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화
“고생하셨습니다. 처용님.”
처용이 마지막 통신기까지 처리하자 태민이 다가왔다.
“아티팩트 성능이 괜찮았나 보네요?”
“아주 좋습니다.”
태민은 처용의 말에 팔찌를 들어 올리며 웃어 보였다.
확실히 처용에게 아티팩트를 받기 전과 후는 눈에 띄게 달랐다.
자신의 탐지 스킬, 거짓말을 알아내는 진실판별과 아티팩트를 찾아내는 흉기감지 등.
이전 임원 회의에서 스킬을 사용했을 때는 아무것도 감지하거나 찾아낼 수 없었다.
바로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었었던 이진상에게서도 말이다.
-난 마인들과 결탁하지 않았다. 난 청렴결백해!
좀 전에 끌려 나간 배신자 이진상이 이곳에서 내뱉었던 말.
“이 아티팩트가 없었으면 보이지 않았겠지요.”
태민이 팔찌를 보며 말했다.
처용에게 받은 아티팩트를 착용하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보였다.
[거짓.]
돼지들을 가려주는 장막이 걷히자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진실이 드러났다.
“그게 있는 한, 놈들은 탐정의 눈을 가리지 못할 겁니다.”
처용이 태민을 향해 웃어 보이며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과장님.”
“괜찮습니다. 이제 시작인걸요.”
처용의 격려에 태민이 안경을 들어 올리고 각오를 다졌다.
그의 말대로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소탕 시작이었으니까.
배신자들의 주 연락 수단인 ‘머리’들이 잘려나간 이상.
이제 각개격파만 성공하면 된다.
처용은 배신자들의 머릿속에서 강탈한 정보들을 말해주었다.
그중에는 집행반과 다른 임원들 안에 존재하는 다른 배신자들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이 기회에 비리를 저지른 다른 놈들도 정리해야겠군요.”
협회장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처용 역시 협회장의 말에 동의했다.
배신자가 아니라 해도 썩은 뿌리는 썩은 뿌리였다.
이 기회에 깨끗하게 도려내는 것이 맞았다.
“깨끗하게 정리 바랍니다.”
“마인에게 협력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 대통령도 제 결정을 막지 못할 겁니다. 허허.”
처용의 말에 협회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대통령이라…….’
처용은 협회장의 말에 한국 최고 권력자에 대해 생각했다.
회귀 전, 처용은 성좌들에게 수련을 받고 던전을 처리하고 있었기에 대통령에 대해 잘 몰랐다.
하지만, 한국이 무너질 때 지도자들은 나라를 버리고 도주했었다.
‘기회가 되면 알아봐야겠어.’
처용은 협회 내부에만 배신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라의 다른 사법기관과 행정기관에도 숨어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우선 부장님께 확정된 명단 보내겠습니다.”
태민이 처용에게서 전달받은 정보들을 모두 정리한 후 말했다.
“백호도 잘 해줘야 할 텐데.”
“백호님이라면 전혀 문제가 없을 겁니다.”
처용이 협회장의 말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
백호는 지금 다른 장소에서 배신자들을 잡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가 협회장실에 없었던 건 사전에 이야기된 일이었다.
통신기를 가진 임원들이 가장 경계하는 인물은 협회장이 아니었다.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진 헌터 권백호였다.
물론, 배신자들이 권백호를 두려워하는 것도 있었지만.
이들에게 지령을 내리는 마인들이 그를 극도로 경계했기 때문이 컸다.
처용이 이진상의 사무실에서 직접 확인했듯이 말이다.
그런 권백호가 협회장실에 있었다면?
증거를 잡기 전에 겁먹은 놈들이 즉각 아티팩트를 작동시켰을 가능성이 있었다.
때문에 권백호는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임원들의 충성스러운 사냥개들인 집행반.
호랑이는 사냥개들을 사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럼 저도 슬슬 다음 사냥하러 가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놓칠 리는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태민의 말에 대답한 처용은 다음 사냥을 위해 협회장실을 나갔다.
백호를 도우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진상의 기억에서 얻었던 물고기를 잡으러 가는 것이었다.
***
협회 임원들이 소유하고 있는 건물 중 하나인 거대한 체육관.
“왜 갑자기 총 소집령이 떨어진 거야?”
이곳은 집행반들이 집합하는 장소.
거기에 일 년에 몇 번 없는 집행반 총집합이라는 지령이 내려왔다.
“이사님들은 왜 안 오시는 거야?”
집행반의 팀장들이 툴툴거리면서 기다리자.
