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화
“어흐- 흑.”
겨우 정신을 차리자 온몸에 고통이 밀려왔다.
그래도 고통 덕분에 몸에 감각이 점점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화악.
힘겹게 눈을 뜨자 새하얀 불빛이 망막을 가득 채웠다.
“으윽!”
눈가를 찌푸리며 눈을 감고 다시 천천히 시야에 적응하자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긴-”
“병원입니다. 안심하세요.”
누군가의 진지한 목소리가 옆에서 울려왔다.
“마녀께서는 지금 중환자시니 안정을 마저 취하시지요.”
힘겹게 상체를 일으킨 마녀가 오른쪽을 바라봤다.
목에 걸려 있는 청진기와 새하얀 의사 가운.
동그란 검은 안경을 쓴 반곱슬머리의 젊은 남자가 바라보고 있었다.
“닥터…….”
적이 아님을 확인한 마녀가 긴장이 풀린 듯 말했다.
본명은 백병원, 통칭 닥터 화이트라 불리는 마인.
그리고 자신과 같은 임무 지역에 투입된 A급 마인이었다.
“으으윽!”
마녀가 몸을 완전히 일으키려 하자 닥터가 만류했다.
“하아, 주치의인 내 말은 무시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좀 전처럼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진지한 말투가 아닌, 친근함이 섞인 말투였다.
“……이럴 시간 없어.”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녀가 몸을 마저 일으키자 닥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녀께서 왜 이렇게 당한거야?”
조금만 늦었어도 그녀의 생명은 위험했을 정도로 심한 부상이었다.
아무리 그녀가 A급 마인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었다지만.
고위 간부에 발탁될 정도로 능력 있는 마인이었다.
“네가 어디서 얻어맞고 왔다는 게 믿기지가 않네.”
팔짱을 낀 닥터가 놀리는 듯 친근한 말투로 마녀에게 말하자.
“……닥쳐.”
냉랭한 목소리의 대답이 들려왔다.
마녀가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부여잡았다.
동시에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튜토리얼 던전에서 마주친 정체불명의 섀도우 헌터.
심지어 자신을 압도할 정도의 실력자였다.
‘내가 아는 섀도우 헌터 중 그런 놈은 없었어…….’
놈이 싸우는 방식, 스킬, 얼굴, 목소리 모두 처음 들어봤다.
하지만.
-Bro
녀석의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 생각났다.
머리에 번개가 내리친 듯 마녀의 정신이 번뜩였다.
“얼마나……지난거야?”
마녀의 물음에도 닥터가 침묵하자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닥치라면서요?”
닥터가 어께를 으쓱이며 대답하자.
마녀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날카로운 눈빛이 닥터에게 쏟아지자 그가 두 손을 들었다.
“일주일.”
“뭐?”
닥터의 말에 마녀가 믿기지 않는 듯 다시 물었다.
“환자분은 일주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막 깨어나셨습니다.”
닥터가 안경을 들어 올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말했잖아 너 중환자라고.”
“하, 젠장.”
생각보다 너무 오래 누워있었다.
하루빨리 자신이 아는 중요한 소식을 전해야 했다.
마녀가 어지러운 정신을 수습하고 자리를 완전히 박차 일어났다.
“너 중환자라니까?”
“이럴 시간 없어! 우리 계획에 그림자들이 끼어들었어!”
마녀가 자신을 만류하는 닥터를 향해 소리치듯 말했다,
“확실해?”
“그리고 그놈이……내 착각이 아니라면…….”
마녀는 불안한 듯 아랫입술을 물며 말을 흐렸다.
“지금 바로 알려야-윽!”
마녀의 무리하는 모습에 닥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네가 깨어난 건 리더한테 알렸으니까. 쉬고 있어.”
“시간이 없다니까!”
“환자분은 ‘의사’인 제 허락 없이는 ‘백병원’을 못 나갑니다.”
