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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32화 (32/726)

#032화

“오영철.”

처용의 입에서 시리도록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오영철의 입에서 흘러나온 경악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이 장소.

첩보 데이터가 담긴 아티팩트.

자신의 이름과 정체까지.

상대는 마치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누구냐?”

오영철이 극도의 경계와 살기를 담아 말했다.

“네놈들이 알고 싶어 하던 사람.”

처용이 잔혹하게 웃으며 말하자 오영철은 그 말의 의미를 눈치챘다.

“그림자…….”

얼마 전에 지령을 받았던 협회에 숨은 그림자.

놈이 확실했다.

“겁도 없이 내 앞에 나타나다니!”

오영철이 톱날이 세워진 단도 두 자루를 꺼내 들고 쇄도했다.

‘나는 암살자다!’

암살 클래스는 근접 클래스 중 하나로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클래스였다.

1:1 상황, 특히 대인전에서 가장 강함 힘을 발휘하는 것이 특징.

거기에 오영철은 마인.

보통 암살 클래스 헌터보다 더욱 강한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연쇄 살인! 토막 가르기!”

필사적으로 외치며 처용을 죽일 기세로 덤벼들었지만.

오영철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독과 마비를 쓴 후 도망간다!’

놈의 실력에 대해 대충 전해 들은바, 자신이 이기기 힘든 상대였다.

빠르고 강한 한 방 공격과 동시에 독을 쓴 후 재빠르게 도주할 생각이었다.

처용은 지니고 있던 평범한 양산품 검을 왼손으로 들었다.

오영철의 양손 단도가 좌, 우에서 다가오며 처용의 검을 교차로 타격했다.

-차앙! -푸화확!

단도 두 자루가 동시에 처용의 검에 닿자 단도에서 검녹색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지금!’

처용이 연기에 둘러싸인 순간.

재빠르게 뒤로 도약하며 전속력으로 도주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치이익!

새빨간 선과 같은 얇고 긴 무언가가 훅 지나갔다.

“어?”

무언가 빠르게 타는 소리와 함께 의문이 튀어나왔다.

당장이라도 다리를 뒤로 박차 도망가야 했다.

그런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느껴지지 않았다.

-투둑!

붙어있어야 할 다리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시야가 점점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미안한데.”

시야가 점점 내려감과 동시에 연기가 걷히고 처용의 얼굴이 드러났다.

“네 독 나한테 안 통해.”

무려 마기가 섞여 들어간 독이었다.

그런데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듯 평온한 표정이 보였다.

동시에 처용의 오른손에 양산형 검이 아닌 새빨갛게 타오르는 도가 보였다.

-사악!

또다시 얇고 긴 붉은 선이 두 번 그어졌다.

-치이이!

반사적으로 단도를 들고 막아 보려 했지만.

-투둑! -까강!

단도가 두 동강 나면서 떨어져 내렸고.

동시에 양팔도 아래로 떨어져 나갔다.

“크, 크아아아!”

끔찍한 고통이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절단된 부위에서 새하얀 연기가 타오르고 있었다.

단순한 절단이 아닌 초고열의 화염으로 태워지며 잘려나간 것이었다.

“크흡, 크아아!”

절단된 부위가 새빨갛게 익으며 타올랐다.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격통에 성대가 튀어나올 듯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푸욱!

이번엔 붉게 타오르는 도가 아닌 양산형 검이 가슴에 박혔다.

절단 부위가 타들어 가는 고통 때문인지 가슴에 검이 박혀도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딜 도망가려고?”

처용이 잔혹한 웃음을 짓는 동시에 바닥에 박힌 오영철을 아래로 내려다봤다.

“으어! 으어억!”

오영철이 내지르는 비명에 극한의 공포가 섞이기 시작했다.

처음 놈을 마주치자마자 도망쳤어야 했다.

뒤늦은 후회와 죽음에 대한 공포가 머릿속을 지배했다.

“오영철.”

자신을 내려다보며 웃는 악귀의 표정과 소름이 돋아나는 시린 목소리가 울렸다.

“살고 싶나?”

“어으아! 사, 살려으어!”

오영철은 자신의 목숨줄을 쥔 사신을 향해 거칠게 머리를 끄덕이며 조아렸다.

“네놈 마기홀에 걸린 저주는 없어졌다.”

처용의 눈길이 오영철의 가슴에 박아 넣은 검을 향했다.

오영철은 마치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거칠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용이 네모난 상자를 재차 들어 보이자.

“지, 지금까-지이 수지-집한- 처, 처업-.”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오영철의 입에서 단어들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수집한 첩보가 여기 들어있다?”

