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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38화 (38/726)

#038화

“흠, 일단은 이정도 숫자면 충분하려나?”

보물전 안의 대장간.

그 앞에 전시된 무구들의 원형을 본 처용이 흡족한 듯 웃었다.

그것들은 가재의 집게발 갑각을 처용이 직접 가공하여 만든 것들이었다.

3미터가 넘는 크기의 거대한 투창들과 트롤이 휘두를 법한 크기의 해머와 할버드, 대검 등.

모두 대형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한 무구의 원형이었다.

“단단해서 좋네.”

원래 재료가 워낙 좋아서 그런지 그대로 써도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아티팩트의 관통력과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 인첸트는 필수였다.

“형태를 조금 더 다듬고 자연부를 부여하면 되겠네.”

특히, 투창은 다양한 몬스터에 대처하기 위해 속성별로 만들어 둘 생각이었다.

준비는 철저할수록 좋으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해주시겠지.”

배신자들을 잡을 때 사용했던 팔찌와 화염의 절로 봤을 때.

혁수의 인첸트와 마감 실력은 아주 충분히 입증된 셈이었다.

이 원형들이 그의 손을 거치면 어떤 훌륭한 아티팩트로 완성될지 벌써 기대가 되었다.

중간 점검을 끝낸 처용이 다시 망치와 정을 들고 세공을 계속했다.

‘던전에 갈 일이 없어도 할 일이 많구나.’

처용은 이무기를 사냥한 이후 사흘 동안 던전에 가지 못하고 있었다.

태민에게 갈 만한 던전이 있는지 주기적으로 물어보고는 있지만.

이무기처럼 이변이 발생하거나 새로 생겨나는 던전이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해도 너무 낮은 등급이라 처용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협회 내부 상황이 너무나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배신자들을 잡아내던 날 이후.

정권 뒤집기를 노리던 임원들이 모두 체포되어 그들의 범죄가 세상에 알려졌다.

집행반 역시 모두 해체되었고 배신자로 밝혀진 이들은 라이센스를 박탈당한 후 수감되었다.

이들이 세상의 비판을 받으며 물러난 자리를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야 했다.

부패한 집단이라고 해도 임원들과 집행반 전부가 협회에서 퇴출된 것은 아니었다.

이기적인 욕망 속에서도 양심과 선(善)을 지킨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탐정인 태민의 주도하에 다시 엄중한 선별을 거쳤고.

욕망에 굴하지 않고 양심을 지킨 이들은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탐정의 능력이라면 괜찮겠지, 그 아티팩트도 있으니.”

처용 역시 이들의 상황을 예상했었고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장 던전에 가지 못한다고 해도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잃어버린 힘을 되찾기 위한 수련을 계속하는 중이었다.

지금 이 순간도 앞으로 있을 싸움에 대비해 무기 형틀을 만드는 중이었으니까.

“일단 이정도로 끝내 둘까?”

대략적인 작업은 끝냈으니 한 번 더 검토 후에 혁수에게 보내면 끝이었다.

“후, 그러고 보니 저것도 알아봐야 하는데 말이야.”

기지개를 피며 몸을 풀던 처용의 시선이 보물전 구석에 있는 거대한 알로 향했다.

이전 개미굴 던전에서 구해온 여왕개미의 알이었다.

재생이라는 스킬을 알아보기 위해 가져왔지만.

아직 조사에 진척이 없는 상황이었다.

던전의 순환을 생각해 봤을 때는 벌써 몬스터가 태어나고도 남았을 시기였다.

하지만, 환경이 바뀐 탓인지 알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요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전보다 커진 것 같긴 하지만…….”

애초에 몬스터가 갑자기 태어난다고 해도 문제는 없었다.

이 장소, 태룡전은 성좌들과 처용이 정신적으로 연결되어있는 신성한 성역.

일개 몬스터가 깽판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저것도 문제고 이것도 문제고…….”

보물전의 중앙으로 다가와 무언가를 바라본 처용이 중얼거렸다.

“흠, 이건 도대체 어디다 써야 하나.”

처용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신수의 내단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지만, 아직 마땅한 방안을 찾지 못했다.

“눈 딱 감고 먹어 봐야 하나?”

처용은 이 내단을 먹어볼까도 생각해 봤다.

