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화
“그러니까 제가……, 신수의 권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처용은 던전을 정리하고 곧장 태룡전으로 돌아왔다.
별문제는 없었다지만, 작금의 상황을 성좌들에게 알려야 했으니까.
던전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말하자 세 명의 신들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흠, 조금 당황스럽구나.]
태룡전을 구성하는 못 한 부근을 바라보며 여래가 말했다.
여래의 시선이 닿은 못 위에는 바위 하나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처용이 보낸 스톤 터틀이었다.
어떤 원리로 그 무거운 몸을 물 위로 띄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한 듯 여기저기서 연잎과 연밥을 뜯어먹고 있었다.
[당황스럽긴 해도 너에게는 좋은 상황 같구나.]
“저도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만…….”
신수의 마나를 흡수한 덕에 망가졌었던 선인의 육체가 조금 수복되었으니까.
하지만.
“몬스터 테이밍……, 아니 뭐라고 해야 할까요?”
처용이 객관적으로 판단해 볼 때 이건 헌터들의 테이밍 능력과는 달랐다.
생명체의 의지가 자신을 경배하고 따르는 느낌.
마치 무리의 군주가 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네가 선인의 수련을 받았기에 신수의 권능을 얻은 것 같구나.]
“선인의 육체가 신수랑 뭔가 관계가 있습니까?”
[완전히 같지는 않다. 하지만, 공통적인 목표를 추구하지.]
여래가 처용을 바라보며 설명을 이었다.
[너와 신수의 공통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잠깐 고민한 처용은 이내 한 가지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신력입니다.”
동시에 여래가 원하는 답도 찾아낼 수 있었다.
선인의 수련을 받아 성장한 수호신(神) 처용.
맑은 정기를 쌓으며 상위의 개체로 진화하는 신수(神獸).
“신격(神格)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로군요.”
[정답이다.]
신격으로 향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지만, 선인의 수련은 신수들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신수가 정기를 쌓으며 육체를 진화시켜 신격으로 나아간다고 하면.
선인은 수련을 통해 육체를 강화하여 신격으로 나아갔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문득 드는 궁금증이 있었다.
“계승자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과거에도 물어본 적이 있었지만, 여래가 대답해주지 않았었다.
그래서 의문을 접었던 질문이었다.
하지만, 신수의 권능을 ‘계승’받았다는 시스템의 설명에 다시 궁금증이 일었다.
처용의 질문을 받은 여래를 포함해 다른 신들 역시 표정이 미묘해졌다.
[우리가 신좌에 오르기까지 겪어온 모든 과정에서 장점만을 골라 전수하는 직계 제자.]
잠시 침묵하던 여래가 처용에게 말했다.
[이 이상은 설명할 수 없구나.]
여래는 옅게 웃고 있었지만.
처용에게는 무언가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렇군요.”
[미안해요. 계승자…….]
보살이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처용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처용이 웃음을 짓고 믿음을 담아 말했다.
“때가 되면 말해 주시리라 믿으니까요.”
사실 처용도 속으로는 너무나도 궁금했고 당장 답을 알고 싶었다.
성역 태룡전의 비밀, 성좌들이 말할 수 없는 이유.
그리고 계승자.
그래도 앞에 있는 성좌들을 신뢰했기에 개의치 않았다.
‘생각해 보니 크타니드도 나보다는 계승자라는 의미에 더 집착한 것 같은데…….’
자신을 보며 수호신이 아닌 ‘계승자 한처용’이라 불렀던 크타니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악의 종주까지 닿았다.
‘당장은 알 수 없다. 알아낼 방법도 없고’
처용은 떠오르는 잡념들을 날려 보냈다.
지금은 멸망을 대비하기 위한 일들에 충실할 때였다.
“협회에 결과를 전해야 해서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처용이 게이트를 열고 사라지자 세 명의 신들이 서로를 마주했다.
[계승자가……, 운명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보살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슬픈 듯 말했다.
[제자 녀석은 이겨낼 겁니다.]
[확신하듯 얘기하시는군요?]
여래의 말에 미륵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믿으니까요.]
여래가 옅게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처용이 자신을 믿어주는 것처럼 자신 역시 처용을 믿었다.
[그나저나 원하는 건 찾으셨는지요?]
미륵이 여래가 최근 자리를 비우며 하는 일에 대해 물었다.
[도와주신 덕분에 위치는 알았습니다. 다행히 아직 늦지 않았더군요.]
