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화
-우우웅.
잠시 어머니를 만나고 오겠다던 처용이 게이트를 열고 나오자.
“아이고 깜짝아!”
어머니가 놀라는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고.
그녀가 들고 있던 다 쓴 향초와 그릇 등이 떨어지려는 것을.
“헛차!”
처용이 재빠르게 잡아채 전부 받아냈다.
“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거니?”
어머니가 놀란 듯 물어왔다.
지금 처용이 나온 장소는 대웅전, 태룡사의 본당 안이었다.
어머니는 오전 일정이 다 끝나고 혼자 뒷정리를 하던 중이었다.
‘조금만 빨리 나왔어도 귀찮아졌겠네.’
처용의 각성 사실을 아는 사람은 가족을 포함한 소수였다.
한참 본당의 예배로 사람들이 가득할 때.
처용의 게이트를 열고 튀어나온다면 분명 난리가 날 것이다.
“문 열리는 소리도 안 들렸는데…….”
“음…… 저분들한테 불려갔다 왔다고 해야 할까요?”
처용은 뒤에 있는 세 개의 신상.
자신의 성좌들을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분들? 성좌는 한 명이 아니었니?”
“아…….”
길드에서 헌터로 활동 중인 처용의 누나가 있었기에.
어머니는 일반인임에도 헌터에 대한 대략적인 지식은 있었다.
‘어머니 앞이라 마음이 풀렸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처용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그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 됩니다.”
검지를 세워 입으로 갖다 대며 말했다.
“엄마가 바보도 아니고 말하고 다닐 리가 없잖니.”
어머니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처용에게 말했다.
‘어차피, 이곳이 ‘성지’가 되면 문제는 없다.’
성좌들에겐 자신들이 거주하는 구역인 신계의 성역도 있었지만.
지구의 땅 일부를 병사들과 함께 여러 의식을 거쳐 신성한 땅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성좌들이 자신의 영역으로 선포한 땅, 이것이 ‘성지’였다.
예를 들면 바티칸의 가장 거대한 성당이자 교단의 본부.
그 주변은 빛의 신이 선포한 성지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안 좋은 것 아니니?”
“저도 막 그 생각을 했어요.”
처용은 어머니의 말에 공감했다.
지금 상황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다행히 태룡전의 열쇠를 이용하면 성역으로 향하는 입구를 옮길 수 있었다.
“음…… 산신각을 사용해도 될까요. 어머니?”
적당한 장소를 생각하던 처용이 어머니에게 물었다.
산신각은 사찰의 가장 높은 곳이나 뒤편에 자리한 곳으로.
산의 토속신들을 모시는 외진 장소였다.
“엄마가 가끔 청소할 때 외에는 아무도 안 가는 곳이니 괜찮겠구나.”
허락을 받은 처용은 어머니가 하던 청소 작업을 도와주고.
곧장 산신각으로 향했다.
“아무도 안 올만 하네.”
산길의 끝, 즉 거의 정상에 다다른 다음.
계단을 타고 절벽 아래로 내려가는 등.
산신각에 가는 길 자체가 등산에 가까웠다.
물론, 헌터인 처용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계단의 끝에 다다르자 산신각의 입구인 작은 전각이 드러났다.
“여기도 정말 오랜만에 와보네.”
처용은 회귀 전에도 이 장소에 와본 것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자.
단출하게 꾸며진 법당의 내부와 함께 전방에 동굴의 입구가 보였다.
태룡사의 산신각은 원래 자리하고 있던 작은 동굴을 토대로 만든 것이었다.
“왜 굳이 힘들게 여기다가 만든 거야?”
처용의 어머니는 여기까지 와서 청소를 하고 향을 바꾸는 등 고생을 하고 있었기에.
이 장소를 산신각으로 만든 자신의 조상에게 불만을 표했다.
처용이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자.
호랑이와 용 등 산신들을 조각해 놓은 작은 석상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가장 안쪽 벽에는 태룡사가 세워진 산 즉.
태룡산의 대산신이라는 황룡이 조각되어 있었다.