“아니야…….”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 내단의 주인이 가졌던 마나를 흡수한 처용은 신수의 권능을 계승받은 상태였다.

내단에 에너지가 남아있다고 해도 먹어서는 크게 도움이 안 될 것이다.

“흠.”

처용이 내단을 두고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하던 작업은 다 끝났나 보군요. 계승자.]

뒤에서 울려오는 미성에 처용이 고개를 돌리자 보살이 서 있었다.

“아 보살님.”

처용을 보던 보살의 시선이 대장간 위로 향했다.

보살의 눈동자가 처용이 만든 무기 원형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승자는 정말 다재다능하군요.]

오랜 세월 살아오며 많은 장인들을 봤었던 보살의 눈에도 처용이 만든 것들은 훌륭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건, 신수의 내단이네요.]

“네, 안 그래도 이걸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보살이 처용 앞에 놓인 덩어리를 보고 말하자 처용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먹어볼까도 생각을 해 봤지만, 낭비 같아서 관두었습니다.”

[아직 에너지가 남아있으니 활용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음…….]

보살이 다가와 신수의 내단을 쓰다듬듯 만져보고 고민하듯 고개를 기울였다.

[저렇게 가공해서 무구로 만드는 방향은 어떤가요?]

보살이 대장간 위의 무기 원형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괜찮은 방향 같습니다. 어떻게 가공할지는 모르겠지만요. 하하.”

[같이 찾아보면 방법이 있을 겁니다. 계승자는 혼자가 아니잖아요.]

“……감사합니다. 보살님.”

처용은 보살의 말에 잠시 침묵하다가 감사를 전했다.

자신은 혼자가 아니다. 라는 말.

회귀 전에도 보살이 종종 처용을 위로하듯 해주던 말이었다.

“이 내단도 그렇고 저 알도 알아봐야 하는데 말이죠.”

처용이 보물전 구석에 놓인 거대한 여왕개미의 알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원리밖에 알아낸 게 없으니 답답합니다.”

이전 미륵의 요청대로 재생의 스킬이 담긴 재생석을 가져와 보여줬었다.

제아무리 미륵이라고 해도 단순 스킬석만 가지고는 모든 것을 단번에 파악할 수는 없었다.

다만, 알아낸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륵은 재생을 보고 삶의 윤회 같다고 표현했다.

재생은 무조건 같은 개체가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었다.

특정 조건이 갖추어진 상황에서 새로운 개체가 선대의 경험을 일부 얻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전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미륵님은 재생을 쓰는 당사자가 잘 알 것이라 하셨었지만…….”

처용은 여왕개미의 알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알에다가 대고 재생이 뭐야? 라고 물어보면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결국, 재생에 관한 문제도 소강상태였다.

[안에서 생명이 느껴지긴 하는데 언제 태어나는 걸까요?]

보살이 알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미륵님하고 스승님 말씀으로는 그것도 조건에 맞아야 한다고 하시긴 했습니다만. 하아.”

처용은 그들의 말을 듣고 던전에 있었던 속성석들을 알 주변에 깔아놨었다.

그럼에도 알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이렇게 쓰다듬어 주면 안에서 편안한 울림이 들려오긴 합니다만.]

“네?”

처용이 놀란 듯 물었다.

“제가 만졌을 때는 떨던데요?”

처음 알을 운반했을 때 처용의 손길이 닿자 알은 무서운 듯 떨었었다.

마치 자신을 죽인 사람을 기억하는 듯이 말이다.

[제가 가끔 여기 와서 쓰다듬어 주니까 그런 걸까요?]

“흠.”

보살의 말에 처용이 생각에 빠졌다.

“보살님이니까 그런 반응을 할 수도?”

처용이 고개를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신들이 가진 신력은 본인들을 상징하는 고유의 힘인 만큼 다양했다.

미륵의 거칠면서도 차가운 잿빛 신력, 여래의 고요하고 푸르게 빛나는 신력 등.

신들이 가진 성격 혹은 이명에 따라 신력의 느낌이 달랐다.

보살은 자비의 대신.

연꽃잎처럼 분홍빛으로 빛나는 그녀의 신력은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이 있었다.

그렇게 처용이 보살과 알을 번갈아 보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우웅.

