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화
처용이 던전의 벽을 부수자 나타난 것은 거대한 알이었다.
그것도 방금 죽인 여왕개미의 마나가 흘러 들어간 걸 봐서.
여왕개미의 알임은 확실했다.
게다가 거대한 알 주변에는 여러 색으로 빛나는 광석들도 있었다.
[속성석 / 재료]
[지맥의 기운을 받으며 속성의 마나가 쌓인 광석.]
[여러 속성의 마나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다루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속성을 품은 개미로 진화한 이유가 이거였구나.”
알은 속성의 마나가 흐르는 이 장소에서 에너지를 받아먹으며 성장했을 것이다.
만약 이대로 시간이 더 흘렀다면…….
다른 속성의 힘을 품은 개미를 생산할 수 있는 여왕개미마저 태어났을 것이다.
미간을 찌푸린 처용은 알을 직접 확인하며 더 놀라운 것을 볼 수 있었다.
“재생(再生)인가?”
통찰의 눈으로 여왕개미를 봤을 때 있었던 특성 중 하나였다.
처용은 그저 다친 상처를 회복하는 능력으로 알았었지만.
설마, 죽으면 알로 되돌아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상처를 회복하는 재생이 아닌, 새로 태어나는 재생이었다.
“진귀한 걸 봤네?”
정말 얻은 것도 많고 얻을 것도 많은 던전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속성석을 다룰 기술자가 없잖아.”
속성석은 다양한 속성의 힘을 품은 만큼.
제대로 가공만 해낸다면 무궁무진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문제는 처용이 아는 극소수의 장인들을 제외하고는 다루기 힘들 정도로 가공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분들을 제외하고…… 불카누스라면 가능할지도?”
올림포스의 대장장이 성좌.
적어도 그에 가까운 실력을 갖춰야만 가공이 가능할 것이다.
“지금은 방법이 없네…….”
처용이 알고 있는 장인들은 회귀 전 인연들이라 지금은 만날 수 없었다.
“흠…….”
처용은 여왕개미 알 앞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속성석을 당장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 그대로 두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았다.
“속성석은 그렇다 쳐도 이건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겠지.”
여왕개미의 알은 굳이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던전은 헌터들에게 있어 성장할 수 있는 수단이었고 현대 사회에서는 새로운 자원이었다.
여왕개미의 알이 잘못되면 개미들은 멸종할 것이다.
그러면, 이 던전은 가치가 사라진 공터가 되어버린다.
“으흠…….”
마지막으로 여왕개미가 가진 재생이라는 특성.
“뭔가 놓친 것 같은데…….”
처용은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무언가 생각날 듯 말 듯, 떠오를 듯 말 듯 한 답답한 마음이 계속되었다.
[답답한 듯 보이는구나?]
“스승님.”
[한숨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나. 제자야.]
“하하, 죄송합니다.”
처용의 답답한 마음이 느껴졌는지 여래가 전음을 보냈다.
[저 알 때문에 그러느냐?]
“그게 말입니다…….”
처용은 여래에게 고민하던 것들을 이야기했다.
속성석의 처리, 여왕개미의 알, 마지막으로 재생이라는 특성.
대략 머릿속으로는 이게 좋겠지 하고 몇 가지 결론을 세우긴 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최선의 선택인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흠, 너는 어떻게 하고 싶으냐?]
“솔직히 속성석이랑 여왕개미 알은 그대로 두는 것이 맞지 싶습니다.”
이대로 둔다면 던전은 계속 순환될 것이다.
처용이 이번 공략에서 얻은 것처럼 품질 좋은 재료들을 계속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 던전들이 이와 비슷하게 관리되며 자원을 얻는 수단이 되었다.
위험성이 너무 큰 던전은 완전히 소탕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 개미굴은 C급 던전이었고 처용이 볼 때 괜찮은 자원줄이었다.
하지만, 처용이 염려하는 점은.
“다른 헌터들이 이것을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특히 마인들……!”
말을 잇던 처용이 잠시 멈칫했다.
“마수!”
처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아까부터 답답했던 무언가가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처용이 여왕개미의 알을 보며 자꾸 아른거렸던 위화감이 정체를 깨달았다.
“마수 중에 분명 비슷한 게 있었습니다!”
회귀 전, 상당히 까다로운 마수 하나를 죽인 적이 있었다.
그러고 얼마 뒤 죽인 놈과 완전히 같은 개체가 다시 나타났다.
분명 시체조각 하나 없이 가루로 만들어 버렸는데도 말이다.
그 마수가 개미 같은 곤충형 마수가 아니었기에 처용이 바로 떠올리지 못한 것이었다.
[저 여왕개미의 독특한 특성 말이더냐?]