닥터가 마녀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새하얀 병실로 보이는 이 장소는 닥터의 본명과 같은 백병원이라는 스킬이었다.
이 공간의 주인인 닥터가 허락하지 않는 한 이 장소를 마음대로 나갈 수는 없었다.
강제로 부수지 않는 한 말이다.
“너……!”
“묶어놓기 전에 가만히 있어.”
마녀는 닥터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온전한 전력을 갖춘 상태로도 이 공간을 부수는 것은 어렵다.
닥터의 말대로 자신은 중환자였고 상태가 엉망이었으니 그가 열어주지 않는 한 여기서 나갈 수 없었다.
“하.”
하지만.
마인은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이들이었다.
“험한 꼴을 보여서 미안한데…….”
마녀의 몸에서 검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내가 너무 만만하게 느껴지나 봐?”
특히, 같은 마인에게 만큼은 절대로 얕보여서는 안 된다.
마인들의 세계는 약육강식.
아무리 촉망받는 A급 마인이라 해도 순식간에 경쟁자에게 잡아먹히는 가장 어두운 세계였으니까.
“하아…….”
깊은 탄식을 내뱉은 닥터가 안경을 들어 올렸다.
좀 전의 말대로 마녀를 묶어놓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나이스 타이밍입니다. 리더.”
탁터가 허공을 향해 말하자 한쪽 벽면의 일부가 열렸다.
그러자, 금발의 중년 남성이 걸어 들어왔다.
“마녀는?”
새로 들어온 남성 ‘리더’가 닥터에게 물었다.
“보시다시피 쌩쌩해 보입니다. 물론, 겉모습만요.”
닥터가 리더에게 옅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은가?”
아무 감정이 없어 보이는 무뚝뚝한 목소리가 마녀에게 향했다.
“전 괜찮으니까. 빨리 간부들을 소집하시죠.”
“중요한 일인가?”
“매우.”
“흠.”
리더는 마녀의 말을 들으며 눈빛을 마주했다.
“알았다. 정보를 빠르게 얻을수록 우리야 좋으니까.”
마녀의 말대로 마인 간부들의 소집이 결정되었다.
“세 시간 후에 모두 모이도록 하지.”
리더가 병실을 나가면서 말을 덧붙였다.
“그럼, 환자분은 남는 시간 동안 안정을 취하시지요.”
닥터가 마녀를 향해 웃으면서 말하자 마녀가 고개를 돌렸다.
“어휴.”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쉰 닥터가 병실을 나가자 마녀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간부들이 모두 모였을 때,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기억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생각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닥터가 마녀를 데리러 병실에 나타났고 마녀는 드디어 백병원을 나갈 수 있었다.
한국에 자리한 간부급 마인들이 전부 모였다.
원형으로 빙 둘러싸인 공간.
그 중심에는 마치 높은 계급의 이들을 위한 상등석이 존재했다.
마녀를 포함한 고위 간부, A급 마인 다섯 명이 상등석에 앉았다.
그 외의 B급 이하 마인들이 빙 둘러쌓듯 외곽 쪽 하등석에 착석했다.
“바로 중요한 본론부터 말하지, 우리 지역에-”
“잠깐!”
중요한 이야기부터 하려던 마녀의 말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그 전에 네 처분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민머리의 문신이 가득한 험한 인상과 짙은 수염을 가진 남자.
그가 팔짱을 끼고 마치 비웃듯이 말했다.
“오거!”
마녀는 짜증을 가득 담아 말했다.
무하마드 노맨, 통칭 오거.
자신과 같은 A급 마인이자 고위 간부 중 하나였다.
‘이런 멍청한 새끼!’
오거가 자신을 적대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런 상황에서까지 저럴 줄은 몰랐다.
“마녀의 실패로 우리한테 피해가 생겼으니 처분부터 논해야지.”
오거는 다른 것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한 비웃음을 섞어 말했다.
거기에 몇몇 마인들이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마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잠시만요. 여러분? 마녀의 처분에 관한 내용은 지령에 없었습니다만?”
