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화
“마녀는 나에 대해서 분명 알렸을 테고…….”
다각형의 보석을 쥐고 이리저리 돌려보던 처용이 중얼거렸다.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시간을 벌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처용이 조커 흉내를 낸 것은 마인들이 자신을 조커로 착각하게 만들 목적이 아니었다.
단순히 혼란을 위해서였다.
마인들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상황 파악을 위해 시간을 허비하도록 말이다.
마인들이 혼란에 빠져 있는 동안 협회만이라도 정리한다면 나름 베스트였다.
“다행히 생각보다 빠르게 구해줬네.”
처용이 들고 있는 옅은 노란색의 보석을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라이트 / 스킬석]
[등급 : 노말]
[제한 : 빛 속성 친화력]
[밝은 빛을 내뿜는 광원을 소환합니다.]
[어두운 환경을 밝게 비출 수 있습니다.]
처용의 부탁에 태민은 한국에 있는 교단 지부로 향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빛 속성 스킬석을 구해올 수 있었다.
-애물단지 처리해줘서 고맙다고 하던데요? 1억 정도로 받아 왔습니다.
태민이 처용에게 스킬석을 넘기면서 한 말이었다.
처용은 태민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교단에 소속된 헌터들은 대부분 빛의 신의 선택을 받은 병사들.
각성과 동시에 빛 속성 마나에 친화력을 갖는다.
라이트는 교단의 헌터 대부분이 지닌 스킬이라 이 스킬석은 그들에게 쓸모가 없었다.
“스킬 자체가 별로긴 하지…….”
단순히 주변을 밝혀주기만 하는 스킬이었지만, 그래도 스킬석이라 가격이 비쌌다.
찾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없으니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한테는 좋은 상황이지.”
[스킬석 라이트의 습득이 가능합니다.]
처용이 스킬석 안에 내제된 마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선인의 육체가 외부의 힘을 육체에 걸맞게 변형시킵니다.]
[자연부에 ‘명환(明奐)부’가 생성되었습니다.]
[명환부]
[어둠을 정화하고 몰아내는 자연부를 만들어 냅니다.]
[성스러운 빛이 주변으로 퍼지며 어둠을 밝히고 적들의 시야를 가랍니다.]
스킬석의 마나가 전부 빠지며 부서져 내렸다.
동시에 처용의 육체에서 빛 속성 마나가 흐르기 시작했다.
처용이 명환부를 만들어내자 밝은 빛과 함께 새하얀 문자가 새겨진 부적이 만들어졌다.
“생각한 대로 잘 돼서 다행이네.”
명환부를 바라보며 처용이 웃어 보였다.
회귀 전에도 이런 식으로 명환부를 얻었었다.
“시작해 볼까?”
대장간 작업대 앞에 자리한 처용이 목과 어깨를 풀며 말했다.
동시에 혁수에게 받아 온 불개미 왕의 갑각을 집어 들었다.
처용이 보물전에 온 이유는 명환부 때문만이 아니었다.
“갑각 두 개에……명환부도 두 장 정도면 충분하겠지.”
마치 샌드위치를 만드는 듯 적당한 크기의 갑각 두 개 사이에 명환부를 끼워 넣었다.
“부여-압착.”
처용의 말이 끝나자 명환부의 문자들이 불개미 왕의 갑각 위로 희미하게 떠올랐다.
동시에 불개미 왕 갑각에 명환부의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인첸터들이 사용하는 마법부여를 처용만의 방식으로 응용한 것이었다.
“손수 직접 뭘 만들어보는 건 오랜만이네.”
-화르륵!
화로에 화염부를 던져 열기를 높인 다음 작업을 시작했다.
-깡! 깡!
-망치질 그따위로 할래? 단순히 때린다고 뭐가 만들어지는 줄 알아?
“하하.”
처용이 망치질을 하며 작게 웃어 보였다.
자신을 가르쳐줬었던 장인의 잔소리가 바로 옆에서 울리는 듯했으니까.
그들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망치질과 성형, 세공을 계속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색 팔찌 형태의 원형이 몇 개 만들어졌다.
[흠, 생각보다 잘 만들었구나. 제자야.]
언제 와서 지켜보고 있었는지 여래가 원형 하나를 들어보며 말했다.
아직 완성된 물건이 아니라 투박한 모습이었지만.
깔끔하게 다듬어진 외관과 형태, 고르게 흐르는 마나가 느껴졌다.
“하하, 그런가요?”
[뛰어난 장인들에게 잘 배운 것 같구나.]
“기회가 되면 그분들을 다시 이곳으로 불러들일 생각입니다.”
[하하, 그거 기대되는구나.]
여래가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그런데 스승님, 요즘 자리를 비우시는 일이 잦습니다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처용이 궁금한 듯 물었다.
회귀 전에는 항상 태룡전에 있었던 여래였지만, 지금은 자리를 비울 때가 잦았다.