[늦지 않았다니 다행입니다.]
여래의 대답에 보살이 안심한 듯 말했다.
[신선(神仙)이 ‘혈선(血仙)’으로 변할 일은 없겠군요. 하하.]
미륵이 여래를 보며 과거를 회상하듯 말했다.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그런 미륵을 향해 보살이 딱딱한 음성을 냈다.
[하하, 옛날의 제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두 신들을 향해 여래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단순히 그들을 찾기만 할 생각은 아닙니다.]
여래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두 신이 귀를 기울였다.
[악신들과 성좌의 세력들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여래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저희 역시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되니까요.]
[잠깐, 자네 설마?]
여래의 의도를 알아챈 미륵의 입에서 놀라움과 경악이 담긴 음성이 흘러나왔다.
당황한 나머지 항상 서로 높이며 사용하던 존칭이 아닌 먼 과거 그를 대하던 말투가 튀어나왔다.
[그들의 태생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물론 확인해 봐야겠지만.]
여래는 잠시 당황한 미륵의 태도를 보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불가능하지는 않……, 아니 충분히 가능하겠군요. 특히 이곳이라면.]
여래의 의도를 곰곰이 생각하듯 눈을 감은 미륵이 말했다.
[태룡전이니까요.]
미륵의 말에 대답한 여래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자 녀석의 수련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앞으로의 경험에도.]
여래가 처용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웃었다.
[오랜만에 반가운 손님이 오겠군요.]
[하하, 그녀도 보살님만큼은 싫어하지 않았으니까요.]
보살의 말에 대답한 여래가 그 계획을 위해 다시 자리를 비웠다.
***
태룡전에서 나온 처용은 결과 보고를 위해 협회를 찾았다.
“던전 안에……, 이런 몬스터들이 있었다고요?”
협회 재고관리 센터.
혁수의 작업 공방 안에 나열된 괴수 사체들을 본 태민이 입을 벌리며 중얼거렸다.
“이건……, B급 던전의 수준이 아닙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 처용에게 부탁한 것이긴 하지만.
설마 이정도로 난이도가 급상승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태민이 아직 멍해 있을 때.
“흠, 단단하군?”
백호가 가재의 집게발 부분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A급 몬스터 중에서도 나름 강했겠어.”
“네, 강합니다. 그리고 저기.”
가재를 본 백호의 평가에 처용이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이 집게에 잡힌 몬스터가 저렇게 되었거든요.”
처용이 반으로 갈라져 죽은 배틀 크랩의 사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허허, 잡히면 골로 가겠구만?”
백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지만, 속으로는 나름 놀라고 있었다.
“자네, 진짜로 회복 중인 사람 맞나?”
백호가 처용을 향해 궁금증을 가득 담아 질문했다.
이 던전의 난이도는 웬만한 A급 헌터들도 곡소리를 내뱉을 난이도였다.
이런 난이도의 던전을 부상을 회복중인 처용이 하루 만에 해결했다.
심지어 처용의 겉모습을 살펴봤을 때 던전에서 다친 상처는 없어 보였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죠.”
“완치는 아니라는 거구만.”
가볍게 대답한 처용의 말에 백호가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거, 내가 갔어도 피곤했을 거 같은데…….”
가재의 집게를 응시하던 백호가 가볍게 정권을 내질렀다.
-쾅!
백호의 주먹이 닿자 쇠망치로 강하게 내리친 듯 굉음이 울렸다.
“이 정도 타격에는 금도 안 가는 놈들이란 말이지?”
백호가 자신이 때린 집게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관찰하고 있을 때.
“야 임마! 누구 마음대로 재료에 손대래?”
백호를 향해 혁수가 소리치며 다가왔다.
“얼마 만에 들어온 A급 자원들인데! 망가지면 네놈이 물어줄 거냐?”
“흠집도 안 났다, 이 녀석아!”
백호에게 망치를 들이밀며 호통치는 혁수와 팔짱을 끼고 맞서 호통치는 백호.
두 친구가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이 엘리트들이 대거 나타난 원인을 찾으셨다고요?”
태민이 처용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가 처용에게 이 일을 의뢰한 이유이기도 했으니까.
“보스가 이상한 걸 처먹어서 그렇더군요.”
처용이 대답함과 동시에 아공간에서 신수의 내단을 꺼내 보여 줬다.
“마정석 같은 건가요?”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마정석이나 신수의 내단이나 에너지가 뭉쳐진 덩어리였으니까.