-끼이이.
체육관의 정문이 열림과 동시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나타났다.
가장 피하고 싶고 부딪히면 안 되는 인물.
“이렇게 보니 반갑구만?”
권백호였다.
그리고 뒤이어 현아를 포함한 다른 헌터들도 나타났다.
“당신이 왜 거기서 나옵니까?”
갑자기 나타난 백호를 경계하듯 집행반의 팀장들이 앞으로 나섰다.
백호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마주 보면서 웃었다.
“너희들 중 마인의 끄나풀이 있어서 말이야?”
마치 확신하고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게 무슨 망언입니까?”
“무슨 소리를!”
집행반의 팀장들이 항의하듯 외쳤다.
“이런 짓거리를 저지르고도 무사할 거 같습니까?”
집행반의 팀장 중 A급 헌터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런 짓거리?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데?”
앞으로 나선 남자의 말에 백호가 코웃음을 쳤다.
“강호석 헌터.”
백호가 눈을 번들거리며 낮은 음성으로 말하자.
이름을 불린 집행반 팀장 강호석이 흠칫하며 물러났다.
그의 레벨은 107.
아무리 같은 A급이라고 해도 권백호를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
“아무리 권백호 당신이라도 이런 행패는 용납이 안 돼!”
강호석이 발악하듯 외치자 백호가 더욱 싸늘해진 눈빛을 보였다.
“야, 강호석이?”
당장 주변이 얼어붙을 듯 차가운 음성이 울리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A급 헌터나 된 새끼가 왜 마인들의 끄나풀이 됐냐?”
백호의 입에서 확신을 담은 강한 음성이 강호석에게 향했다.
-마, 마인이라니? 티, 팀장님이?
-그럴 리가 없어! 정신 차려!
-진짜야?
백호의 한 마디 때문에 집행반 헌터들에게도 파문이 일었다.
“그 말에 책임지실 수 있습니까? 명확한 증거도 없이-.”
강호석이 식은땀과 동요를 감추고 묻자.
“증거? 지금 보여주지!”
강호석의 말을 자르고 코웃음을 친 백호가 오른손을 들어 팔찌를 보였다.
-화아아!
주변을 밝히는 명환의 빛이 백호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아무 이상이 없었지만.
“크으윽! 무슨?”
강호석을 포함한 일부 팀장들과 인원들에게서 시커먼 기운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방금까지는 없었던 새까만 반지가 드러났다.
“마인들의 마나가 나오는 그 아티팩트는 어떻게 설명할 거냐?”
백호가 손가락으로 강호석을 가리키며 말하자.
“칫!”
강호석은 완전히 들켰다고 판단하고 도주를 하려고 했다.
“벼락 걸음.”
-샥-
백호가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마치 벼락처럼, 순식간에 쇄도한 백호의 주먹이 강호석의 얼굴 앞에 나타나.
-빠악!
눈 깜빡한 순간 강호석의 안면을 강타했다.
-콰광!
강호석은 얼굴이 뭉개짐과 동시에 뒤로 날아갔고 벽에 균열을 만들며 처박혔다.
“A, A급 헌터가…….”
집행반 중 가장 강한 A급 헌터가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그 모습에 집행반 측 인원들의 사기가 바닥에 처박혔다.
“농담이 아니라.”
백호의 차가운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지금부터! 반항하는 새끼는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
강호석을 때려눕힌 오른손 주먹에 핏대를 세움과 동시에 왼손으로 몇몇을 가리켰다.
“특히! 마인들한테 붙은 네놈들 말이야!”
백호의 손가락은 강호석처럼 새까만 반지를 낀 집행반들을 가리켰다.
마치 사형을 선고받은 듯 백호가 가리킨 이들에게 절망이 밀려왔다.
A급 헌터인 강호석조차 순식간에 당했다.
도망간다고 해서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냥 좋게좋게 가자?”
백호가 흉흉하게 번들거리는 거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뒤지기 싫으면 말이야.”
배신자든 배신자가 아니든 백호의 말에 대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부장님, 한 명이 없어요.”
백호의 곁으로 다가온 현아가 말했다.
놓치지 말고 다 잡아들여야 하는 와중에 빠져나간 놈이 있었다.
문제가 발생했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건 그 친구가 처리할 거야.”
백호는 걱정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
“젠장!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깨에 집행반의 마크를 단 복장을 입은 남자가 달려가고 있었다.
달리면서 윗옷을 벗어 던지자 시커먼 옷이 드러났다.