오영철의 딱딱 끊어지는 단어들을 처용이 한 번에 이어 말하자.

“네! 네으- 에!”

오영철은 머리를 거세게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이 안에 있는 정보를 넘겼나?”

처용이 오영철을 향해 차갑게 물었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문제였다.

놈들에게 어떤 정보가 흘러 들어갔는지를 알아야 대비를 하니까.

“바, 반 정도는 예전에 저, 전송했습니다.”

오영철의 대답에 처용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이 박스 안에 얼마나 큰 정보들이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작은 규모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중 절반이 마인들에게 넘어간 상황이다.

“나에 대해서는?”

처용은 오영철을 응시하며 가장 중요한 정보를 물었다.

과연 놈들이 자신에 대해 얼마나 파악했을지 말이다.

“모, 모르으겠! 모르겠습니다아!”

공포에 질려 있는 오영철은 모른다며 울부짖었다.

눈을 가늘게 뜨며 처용이 말을 이었다.

“나에 대해서 모른다고?”

“네에! 네!”

처용의 질문에 오영철이 거칠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아직 나에 대해서는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네?’

처용에게 있어서는 희소식이었다.

놈들은 아직 조커의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저 통신기는?”

제단 위에서 붉은빛으로 깜빡이는 배구공 크기의 아티팩트를 처용이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고, 고위 가-간부님들이랑 연결-.”

애매한 질문에도 오영철은 처용이 원할 만한 대답들을 술술 불었다.

“누구?”

“모, 모르-읍니다!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처용의 질문에 오영철이 거칠게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고 대답했다.

‘고위 간부 중 하나랑 직통으로 연결되어있는 건가?’

아직 신호가 가는 것으로 보아 저쪽에서는 지금 상황을 모르는 것 같았다.

“네놈들 본부 위치는?”

“그, 그게.”

오영철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살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처용이 씨익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오영철의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위, 위치는 정말 모릅! 모릅니다!”

“간부인 네가 모를 리가?”

처용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화염의 절을 목에 가져대 대자 살갗이 조금씩 타오르기 시작했다.

“저, 정말로 모릅니다! 보, 본부로 이동하는 아티팩트를 가진 놈이 와야…….”

오영철의 말을 들은 처용이 인상을 구겼다.

사실, 내심 짐작하기는 했었다.

마인들의 계획은 협회 내부에 공들인 것만 봐도 치밀하고 정교했다.

“그 녀석은 언제 오나?”

“고, 고위 간부님들이 찾으실 때만…….”

처용은 몇 가지 질문을 더 해봤지만.

더 이상 이놈을 통해 알아낼 것은 없어 보였다.

기억의 실타래를 사용한다면 기껏 억눌러 놓은 마기가 풀려나고 이놈은 바로 죽어버릴 것이다.

그것은 처용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오영철이 처용을 향해 오열하듯 부탁했다.

이 녀석의 손에 죽었던 희생자들 처럼 말이다.

처용은 분노와 역겨움에 당장 오영철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난 살고 싶냐고 물어봤지.”

이 녀석은 절대로 쉽게 죽여서는 안 되는 악인이었다.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는데?”

처용에 입가에 잔혹한 웃음이 실렸다.

그 모습을 본 오영철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오영철이 무언가를 말하려 할 때.

“살고 싶어?”

처용이 고개를 아래로 내리며 다시 물어봤다.

마치 이 말이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되는 듯 오영철이 거칠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살인을 하던 놈이 살려 달라 울부짖고 있었다.

“그래?”

처용이 입꼬리를 한쪽으로 비틀며 웃어 보였다.

“살고 싶으면 한번 웃어봐. 환하게.”

“네, 네?”

잔혹한 웃음을 지은 처용의 말에 오영철이 순간 반문했다.

“웃. 어. 보. 라. 니. 까?”

처용이 단어를 하나하나 끊으며 말했다.

“으어, 으허허.”

눈앞에 보이는 악마에게서 느껴지는 잔혹한 공포에 몸부림치면서도 그의 말대로 웃어 보였다.

“더 환하게 웃어봐. 그렇지.”

“으하, 하하.”

극한의 공포로 인해 눈물과 콧물을 흘리면서도 처용의 말을 들었다.

오영철은 마구 흔들리는 눈가와 입을 강제로 끌어 올렸다.

눈앞의 악마가 만족할 만한 웃음을 짓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환한 웃음을 짓는 순간.

“잘했어!”

-서걱!

오영철의 시야 밑으로 붉은 선이 그어졌고 시야가 돌아갔다.

눈앞의 악마가 갑작스럽게 회전하자 의문이 들었지만,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투둑.