“보스 녀석이 처먹고 뱉어낸 거라 온전하지는 않지만요.”
처용이 이무기의 사체를 흘끔 바라보며 말했다.
“그 덩어리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제 성좌님이 보여 달라고 하시는데, 제가 가지는 게 문제가 되나요?”
“아뇨, 없습니다. 던전 문제도 해결이 되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하하.”
처용은 태민의 대답이 마음에 든다는 듯 웃어 보였다.
“이야! 마정석 크기 봐라! 하하하.”
이무기 사체에서 마정석을 꺼낸 혁수가 신난 듯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혁수 입장에서는 지금 상황이 신날만 했다.
협회에는 A급 자원이 들어올 일은 거의 없었다.
보통 A급 던전들은 주로 대형 길드들이 공략해 처리하기 때문이었다.
공략으로 얻은 자원도 길드 내부에서 거의 다 소진한다.
이런 상황에 처용이 온전한 A급 몬스터들의 사체를 가져왔다.
혁수의 개인 작업장을 거의 꽉 채울 정도로 말이다.
혁수가 협회에 자리 잡은 이후 이런 온전한 자원은 처음 얻는 것이었다.
“이거 저번이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액수가 클 거야.”
대충 살펴본 혁수가 처용에게 다가와 말했다.
“저 A급 몬스터들은 그렇다 치고 나머지들도 거의 다 엘리트들이잖아.”
처용이 가져온 자원들은 당장 환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긴 했었다.
“좋아 보이시네요. 센터장님.”
“하하, 당연히 좋지. 이 가재 한 마리만 써도 파티 하나를 무장시킬 수 있을걸?”
혁수가 가재의 외피를 망치로 두드리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도대체 이 녀석을 어떻게 베어낸 건가?”
가재의 다리 중 하나를 보며 막 생각한 듯 혁수가 물었다.
처용이 화염의 절에 검기를 부여하여 베어낸 다리였다.
“백호가 내지른 주먹에 금도 안 갈 정도로 단단한데 말이야?”
“내가 한번 제대로 때려 봐?”
혁수의 말에 자극받은 듯 백호가 주먹을 들어 올리자.
그런 백호를 태민이 진정시키려 만류했다.
“센터장님이 워낙 좋은 무기를 주셔서요.”
“하하, 그거 고맙구만.”
혁수는 처용의 말에 웃어 보이며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놀람을 겨우 감추고 있었다.
처용에게 건네준 화염의 절은 혁수가 만든 무기였다.
본인이 만든 무기만큼 그 성능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처용이 아닌 다른 근접 클래스 헌터가 화염의 절을 들고 가재를 벨 수 있을까?
혁수가 머릿속에서 계산한 대답은 ‘절대 불가능’이었다.
“아 혹시 이런 무기도 제작이 가능한가요?”
막 떠올랐다는 듯 처용이 혁수에게 물었다.
화염의 절은 충분히 좋은 아티팩트였다.
당분간 계속 애용하며 사용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가재 같은 단단한 갑각을 가진 대형 몬스터들에게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런 놈들을 자주 마주칠 것이기에 다른 무기가 필요했다.
처용의 설명을 들은 혁수가 고민하듯 턱을 잡고 생각한 후 말했다.
“하지만, 이러면 너무 무거운데? 자네 힘은 좀 쓰나?”
질문을 받은 처용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줬다.
-쿠구구
처용은 잘려나간 가재의 집게발 하나를 한 손으로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그, 그래. 충분하고말고.”
가재의 크기는 몸통만 15미터가 넘어가는 크기였다.
집게발 하나의 크기는 몸통의 절반 크기.
혁수가 대충 생각해 봤을 때 집게발 하나의 무게가 2톤은 충분히 넘을 것이었다.
처용은 그 중량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렸다.
“힘을 쓰다 못해 장사였구만.”
“기초 훈련을 많이 했거든요.”
“허허…….”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한 처용을 보며 혁수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확실히 이런 놈들 상대하기에는 검이 불리하지.”
처용이 말해준 의뢰를 생각한 혁수가 말했다.
“마침 새로운 자원들이 생겼겠다. 훌륭하게 만들어주겠네.”
“감사합니다. 지난번처럼 제가 기초 형틀은 제작해올게요.”
“하하, 그려. 본인이 쓸 무기이니 자네가 틀을 만드는 게 좋겠지.”
협회 일을 모두 마친 처용은 다시 태룡전으로 돌아갔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