[종말을 막기 위해 제자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먼 곳을 바라보며 여래가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스승으로서 놀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느냐?]
“감사합니다. 스승님.”
처용은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스승인 그를 신뢰했으니까.
작업을 마친 처용은 팔찌 형태의 원형 다섯 개를 챙겨 들었다.
[다 완성하지는 않는 것이냐?]
“뛰어난 인첸터가 있습니다. 그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당장 처용이 아티팩트를 완성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더 훌륭하게 만들어 낼 수 방법이 있는데 굳이 더 고생할 필요는 없었다.
“이것의 성능이 좋을수록 일이 더 수월해 질 겁니다.”
마치, 완성품이 기대된다는 듯 웃어 보인 처용은 곧장 협회로 향했다.
***
“자네가 만들었다고? 진짜로?”
팔찌 원형을 집어 들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본 혁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제가 잡기술이 좀 많다고 했잖아요.”
“야이 사람아! 이게 잡기술이면…….”
혁수는 말을 흐리면서 계속 원형을 감상했다.
장인의 감각으로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이름 좀 날리는 길드의 대장장이들과 수준이 비슷했다.
아니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비록, 투박한 원형이라고 해도 군더더기 없는 형태와 매끈하게 다져진 외형이 눈에 들어왔다.
겉모습만 화려하고 속 빈 강정이 아닌 효율성과 실속으로 꽉 차 보였다.
“인첸트랑 마무리 세공 부탁드리려고요. 설계도는 더 좋은 방향이 있으시면 바꾸셔도 됩니다.”
“허허, 허허허.”
처용의 말을 들으면서 원형과 설계도를 살펴본 혁수가 웃어 보였다.
외형에 크게 중시하지 않은 투박하고 실용성 있는 형태.
그리고, 고르게 퍼져 흐르는 마나까지.
“허허, 이것 참.”
혁수는 건네받은 원형을 보며 기쁜 마음이 들었다.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건가?”
혁수가 궁금한 듯 처용에게 묻자.
“훌륭하신 인첸터가 있잖아요.”
“하하, 하하하!”
처용의 진지한 대답에 혁수가 크게 웃어 보였다.
“내가! 기가 막히게 만들어 주겠네!”
혁수가 기분이 좋은 이유는 처용의 배려 때문이었다.
보통 대장장이들은 인첸터를 배려하지 않는다.
자신의 작품에 숟가락을 얻는다는 듯 표현하며 깔보는 게 대부분이다.
대장장이의 작품에 인첸터들이 맞추는 것이 당연한 듯 말이다.
실속은 없고 화려하게만 만들어진 원형에 인첸트를 하면 당연히 효율이 떨어진다.
작업 공정을 잘 모르는 헌터들은 인첸터들을 탓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마지막 세공과 마법 부여는 인첸터들이 작업했으니까.
혁수가 인첸터임에도 대장장이 기술을 배운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처용은 그런 자존심만 높은 대장장이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오랜만에 받은 인첸트 의뢰가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팔찌 원형을 들어본 혁수가 즐거운 듯 웃어 보였다.
“그리고, 이게 ‘그 일’에 중요한 아티팩트지?”
아직 웃음이 가시지 않은 혁수가 처용에게 물었다.
“역시, 알고 계셨군요. 가장 중요하니까 센터장님께 부탁드리는 겁니다.”
혁수는 협회장 파벌의 핵심 맴버.아마도 백호나 협회장에게 따로 전해 들었을 것이다.
“걱정하지 말게나!”
혁수가 목을 꺾고 어깨를 풀었다.
“간만에 작업 욕구가 솟구치니까 말이야.”
인첸터라는 직업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헌터의 마음을 받았다.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가진 능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처용은 의욕을 불태우는 혁수를 보며 웃어 보였다.
혁수가 뛰어난 인첸터이니 만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 안 남았다.’
협회장과 백호를 향해 짖어대던 돼지가 생각났다.
도축도가 완성되는 순간!
돼지들의 운명은 끝이었다.
***
처용은 아티팩트의 완성까지 이틀에서 사흘을 예상했지만.
하루만에 혁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 보게나!”
밤새 작업했는지 다크서클이 조금 보였지만.
자신의 작품을 자랑하는 듯한 표정만큼은 전등보다도 환했다.
“만드는 게 얼마나 재밌었는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 하하하!”
“감사합니다.”
아티팩트를 완성시켜 준 혁수에게 처용이 감사를 전했다.
처용은 완성된 팔찌 형태의 아티팩트 다섯 개를 확인했다.
[어둠을 밝히는 여명 / 아티팩트]
[등급 : 레어+]
[어둠을 걷어내는 명환의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근처의 은신, 은폐를 감지하고 드러냅니다.]
-은신, 은폐 무력화.
-빛 속성 실드 사용 가능
처용이 건넨 원형들은 모두 세련된 디자인을 가진 아티팩트로 변했다.
