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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27화 (27/726)

#027화

“이런! 제기랄!”

-와장창!

사무실로 돌아온 이진상이 책상 위에 있던 화분 하나를 집어 던졌다.

벽에 부딪힌 화분병이 날카로운 소움을 내며 깨져나갔고.

흙이 사방으로 튀면서 퍼져 나갔다.

“썅!”

잔뜩 충혈된 눈으로 관자놀이에 핏줄을 세우며 분노를 토했다.

“지금까지 던전만 돌던 새끼가 왜 갑자기 끼어든 거야!”

솟구쳐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분들에게 받은 지령대로 협회장을 돕는 ‘누군가’를 알아내야 했었다.

스킬석을 빌미로 임원 회의를 열어 놈을 알아낼 작정이었지만.

던전 관련 일만 하던 권백호가 갑자기 끼어들었고 상을 엎어버렸다.

“후욱- 후욱-”

거친 숨을 내쉰 이진상이 생각을 정리하듯 침묵했다.

잠시 진정한 그는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잡으며 눈을 감았다.

“보고드립니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허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의 말처럼 마치 누군가를 향해 보고를 올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자가 커맨더의 파티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의 말은 이진상을 제외하고 주변에 들리지 않았지만.

누군가와 통화를 하듯 계속 대답을 듣고 대답했다.

“그건……권백호가 갑자기 끼어들어서……어쩔수가 없었습니다.”

이진상은 마치 곤란한 지령을 받은 듯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가 권백호를 어떻게……무슨 수로 말입니까? 불가능합니다!”

안절부절한 감정에서 화를 내는 듯 이어졌으나 상대의 신분이 더 높았는지 금세 쭈그러졌다.

“알겠습니다……최선을……다해보지요.”

말이 끝났는지 이진상이 눈을 떴고 오른손을 왼손에서 때었다.

동시에.

책상 위에 있던 화분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썅!”

-와장창!

날아간 화분이 벽에 부딪혔고 산산이 조각나며 흙이 흩어졌다.

“씨발! 나보고 어떻게 권백호의 뒤를 캐라는 거야!”

재차 화분을 집어 들고 벽에 던지며 쌓인 분노를 폭발시켰다.

“니들이 직접 해보든가!”

좀 전에 받은 지령 때문인지 격노를 토하며 발광했다.

“커맨더의 파티원이 아니면! 그 새끼가 도대체 누군데!”

자신이 보고를 올리던 이가 말해주었던 정보.

협회장을 돕는 정체불명의 헌터는 커맨더의 파티원이 아니라고 확신을 담아 못을 박았다.

커맨더와 관련이 있는 자들은 모두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이다.

“안 그래도 권백호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

그러면서 내린 지령은 권백호의 뒤를 캐서라도 협회장을 돕는 헌터를 알아내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진상에게 있어 불가능한 지령이었다.

“썅!”

이진상은 또 다른 화분을 집어 들어 던지려는 것을 멈추었다.

“후욱!”

콧김을 한껏 뿜은 그가 잠시 진정하려는 듯 눈을 감고 허리를 폈다.

그러고는 책상 위의 인터폰을 들었다.

“지금 바로 협회 출입 인원 기록이랑, 최근에 라이센스 등록한 놈들 기록 다 가져와봐.”

가능하면 협회장실 출입 인원도 파악하고 싶었지만.

협회장실은 해당 층 포함, 협회장의 허가 없이 기록 열람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진상은 명령을 하달한 후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인상을 썼다.

“권백호를 견제할 방법이…….”

-쿵!

생각만으로도 짜증이 나는지 주먹을 들어 책상을 내리쳤다.

잠시 고민하던 이진상이 다시 인터폰을 들었다.

“지금 모두 4번 회의실로 모이시죠……대책은 강구 해야 할 것 아닙니까!”

-탕!

통화를 마친 이진상이 수화기를 거칠게 내리쳤다.

그리고, 신경질을 내듯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사무실을 나갔다.

그리고.

방 안에 고요함이 찾아왔을 때.

-저벅, 저벅

고요함이 끊어지듯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해제.”

동시에 사무실 배경 일부분이 유리가 깨어지듯 깨져나감과 동시에 처용이 나타났다.

처용은 ‘클로킹 아머’라는 마법을 자연부로 흉내 내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것이었다.

‘대마법사랑 속성 마나 연구를 했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되네.’

토류부의 흙 속성 마나와 화염부의 불 속성 마나를 강하게 압착해 융합시키고.

일정한 두께로 계속 유지함과 동시에 마나를 순환시키는 나름 복잡한 방법이었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마나로 만든 순수한 유리를 몸 외부에 갑옷처럼 감싸는 것이었다.

