소였다.

여왕개미는 알 상태에서 흐르는 신력의 일부를 조금씩 흡수해 왔던 것이었다.

“아주 조금씩 흡수해도 소화가 안 돼서 육체를 만들 수 없었어요.”

[그러면 왜 그 모습이 된 거니?]

“저를 도와주셨어요.”

[누가?]

여왕개미는 보살의 질문에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나?]

“보살님이요?”

보살의 말에 뒤이어 처용의 의문이 가득 담긴 말이 튀어나왔다.

[하하, 알을 품어주기라도 하셨습니까?]

여래가 옅게 웃음을 짓고 보살을 바라보며 물었다.

[가끔 와서 쓰다듬어 주긴 했습니다만.]

“그렇게 만져 주실 때마다 맑고 안정적인 기운을 주셔서…….”

보살의 말에 여왕개미가 맞다는 듯 대답했다.

“단순히 만졌다는 이유로 신력을 받아먹는다는 게…….”

처용이 의문을 담아 읊조렸다.

다른 이들도 아니고 무려 대신의 신력이다.

저 여왕개미가 가진 고유의 특성이라고 해도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처용이 인상을 쓰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보살님이라서 가능했을 것 같구나. 제자야.]

여래가 처용의 의문에 답하듯 말해주었다.

[저 아이의 특성이 아닌 보살님의 특성을 생각해 보거라. 너 역시 가지고 있으니.]

처용은 여래의 말을 듣고 보살에게서 계승받은 권능이 떠올랐다.

“자비의 손길…….”

처용이 오른손을 들어 권능을 발현해 보자 따스한 빛이 스며 나왔다.

사람을 치료해주고 보듬어주는 그녀의 마음이 담긴 권능.

그녀가 그저 단순히 알을 쓰다듬었다고 해도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보살은 자비(慈悲)의 대신, 베풀어 주는 자였으니까.

“그저 손길에서 퍼져 나오는 신력을 흡수한 것이로군요. 극소량이지만.”

그녀의 신력을 받아먹어 봐야 아주 미미한 정도였을 것이다.

[드넓은 대양(大洋)을 수저로 한 숟갈 퍼냈다고 해야 할까? 하하.]

처용의 말에 여래가 웃으며 말해주었다.

보살에게 딱히 문제가 없다면 처용도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아직 의문이 더 남아 있었다.

“보살님.”

처용이 보살을 부르며 바라보자 그녀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수의 내단은 왜 가져간 거니?]

“아…….”

처용이 눈을 가늘게 뜨며 여왕개미를 바라봤다.

그녀가 자신의 물건을 홀라당 뺏어가 집어삼킨 셈이었으니까.

보살의 질문에 여왕개미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걸 먹어야 에너지를 모두 소화시키고 부화할 수 있었어요.”

여왕개미의 말을 정리하자면.

태룡전에서 흐르는 신력은 여왕개미가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가 아니었다.

보살의 손길로 에너지를 모아 겨우 육체를 만들 수 있었지만.

아직 모인 에너지를 전부 소화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부화하지 못하고 소화불량에 시달리던 중.

신수의 내단을 만졌던 보살의 손길이 알에 닿았다.

그녀의 손길을 통해 신수의 내단을 감지한 알이 그것을 빨아들인 것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신수의 내단을 소화제로 쓴 것이다.

“그래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어요.”

여왕개미가 말이 끝나자 고개를 숙이고 처용을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죄, 죄송해요. 함부로 써서…….”

처용은 여왕개미의 말에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답답한 듯 머리를 긁었다.

아직 눈앞에 녀석을 ‘몬스터’로 대해야 하는지 ‘이종족’으로 대해야 하는지 헷갈렸으니까.

처용이 말이 없자 보살이 여왕개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계승자도 널 탓하지는 않을 거다. 무서워 보여도 좋은 아이니까.]

보살이 처용에게 눈짓했고.

“탓하지 않겠다.”

처용은 어머니의 말은 잘 듣는 아이였다.

“다만, 이거에 관해서는 설명해 줬으면 하는데.”

말을 이은 처용이 아공간에서 무언가를 꺼내 여왕개미에게 보여줬다.

재생이 담긴 스킬석이었다.

“스킬석이라는 거다. 네가 다시 태어나는 특성이 담겨 있지.”

처용이 스킬석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준 후 말을 이었다.

“이걸 사용하는 방법은?”

처용의 질문에 여왕개미가 더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고민했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우선……, 조건을 맞춰야 할 것 같아요.”

“조건?”

“네. 저도 다시 태어나려면 조건이 갖추어져야 가능하거든요.”

여왕개미가 천천히 ‘재생’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둥지와 영혼, 항시 공급받을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해요.”

둥지는 여왕개미가 깨고 나온 알을 의미했다.

알이 자라날 자리는 미리 만들어 놓을 수 있고 더 좋은 자리로 옮길 수도 있었다.

영혼은 여왕개미의 존재 자체였다.

육체를 잃으면 잔류하고 있던 마나와 기억을 담은 영혼이 알로 흘러간다.

