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화
-서걱!
처용이 휘두른 검에 불개미의 머리통이 나가떨어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대충 열 마리는 넘은 것 같은데.”
처용은 방금 죽인 불개미의 갑각을 보물전에 집어넣으면서 중얼거렸다.
엘리트 몬스터는 보기 드문 놈들이었지만.
이 던전은 숫자가 많은 개미 몬스터의 서식지였다.
거기에 던전의 크기가 중형 도시급으로.
원래는 10~30명 정도의 헌터들이 탄탄한 준비를 갖추고 와야 하는 레이드 던전이다.
숫자가 많은 개미 몬스터에 거대한 던전의 규모까지 갖추었으니.
보기 드물다는 엘리트 몬스터의 수도 많은 것이었다.
“아주 좋구나.”
던전을 독식하는 처용에게 있어서는 이 상황이.
정말 운이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 시세가 어느 정도려나?”
이 시기에 몬스터 사체 시가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잘 몰랐지만.
좋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엘리트 몬스터는 깔끔하게 죽이고 있었다.
처용이 직접 아티팩트를 제작하기에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키이이!
처용이 여유를 부리는 와중에도 병정 개미들이 몰려왔지만.
-키이익!
엘리트가 아닌 일반 개미들은 처용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불타 죽어갔다.
처용은 화염부 한 장을 몸에 붙이고 지속적으로 불길을 뿜고 있었다.
병정개미들은 그 불길조차 견디지 못하고 죽어갔다.
그나마 버티면서 처용을 공격하려고 들어온 불개미들은.
-서걱!
모두 처용의 보물전을 장식하는 전리품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차곡차곡 전리품들을 쌓아가며 일이 수월하게 풀리나 싶었지만.
“뭐지?”
자신들의 거처에 침입한 처용을 죽일 듯이 달려들던 개미들이.
갑자기 모두 종적을 감추었다.
이곳에서 최대한 이득을 뽑아먹어야 하는 처용에게 있어.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제 겨우 절반 정도 왔나?”
처용은 곰곰이 생각하면서도 계속 걸으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기척에 감지되는 것도 없었고 정말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이게 끝일 리가 없는데?”
거의 천 마리에 육박하는 개미들을 학살해 왔지만.
이게 개미굴을 구성하는 몬스터들의 끝일 리가 없었다.
일단 던전의 끝이라 할 수 있는 보스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그나마 마나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쭉 걷던 처용은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거 보스가 생각보다.”
던전의 거의 끝자락으로 보이는 장소에 다량의 기척들이 감지되었다.
“재미있는 녀석이네?”
처용이 신기하다는 듯 웃음을 내보였다.
던전의 보스가 자리하고 있는 보스룸.
나타나지 않은 개미들은 전부 그곳에 있었다.
아마 예상하기로는
이 던전의 보스가 침입자인 처용을 만만치 않은 포식자라 판단하고.
남은 개미들을 전부 불러 모아 전면전을 준비하는 듯 보였다.
“환영인사를 준비했으면 가야지.”
처용은 기대감을 품고 던전의 끝자락을 향해 나아갔다.
그곳에 수많은 개미들이 전부 모여 있는 만큼.
아주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아무런 방해 없이 텅 비어버린 동굴을 쭉 나아가던 처용의 앞에.
누가 봐도 이 앞에 보스가 있습니다. 라고 광고하는 듯한 철문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철문 안쪽에 상당한 마나와 기척이 감지되는 것으로 봐서.
여기 보스가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보스방처럼 생긴 건 좋은데……난데없이 웬 철문?”
본래 던전은 다른 차원의 세계 일부가 차원의 벽을 찢고 나타나는 것이다.
처용이 던전 내부에서 종종 발견한 벽의 횃대와 나무판자 조각 등을 봤을 때.
이 던전은 원래 광산 등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굴이었고.
그것을 개미들이 점령해 보금자리로 만든 것 같았다.
물론, 당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들은 아니었다.
-끼이이-
처용은 개미들이 어떤 파티를 준비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웬만한 대형 공장 정도의 크기를 가진 드넓은 공동이 드러났다.
그리고, 열기와 빛을 발산하는 불개미들에 의해 시야가 밝혀지자.
천 마리는 훌쩍 넘는 개미들이 대열을 갖추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개미군단의 중심에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보스 몬스터가 있었지만.
“두 마리라고?”
2미터의 크기를 가진 개미들이 귀엽게 보일 만큼.
6미터는 훌쩍 넘는 크기를 가진 거대 개미 두 마리가 중심에 서 있었다.
“보통 개미굴의 보스는 여왕개미 하나일 텐데?”
한 던전에 보스가 여럿 나타나는 경우는 아주 드물게 있긴 했었다.
국가급 규모의 던전이 그러했으니까.