분위기가 안 좋아 질 기세가 보이자 닥터가 중재에 나섰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에게 정보를 들을 목적으로 소집된 회의입니다.”
닥터의 말에 오거가 험한 인상을 더 찌푸리며 닥터를 노려봤다.
“마녀는 ‘의회’에서 내린 일을 실패했다! 그러니 논하는 게 맞지!”
의회.
S급 마인들로 구성된 마인의 최고 수뇌부였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탄 동료입니다. 서로를 적대하는 건 좋지 않다구요?”
“돌팔이 네놈이 왜 저 여자의 편을 드는 건가?”
“저야말로 왜 당신이 유독 마녀를 적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우리와 같은 간부라고요.”
닥터의 ‘간부’라는 말에 오거가 비웃음을 가득 담았다.
“크크, 저런 모자란 실력을 가진 여자가 간부의 자격은 있고?”
오거가 마녀를 싫어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는 파키스탄의 악질 범죄자 출신이었다.
상등석에 앉은 마인 중 ‘유일한 여성’인 마녀가 그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에 이제 막 A급에 도달해 놓고 의회의 총애를 받는 것이 너무나 거슬렸다.
“아 씨발.”
결국, 마녀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본론을 말하기 전에 이 오크새끼 멱을 따고 시작했어야 했는데.”
오거를 노려보는 마녀의 몸에서 마기가 피어올랐다.
“이 건방진 쌍년이!”
그에 맞서듯 오거에게서도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일촉즉발의 상황.
“둘! 다! 그만!”
상등석 중 가상 상석에 앉아있던 마인.
리더가 고함을 내질러 싸움을 강제로 중지시켰다.
“이번 실패에 대한 지령은 없었다. 그러니 마녀의 말부터 들어보지.”
“하하, 감사합니다. 리더.”
싸움을 중지시킨 리더에게 닥터가 감사를 표했다.
리더는 그의 이명대로 이곳에 모인 마인들의 최고 통솔자였다.
서열 1위이니만큼 다른 고위 간부들보다 압도적으로 강했기에 오거도 더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리더가 마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끊겼던 이야기를 마저 이었다.
“우리 지역에 그림자들이 개입했어.”
“섀도우 헌터들이 우리를 방해하는 건 당연하지.”
마녀의 말에 리더가 표정 없이 대답했다.
“고작 그거 가지고 간부들을 전부 불러모은 건가! 마녀?”
오거가 적대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하지만, 좀 이상하네요? 저희는 다른 놈들에 비해서 조용히 움직였잖아요?”
닥터가 의문을 담아 대답했다.
다른 나라, 특히 정부가 제 기능을 못 하는 나라는 마인들이 거의 장악한 상태였다.
섀도우 헌터들도 주로 그런 곳에서 나타나 마인들을 방해하고 있었다.
때문에, 의회는 나름 조용한 한국에서 중요한 실험들을 준비했다.
커맨더의 국가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다른 나라보다 유독 안전하게 보이는 등잔 밑을 선택한 것이었다.
“너를 이긴 그놈이 섀도우 헌터인가?”
리더는 마녀가 깨어나기 전, 나름대로 상황 파악을 지시했었다.
한국에서 마녀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헌터는 몇 없었다.
그런 그녀가 만신창이 상태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가장 요주의 인물 중 하나인 권백호를 의심했었다.
하지만, 협회 내부자를 통해 알아보자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흠.”
리더가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냥 저년 능력은 거품투성-”
“오거, 닥쳐라.”
이때다 싶어 시비를 거는 오거의 말이 거슬린다는 듯 리더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말이 잘린 오거는 분노가 솟구쳤지만, 리더에게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놈이 섀도우 헌터라는 건 문제도 아니에요.”
마녀가 추가로 말을 이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
리더가 의문을 던졌다.
섀도우 헌터들은 마인들에 있어 가장 거슬리는 세력이었다.