알에서 어떤 진동이 퍼져 나왔다.

[이번에는 조금 크게 우는-]

보살이 알을 쓰다듬으며 말하고 있는 중.

-훅!

처용 앞에 있던 신수의 내단이 알 쪽으로 순식간에 날아갔다.

“뭔?”

앉은 자세를 일으켜 잡아내기에는 이미 늦었다.

보살은 뒤돌아서서 알을 보고 쓰다듬는 중이라 모르고 있었다.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었다.

그렇게 신수의 내단이 알에 닿는 순간.

-슈르르.

내단이 알에 흡수되듯 빨려 들어가며 사라졌다.

[……음?]

“…….”

표정을 굳힌 처용이 일어서 알로 다가갔다.

“뱉어.”

알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뱉으라고 이…….”

차마 보살이 있는 앞에서 험한 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뒷말을 잇지 못했다.

처용의 말에도 알은 반응이 없었다.

-스르릉-

열 받은 처용이 화염의 절을 꺼내 들고 칼집에서 검을 뽑았다.

“직접 꺼내야겠네.”

처용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알을 바라보며 읊조리자.

-부르르.

생명의 위험을 느꼈는지 알이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계승자.]

처용을 말린 보살이 다시 알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곧 나올 거라고 하네요?]

“네?”

[계승자는 신수의 권능을 받았으니 지금은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보살의 말을 들은 처용이 알에 다가가 손을 얹어 보았다.

-부르르!

알에서 자신을 향한 공포와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의지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죄, 죄송해요.

의지를 해석하자면 이런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안절부절 못하며 동시에 불안함이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그런 울림이 전해짐과 동시에.

-쩌적!

알의 외피가 조금 갈라졌다.

보살이 알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나자 처용도 물러났다.

작게 시작한 알의 균열이 점점 번지면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쩌저적!

점점 부서져 내리는 알을 보며 처용에게 궁금증과 기대감이 동시에 떠올랐다.

처음 가져왔을 때는 높이 4미터 정도의 크기였던 알이 점점 커져 6미터가 넘어갔다.

이 거대한 알에서 과연 무엇이 나올지 조금 궁금했다.

동시에 화염의 절을 쥐고 전투를 준비했다.

이 알은 몬스터, 여왕개미의 알이었으니까.

알 전체에 균열이 전부 번진 순간.

꼭대기부터 차례대로 무너지며 알이 깨져나갔다.

그런데 알이 위에서부터 절반가량 부서졌는데도 안의 생명체가 보이지 않았다.

“흠?”

알의 크기가 큰 만큼 큰 덩치의 몬스터를 예상했지만 아니었다.

알이 거의 다 부서지고 밑동만이 남았을 때.

“……꼬마 애?”

[아이네요?]

두 다리와 팔을 모으고 웅크려 앉아있는 아이가 드러났다.

웅크리고 있던 아이는 의식이 완전히 깨어났는지 천천히 일어섰다.

대략 150cm 정도 되는 키의 초, 중등생으로 보이는 단발머리의 여자 아이.

겉모습은 인간과 비슷해 보였지만, 다른 부분이 많았다.

개미라는 것을 증명하듯 머리 위에 돋아난 더듬이와 등 뒤에 돋아나 있는 곤충의 날개.

마치 마네킹처럼 갑각과 갑각이 이어져 있는 듯한 팔과 다리.

처용과 보살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마치 곤충의 눈처럼 다각형들이 모여 있는 형태였다.

그리고, 어울리면서도 어울리지 않은 듯한 게 하나 있었다.

‘……연꽃?’

왼쪽 머리 위에는 머리띠를 쓴 것처럼 작은 연꽃의 봉오리가 있었다.

마치.

[음, 신기하네요?]

처용의 시선의 보살에게로 향했다.

정확히는 보살의 머리 위에 씌워진 화관, 화관에서 환하게 피어난 연꽃을 향했다.

그러고 보니 생김새도 조금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마치 보살이 어릴 때는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처용의 눈동자가 개미와 보살을 번갈아 보며 혼란에 빠져 있을 때.

마치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개미의 입이 조금씩 열렸다.

“사…….”

처용과 보살이 개미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자.

“살려 주세요…….”

개미의 입에서 살려달라는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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