[군단 불개미 왕]
[등급 : C+급 던전보스]
[특징 : 여왕개미에게 세례를 받고 왕으로 진화한 엘리트 개체.]
[새로 태어난 차기 세대의 개미들은 왕과 여왕의 힘을 이어받으며 성장한다.]
[스킬 : 화염 숨결, 타오르는 갑각, 화염 강화 오라]
마치 용암으로 만들어진 개미처럼 보일 정도로 새빨간 색채를 자랑하는 거대한 개미.
통찰의 눈으로 봤을 때.
지금껏 죽여 온 엘리트 개체가 몇 단계 더 진화한 듯 보였다.
보통 마수도 아닌 개체가 일반 C급 던전에서 이런 진화성을 보인 경우는 처용도 처음 봤지만.
“저놈 짓이네.”
생략 제안 왕개미 바로 옆에 자리해 있는 ‘진짜’ 보스를 마주하자 이해가 되었다.
[군단개미 여왕]
[등급 : B급 던전보스]
[특징 : 한 세대의 개미들 중 선택받은 개체만이 여왕개미가 된다.]
[태어난 자식 중 가장 강한 개미를 축복하여 왕으로 만들어낸다.]
[여왕과 왕의 힘을 차세대 개미들에게 물려주며 군단을 점차 성장시킨다.]
[스킬 : 페로몬 방출, 여왕의 권위, 재생…….]
시커먼 병정개미와 타오르듯 붉은색을 자랑하는 불개미와는 다르게.
여왕개미는 먼지 한 점 없는 새하얀 색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건.
“짐승도 아닌 곤충이 이정도 통제력이 있을 줄이야.”
원래 보스룸이 열리자마자 개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개미들은 무언가 명령을 받는 듯 제자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처용은 여왕개미가 발산하는 마나가 개미들을 통제하는 것이 보였다.
“여왕의 권위…… 우두머리의 눈하고 비슷하네.”
처용은 비슷하다 표현했지만, 보다 상위의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개미들 중 하나를 왕으로 만들어 보스 몬스터로 만들 수 있었으니까.
대신 저 여왕개미 보스는 지휘관 계열답게 자체 전투력은 약했다.
“전투력만 가지고 보스를 판단하는 건 멍청한 짓이지.”
단순히 전투력이 강한 보스보다 지성을 가지고 전략을 구상하는 보스가 더 무서운 법이었다.
“검증된 헌터들이 아니면.”
처용은 일반 헌터들을 기준으로 던전의 난이도를 냉정하게 판단했다.
“레이드 못하게 경고를 단단히 해놔야겠네.”
이정도 난이도면 중형이 아닌 대형 도시 급에 가까운 난이도였다.
그나마 C급 던전이었고 공략자가 처용이었기에 수월했던 것이지.
갓 C급에 도달한 헌터들로 레이드를 구성했다가는 전멸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게이트가 터져버리고 개미들이 뛰쳐나오는 상황으로 이어진다면.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일단 숫자부터 줄여야겠네.”
처용이 양손을 들어 올렸고.
“풍운부.”
왼손에는 녹색 문자가 새겨진, 바람 속성의 힘을 가진 풍운부를.
“화염부.”
오른손에는 붉은 문자가 빛나는 화염 속성의 화염부를 각 2장씩 만들어내었다.
처용은 만들어진 네 장의 부적을 하나로 합치면서 손을 앞으로 뻗었다.
“겁화(劫火)의 해일.”
-푸화화화!
처용의 손에서부터 타오른 화염이 해일처럼 넓게 번져 나갔다.
화염에 바람을 더하여 위력을 증폭시키는 기술.
고위 마법사들이 자주 응용하는 방법이었다.
병정개미들은 위력을 낮춘 화염부 한 장도 버티지 못했었다.
때문에, 이정도 위력이라면 엘리트를 제외한 놈들의 수를 줄여 줄 것이라 판단했지만.
-키이이!
다가오는 화염을 본 여왕개미가 마치 명령하듯 괴성을 질렀다.
불개미 왕과 불개미들이 여왕의 명령에 앞으로 나섰다.
마치 벽을 세우듯 일렬로 나열하며 다가오는 화염을 가로막았다.
-키아아!
겁화의 해일이 불개미 벽에 닿자 놈들이 고통스러운 듯 괴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데미지를 나눠서 받아내었기에 죽은 개체는 없었다.
“허…….”
처용의 입에서 감탄이 나왔다.
아무리 여왕개미의 지휘가 있었다고 해도.
짐승형 몬스터도 아닌 개미들이었다.
그런 개미들이 잘 훈련된 군인들처럼 절도 있는 모습을 보이자 나름 신선했다.
동시에 처용을 포위하듯 개미들이 사방을 에워쌌다.