꺼져가는 작은 양초의 불씨가 희미하게 내부를 밝히고 있었고.
남아있는 희미한 향의 연기로 언 뜻 장엄한 분위기를 풍겼다.
“나쁘지는 않네.”
처용은 조용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가진 산신각이 나름 마음에 들었다.
조각상들이 자리하지 않은 정중앙으로 향한 처용은 태룡전의 열쇠를 꺼냈다.
열쇠가 황금빛을 내뿜으며 어둡게 가라앉아 있던 산신각의 내부를 환하게 밝혔다.
열쇠의 능력으로 태룡전으로 향하는 입구를 바꾼 것이다.
입구 지정이 끝나고 황금빛을 내뿜던 열쇠가 다시 희미해질 때.
황룡 조각상의 눈 부분이 한 번 더 금빛으로 일렁인 듯 보였다.
“……?”
처용이 의문을 갖고 조각상을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았지만.
느껴지는 다른 기운도 없었고 그저 평범한 조각상일 뿐이었다.
처용은 그저 열쇠가 내뿜는 빛 때문인가 보다 하고 넘겨 버렸다.
***
“오랜만입니다. 헌터님.”
협회에서 라이센스를 받고 얼마 뒤.
다시 협회에 방문하자 태민이 처용을 반겨줬다.
“고작 일주일 지났는데요. 그보다도 던전은요?”
처용은 협회에 오기 전.
적당한 던전을 하나 물색해 달라 요청했었다.
“그…… 괜찮은 겁니까?”
태민은 이전에 처용이 부상을 입었다는 말 때문에 그를 걱정했지만.
“던전에서 몸을 푸는 것도 치료의 일환입니다.”
몬스터를 사냥해 레벨을 되찾아야 하는 처용의 입장에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에픽 클래스를 넘어서 이 헌터가 강한 이유겠지.’
태민은 처용의 말에 그가 그저 끊임없이 정진하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 전에 새로 게이트가 생성돼서 사전 조사가 필요한 던전이 하나 있습니다.”
마침 처용이 전화를 줬을 때.
사전 조사가 필요한 새로운 게이트가 발견되었고.
아직 다른 길드나 협회 직원에게 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등급은요?”
“C급입니다.”
처용은 태민의 말에 살짝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지금 수준에서는 B급 게이트도 혼자 처리하기에 문제가 없었고.
등급이 높을수록 레벨의 회복이 빨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혼자이니만큼 나쁜 편은 아니겠구나.’
처용은 아쉬워도 욕심보다는 안전성을 생각했다.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것이 던전이었고.
지금 상태에서 무리해 봐야 좋을 것은 없었으니까.
또 혼자이기에 시스템의 업적을 독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마침 처용님에게 부탁할 수 있어서 다행이군요.”
“뭔가 문제가 있는 던전인가요?”
처용은 태민의 안심한 듯 보이는 표정을 보고 질문했다.
“그게, 마나를 판독한 결과 규모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던전을 측정했을 때 나오는 등급은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질’을 측정한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라 ‘마나의 양’도 따로 측정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측정되는 마나의 질은 던전 몬스터의 등급을 나타냈고.
마나의 양은 던전이 어느 정도 크기와 규모를 가졌는지를 뜻했다.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요?”
“최소 ‘중형 도시급’입니다.”
던전의 규모는 크게 마을, 도시, 국가급으로 나누어지고.
거기에 소, 중, 대를 붙여 더 세세하게 분류했다.
물론, 같은 분류의 던전이라도 넓이만 넓고 몬스터는 별로 없거나.
좁은 동굴에 바퀴벌레처럼 몬스터들이 바글바글한 경우 등.
변수들이 좀 있었지만, 대략적으로는 이렇게 분류되었다.
“레이드로 준비해야 되는군요.”
국가급 규모를 가진 던전은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니.
대부분 일반적인 규모 분류에서는 없는 취급이다.
그래서, 중형 도시급이면 일반적인 던전들 중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이 경우에는 헌터들도 어느 정도 인원을 모으고.
보급품들을 준비한 다음 던전에 진입해야 했다.