여래는 처용의 말을 바로 알아챘다.
“가만 생각해보니 무언가 이상했습니다.”
이 개미굴 던전은 규모도 크고 질 좋은 재료들을 많이 얻을 수 있다.
다른 길드의 헌터들이 선호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어야 할 던전이다.
그런데 처용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던전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회귀 전에도 똑같이 나타났을 것인데도 말이다.
“누군가가 일부러 숨긴 겁니다.”
처용의 감은 그 범인이 마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놈들은 이 던전에서 여왕개미의 재생 특성을 연구했을 것이다.
그 결과, 재생과 같은 힘을 내는 마수 완성에 성공했다.
“웬만하면 광산으로 쓰려 했는데…….”
처용의 생각이 던전 보존에서 소탕으로 바뀌었다.
속성석과 여러 몬스터 자원들은 아까웠다.
하지만, 아무리 아깝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 던전을 그냥 두었다가 마인들에게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미래의 까다로운 마수가 다시 탄생할 테니까.
처용이 던전을 전부 붕괴시키려 마음먹을 때.
[잠깐, 기다려 보거라.]
여래의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네?”
[내 생각에는 저 개미의 특성을 가진 미물이 더 있을 것 같구나.]
여래의 말을 들은 처용이 다시 생각에 잠겼다.
“여왕의 권위도 우두머리의 눈과 비슷한 특성이었죠.”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능력을 지닌 특성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승님.”
처용은 여래에게 답은 구했다.
던전을 붕괴시키려는 자신을 말린 이유가 분명 있을 테니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이니라.]
“그렇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이길 수 있다.
처용 역시 공감하는 말이었다.
[마인들이 저 미물의 능력을 연구했다면 우리 역시 알아보면 되느니라.]
처용은 여래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마인들처럼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연구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여래와 성좌들은 현명하고 지식이 많은 이들이었지만.
몬스터의 특성을 해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처용은 정말 방법이 없는지 생각을 다시 해보았다.
“……대마도사를 다시 만난다면 알아낼 수도 있겠군요.”
대마도사 뿐 아니라 마수에 남다른 지식과 통찰력을 뽐내던 동료들도 있었다.
그들을 다시 만난다면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를 대비할 수단이자 준비이지 않겠느냐?]
“맞습니다.”
여래의 말에 대답한 처용은 우선 속성석 근처로 다가갔다.
처용의 오른손에 연갈색의 문자가 빛나는 부적 한 장이 만들어졌다.
“토류부-땅물결.”
-쿠구-
부적을 들고 손을 땅에 짚자 마치 지면이 물결처럼 일렁이며 들썩였다.
동시에 파묻혀 있던 속성석들이 지면 위로 완전히 드러났다.
“당장 가공이 불가능해도 남 줄 수는 없지.”
처용은 보이는 속성석을 전부 보물전에 집어넣었다.
속성석을 전부 챙긴 처용은 여왕개미의 알에 다가갔다.
-부르르르.
처용이 근처까지 다가가자 마치 위협을 느낀 듯 알이 진동했다.
“일단 이것도 보물전에 갖다 놔야하나?”
중얼거린 처용이 양손으로 알을 잡았다.
지름 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였지만, 처용은 가볍게 들어 올렸다.
아공간으로 바로 넣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크기도 너무 컸고 아공간으로 바로 넣었다가는 진열대들을 무너뜨릴 것이다.
처용은 보물전이 허전하든 아니든 깔끔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을 선호했다.
이 알은 직접 적당한 장소에 가져다 놓을 생각이었다.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전에는 애물단지에 불과한 알이었으니까.
“뭐 잘 안되면.”
처용이 알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가마솥에 넣고 우려먹든지 해야지.”
처용은 그저 실없이 던진 말이었지만.
-부르르르!
알은 처용의 말을 알아들은 듯 몸을 한 차례 더 떨어왔다.
보물전에 알을 가져다 놓은 처용은 남은 전리품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불개미 갑각은 더 얻을 수 없었으니 하나라도 버리고 갈 수 없었다.
“……운 좋네?”
불개미 왕의 사체를 챙기러 가까이 다가간 처용이 중얼거렸다.
처용이 불개미 왕 앞에 떨어져 있던 다각형의 붉은 보석을 집어 들었다.
[화염 강화 오라 / 스킬석]
[등급 : 레어]
[제한 : 속성 마나 보유자]
[사용자의 마나에 짙은 화염의 기운이 추가됩니다.]
[화염 속성에 대한 친화력이 생성됩니다.]
[화염 속성을 띈 모든 공격에 추가 효과가 붙습니다.]
불개미 왕의 특성 중 하나인 화염 강화 오라가 스킬석으로 떨어졌다.
