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25화 (25/726)

#025화

“저 친구가 간 게 천만다행일 정도라고.”

혁수가 확신을 담아 한 말에 태민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협회는 언제나 인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정이 빡빡했다.

처용이 없었으면 아마 다른 길드에 의뢰하여 조사단을 요청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C급 헌터들만으로 조사단을 꾸려 보냈다면?

헌터들이 전멸하고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 저 개미들이 뛰쳐나왔을 것이다.

그 결과가 근처에 살던 시민들이 학살당하는 참사로 이어지는 건 명백했다.

“천만다행이군요.”

태민은 혁수의 말에 동의했다.

잘못하면 대참사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다.

“처용님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뭐, 재활운동 정도랄까요? 하하.”

처용이 기분 좋은 듯이 웃어 보였다.

‘이정도 난이도의 던전을 혼자 클리어 했는데 운동?’

태민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처용을 보며 안경을 고쳐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회복중이라고.’

처용은 부상을 입은 상태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지금도 이렇게 강한데 그가 부상을 전부 회복한다면…….

도대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것들 전부 다 정산할 건가?”

혁수가 불개미 왕의 사체를 두드리며 처용에게 말했다.

“흠, 불개미 왕의 갑각 일부만 빼고 전부 정산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을 잠시 멈춘 처용은 해체했었던 불개미 갑각의 절반을 꺼냈다.

“이것들도 다 정산하겠습니다.”

처용이 얻은 불개미 갑각만 백 마리 분량이었기에 아직 남은 것은 많았다.

“자네가 직접 해체했나? 이야! 거의 전문가 수준인데?”

깨끗하게 부위별로 나누어진 불개미 갑각 중 하나를 집어 든 혁수가 감탄했다.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하게 필요한 부분만 분리했네?”

“혼자 다니다 보니 잡기술이 늘어서요.”

“잡기술? 하하하.”

처용의 말을 들은 혁수가 크게 웃어 보였다.

“자네 실력이 잡기술이면, 길드 공방 놈들은 전부 대가리 박고 반성해야 되네!”

혁수가 장인의 눈과 감각으로 판단했을 때 처용이 해체한 것들은 훌륭했다.

“뭐 더 건들 필요가 없겠어, 이대로 작업해도 될 정도야.”

해체된 갑각들을 하나하나 살펴본 혁수가 처용을 보며 말했다.

“이야, 이정도면 어디서 전문적으로 배웠을 정도인데?”

“하하.”

혁수의 말은 정답이었다.

회귀 전, 처용이 가르침을 청했던 대장장이와 인첸터.

그들의 실력은 성좌들에게조차 꿀리지 않는 정도였으니까.

“우리한테 넘겨줘서 정말 고맙네!”

처용이 정산하기로 한 재료들을 확인한 혁수가 기분 좋게 외쳤다.

“저도 감사합니다.”

처용이 해체했었던 불개미 갑각의 절반을 넘긴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자금 마련.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는.

“좋아! 이런 좋은 재료들이 길드에 가는 건 손해지!”

처용은 혁수의 말에 공감했다.

질 좋은 자원들이 생길 때마다 처용은 협회와 계속 거래할 것이다.

협회에 좋은 자원들이 쌓일수록 다른 길드보다 더 성장할 수 있었다.

협회는 마인들, 더 앞서서는 악신들을 막기 위한 전초기지가 되어야 했으니까.

그런 협회가 길드들보다 더 성장해야하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하하, 간만에 공방 녀석들이 좋아하겠어!”

혁수는 불개미 갑각들을 보며 기대되는 듯 웃었다.

벌써 무엇을 만들지 기대되는 눈치였다.

처용 역시 나름대로 기대가 되었다.

혁수는 인첸터 클래스였지만, 대장장이 스킬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세계에 얼마 없는 A급 생산직 헌터.

그라면 상등품의 아티팩트와 무구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다만, 걸리는 점은.

“저걸로 만든 무구들이 집행반 쪽에도 가나요?”

처용이 태민을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집행반 세력들은 협회 소속이긴 하지만 ‘적’들이었으니까.

자신이 건넨 자원들을 집행반이 사용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태민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이곳 공방에서 만들어진 것들은 집행반으로 거의 가지 않습니다.”

“거의요?”

“동일하게 지급되는 복장이나 기본 물품들이라 크게 신경 쓸 것들은 아닙니다.”

처용은 거의라는 말에 조금 거슬렸지만, 걱정할 것들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집행반들을 지원하는 길드가 따로 있습니다.”

“흠, 그런가요?”

대충 감이 잡힌 처용이었다.