하지만, 마녀는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뉘양스였다.
“나랑 싸웠던 그놈, 조커일 가능성이 있어요.”
마녀의 말이 끝나자 마치 싸늘한 냉기가 불어닥친 듯 주변이 고요해졌다.
리더와 간부들의 눈에 경악이 일렁이며 커졌고 닥터의 입이 벌어졌다.
“농담은……아니신 것 같네요?”
닥터가 진지하면서 심각한 얼굴을 한 마녀를 바라봤다.
도저히 농담으로 꺼낸 말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런 자리에서 농담을 꺼낼 마녀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봐라.”
리더가 심각한 얼굴로 마녀에게 재차 물었다.
“그림자들의 수장이 확실한가?”
리더를 바라본 마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저도 확신하지 못해서 가능성이라고 말한 거에요.”
“자세히 말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리더가 마녀의 대답을 독촉했다.
한국에서 해야 할 일들은 의회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일들이다.
그런데 그림자들의 수장이 직접 나서서 훼방을 놓는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가 정말 조커라면 이건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리더가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조커라고 가정한 이유는?”
얼굴을 덮은 손을 떼고 진정한 리더가 마녀에게 물었다.
마녀는 다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미리 파악한 헌터들 중에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요.”
“그렇다고 수장일 수는 없다. 정말로 조커라면……네가 살아 돌아올 리가 없었으니까.”
리더가 마녀의 가능성을 전면 부정하듯 말했다.
조커.
섀도우 헌터들의 수장.
그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3년 전이었다.
섀도우 헌터들이 마인들의 본부 중 하나를 습격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그 본부에는 S급 마인이자 의회주(主) 중 하나인 ‘고통의 집행자’가 체류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는 S급 마인으로 인해 섀도우 헌터들이 반대로 전멸 위기에 처했다.
그때, 누군가가 섀도우 헌터들을 구할 목적으로 집행자를 가로막았다.
검은 연미복 스타일의 복장과 하회탈 가면.
웃을 때 드러나는 금빛으로 번쩍이는 이빨.
스스로를 그림자들을 이끄는 자, 조커라고 소개하는 해괴한 이였다.
그 모습을 본 집행자는 코웃음을 쳤다.
이 기회에 귀찮게 구는 섀도우 헌터들을 몰살시킬 기회로 조커와 전투를 개시했다.
전투의 결과는 충격적이게도 집행자가 상처를 입고 물러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섀도우 헌터들과 ‘조커’에 대한 위험도가 급상승했다.
“그러니까 가능성을 말한거에요.”
마녀가 침착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최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조커.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예상 밖의 방해꾼.
그가 사용하는 정체불명의 능력.
거기에.
“재미있었어. Bro.”
마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귀에 들어오자 마인들이 흠칫했다.
리더의 무표정이 일그러졌고 오거의 얼굴에 경악이 번져 나갔다.
마녀를 바라보는 닥터의 눈빛이 무언가를 생각하듯 점점 가늘어졌다.
“그놈이 마지막으로 웃으면서 한 말이었어요.”
마녀는 지금도 그 모습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았다.
그가 정말 조커인지는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그걸 떠나서 정말 위험한 자라는 것을 본능으로 느끼고 있었다.
“흐음……?”
그런 마녀의 모습을 닥터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이상한 능력이라는 걸 자세히 얘기해 주시겠어요?”
닥터가 궁금한 듯 마녀에게 물었다.
“마치 전부 알고 있다는 듯이 모든 공격을 파훼해버렸어. 덕분에 내 가디언도 박살났고.”
닥터를 바라본 마녀가 그 상황을 다시 상기하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스킬인지는 모르겠는데 다크 에로우 수십 발을 그냥 맨몸으로 받아냈어.”
“그……정도라고요?”
닥터가 안경을 들어 올리며 침음을 흘렸다.
“거기에 분명 회복마법 같았는데……그게 내 저주도 없애버렸어.”