겉옷을 전부 벗어 던지자 마치 암살자들이 입을 법한 검은 슈트가 드러났다.
“전부 들켰을 리가 없다. 절대로!”
몇 년을 공들이고 또 공들여서 만든 탑이었다.
절대로 이렇게 하루아침에 전부 무너질 리가 없었다.
“멍청한 돼지들이 일을 망쳤어!”
갑작스럽게 임원들에게서 집행반 소집령이 떨어졌다.
뭔가 이상한 기분에 자신의 스킬을 이용하여 임원들의 위치를 알아봤었다.
집행반들이 소집된 장소에 와야 할 임원들의 위치가 협회로 나타났다.
불길한 느낌이 들어 소집된 장소에서 멀리 떨어져 사태를 지켜봤다.
충격적이게도 집행반이 모두 모인 순간 나타난 것은 권백호와 협회장 측 헌터들이었다.
권백호가 처음 보는 팔찌를 들어 보이자 밝은 빛이 퍼졌고.
그분들의 축복을 받은 아티팩트들의 은폐가 풀려 버렸다.
A급 헌터였던 강호석만이라도 도주하여 시간이라도 벌어주기를 바랬지만.
무시무시한 호랑이의 손아귀에서 단 한 걸음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왜 고위 간부들이 절대로 권백호를 피하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제기랄!”
다행히도 비상시 집결하는 장소가 있었다.
남은 것이 정말로 자기 혼자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서둘러서 이 상황을 전달해야 했다.
그 후 쥐도 새도 모르게 빠져나가야 했다.
죽기 싫으면 말이다.
“후.”
협회 근처에 있는 허름한 건물 지하.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고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작은 안심을 느끼고 옅은 한숨을 쉬었다.
바닥에 있는 작은 균열을 몇 개 짚자 마치 문이 열리며 비밀 통로가 나타났다.
이 장소는 밀고자들도 알고 있었지만, 정보가 발설될 위험은 없었다.
말하려고 하는 순간 그들은 죽을 테니까.
통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작은 크기의 제단이 나타났다.
“서둘러야 한다.”
협회 내부에 숨겨둔 것과 같은 성소와 장막이 이 장소에도 있었다.
그 앞에서 비상용 통신기를 작동시켰다.
붉은빛이 점멸하며 신호가 가는 동안 그간 모아둔 자료들이 담긴 아티팩트를 찾았다.
하지만.
네모난 박스 형태의 데이터 저장 장치,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로 갔-.”
“이거 찾아?”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근처 어둠 속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저벅 저벅
어둠 속에서 처용이 걸어 나와 네모난 박스를 흔들어 보였다.
“‘밀고자’들 말고 ‘감시자’가 있다는 건 예상하긴 했어.”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상대를 향해 처용이 웃어 보였다.
“그런데 말이야?”
그리고 마치 장난치듯 박스를 흔들어 보이며 상대를 응시했다.
“설마 ‘간부’ 중 하나가 잠입해 있을 줄은 몰랐네?”
처용이 집행반 헌터로 위장하고 있었던 마인을 향해 말했다.
[이름 : 오영철]
[레벨 : 91]
[칭호 : B급 마인, 핏빛 악귀의 가호]
[클래스 : 다크 리퍼]
[특징 : 마기를 퍼트려 자신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암습하는 살인귀입니다.]
[일반 암살자 클래스보다 날카롭고 정교한 공격을 사용합니다.]
[마기가 섞인 독을 사용합니다.]
[스킬 : 연쇄 살인마, 데스 커터, 위장……]
핏빛 살인자 오영철.
처용이 마녀처럼 잘 알고 있는 마인 중 하나였다.
처용이 회귀하기 전.
A급 마인이었던 오영철은 사람들과 헌터들을 죽이고 길거리에 전시하는 미친놈이었다.
마치, 작품을 만드는 듯이 자신이 토막 낸 사체로 문양을 만들고.
피해자들의 피로 작품명을 쓰고 다녔었다.
많은 헌터들이 그를 잡으려고 노력했었지만.
동급의 헌터를 많으면 세 명까지 상대할 수 있는 게 마인이었다.
심지어 그 당시 오영철은 A급 마인.
그를 추적하여 잡기란 쉽지 않았고 헌터와 일반인들은 계속 ‘작품’이 되어 죽어 나갔다.
그런 역겨운 행위를 참지 못한 처용이 직접 나서서 놈을 추적했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끝에 오영철은 처용의 손에 죽었다.
“더는 작품을 만들 일은 없을 거야.”
처용이 놈을 향해 선언하듯 말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