자신의 머리가 잘려 나갔으니까.

“웃으면서 죽어야 아름답지 그치?”

악마가 자신의 머리를 향해 마치 만족스럽다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왜?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잘려나간 머리는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었음에도 억지로 웃고 있었다.

고통, 공포, 순간의 기쁨 등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마치 공들여 만들어진 ‘작품’처럼 말이다.

“작품이 된 느낌이 어때?”

처용이 잘려나간 머리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표정이 정말 만족스러워 보이는데?”

오영철은 머리가 잘렸기에 큰 움직임은 없었지만, 미세하게 눈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사람의 머리가 잘려나가면 죽긴 하지만 모든 감각이 바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감각이 하나하나 서서히 없어지며 죽게 되는 것이다.

그중 가장 마지막에 사라지는 것이 바로 청각이었다.

‘작품’을 만들어 놓고 그 대상에게 속삭이는 것.

오영철이 즐겨 하던 짓거리였다.

[허허, 제자야 이번엔 좀 악귀 같았느니라.]

지켜보던 여래가 처용의 행동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하하, 마귀가 따로 없구나, 지옥 고문관들에게서도 수련을 받았던 것이냐?]

미륵은 처용의 심판이 나름 만족스러운 것인지 웃음을 지었다.

처용은 마치 방금 표정이 연기였다는 듯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천 명이 넘었었습니다.”

[무엇이 말이더냐?]

처용의 말에 여래가 의문을 표했다.

“방금 제가 한 방법으로 이 녀석이 죽인 사람들의 수 말입니다.”

처용은 오영철에게 끔찍한 공포를 느끼며 살해당했을 사람들을 위해 이런 것은 아니었다.

“예술가라면 본인의 예술을 직접 느껴 봐야지요.”

그저 네놈도 한 번 작품이 되어 보라는 심정일 뿐이었다.

그가 즐거워하며 남을 죽이던 방식으로 똑같이 당하는 심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 녀석은 이렇게 죽어야 했습니다.”

처용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오영철의 머리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괜찮은 건가요. 계승자?]

보살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처용은 진심이라는 듯 담담하게 대답했다.

“괴물들을 들여다보는 건 익숙하니까요.”

[…….]

“괴물들을 죽이는 것도.”

수십 년 동안 심연 속에서 추악한 괴물들과 직접 싸워온 처용이었다.

이제 와 그들을 다시 마주한다고 해도 딱히 영향은 없었다.

보살은 처용의 말에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그녀만이 가진 능력.

그녀가 볼 때 처용은 정말 감정의 동요가 없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느껴졌다.

문제가 없는 듯 보였지만, 그게 문제였다.

처용은 수십 년이 넘는 힘겨운 싸움으로 무언가가 마모되어있었다.

보살은 그런 싸움을 또 이어가야 하는 계승자가 그저 걱정되었을 뿐이었다.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저 작은 기도를 해주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이곳에서의 볼 일은 대충 끝난 것 같습-.”

처용은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고개를 휙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정확히는 제단 위 있던 통신기를 바라봤다.

-무슨 일인가?

통신기의 점멸이 꺼지고 검은 마기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음성이 들려왔다.

-대답해라 리퍼.

리퍼는 방금 죽인 오영철의 코드네임이었다.

-젠장! 이미 전부 당한건가? 응답해라!

마치, 무언가 좋지 않은 사태가 일어났음을 감지한 듯 통신기 너머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처용은 통신기를 바라보다가 씨익 웃어 보였다.

통신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흘러나오는 마기의 기운.

그리고. 상대는 고위 간부 중 하나.

통신 상대는 처용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마인이었다.

‘배신자들이 모두 처리된 걸 알아차렸군.’

처용도 예상을 하긴 했다.

임원들은 하나하나 불러 은밀하게 처리했다고 해도.

집행반들을 조지는 과정은 규모가 컸으니까.

그리고, 단순히 감시자 하나만 두고 협회의 동태를 살피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답해라 리퍼!

처용이 시끄럽게 울리는 통신기로 다가갔고 손을 얹었다.

통신기 너머 상대방과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리퍼! 상황 보고해라 빨리!

잘 알고 있는 목소리가 독촉하자 처용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잘 지냈나, 마녀?”

처용의 시리도록 차가운 음성이 통신기 너머로 흘러 들어갔다.

-……!!

통신을 받은 고위 간부.

‘마녀’의 얼굴에 경악이 번지는 게 보이는 것 같았다.

-……아니야.

지금, 이 상황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직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당황한 마녀의 목소리가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 처용이 말을 이었다.

“오랜만이야 Bro?”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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