“난이도를…… 한 단계 더 올려야겠는데?”
처용은 여유롭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동시에 협회에 보고할 던전의 난이도를 한 단계 더 상승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날 포위하면 안 된다는 건 학습하지 못했나 보네?”
처용은 여왕개미를 향해 싸늘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여왕개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강한 포식자인 처용에 대항하기 위해 나름 노력한 것이었다.
하지만, 처용이라는 포식자는 노력만 해서는 막을 수 있는 재앙이 아니었다.
처용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오른쪽 발을 들어 올렸고.
땅을 힘껏! 밟았다.
-쿠쿠쿵!
처용이 사용한 스킬은 지진의 일격.
다수의 대열을 무너뜨리는데 특화된 군중 제어 스킬이었다.
지면이 크게 흔들림과 동시에 진형이 무너지며 개미들이 나자빠졌다.
개미들의 포위진이 무너지자마자 처용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그 자리를 벗어났다.
포위를 벗어난 처용은 검을 뽑고 여왕개미를 목표로 나아갔다.
“보스 모가지만 따면 끝이지.”
개미들이 이런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이유는 여왕개미가 존재하기 때문이었으니까.
-키이!
검을 들고 눈을 번뜩이는 처용이 접근하자.
마치 겁에 질린 듯 여왕이 울부짖었다.
동시에 근처에 있던 개미들이 몸을 날려 처용의 앞을 가로막았다.
좀 전처럼 전략적으로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닌.
여왕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몸을 던져대며 희생하고 있었다.
“나 참!”
처용은 길을 막으며 날아오는 개미들을 전부 베어 버리며 나아갔다.
하지만, 처용의 발걸음은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귀찮게 하네.”
여왕개미는 몸을 던져 희생한 병사들 덕분에 무사히 도망갔다.
동시에 정신을 수습한 불개미들과 왕이 처용의 앞을 막아섰다.
-푸화화!
개미들이 동시에 처용을 향해 화염을 뿜어댔다.
처용이 강렬하게 뿜어대는 화염에 직격당하며 타올랐지만.
“미지근하네.”
B급 상위인 금강역사의 화염조차 받아내는 처용에겐 효과가 없었다.
“빙결부-얼어붙은 대지!”
화염을 뚫고 나온 처용이 불개미들의 앞에 빙결부 두 장을 던졌다.
-쩌저적!
지면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불개미들이 속박되었다.
동시에 처용이 불개미들 앞에 발도 자세를 취하며 내려앉았다.
-우웅!
검을 뽑아 크게 휘두르자 압축되어있던 검기가 반원을 그리며 나아갔고.
-후두둑!
일렬로 얼어붙어 있던 불개미들의 머리가 전부 땅에 떨어졌다.
-캬아악!
검기의 사정거리 안에 있던 불개미 왕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앞다리와 머리 일부가 잘려나간 불개미 왕이 고통에 몸부림쳤으나.
빙결부로 인해 다리가 얼어붙어 있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서걱! -쿵!
이런 기회를 놓칠 처용이 아니었고 결국. 불개미 왕의 머리 역시 땅에 떨어졌다.
“이제 벽을 세울 녀석은 없는 것 같은데?”
처용이 여왕개미를 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여왕개미는 마치 저승사자를 보듯 몸을 떨며 뒷걸음쳤다.
여왕을 지키기 위해 남은 병정개미들이 달려들었지만.
불개미들까지 모두 당한 마당에 처용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결국, 남은 병정개미들은 전멸하고 여왕 하나만이 남았다.
-키이이.
여왕개미는 처용이 다가오는데도 더는 도망가지 않았다.
도저히 막는 것이 불가능한 재앙에 결국 포기해 버린 것이다.
처용 역시 몬스터를 많이 상대해 봤기에 그런 여왕개미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처용은 삶을 포기한 여왕개미를 깔끔하게 죽여 주었다.
그렇게, 여왕개미까지 죽으며 토벌은 모두 끝났듯 보였지만.
“음?”
여왕개미 안에 있던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고.
그것이 어디론가 향하며 날아갔다.
처용이 아닌 일반적인 헌터였다면 알아내기 힘들 정도로 은밀했다.
“뭐지?”
여왕개미의 사체를 통찰의 눈으로 확인해 봐도 죽은 것은 확실했다.
처용은 희미하게 남아있는 마나의 흔적을 따라 이동했다.
확인해 둬서 나쁠 것은 없었으니까.
흔적이 공동의 한쪽 벽으로 이어지자.
-콰쾅!
처용이 주먹을 내리쳐 벽을 부쉈다.
“이야! 이거…….”
숨겨져 있던 내부가 눈에 들어오자.
“그냥 노다지가 아니라 노다지 광산이었네?”
처용이 웃음을 보이며 감탄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