처용은 스킬석을 들어 이리저리 돌려보면서도 잘 믿기지가 않았다.
스킬석은 던전을 천 번 돌아야 한번 볼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물었다.
“내가 0.001%에 걸릴 줄이야.”
스킬석은 어떤 스킬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새로운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수단인 만큼 가격이 무지하게 비싸다.
특히, 처용이 얻은 이 스킬석은 화염을 다루는 헌터라면 억만금을 바쳐서라도 얻고 싶어 할 물건이었다.
“현아 씨가 보면 눈이 돌아가겠네.”
화염술사 클래스인 현아가 이 스킬석의 스킬을 습득하면.
장담컨대 적어도 20%~30% 이상은 강해질 수 있었다.
“아마 마녀가 이걸 얻으면…….”
처용은 끔찍한 상상이 더 커지기 전에 머리를 저으며 털어버렸다.
“내가 써야 하나?”
선술을 익힌 처용은 이미 화염 속성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다.
[스킬석 화염 강화 오라의 습득이 가능합니다.]
시스템의 인증대로 스킬석 습득 조건도 만족했다.
이대로 자신에게 쓰면 전력이 늘어날 듯 보였지만…….
[흠, 네가 써 봐야 효과는 미미하겠구나. 제자야.]
“하아, 그럴 것 같습니다.”
처용은 여래의 말에 동의했다.
그 이유는 선인의 육체 때문이었다.
선술의 중심이자 처용의 근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의 육체.
그의 육체는 성장하고 단련할수록 점점 더 선인에 가까워진다.
바로 이것이 그가 다른 헌터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었다.
“선인의 육체가 이 스킬을 그리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처용은 과거 시험 삼아 ‘수풀 생성’이라는 스킬석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말 그대로 수풀을 만들어내는 쓸데없는(?) 스킬이었지만…….
[선인의 육체가 외부의 힘을 육체에 걸맞게 변형시킵니다.]
[자연부에 ‘목림(木林)부’가 생성되었습니다.]
이런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수풀 생성이라는 스킬이 담긴 스킬석은 사라져 버렸다.
대신, 나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목림부가 새로 생성되었었다.
추가로 파이어 샷이라는 작은 불덩이를 발사하는 스킬석도 사용해 봤었다.
이미 화염의 기운을 지니고 있다는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아무 변화가 없었다.
비싼 스킬석만 날려 먹은 샘이었다.
선인의 육체의 유일한 단점.
아니, 예측하기 힘든 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슨 뽑기도 아니고…….”
처용은 들고 있는 스킬석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쓸 때가 있겠죠.”
잘 가지고 있다면 분명 쓸 때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자금이 필요할 때.
고레벨 헌터에게 비싼 돈을 주고 팔면 된다.
처용은 불개미 왕의 사체를 해체하지 않고 통째로 챙겼다.
근처에 있던 불개미 사체 몇 구도 해체하지 않았다.
던전 조사 결과를 전할 겸, 협회에 보여줘야 했었다.
챙길 것들은 다 챙기고 이제 마지막 여왕개미의 사체로 향했다.
“어…… 어!”
여왕개미의 사체를 살피다가 아래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혹시 잘못 본 것은 아닌지 눈을 비빈 처용이 다시 똑바로 그것을 마주했다.
검게 빛나는 다각형의 보석.
스킬석이었다.
“이런…… 미친!”
0.001%의 확률이 두 번 터지자 정신이 멍해졌다.
[행운의 여신이 함께하는 것 같구나. 제자야.]
여래가 처용의 행운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보살님!”
처용은 행운의 여신이라는 말에 그저 반사적으로 보살을 떠올린 것이지만.
[왜 저를……?]
갑작스레 이름이 불린 ‘행운의 여신’은 그저 의문을 표할 뿐이었다.
처용이 기쁜 마음을 갈무리하자 이번엔 긴장감이 올라왔다.
“스승님…… 이거 혹시?”
스킬석은 몬스터의 특성 중 하나가 랜덤으로 드랍되는 것이다.
[아직 모른단다. 제자야.]
여왕개미가 가진 특성 중 하나에는.
‘재생’이 있었다.
“후…….”
숨을 깊이 내쉰 처용이 스킬석을 줍기 위해 주저앉았다.
떨리는 마음을 바로잡고 스킬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킬석이 처용의 손에 닿자 조용히 눈을 감았다.
물론, 재생이 나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설마 진짜 재생이라고 해도 처용이 사용할 수 있는지, 어떻게 연구할 것인지 등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재생이 나오길 바랐다.
“후-.”
처용은 한 번 더 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
동시에.
감았던 눈을 떴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