던전을 전부 탐사하기까지 어느 정도 일정이 걸릴지 몰랐으니까.
“네, 규모가 생각보다 커서 조사단 배정에 애를 먹고 있었거든요.”
“뭐, 저 혼자라면 문제는 없겠네요.”
처용은 다른 헌터들이 갖는 불편함이었던.
보급품의 필요성이 미미한 헌터였으니까.
“처용님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태민은 이 일을 받아준 처용에게 감사했다.
에픽 클래스인 그라면 아무리 규모가 크다고 해도.
C급 던전에서 위험할 리가 없었으니까.
“뭐 빠르면, 하루 안에 정리할 수 있겠네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불가능…….”
말을 하던 태민이 문득 든 생각에 입을 멈추었다.
지금껏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 처용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었으니까.
처용 역시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등급이 낮아도 몬스터가 많다면 그만큼 얻는 것은 많다는 것이니까.
‘질이 낮다고 해도 양이 많으면 좋지.’
나름 만족한 처용이 태민에게 말했다.
“더 밍기적거리기보다는 그냥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차량을 요청할 테니 타고 가세요.”
태민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자.
대기 중이던 차량 하나가 빠르게 움직였고.
처용은 오래 지나지 않아 새로 생성된 게이트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게이트 앞을 지키는 협회 직원에게 라이센스를 보여주자 길을 열어 주었고.
처용은 망설임 없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흠.”
처용이 던전에 입장하고 발견한 것은.
마치 동굴과도 같은 바위로 이루어진 통로였다.
처용의 기억 속에는 없는 던전이었지만.
수십 년 동안 던전에 드나들고 몬스터와 싸운 만큼.
던전의 환경을 본 것만으로도 대략적인 파악이 가능했다.
“벌레나 땅개 몬스터가 나오겠네.”
처용이 들어온 던전처럼 지하의 동굴과 같은 환경에서는.
주로 땅을 파내는 습성이 있는 곤충형 몬스터나.
지하나 어두운 데 사는 쥐 등 땅 짐승 몬스터가 서식한다.
“뭐, 가다 보면 나오겠지.”
처용은 마나의 기운이 많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끔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처용의 발걸음 소리만이 울릴 때.
처용의 감각에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졌다.
-사각사각
처용이 위치한 방향으로 무언가가 점점 다가오자 이질적인 소리들이 울려왔다.
“일부러 소리를 내면서 오긴 했지만.”
처용은 눈앞에 나타난 것들을 눈으로 확인하자 실없이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많이 나와서 환영해주네?”
처용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2미터 크기의 거대한 개미들이었다.
[군단개미 병정]
[등급 : C급]
[특징 : 여왕의 명령에 따라 군단개미 소굴을 방어하는 병사.]
[스킬 : 산성침 뱉기, 물어뜯기]
방금 막 통찰의 눈으로 확인한 병정개미가 열 마리.
그리고 병정개미보다 약한 일꾼개미가 열 마리 정도였다.
“레이드급 던전은 확실하네.”
던전 초입부터 상당수의 몬스터가 나왔다.
그리고 던전 측정 결과를 보고 예상해 볼 때.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 많은 개미들이 나타날 것이다.
-키이이!
개미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처용에게 달려들었고.
날카롭게 빛나는 턱을 치켜들어 처용을 물어뜯었지만.
-탕!
날카로운 턱으로 처용의 팔과 다리를 씹어도.
처용의 피부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부디, 너희들 수가 아주 많기를 바란다.”
개미로 완전히 뒤덮인 처용이 무심한 듯 말했다.
“화염부-방화”
처용의 앞에 붉은 문자가 새겨진 부적이 한 장 생성되었고.
부적은 이내 처용을 중심으로 사방에 뜨거운 화염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키에엑!
곤충형 몬스터를 상대로 가장 효과적인 것이 바로 화염이었다.
처용을 뒤덮었던 개미들은 온몸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며 떨어져 나갔고.
그 뒤에 대기하고 있던 개미들 역시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몸부림쳤다.
“화염부 한 장 사용했건만…….”
