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화
“끼-야약!”
-파창!
날카로운 괴성과 동시에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허억, 허억.”
오른쪽 귀를 붙잡은 마녀의 눈동자가 거침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야…….”
부상을 입었다고 해도 가만히 놀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추가 정보를 얻을 겸 협회에 심어진 밀고자들에게 따로 연락했었다.
하지만, 모두 신호만 갈 뿐 연락이 오지 않았다.
불길한 느낌이 들어 비상 소집지에 있는 통신기와 연결된 성소를 찾았다.
마침, 감시자가 연락을 했는지 통신기가 점멸하고 있었다.
통신을 받고 감시자에게서 빨리 최근 정보를 알아내려 했었다.
그러나 연결된 통신기에서 나온 목소리는…… 감시자가 아니었다.
-오랜만이야 Bro?
귓가를 울렸던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낮은 음성.
마치 차갑고 시린 혀가 귀를 넘어 달팽이관까지 핥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그럴…… 그럴 리가…… 없어.”
마녀의 입에서 믿기지 않는 듯 떨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미…… 전부 당했다고?”
협회를 장악하기 위해 공들인 작업은 절대로 작지 않았다.
자신이 고위 간부로 발탁되기 전부터 공을 들인 탄탄한 탑이었다.
그 탑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진짜…… 조커?”
그 탑을 무너뜨린 놈이 진짜 조커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간부들이 모여 이 주제를 꺼냈을 때까지만 해도 ‘가능성’이라고 판단했었다.
자신과 싸운 정체불명의 헌터를 조커라고 단정 짓기에는 이상한 부분이 많았으니까.
조커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마인들의 수뇌부가 모여 대책 회의를 했었다.
-그 망할 광대 새끼는 다른 놈들의 힘을 쓸 수 있어.
다른 의회주들과 고위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집행자가 한 말.
그날 밝혀진 조커의 능력은 타인으로 변신하여 그 힘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집행자가 조커와 전투를 시작했을 때.
조커는 집행자와 상성이 좋지 않은 S급 헌터로 변신하여 그를 애먹게 했었다.
그 사이 본부를 습격했었던 섀도우 헌터들이 전부 도주했고 분노한 집행자가 조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재미있었어 Bro!
이 말과 동시에 교단의 S급 헌터 성자(聖姿)로 변신한 조커는 집행자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사라졌다.
결국, 부상을 입은 집행자는 조커를 더 추적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타인을 완벽하게 흉내 내는 광대처럼 다른 이로 변신하는 능력.
만약 통신기 너머의 목소리가 진짜 조커라면?
그날 조커는 누구로 변신한 것이란 말인가?
아니…… 그것이 조커의 본 모습일 가능성도 있었다.
“어떻게 해야…….”
관자놀이를 부여잡은 마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일어난 사실들과 알고 있는 정보들이 엉켜 머리가 복잡했다.
‘멍청한 년, 놈에게 뭐라도 물었어야 했었는데!’
마녀가 자신이 던져 망가뜨린 통신기를 바라보며 자책했다.
진짜 조커인지는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지만.
그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를 듣자 반사적으로 통신기를 집어 던져 버렸다.
“씨발…….”
마녀가 인상을 구기고 욕을 내뱉었을 때.
“흠, 이거 상황이…… 영 좋지 않은데?”
그녀 옆에 있었던 닥터가 침착하게 말했다.
“하필이면 리더가 자리를 비웠을 때…….”
닥터는 곤란하다는 듯 말을 흐리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부서진 통신기를 바라봤다.
“리더에게 연락을 보낼 방법은?”
손으로 얼굴을 덮은 마녀가 닥터에게 물었다.
“당연히 없지.”
닥터는 두 손을 들어 올리고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의회와 접촉하는 방법은 리더만 알고 있고 리더는 의회를 찾아갔으니까.”
“젠……장!”
마녀가 얼굴을 덮었던 손을 치우자 일그러진 표정이 드러났다.
“뭐라도 물어서 정보를 캤어야 했어.”
결국, 마녀의 입에서 마음속으로만 하던 자책이 흘러나왔다.
“상대가 진짜 조커일 수도 있는 이상 오히려 대화는 위험했을 수도 있었어.”
닥터가 진지하게 말하며 마녀를 위로했다.
그저 빈말뿐인 격려는 절대로 아니었다.
상대의 능력과 정보를 모르는 이상 함부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독이 될 수 있었다.
“녀석이 남은 주요 시설도 알아챘을까?”
고개를 숙인 마녀가 닥터에게 물었다.
“협회에 심어둔 간자들이랑 감시자는 맡은 임무 외 정보를 몰라.”
닥터가 마녀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맡은 임무에 대한 정보 외에는 알려주지 않는다.
이 역시도 정보 유출의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상대가 조커라는 거지. 아직 100% 확신은 아니지만.”
닥터가 말을 흐리자 마녀가 알고 있다는 듯 대답했다.