마녀의 말을 들은 마인들은 모두 생각에 들며 침묵했다.
이곳에 모인 마인들 특히, 고위 간부인 A급 마인들은 서로의 힘을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마녀의 흑마법과 저주의 위력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쉽게 파훼할 정도라 하니 상대의 전투력이 쉽게 측정되지 않았다.
“힐링 마법이면……교단에서 잠입한 성기사의 가능성은요?”
교단의 성기사들은 마기의 천적인 신성력을 사용하는 헌터들이었다.
“절대로 아니야.”
닥터의 말에 마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교단의 추기경들이나 단장들도 아니었어.”
마인들의 천적이니만큼 유명한 성기사나 사제 클래스 헌터들은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의 전투 스타일까지 말이다.
“성기사가 빙결이나 화염 마법을 쓰는 것은 불가능해.”
“마법사가 힐을 쓰는 것도 말이 안 되네요. 하,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닥터가 두 손을 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보가 너무 부족해요. 협회 내부에 심어놓은 녀석들을 더 굴려야겠습니다. 리더.”
“골치……아프군.”
리더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면 헌터 협회를 장악하는 일도 차질이 생기겠어.”
생각을 이었지만, 별다른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커맨더가 한국에 권백호를 두지만 않았어도 쉬웠을 것을…….”
“리더도 강하잖아요? 150레벨이 넘으신데.”
닥터가 볼 때 리더는 웬만한 A급 헌터들은 압도할 정도로 강한 마인이었다.
그런 그가 왜 권백호라는 A급 헌터를 경계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닥터의 말에 리더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놈은 내 예상, 아니 확실하게 160레벨이 넘을 거다.”
리더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정말인가요?”
닥터의 질문에 리더가 확신을 담아 눈빛을 마주했다.
리더의 눈빛을 마주한 닥터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그래서 권백호의 동향을 계속 파악하려 한 거군요.”
리더가 휘하 마인들에게 내린 지령 중에는 권백호에 대한 명령도 있었다.
마주치면 죽는다 생각하고 무조건 피해 다니라는 명령이었다.
“이 일은 내가 직접 의회에 보고하고 지원을 요청해 보겠다.”
리더가 테이블을 짚으며 선언하듯 말했다.
“그때까지는 몸을 사리고 정보 수집을 최우선으로 진행한다. 이상!”
권백호도 모자라 정체불명의 방해꾼까지 나타났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의회의 지원을 받기 전까지는 몸을 사리는 게 맞았다.
이대로 소집이 파하고 모두가 돌아설 때.
“마녀는 일단 회복에 집중해라.”
리더가 마녀를 향해 말했다.
마녀가 뒤를 돌아 리더를 바라봤다.
한껏 찌푸리고 일그러진 마녀의 표정을 본 리더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마녀는 이미 표정만으로도 ‘싫어!’라고 대답한 모습이었다.
짐작대로 당하고 가만히 있을 성격의 마녀가 아니었다.
“명령이니까 회복에 집중해라.”
리더가 마녀를 향해 재차 명령했다.
의회에서 비밀스럽게 받은 지령 중 마녀를 잘 성장시키라는 명령이 있었다.
심지어 그 지령은 무려 ‘악의 성좌’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마녀가 무리하다 잘못되면 문책을 받을 수 있었기에 명령한 것이었다.
“마녀가 회복할 때까지 닥터가 옆에서 지켜보도록.”
닥터가 리더의 말을 듣고 마녀를 바라보았다.
“하아, 알겠습니다.”
마녀의 짜증이 난 표정을 마주한 닥터는 귀찮은 듯 작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믿는다.”
이 상황에서 마녀를 케어할 만한 이가 자신 말고는 닥터가 유일했다.
그는 합리적인 선택과 판단을 하는 이였으니 나름대로 신뢰가 있었다.
“가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리더가 뒤를 돌아 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회의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로브를 뒤집어쓴 A급 마인이 뒤따랐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