마법이라기보다는 속성 마나를 이용한 응용에 가까웠다.

아직은 은폐 계열 스킬이 없었기에 이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쥐새끼는 찾았고……아니 돼지새끼 인가?”

처용은 증거를 잡기 위해 이진상을 조용히 뒤따라왔었다.

당연히 그가 이 방에서 했었던 모든 일들을 은밀하게 지켜봤었다.

빼도박도 못 하는 현장 증거를 잡은 셈이었지만.

처용은 당장 그를 잡지 않았다.

“지금 잡아 봐야 꼬리만 잘릴 테고.”

이진상의 사무실을 여기저기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치 모래사장에서 사금을 찾듯 하나하나 세밀하게 관찰하며 무언가를 찾아다녔다.

“찾았다.”

처용이 말함과 동시에 책장에 꽂힌 책 한 권을 꺼내 집어 들었다.

[경영의 핵심과 자본에 대하여]

시중에서 팔 법한 그저 평범한 책처럼 보였지만.

처용은 통찰의 눈으로 숨겨져 있는 책의 본질을 꿰뚫어 봤다.

[악을 감싸는 장막 / 아티팩트]

[등급 : 레어]

[근처 마기의 기운을 감추고 모습을 은폐시킵니다.]

-아티팩트 은폐

평범한 책처럼 보이는 이것은 마인들이 만든 아티팩트였다.

“이걸 증폭시켜주는 성소도 있을 텐데.”

처용은 꺼냈던 책을 다시 자리에 있던 책장에 꽂았다.

책에서 아주 희미하게 느껴지던 마기를 따라 사무실을 둘러봤다.

이윽고 처용의 시선이 좀 전에 이진상이 던지려다 말았던 화분에 닿았다.

이것 역시 그저 평범해 보이는 작은 화분이었지만.

[소리없는 비명 / 아티팩트]

[등급 : 레어]

[근처에 있는 마기의 능력을 증폭시킵니다.]

-아티팩트 능력 증폭

책과 마찬가지로 마인들이 만든 아티팩트였다.

처용이 화분의 꽃을 조금씩 들어 올리자 뿌리가 나타났다.

생생한 위쪽과는 다르게 새까맣게 썩어있는 뿌리가 보였다.

그리고, 뿌리에는 희미하게 눈, 코, 입처럼 보이는 주름이 있었다.

“만드라고라를 오염시켜서 만든 아티팩트인가? 이 새끼들 생각보다 공을 많이 들였네?”

처용은 마인들이 협회에 공들인 작업에 나름 놀라워했다.

배신자들을 감추어 주는 장막과 증폭기 아티팩트들 그리고.

“통신기까지, 일단 전부 찾긴 했네.”

처용이 이진상의 왼손을 떠올리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의 왼손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처용의 눈에는 검지에 끼워진 검은 반지가 보였다.

“이 정도로 공을 들였으니 못 찾을 수밖에…….”

태민을 포함한 협회의 그 누구도.

제아무리 백호라고 해도 이것을 모두 파악하기란 불가능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시너지를 주는 구조인가?”

통신기를 감추어 주는 장막, 그 장막의 기운을 증폭시켜주는 성소.

거기에 증폭된 장막의 기운이 다시 성소를 감추어 주는 구조였다.

마인들의 방식을 수십 년간 경험한 처용이 아니었으면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과장님이 알려준 다른 놈들 사무실도 뒤져 볼까?”

이진상처럼 사무실에 아티팩트를 두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아티팩트 하나가 처용에게 걸린 이상.

그 기운을 따라가면 고구마 줄기 마냥 줄줄이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얼마 안 남았다.”

처용이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읆조렸다.

“네놈들 제삿날까지 말이야.”

***

“그 쌍노무 왕 돼지 멱을 따버리려다 말았수.”

협회장실로 돌아온 백호가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말했다.

“하하, 잘 참았다. 백호야.”

협회장이 백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백호가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처용을 향해 말했다.

이진상을 포함한 다른 임원들의 뒷조사 결과를 물어본 것이었다.

처용이 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붙이고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다 찾았죠. 전부.”

미소를 보이며 처용이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처용은 협회장실에 있는 인원들에게 자신이 찾은 아티팩트의 구조와 능력, 위치에 대해 말해주었다.

추가로 이진상을 포함한 ‘통신기’를 가진 몇몇 확실한 배신자들까지 말해주었다.

“그래서 제 능력에 걸리지 않았던 거군요.”

“스킬을 맹신하지 마세요. 그건 절대적인 게 아니니까.”