“뭐라도.”
마녀가 마치 각오를 다진 듯 눈빛을 날카롭게 뜨며 말했다.
“대비를 해야 해.”
“너 아직 환자라는 걸 잊지 말아 줬으면 하는데?”
닥터가 한숨을 쉬며 마녀에게 말했다.
그 역시 이 상황이 답답하긴 매한가지였지만.
자신이 돌보는 환자, 마녀가 더 무리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녀석과 직접 싸우지는 않을 거야. 그건 미친 짓이니까.”
마녀가 진지한 눈빛으로 닥터에게 말했다.
“주요 시설들의 방어를 재점검할 거야.”
“하지만, 놈이 위치를 알아채고 직접 쳐들어오면 위험해.”
닥터가 걱정하는 듯 말했다.
상대가 진짜 조커라면, 여기 인원으로는 상대가 불가능했으니까.
“여차하면 성물을 쓸 거야.”
“뭐?”
마녀의 진지한 말에 닥터가 놀란 듯 되물었다.
성물은 성좌가 자신의 무구를 아티팩트 형태로 내려준 것을 말했다.
성좌에게 ‘자격’을 부여받은 이들만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구였다.
지금 이곳에도 악의 성좌가 내린 하나의 성물이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성물의 사용은 리더만이 자격을 가지고 있어. 네가 쓸 수 없잖아.”
본부에 있는 성물은 이곳의 책임자인 리더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사용할 수 있어.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하지만, 마녀는 걱정하지 말하는 듯 확신을 담아 말했다.
닥터는 그것이 궁금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오거는 계속 3번 구역에 머물고 있겠지?”
마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가장 싫어하는 마인 오거에 대해 물었다.
“그 녀석 구역이니까.”
“걘 그냥 거기 지키게 둬. 그놈이 끼어 봤자 도움이 안 될 거야.”
“동의.”
오거는 현재 3번 구역, ‘마수 실험장’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이런 분위기에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굴 가능성이 컸다.
“지금은 최대한 숨죽이고 있어야해.”
마녀가 분한 듯 입술을 깨물며 읊조렸다.
그녀의 마음 같아서는 협회에 온갖 저주 마법을 폭격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녀는 아직 미숙할지라도 어리석은 마인은 아니었다.
“하아, 다른 방법이 없네.”
닥터가 검지와 엄지로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그나저나, 정말 그놈이 조커일까?”
닥터가 정말 궁금한 듯 안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궁금하네?”
허공을 응시한 닥터의 입가에는 희미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
“마녀가 아직 어리숙하긴 하네.”
끊어진 통신기에서 손을 뗀 처용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학살의 마녀였다면 저주를 퍼붓든 정보를 캐려 하든 뭔가 했을 텐데 말이야.”
회귀 전 처용이 알던 마녀였으면 절대로 통신을 끄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정보라도 더 알아내려고 도발을 하든 욕을 하든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마녀는 날카로운 괴성과 동시에 통신을 끊어 버렸다.
“내가 살면서 마녀의 괴성도 들어보고 말이야.”
오영철이 받아야 할 통신기에서 조커의 목소리가 나왔으니 나름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처용은 숙적이었던 마인이 내질렀던 비명을 떠올리자 나름 즐거웠다.
“기대해라 앞으로.”
처용이 정말 기대가 된다는 듯 잔혹하게 웃으며 읊조렸다.
“비명뿐 아니라 곡소리가 나오게 만들어주마.”
처용은 통신기를 부수지 않고 챙겨 들었다.
“역추적은…… 역시 안 되네.”
통신기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마나를 흘려 봤지만.
완전하게 연결이 끊어졌는지 아무 반응도 없었다.
“챙길 건 다 챙긴 것 같고.”
현장을 정리한 처용이 전화를 들었고 태민에게 연락했다.
마침 백호 쪽도 상황이 완벽하게 끝났다고 답변을 받았다.
조금 기다리자 태민과 백호를 포함한 협회 헌터들이 현장 조사를 위해 찾아왔다.
“고생하셨습니다.”
태민이 기다리고 있던 처용에게 다가와 감사를 전했다.
“일이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처용이 태민에게 첩보 정보가 들어있는 상자를 넘기며 말했다.
“자네가 아니었으면 이 일이 절대로 쉽게 처리되지 않았겠지.”
백호가 처용을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를 도와줘서 정말 고맙네.”
처용을 바라보는 백호의 눈빛에 더 이상 의심은 없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처용은 백호가 자신을 백 프로 신뢰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내심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점을 계기로 그에게 신뢰를 얻은 것 같아 나름 만족스러웠다.
“그나저나 자네 정말 잔인하구만? 허허.”
백호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체, 오영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연쇄살인범 오영철. 알고 계시죠?”
“당연히 알고 있네만?”
처용의 말을 들은 백호가 잘려 나간 머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설마?”
혹시나 하는 생각에 얼굴을 더 자세히 관찰했지만, 자신이 아는 오영철의 얼굴은 아니었다.