혁수가 세긴 룬 문자와 정밀한 세공으로 마나의 흐름과 효율이 높아진 것이 느껴졌다.
처용도 이정도까지는 만들어낼 수 없었다.
“훌륭합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아티팩트의 상태를 모두 확인한 처용은 매우 만족했다.
심지어 혁수가 가장 마지막에 작업한 아티팩트는 무려 유니크 등급이었다.
네 개의 똑같은 레어 등급 아티팩트 그리고 유니크 등급 하나까지.
“으, 아쉬워 좀 더 좋은 마정석들이 있었어도 다 유니크로 만드는 건데 말이야.”
“이정도도 엄청 대단한 겁니다.”
처용의 말은 진심이었다.
불개미 왕의 갑각에 처용의 명환부까지 깃들었다고 해도.
재료의 원판은 C급 보스의 소재였다.
레어 등급의 아티팩트만 해도 훌륭하게 만든 것인데 무려 유니크 등급도 만들어냈다.
다섯 개중 단 하나였지만, 처용은 이것을 누구에게 줄지 벌써 결정한 상태였다.
“일단, 하나는 센터장님이 가지고 계세요.”
처용은 레어 등급 아티팩트 하나는 혁수에게 건넬 생각이었다.
“흠? 나도 하나 가지고 있어야 되나?”
“네, 혹시 모르니까요.”
처용이 경계하는 것 중 하나는 협회의 중요 인물들의 죽는 상황이었다.
마인들이라면 충분히 노리고도 남았으니까.
“허허, 나는 걱정하지 말게나.”
혁수는 마치 처용이 무엇을 걱정하는 안다는 듯 말했다.
“내가 괜히 백호랑 던전을 다녔겠나?”
그가 소매를 걷으며 팔을 보여주자 처용의 눈에 놀라움이 일렁였다.
혁수의 팔에는 룬 문자들이 문신처럼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내가 직접 박살 낸 몬스터들만 수백이야. 하하하!”
하나의 충돌도 일어나지 않고 정교하게 짜여진 룬 문신들.
통찰의 눈으로 하나하나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처용이 객관적으로 혁수의 전투력을 예상해 보았다.
‘아마도 지금의 마녀와는 호각, 아니 이길수도?’
혁수는 다른 비전투 클래스처럼 생산만 하는 이가 아니었다.
그의 던전 겅험들을 고려해 봤을 때 혁수는 백호와 같은 최정예 헌터가 맞았다.
“그래도 하나는 가지고 계세요. 어둠을 몰아내는 아티팩트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요.”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혁수는 더 거절하지 않고 레어 등급 아티팩트 하나를 챙겨 들었다.
“나도 자네에게 선물해 줄게 하나 있네.”
말이 끝남과 동시에 혁수가 미리 준비한 물건을 처용에게 내밀었다.
“이걸 쓰게나.”
혁수가 처용에게 건넨 것은 붉은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도(刀)였다.
“불개미 보스의 갑각에 이것저것 더해서 한번 만들어봤네.”
처용은 마치 자랑하듯 혁수가 내민 도를 받았다.
도의 외관을 만져보며 살펴본 처용이 칼집에서 도를 뽑아 보았다.
-스릉-
칼집에서 부드러운 쇳소리와 함께 붉게 빛나는 도신이 드러났다.
빛에 따라 반사되는 도신의 날이 마치 불타오르는 듯 일렁였다.
[화염의 절(絶) / 아티팩트]
[등급 : 유니크]
[뛰어난 장신의 손에 만들어졌습니다.]
[강력한 화염 속성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모든 무기 스킬에 화염 데미지 추가.
-화염의 절 사용 가능.
처용은 도의 끝부터 손잡이까지 손으로 만져보며 검을 감상했다.
아래쪽 도신에는 절(絶)이라는 한자어가 새겨진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원형 형태의 손잡이에는 룬 문자가 원을 따라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정말 좋은데요?”
“자네같이 훌륭한 사람이 보급품을 쓴다기에, 도저히 용납되지 않아서 말이야.”
혁수는 현아의 승격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만든 것이었다.
혁수 역시 헌터이기에 현아가 얼마나 고된 일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힘든 일을 하는 딸에게 그가 큰 도움을 주었으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처용이 진심으로 혁수에게 감사를 전했다.
마침 무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참이었다.
화염의 절은 지금의 처용이 사용하기에 아주 좋은 아티팩트였다.
심지어 무기의 이름과 같은 화염의 절이라는 스킬이 눈에 띄었다.
고압축의 화염을 발사하는 아티팩트의 스킬.
이것을 검기와 융합하여 사용하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잘 어울리는구만!”
혁수가 도를 집어든 처용을 보며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공들여 만든 무기가 어울리는 주인을 찾았을 때.
그 무기를 만든 장인들이 보람을 느끼는 법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