처용은 굳이 신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고.
위력을 줄인 화염부 한 장만을 사용했다.
거기에 범위를 늘리는 대신 위력을 더 낮추었지만.
화염에 약한 개미들에게는 그마저도 치명적이었다.
“건질 것도 별로 없겠네…….”
구워진 개미들의 사체를 확인한 처용은 작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개미 몬스터이니 만큼.
다른 종류의 몬스터보다 수가 많은 대신 하나하나가 약했다.
처용의 화염부 한 장조차 버티지 못했으니.
이놈들의 갑각을 뜯어가 봐야 쓸 곳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대로 쭉 전진하면 무난하게 끝나겠네.”
처용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마녀와 마인들 그리고 마수.
처용은 최근 이런 적들을 상대했기 때문인지.
나름 낮은 등급의 던전에 들어와서도 전투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약한 전투력을 보이는 몬스터들을 마주하자 맥이 빠졌다.
일부러 기척을 드러내며 개미들을 유도하고.
많은 수가 모여들면 화염부로 한 번에 태우며 계속 전진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좋군.”
좋은 소식은 놈들의 수가 많은 만큼 많이 죽일 수 있었고.
그만큼 레벨을 올리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무난하게 개미들을 학살하며 전진하고 있을 때.
“흠?”
처용의 앞에 다른 개미들과는 확연히 다른 특수한 개미들이 나타났다.
[군단 불개미 병정]
[등급 : C급 엘리트]
[특징 : 화염의 정수를 품고 태어난 병정개미.]
[몸에 화염을 상시 두르고 있어 대비하지 않고 접근하면 위험하다.]
[스킬 : 화염 숨결, 불타는 갑각]
온몸이 새빨간 색이었고 다른 병정개미보다 더 큰 개체였다.
거기에 마치 모닥불이 타오르듯 일렁이는 아지랑이가 개미 주변으로 꿈틀거렸다.
“엘리트 몬스터가 나올 줄이야.”
엘리트 몬스터는 일반 몬스터와는 다른 특수한 개체들을 의미했다,
몬스터가 극한의 환경에 적응하는 등 무언가의 자극으로 진화한 개체들이었다.
마기를 주입해 강제적으로 진화한 마수와는 다른.
정석적으로 진화한 몬스터라고 할 수 있었다.
마수만큼은 아니어도 동급의 몬스터들 보다는 강한 개체들이었다.
“성능 좀 볼까?”
처용이 시험 삼아 화염부 한 장을 불개미에게 던졌다.
-키이익!
녀석은 처용의 화염을 받자 고통의 비명을 내질렀지만.
죽지 않고 버텨내었다.
처용이 화염부의 위력을 낮추었다고 해도.
고작 C급 몬스터가 이를 버터 낸 것이었다.
“보물전을 채울 만한 게 생겼네.”
처용은 재빠르게 검을 꺼내 들었다.
녀석의 갑각이 손상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니까.
빠르게 접근해 놈의 머리를 깔끔하게 날리고.
능숙하게 갑각을 뜯어내었다.
[이글거리는 불개미 갑각 / 재료]
[화염의 기운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아티팩트 제작 시 화염의 기운을 효율적으로 이끌어 냅니다.]
처용은 아직도 열기가 느껴지는 갑각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나쁘지 않네.”
처용은 기분이 좋은 듯 웃어 보였다.
엘리트 몬스터, 그것도 속성의 힘을 품은 녀석이었다.
아마 아티팩트로 만들면 나름 쓸 만한 무구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보물전을 장식하는 것도 좋지만.
“팔면 꽤 비싸게 받겠는데?”
처용은 앞으로 할 일이 많은 만큼 넉넉한 자금 역시 필요했다.
“이거 생각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엘리트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던전은.
보스 몬스터가 다른 동급의 던전 보스보다 강하다는 뜻이었다.
“기대되네?”
보스 몬스터가 강하면.
그만큼 녀석에게서 얻어낼 것들이 많을 테니까.
생각지 못한 수확을 얻은 처용이 기분 좋게 웃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