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한 처용이 마음을 다잡고 눈을 떴다.
그 결과.
[재생 / 스킬석]
[등급 : 레전더리]
[제한 : ?]
[생명이 순환되는 신비, 재생의 비밀이 잠들어 있습니다.]
[확인불가.]
[확인불가.]
[…….]
[…….]
[…….]
“…….”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이 감돌았다.
처용은 믿기지 않는 광경에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 다시 그것을 바라봤다.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처용과 같은 시야를 보고 있는 성좌들 역시 이 믿기지 않는 행운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설마설마 했었다.
마치 운명처럼 느껴질 정도의 분위기였으니까.
동시에 너무 과분한 욕심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 2연속 스킬석 드랍에 재생까지 바란다?
그건 과분한 욕심이었다.
하지만, 처용도 사람인지라, 기왕 드랍된 거 재생을 바랬다.
“간절히 바라긴 했지만…….”
[허, 네놈 행운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구나.]
“저 역시 아직도 실감나지 않습니다. 미륵님.”
처용은 오랜 시간 헌터로 싸워온 만큼, 다양한 스킬석을 보긴 했었다.
“유니크 등급은 종종 봤었지만, 레전더리라니.”
그 많은 경험을 쌓은 처용조차 레전더리 등급의 스킬석은 처음 보았다.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어주셨나…….”
처용은 검게 빛나는 보석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감탄했다.
[행운의 여신님께 감사를 전해야겠구나. 제자야.]
여래가 옆에 있던 보살을 바라보며 옅은 웃음을 지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보살님!”
[……네?]
이름이 불린 행운의 여신(?)은 그저 황당했다.
[계승자가 잘되길 바라고는 있었지만…….]
처용이 스킬석을 확인할 때 속으로 기도를 올리긴 했었다.
그녀는 언제나 처용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으니까.
하지만, 설마 진짜로 재생이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하, 행운의 여신이었습니까?]
[그럴 리가요?]
미륵이 가볍게 웃으며 한 말에 보살 역시 웃으며 부정했다.
“행운의 여신님 덕분에 너무나 잘 되었습니다.”
[아…… 계승자가 잘되어서 저도 기쁩니다.]
아니라고 말하려던 행운의 여신(?)은 그냥 체념했다.
어쨌든 계승자인 처용이 잘되었다니 다행이었으니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상황이긴 합니다만…….”
기쁜 마음을 갈무리하고 냉정을 되찾은 처용이 스킬석을 바라보았다.
[스킬석 재생을 습득할 수 없습니다.]
[조건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모든 속성에 조화로운 선인의 육체를 지닌 처용조차 습득이 불가능했다.
“레전더리 등급이라 이런 건가? 정보도 제한되어 있고.”
[아마 그 미물만의 특별한 힘이기 때문일 것 같구나.]
여래의 말에 처용이 스킬석을 응시하며 생각에 들었다.
“음…… 같은 개체가 아니면 습득이 불가능하다는 겁니까?”
[그것도 한 가지 가설이 될 수 있겠구나.]
“당장 알아내기에는 힘들겠군요.”
옅은 한숨을 내쉰 처용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여기서 더 얻기를 바라는 건 과욕입니다. 계승자.]
“맞습니다.”
이미 믿기지 않는 행운으로 예상 이상의 이득을 얻었다.
행운의 여신(?)의 말대로 더 무언가를 바라는 건 과욕이었다.
“방법이야 찾으면 되겠지요.”
단순히 여왕개미의 알만 가지고 재생을 조사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재생의 근원을 품고 있는 스킬석이 있다면?
당장 방법이 없을 뿐 수단과 단서는 많으면 많을수록 수월할 것이다.
[그 돌멩이를 보물전으로 보내거라. 내가 한번 직접 보겠다.]
“아! 감사합니다. 미륵님.”
처용은 미륵의 말에 감탄을 내질렀고 감사를 표했다.
미륵은 통찰의 눈의 주인.
그가 직접 확인한다면 처용보다 정확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얻을 건 다 얻었으니 이제 나가야겠습니다.”
처용은 스킬석과 여왕개미의 사체를 챙겨 들고 발걸음을 돌렸다.
“무너뜨릴 준비를 하고 나가야겠네.”
처용은 돌아가는 길에 지반이 약해 보이는 곳 위주로 화염부를 붙이며 이동했다.
게이트를 나가는 순간 터트릴 생각이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와 다시 게이트 앞에 도착하자.
“화염부-폭.”
-콰광! -쿠르르!
처용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하자 붙여놨었던 화염부들이 폭발하며 굉음이 울렸다.
동시에 게이트로 걸어 나가며 지구로 귀환했다.
***
“지…… 진짜로 하루 안에 끝내실 줄은.”
태민은 협회로 돌아온 처용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던전도 아닌 중형 도시급의 레이드 던전이었다.
다수의 헌터들이 팀을 이루고 장시간을 공략해야 하는 던전이다.
처용에게 있어 아무리 낮은 등급이었다고 해도 하루 안은 무리라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 있게 선언한 대로 하루 안에 마무리해 버렸다.