처용이 명심하라는 듯 태민에게 말했다.

당장 자신조차도 태민의 모든 스킬을 방어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언제 시작할 건가?”

백호가 낮은 음성으로 처용에게 물었다.

당장 놈들을 조지고 싶다는 듯 한 말투였지만.

“아쉽게도 아직 안됩니다.”

처용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통신기를 가진 놈들이 전부가 아니니까요.”

“그래 놈들이 전부일 리가 없겠지.”

잡초로 따지면 통신기를 가진 배신자들은 굵은 뿌리들이었다.

굵은 뿌리만 뽑으면 잔뿌리들이 남아 잡초가 살아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잔뿌리 하나 없이 놈들을 박멸해야 했다.

“놈들을 감추어 주는 수단은 찾았지만 문제는…….”

“놈들을 감춰주는 방패를 부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군요.”

처용이 끝을 흐린 말에 협회장이 대답했다.

“부술 방법이 있겠습니까?”

“부술 방법은 알고 있지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협회장의 질문에 처용이 인상을 조금 구기며 대답했다.

자비의 손길만 해도 악을 몰아내는 능력이 있었다.

당장 배신자들을 감추어 주는 장막을 잠시 걷어낼 수는 있겠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너무 부족했다.

하나의 연결이 끊기는 순간 놈들이 알아차릴 것이고 놓친 놈들은 잠적할 것이다.

“한 번에 잔뿌리까지 전부 뽑아버려야 합니다.”

처용이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당장 놈들을 잡아내지 못한다 해도 문제는 없었다.

좀 전에 벌어들인 100억, 새로 얻은 자원들과 보물전의 기능.

뛰어난 인첸터인 혁수까지.

방법은 충분했고 이제 남은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그 방법을 완성하기 위해 한 가지가 더 필요했다.

“협회에서 빛 속성 스킬석 하나 구해주실 수 있나요?”

협회장을 바라보며 처용이 말했다.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빛 속성만 들어있다면.”

처용이 생각하는 방법의 핵심이었기에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흠, 최대한 빠르게 찾아보겠습니다.”

협회장은 더 묻지 않고 바로 수락했다.

그가 필요하다고 했으니 분명, 이 일에 중요한 것이라 판단했다.

“하하, 가격은 100억 내로 부탁드립니다.”

처용은 더 묻지 않고 협조해주는 협회장에게 웃으며 말했다.

“교단 한국지부에 협조 요청을 해 보겠습니다.”

대화를 듣던 태민이 나름 괜찮은 방법을 이야기했다.

교단은 빛 속성을 주로 다루는 이들이 모인 길드.

그들이라면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방금처럼만 하면 되는 건가?”

백호가 처용을 향해 말했다.

“네, 효과가 아주 끝내줬거든요.”

처용은 이진상이 사무실에서 난리친 일들을 사람들에게 말해주었다.

“하하하, 놈들 입장에서 아주 환장할 노릇이겠구만?”

“돼지들 구역에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는 것만 해도 정신이 없을 테니까요.”

“하하하.”

백호가 처용의 표현이 재밌었다는 듯 웃어 보였다.

처용의 말은 이진상의 반응만 봐도 사실이었다.

임원 회의에 백호가 참석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놈들은 당분간 백호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처용이 놈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당장 백호를 어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놈들이 방황하는 동안 모든 준비를 마치고 싹 쓸어 버릴 것이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처용님.”

협회장이 처용에게 감사를 전했다.

할 일과 말을 마친 처용이 협회장실을 나갔다.

“흠.”

백호가 무언가를 생각하듯 팔짱을 꼈다.

“하하, 아직도 저 친구를 의심하는 거냐. 백호야?”

협회장이 백호에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처용을 적대하지는 않았지만, 의심은 거두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혁수 그놈이 칭찬했지 말이우.”

백호는 재고관리 센터에 있었던 일들을 회의 전에 전해 들었었다.

처용의 던전 조사부터 현아에게 있었던 일까지 말이다.

“솔직히 현아를 생각하면 너무나 고맙지.”

현아는 친구인 혁수의 딸.

백호에게 있어서 소중한 협회의 식구 이전에 가족과 마찬가지였다.

“하하, 친구의 칭찬으로 믿어 주는 거냐?”

“유독 악인을 싫어하는 녀석이니 그놈이 좋다고 말했다면 뭐.”

다른 누구도 아닌, 오랜 시간 던전을 같이 다녔던 동료이자 친구.

혁수가 끊임없이 늘어놓았던 처용의 자랑을 다시 상기하자 웃음이 나왔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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