협회를 장악하려는 집행반 세력들은 협회장 라인인 이곳도 경계할 것이다.

“윗선하고 연결되어있는 길드입니다. 아티팩트나 무구는 그쪽에서 지원받고요.”

“뭔가 더러운 냄새가 나는데요.”

처용이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집행반 자체가 깨끗하지 못한 세력들이다.

그들은 협회에서 해야 할 임무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이들이었으니까.

“더러운 일을 대신 해주는 용병들을 지원한다고 해야 할까요?”

처용은 태민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어떤 길드들인지 대충 머릿속에 후보가 나열되었다.

‘순혈자들의 길드.’

세계 수호는 완전히 관심 밖인 이들은 그들밖에 없었으니까.

“기회가 되면 그것들도 처리해야겠네요.”

미래에 방해가 될 길드들이었으니 정리할 필요는 있었다.

‘자금 마련할 곳이 더 생기겠네.’

처용이 싸늘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도적질이라도 할 생각이냐?]

마치 처용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 미륵이 물어왔다.

‘네.’

처용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회귀 전, 그들이 모아왔던 검은 자금들은 전부 악신 측에 넘어갔었으니까.

‘그놈들한테 갖다 바칠 바에는 제가 뺏어 먹는 게 낫습니다.’

그들이 힘없는 이들을 강탈해온 것처럼, 처용 역시 그들을 강탈할 생각이었다.

또 그들의 길드를 와해시켜야 순혈자들, 악신들의 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었다.

아마 지금 시기에도 몇몇 순혈자들은…….

이미 악신들에게 협력하고 있을 테니까.

‘힘을 어느 정도 회복하면 바로 털어야겠어.’

기회가 되면 바로 행동해야 했다.

처용이 볼 때 그들은 협회가 성장하는 것도 방해할 이들이었다.

“아직 조사 중이긴 합니다만, 세력이 생각보다 큽니다.”

처용이 꺼냈던 말에 태민이 대답했다.

“배신자하고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겠네요.”

처용이 태민의 말에 싸늘하게 읊조렸다.

“아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태민은 처용의 말에 힘없이 대답했다.

조사가 전부 끝나기 전이라 증거는 없었지만, 처용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니기를 바랐다.

길드가 마인들에게 협력한다? 상상만으로도 최악이었다.

“아무튼, 협회의 물품들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태민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특히 센터장님이 만드신 것들은 절대 넘길 리가 없으니까요.”

“맞아, 그 전에 내가 허락 안 해!”

중간에 태만과 처용의 대화를 듣던 혁수가 강하게 대답했다.

“그 상놈들한테는 억만금을 받아도 주고 싶지 않아!”

혁수가 말하는 이들은 집행반들이었다.

“애초에 그놈들 요청도 다 무시하고 있는지 오래야, 하하하.”

집행반들의 갑질과 횡포는 협회 내부에서도 유명했다.

그들의 망나니짓은 재고관리 센터에서도 있었다.

자원도 가져오지 않고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점점 많아졌었다.

그래도 초기에는 같은 협회 사원들이니 최대한 맞춰주긴 했었다.

하지만, 집행반 헌터들의 리더 중 하나가 찾아와 행패를 부린 일이 발생했다.

그는 허접한 물건들을 써주는 걸 감사히 여기라며 헛소리를 시작했다.

심지어 혁수에게 비전투 클래스는 얌전히 조력이나 하라며 비꼬았다.

전투 클래스 헌터였던 그가 비전투 클래스인 혁수를 얕보고 한 짓거리였다.

그 결과.

그는 혁수에게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혁수는 커맨더의 파티원.

백호 같은 최상위 헌터들과 던전을 다녔던 이였다.

그런 혁수가 비전투 클래스라 해서 절대로 약할 리가 없었다.

혁수는 그날을 기점으로 집행반과 관련된 모든 일을 전면 중지시켰다.

당연히 집행반 측 협회 임원들이 반발했고 임원 회의가 열렸지만.

-내 앞에 대가리 박고 사과하면 생각해 보겠네.

혁수가 협회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꺼낸 말이었다.

집행반 측 임원들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지며 분노했지만, 혁수를 함부로 건들 수 없었다.

그는 커맨더의 동료였으니까.

애초에 백 퍼센트 집행반들의 잘못이었음에도 사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권위와 똥폼으로 먹고사는 이들이 남에게 고개를 숙일 리가 없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혁수와 집행반 측 임원들은 완전히 갈라섰다.

“자네가 그 망나니들을 정리해 준다면서?”

혁수는 협회장 라인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다.

백호와 협회장에게 처용에 대해서 대략적으로는 들은 상태였다.