“마인들이 얼굴을 바꾸어 줬겠지요.”
처용이 담담하게 설명을 이었다.
“간자들의 감시자로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놈도 마인이었구요.”
옆에서 대화를 듣던 태민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탈옥했다는 말은 들었었습니다만.”
“스스로 탈옥한 게 아니라 누군가가 탈옥을 시켜 준 거겠지요.”
처용은 오영철의 머리를 차갑게 바라본 후 말을 이었다.
“이런 쓰레기들이 마기를 받아들이면 더 강한 마인이 되니까요.”
마기는 악의로 가득 차 있는 악신의 어두운 기운.
재능에 따라 다르지만, 받아들이는 대상이 ‘악인’일수록 그 능력이 더욱 증폭된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태민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오영철의 팔로 다가갔다.
“탐정의 서고-용의자 분석.”
태민이 스킬을 쓰자 왼손에 책이 나타났다.
책에서 종이 한 장을 뜯어내고 오영철의 손바닥에 가져다 대었다.
-스스스-
그러자, 마치 프린트가 찍히듯 글자가 나타났다.
[대상 일치.]
“이럴 수가…… 진짜로 오영철입니다.”
글자가 적힌 종이를 확인한 태민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오? 신기한 스킬이네요?”
처용은 정말 신기한 듯 태민이 들고 있는 책과 종이를 바라봤다.
“이 서고 안에는 범죄자들에 대한 데이터가 담겨 있습니다.”
태민이 안경을 들어 올리며 설명을 이었다.
“오영철의 정보도 들어있어서 대상이 맞는지 확인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네 스킬로 확인한 결과 진짜 오영철이다?”
“네.”
“허허, 이것 참.”
허탈한 웃음을 지은 백호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저었다.
이런 악질 범죄자가 협회 가까이에 숨어 있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것도 마인이 되어서…….
“이놈을 어떻게 알아챈 건가?”
백호는 궁금증을 가득 담아 처용에게 물었다.
“밀고자들 중 이진상만이 감시자와 교류하고 있었습니다.”
처용은 대충 둘러대어 대답했다.
“이진상의 기억에서 얻은 것이로군요.”
태민은 처용이 이진상의 기억을 뽑아내는 장면을 떠올리며 말했다.
“평범하게 심문했다면 절대로 알아내지 못했을 겁니다.”
처용이 확신을 담아 말했다.
“처용님의 방식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태민은 이진상을 떠올리자 역겨움이 몰려왔다.
자신의 배신이 드러났음에도 변호사를 부르라며 추악함을 보였었다.
처용이 그런 그를 붙잡아 고통을 주며 기억을 뽑아낼 때.
그 모습을 보며 섬뜩한 감정과 동시에 묘한 쾌감도 있었다.
“이들은 악인이니까요.”
같은 협회 직원을 팔아넘겨 자신의 배를 채운 이진상.
사람들을 무참하게 죽여 자신의 즐거움을 채운 오영철.
“배려 받아서는 안 되는 이들입니다.”
태민이 안경을 들어 올리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배려 받을 자격을 스스로 버린 놈들이지요.”
처용은 그 말에 동의하듯 말했다.
태민은 튜토리얼 던전에서 처용을 마주했을 때가 생각났다.
‘그래, 이 사람의 방식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협회에서 일한 태민은 협회의 규정을 지키고 수행해 왔었다.
그런 태민은 악인을 잔혹하게 대하는 처용을 보며 그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정의의 영웅처럼 보이는 다른 에픽 클래스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
그는 영웅이라기보다는 악을 심판하는 징벌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처용이 협회에 합류한 뒤 그동안 처용이 가진 정의를 가까이서 관찰하고.
처용과 함께 이번 일을 해결하며 처용이 가진 정의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죠. 인간의 자격을 버린 이들이죠.”
그리고 솔직히 이제는 그의 방식이 나름 마음에 들었다.
“나도 이딴 놈들을 배려하고 싶지는 않다!”
대화를 듣던 백호가 동의하듯 말했다.
“그리고 돼지들이 갈려 나간 이상. 답답한 규정들은 모두 없어질 거야. 하하.”
백호는 마치 앓던 이가 빠졌다는 듯 시원하게 웃어 보였다.
“그럼 모든 일을 무사히 마무리 했으니 전 퇴근해 보겠습니다.”
처용이 기지개를 피며 뒤돌았다.
“아, 저번처럼 제가 혼자서 갈 만한 던전 좀 수배해 주세요.”
처용이 고개를 돌려 태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분간은 재활 치료에 집중해야 하니까요.”
협회 내부에 자리 잡았던 암세포를 모두 제거했으니 다시 성장에 집중할 때였다.
“하하, 알겠습니다.”
태민이 처용을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저 친구 아직 다친 상태였지? 허허.”
처용이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는 것을 다시 상기한 백호가 처용을 보며 웃어 보였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