그리고 에너지는 던전에 있던 속성석처럼 다시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였다.

“대략적인 원리는 이해했다.”

재생에 대한 설명을 들은 처용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나나 혹은 다른 사람이 이걸 사용할 방법은?”

이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특성을 이해했다고 해도 아직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니까.

“잘 모르겠어요…….”

여왕개미가 힘없이 대답했다.

“이런.”

처용이 인상을 구기고 있을 때.

[하하, 당연히 모르지. 아니 설명할 수 없겠지.]

미륵이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간이 새를 보고 날갯짓을 가르쳐 달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더냐?]

“아! 그렇군요.”

처용은 미륵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처용과 여왕개미는 태생, 특성, 종족 등 많은 것이 달랐다.

재생은 여왕개미만이 가진 특수한 특성.

다른 종족의 생명체가 이를 쓸 방법을 알 리가 없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일반인이 마법사 클래스 헌터에게 파이어 볼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잠시 생각한 처용은 여왕개미를 향해 한 가지를 더 질문했다.

“네가 말한 그 조건, 그걸 갖추기만 하면 너처럼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건가?”

“조, 조건만 갖춘다면 아마도요…….”

여왕개미의 말이 끝나자 처용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느냐. 제자야?]

처용의 표정을 본 여래가 물었다.

“이전 제가 싸우던 마수 중 일부가 재생을 쓴 것 같다고 한 적 있었죠?”

[그래서 알을 챙겨온 것이 아니더냐? 다른 문제라도 있느냐?]

“문제라기보다는 이제야 이해가 돼서 그렇습니다.”

회귀 전, 마인들은 여왕개미의 재생을 완벽히 연구하는 것에 성공했다.

여왕개미가 말한 과정을 모두 충족시키는 실험장.

강력한 재앙급 마수들을 끊임없이 되살리는 부화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놈들의 실험장을 파괴했을 때, 일부 마수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가 납득이 되는군요.”

그럼,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긴다.

“이 녀석을…….”

눈앞의 여왕개미를 어떻게 할 것인가?

성장한 여왕개미가 마인들의 손에 들어간다면 재앙이 펼쳐질 것이다.

처용의 상상이 좋지 않은 쪽으로 향하자 오른손이 마치 검을 쥐듯 움찔거렸다.

‘위험한 변수는 배제해야 한다. 하지만…….’

보살을 닮은 여왕개미의 얼굴을 바라보자 망설임이 일렁인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극단적인 선택만으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제자야.]

“스승님?”

처용의 어두운 분위기를 눈치챈 여래가 다가와 말했다.

[나 역시 그랬었으니.]

여래가 마지막에 한 말은 작게 흘렸기에 처용이 알아듣지 못했다.

여래를 제외한 두 대신은 정확히 알아들었지만…….

처용을 지나친 여래는 여왕개미 앞으로 다가섰다.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으냐?]

“저는…….”

여왕개미가 보살의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저는 살고 싶어요.”

애초에 여왕개미의 목적은 본인 스스로 계속 말하고 있었다.

그저 살아가고 싶은 것, ‘생존’이었다.

그 모습을 본 여래가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원한다면 이곳에 남아도 좋다.]

여래의 말에 여왕개미의 눈이 점점 커져갔다.

동시에 여래의 시선이 보살에게로 향하자.

[아이를 돌보는 건 익숙하니까요.]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한 듯 보살이 답했다.

[제 영향을 받아 태어났으니 제가 돌보는 게 맞겠지요.]

미소를 지은 보살이 여왕개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처용이 복잡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네놈의 걱정은 쓸데없는 짓이다.]

미륵이 처용에게 다가와 말했다.

[저것, 아니 저 아이는 더 이상 몬스터가 아니다. 너도 내 권능으로 보지 않았느냐?]

“……그렇죠.”

[태생이 미물이었을지 몰라도 이젠 신수에 가까워졌다.]

“몬스터가 신수로 다시 태어났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지만요.”

[사람도 원래 미물, 네놈이 말한 몬스터에 가까운 존재들이었다.]

미륵이 먼 과거를 회상하듯 눈을 감고 이야기했다.

[그런 미물이 진화하고 지혜를 갖추고 성장하여 인간(人間)이 되었지.]

눈을 뜬 미륵의 시선이 이번에는 여래와 보살을 향했다.

태초신이 내린 사명으로 자신이 직접 성장하는 것을 지켜본 ‘인간’이었던 이들을…….

그리고 다시 처용을 바라봤다.

[하하하, 네놈에겐 너무 어려운 말을 했나?]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미륵님.”

처용은 미륵이 해준 말 덕분에 머릿속에 들어찬 잡념들을 지울 수 있었다.

[그러니 잡생각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누군지 잊었느냐?]

“제가 바보 같았군요.”

처용이 했던 고민을 대신들이 안 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여왕개미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것도 자신에게 분명한 이득이 되는 이유가.

세 명의 대신들은 모두 계승자인 처용의 성좌.

이들이 처용에게 있어 좋지 않은 선택을 할 리가 없었으니까.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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