“협회장 나리 좀 많이 도와주게. 그 양반만큼은 우리를 위해 애쓰는 사람이니까.”

처용은 혁수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조만간 늙은 돼지들을 치워버릴 겁니다.”

“하하하!”

혁수는 처용이 말하는 늙은 돼지들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이야 이거 아주 괜찮은 친구로구만?”

혁수가 처용이 마음에 든다는 듯 호쾌하게 웃어 보였다.

“대충 정산이 끝났네, 마음 같아서는 더 얹어 주고 싶구만.”

“수수료가 없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기분 좋게 대답한 처용은 혁수의 말을 기다렸다.

솔직히 어느 정도의 자금이 나올지 궁금했다.

“대충 한 4억 이상 나올 거야.”

“네?”

예상보다 큰 금액에 처용이 당황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데요?”

처용이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잘 듣게나.”

혁수가 계산된 금액에 대해 설명을 이었다.

“자네가 클리어한 던전은 원래 30명 이상이 공략해야 하는 던전이야.”

처용은 수십 명의 헌터가 공략해야 하는 던전을 혼자 독식했다.

“심지어 가지고 온 소재들이 아주 깔끔한 상태야.”

불개미 갑각의 가치를 알아본 처용이 흠집이 없게 단칼에 죽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보스급 몬스터가 두 마리, 심지어 속성 마나까지 품고 있어.”

혁수의 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자네가 전철역에서 잡은 발바리들도 따로 정산될 거야.”

“아.”

전철역에서 죽인 블랙 독들 사체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하지 않았었기에 잊고 있었다.

“우리가 떼먹는 일은 일절 없다네.”

“하하, 감사합니다.”

예상보다 큰 자금이 생긴 처용은 기분이 좋았다.

“총무부에서 정확히 정산되는 대로 바로 입금될 겁니다.”

“생각보다 많이 나와서 기분은 좋네요.”

태민의 말에 처용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럼 혹시.”

처용은 막 생각난 듯 혁수를 향해 물었다.

“스킬석은 얼마 정도에 거래되나요?”

개미굴에서 얻은 스킬석이 있었으니 지금 시기의 가치를 알아야 했다.

“스킬석? 어떤 스킬이냐에 따라 다르긴 한데…….”

처용의 질문에 혁수가 대략적으로 대답했다.

“보통 억 이상이야, 전투 계열 스킬이면 그 가치가 배로 뛰고.”

“흠, 그렇다면.”

혁수의 말에 답하던 처용이 아공간에서 붉은 보석을 꺼내 들었다.

“이건 어느 정도 할까요?”

처용의 손에 들린 붉은 보석을 바라본 혁수는 천천히 감정을 시작했다.

“어디…… 이!!”

혁수의 목소리가 순간 높이 올라갔다.

눈을 감고 고개를 잠시 흔든 다음 다시 보석과 똑바로 마주했다.

재차 감정한 혁수의 눈동자가 점점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 자네 이거 어디서 났나!”

혁수의 목소리가 커지다 못해 삑사리가 날 정도로 흥분했다.

“왜 그러십니까?”

태민이 궁금한 듯 혁수에게 물었다.

“이거 레어 등급이야! 심지어 전투 클래스 스킬!”

“예에?!”

덩달아 태민의 목소리도 커졌고 붉게 빛나는 스킬석을 확인했다.

태민 역시 탐정 클래스로서 물건을 감정하는 스킬이 있었다.

“이럴……수가!”

태민은 화염 강화 오라가 담긴 붉은 스킬석을 확인하자 정신이 멍해졌다.

“레어 등급 스킬석이라는 게…… 실제로 있긴 하군요.”

“있긴 해! 나도 딱! 한 번 밖에 못 봤지만…….”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 둘을 보던 처용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인가?’

스킬석의 가치는 매우 높다.

이건 처용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처용이 간과한 점이 하나 있었다.

지금 시기에 레어 등급 스킬석이 나타난 적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것이었다.

처용은 미래의 긴 시간을 겪은 만큼 현재의 일반적인 가치관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가치가 어느 정도입니까?”

혁수는 처용의 말을 듣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 이걸! 후…….”

잠시 진정하려는 듯 깊은숨을 내쉰 혁수가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저 보스를 잡고 얻었구만?”

“맞습니다.”

“자네 복권, 아니 복권 따위랑 비교조차 못하겠네.”

다시 한 번 숨을 깊이 내쉰 혁수가 말했다.

“좀 과장하자면, 부르는 게 값이야.”

혁수의 말을 들은 처용은 미소가 번지는 것을 숨겼다.

‘그렇단 말이지?’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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