“던전을 완전히 소탕할 수밖에 없었지만요.”
처용이 아쉬운 듯 태민을 향해 말하자.
“위험한 던전이지 않았습니까? 어쩔 수 없지요.”
태민이 괜찮다는 듯 말했다.
처용은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짜서 태민에게 말했었다.
개미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고 증식 속도가 너무 빨랐다.
거기에 보스가 두 마리였고 생각보다 등급이 높았었다 등.
납득이 될 정도로 이야기했다.
물론, 던전의 굴이 완전히 무너졌기에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던전이 정말 위험했었나 보네.’
태민은 처용의 말대로 던전의 위험성이나 난이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보스 몬스터의 사체를 챙겨오셨다고요?”
“네 생각보다 까다롭긴 했지만, 잡긴 했으니까요.”
처용은 중요한 증거인 몬스터의 사체를 보여줄 겸, 정산을 위해 태민과 협회 지하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협회 자체에서도 몬스터 정산을 해주네요?”
“앞으로도 자주 이용해 주세요.”
태민은 자부심을 드러내듯 자신감 있게 말했다.
“길드들처럼 바가지는 일절 없으니까요.”
“좋네요.”
처용에게 있어서도 나쁘지 않았다.
태민의 말대로 몬스터 정산은 대부분 높은 수수료를 떼어먹는 바가지로 유명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처용의 노출 가능성이었다.
앞으로도 몬스터의 사체와 재료를 거래해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길드를 통해 거래하면 처용이 자주 노출될 것이다.
‘지금 길드와 부딪혀 봐야 좋을 건 없으니까.’
어쩌면 마인보다도 길드에게 노출되는 것을 더 경계해야 했다.
처용이 반드시 죽여야 하는 성좌들의 세력도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올림포스의 소속된 하위 길드 중 하나.
아레스의 길드라던가…….
태민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생각을 이어갈 때.
“이곳입니다.”
엘리베이터가 협회 지하층에 도착했다.
[한국 헌터 협회 / 재고관리 센터]
지하에 위치한 재고관리 센터는 헌터들이 사용할 아티팩트나 무구 등을 관리하는 부서였다.
태민의 안내를 받아 쭉 이동하자 마치 거대한 공장의 창고처럼 보이는 장소가 나왔다.
“개인 작업실에 계시려나?”
태민이 중얼거리며 처용과 같이 가장 안쪽으로 이동했다.
안쪽에 있던 두터운 문에 라이센스 인증을 거치고 들어가자 넓은 작업실이 드러났다.
“어이 탐정! 자네가 웬일이야?”
무언가 작업 중이던 풍채 좋은 중년 남성이 태민을 반겼고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바쁜 사람이 무슨 일로 여기까지 내려왔대?”
“안녕하세요. 센터장님.”
태민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반겨주는 남자를 향해 웃으며 인사했다.
처용은 태민이 센터장이라고 부른 남자의 명찰을 확인했다.
[재고관리 센터장 / 장혁수]
이곳 재고관리 센터의 총 책임자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협회에 인재가 많네?’
통찰의 눈으로 그를 확인한 처용은 속으로 놀람을 감추고 있었다.
[이름 : 장혁수]
[레벨 : 113]
[칭호 : A급 헌터, 화톳불 수호자의 가호]
[클래스 : 룬 인첸터]
[특징 : 마나를 효율적으로 이끌어내는 고대 문자, 룬을 다루는 인첸터입니다.]
[스킬 : 룬 조각술, 분석감정, 강화 마법부여…….]
웬만한 노력과 재능으로는 넘을 수 없는 99레벨의 벽이었다.
하지만, 처용의 생각으로는 전투직 헌터는 죽을 각오를 하면 누구나 A급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었다.
목숨이 간당간당한 정말 위험한 던전에서 끊임없이 싸우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비전투 클래스 헌터들은 전투직 헌터들보다 더욱 벽을 넘기가 힘들었다.
이들은 레벨뿐 아니라 자신이 갈고닦은 기술로 시스템의 인정까지 받아야 했으니까.
‘생산직 헌터들 중 열 손가락 안에 들 것 같은데?’
처용이 볼 때 장혁수 센터장은 그냥 인재가 아닌 초고급 인재였다.
거대 길드에 들어가면 엄청난 대우와 막대한 자금을 지원을 받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네가 그 친구로구만?”
처용은 혁수의 말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백호한테 얘기 많이 들었네.”
“백호 헌터님이요?”
혁수에게서 예상하지 못한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
처용이 의문을 가질 때.
“두 분이 친구이시니까요.”
그 의문에 태민이 답해줬다.
“친구는 무슨 내가 그 녀석 뒷바라지를 얼마나 해줬는데!”
처용은 태민에게 대답한 혁수의 말을 듣고 무언가 깨달았다.
‘아!’
백호와 혁수는 친구, 거기에 방금 혁수의 말을 듣고 한 인물이 떠올랐다.
‘권백호는 커맨더의 파티원, 그럼 이 사람도…….’
비전투 클래스인 혁수의 높은 레벨도 이해가 되었다.
커맨더와 백호랑 같이 던전을 다녔을 테니까.
동시에 방금 막 회귀 전 커맨더가 중얼거렸던 말도 생각났다.
-혁수 아저씨가 있었으면 좋아했을 텐데…….
그가 다른 세계의 마법 무구를 보며 읊조린 말이었다.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과거와는 다른 자신의 발걸음이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한처용이라고 합니다.”
처용이 혁수를 향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장혁수라고 하네, 자네를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
혁수가 처용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고맙다는 말을 얼마나 전하고 싶었는데.”
“저한테요?”
백호의 친구라면 혁수도 협회장 라인이 분명했다.
처용은 협회 직원들을 구해준 것을 말하는 건가 했지만.
“내 딸을 구해줘서 정말 고맙네, 여기 탐정 녀석도 말이지.”
“누-.”
처용은 혁수의 말에 누구? 라고 말하려다가.
‘장혁수…… 장-.’
한 사람이 생각났다.
“현아 씨?”
“내가 현아 아버지네.”
처용은 인연의 실타래가 이렇게 이어진 것이 신기했다.
회귀 전, 악신들에 맞서 같이 싸웠던 커맨더.
과거로 돌아와 전철역에서 처음 만난 현아.
그리고 협회장과 협회의 사람들까지…….
“안 그래도 협회장 나리가 자네를 많이 도와주라고 하더라고.”
혁수가 처용을 향해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도와주겠네. 말만 하게나.”
“하하, 감사합니다.”
처용 역시 웃으며 대답했다.
인연은 둘째 치더라도 혁수는 뛰어난 기술자였다.
이정도 실력을 지닌 이와의 친분은 처용에게도 환영이었다.
“처용님이 가져오는 몬스터들의 사체 처분을 부탁드립니다. 다른 자잘한 것들도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 수수료도 그냥 안 받겠네.”
태민의 말에 혁수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괜찮은 건가요?”
수수료야 받지 않으면 처용이야 당연히 좋았다.
그저 혹시 문제가 될까 싶어 물어본 것이었다.
“여기 센터장인 내 맘이지.”
혁수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 자신 있게 답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처용은 혁수에게 감사를 전했다.
받아서 나쁠 것 없는 호의였으니까.
“그런데 처용님, 몬스터 사체를 가지고 오셨다고 들었습니다만.”
태민이 처용에게 이곳에 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여기서 꺼내도 되나요?”
“빈 곳 어디든 상관없네.”
작업실의 주인인 혁수가 대답했다.
처용은 중앙으로 다가갔고 보물전에 넣어두었던 불개미 왕의 사체를 꺼냈다.
-쿵!
해체하지 않았던 개미들과 여왕개미 사체도 꺼냈다.
“보급이 필요 없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이거였군요.”
처용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태민이 말했다.
처음에는 공간 마법이 인첸트된 아티팩트를 사용한 줄 알았다.
하지만, 처용에겐 주머니나 배낭처럼 보이는 아티팩트가 없었다.
그렇다면 아티팩트가 아닌 처용의 능력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신기하구만? 스킬인가?”
“뭐, 그렇죠.”
처용은 혁수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사체를 마저 다 꺼내었다.
불개미 사체에 다가온 혁수가 여기저기를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화염 속성이 강한데? 무구로 만들면 끝내주겠어.”
지금까지 보여주던 호쾌한 모습과는 다른 진지한 장인의 모습이었다.
“흠집이 난 부분도 없고 아주 깔끔하게 사냥했네, 혹시 자네 혼자서 잡았나?”
혁수는 오랜 시간 몬스터 사체를 다룬 장인이었다.
개미의 사체를 확인한 것만으로 어떻게 사냥되었는지 바로 파악이 되었다.
몬스터들은 모두 같은 흔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죠.”
“대단하구만.”
별일 아니라는 듯한 처용의 대답에 혁수가 감탄했다.
“이거 B급 던전인가?”
감정을 하던 혁수가 태민에게 물었다.
“C급 던전입니다. 중형 도시급이었구요.”
태민의 대답에 혁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아무리 봐도 보스 등급이 B급 같은데.”
“그런가요?”
태민이 살짝 놀란 듯이 말했다.
보통 던전의 보스는 던전의 등급과 같은 등급이었다.
간혹, 한 단계 높은 등급으로 보스가 나타날 때도 있었지만, 그건 정말 드문 경우였다.
“이 불개미가 그렇게 강한가요?”
태민이 불개미 왕의 사체를 바라보며 말하자.
“이놈 전투력이 제일 강한 건 맞지만, 진짜 보스는 이거야.”
혁수가 불개미 왕이 아닌 새하얀 개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지휘관 계열의 보스 맞지?”
혁수가 몬스터들을 사냥한 당사자인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처용은 혁수의 감정에 속으로 놀라움을 숨기며 대답했다.
“이걸 혼자서 클리어 했다고? A급 헌터가 아니면 버거울 정도인데?”
“그 정도인가요?”
진지한 표정을 짓는 혁수의 말에 태민이 궁금한 듯 물었다.
“만약 C급 헌터들만으로 레이드 보냈으면.”
혁수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장담하는데 80% 확률로 전멸이야.”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