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20화 (20/726)

#020화

처용은 성좌들이 거주하는 중앙 전각의 대전으로 다시 돌아왔다.

세 명의 성좌가 처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그 당사자인 처용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다.

[신격을 지닌 네놈의 정신으로도 저항이 불가능했다?]

“저항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습니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튜토리얼에서 처용이 뿜어냈었던 신력과는 다른 붉은 기운.

처용과 연결된 성좌들 역시 이 불길한 기운을 느꼈었다.

성좌들은 계승자에게 생긴 문제를 쉬이 넘길 수 없었고.

처용이 보여줬었던, 미래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그 기운이 무엇인지 조사했다.

[네가 죽이려다 실패한 그 병사를 지켜줬었던 악신 말이다.]

“바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처용은 여래의 말에 마녀에게 권능을 걸어 도망치게 했던 바알을 떠올렸다.

[그래, 그것의 기운과 비슷하면서도 좀 다르더구나.]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니요?”

[‘악’의 기운은 맞지만, 악신의 기운이라기보다는…… 순수하다고 할 수 있겠구나.]

[설명하기 어렵구만, 근원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여래의 말에 미륵이 살짝 인상을 구기며 설명을 덧붙였다.

정확하게 무엇인지 파악은 못했지만, 중요한 사실은.

“악신의 기운이라니…….”

성좌들에 의해 그것이 악신의 기운과 비슷하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었다.

이건 처용에게 있어서도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수십 년을 그놈들과 싸웠습니다만.”

하지만, 이상한 점은.

그것이 마기라면, 처용 본인이 모를 리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육체의 내면을 관조하며 살펴보았지만.

마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단언컨대 제가 잠식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에 걸친 전쟁 동안.

악신들의 마기와 권능에 정면으로 맞서며 싸운 것이 처용이었다.

악신들은 자신들의 저주와 권능으로 처용을 타락시키려는 시도도 했었지만.

수호신 한처용은 굳건하게 버텨내었고 절대로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절 유혹하긴 하더군요. 제가 그놈들보다 강하지 않았다면 위험했겠지만…….”

말을 하던 처용이 문득 든 생각에 입을 멈추었다.

회귀 전 항마의 화신을 완성하고 498이라는 드높은 레벨을 달성했던 처용은.

웬만한 악신들은 가볍게 상대할 정도로 신격과 전투력이 강했었다.

하지만, 이런 처용을 유일하게 압도할 수 있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크타니드…….”

항마의 화신으로도 그의 앞에서 겨우 버틸 수 있게 되었을 뿐.

악의 종주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런 크타니드가 마지막에 보여준 모습이 떠올랐다.

‘잘 막은 것처럼 보였는데 왜?’

처용이 마지막 발악으로 가한 자폭을 상처 하나 없이 막아냈지만.

그가 돌연 가슴을 부여잡으며 주저앉았었다.

[짐작 가는 것이 있구나? 제자야.]

처용의 표정을 본 여래가 묻자.

“……그게 말입니다. 스승님.”

잠시 고민하던 처용이 자신의 최후를 성좌들에게 이야기했다.

처용의 말을 들은 성좌들은 모두 생각에 잠기며 침묵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래가 입을 열었다.

[악의 종주, 크타니드라고 했느냐?]

“네, 스승님.”

[그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아니.]

말을 하던 여래가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네 경험을 전달하는 능력으로 그자와 싸웠을 때를 보여줄 수 있겠느냐?]

“크타니드와 맞붙었던 부분만이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처용에게 있어서도 가장 강렬한 기억이자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으니까.

처용은 즉각 기억의 실타래를 사용했고.

크타니드와의 전투를 회상하며 기억을 담았다.

처용이 기억을 회상하며 마법을 담는 동안.

[무언가 짐작하는 것이라도 있나요. 여래님?]

보살이 여래의 얼굴을 보며 전음으로 질문했다.

항상 평온한 표정을 보여주던 여래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져 있었다.

여래가 대신에 오른 이후 그의 표정이 변화하는 모습은.

항상 같이 있던 성좌들조차 보기 드물었으니까.

[어쩌면…… 아니, 최악만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대가 최악이라 생각할 정도면, 보통 문제가 아닐 텐데요?]

여래의 말에 미륵이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대답했다.

[일단 저 아이가 보여주는 악의 종주를 봐야겠습니다.]

여래의 말이 끝나자.

처용이 숨을 깊이 내쉬면서 기억의 실타래를 마무리했다.

“후, 이럴 줄 알았으면 대마도사에게 좀 더 제대로 배울 걸 그랬습니다.”

처용은 여래의 부탁에 전보다 더 집중해서 기억을 담았다.

악의 종주가 사용한 능력, 권능, 생김새, 말투 등.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을 담아보려 노력했지만.

딱, 필요한 정도로만 마법을 배운 처용은 모든 것을 담는 것이 불가능했다.

[괜찮으니라, 그저 확인이 필요할 뿐이니까.]

이전처럼 성좌들이 처용의 기억을 확인했고.

크타니드에 관한 기억을 확인한 여래는 잠시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다른 이들이 여래의 대답을 기다릴 때.

[악의 종주는…….]

침묵하던 여래가 처용에게 말했다.

[태초신의 뒤틀린 파편과 죄악의 근원들이 모여 탄생한 존재가 맞느냐?]

“본인이 직접 그렇게 말해줬습니다만…….”

처용은 크타니드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몰랐다.

그가 직접 처용에게 말해준 것들을 확인할 방법도 없었고.

자신을 끊임없이 타락시키려는 크타니드의 말을 전부 신용할 생각도 없었으니까.

처용의 말에 짧게 침묵한 여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자야, 지금부터 내 말은 정확한 것이 아닌 가설일 뿐이니라.]

“스승님께서 해주신 말씀들은 대부분 진실에 가까웠었습니다.”

처용은 여래의 현명함과 통찰력을 깊게 신용하고 있었다.

회귀 전부터 여래와 오랜 시간 함께했었기에 가진 믿음이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나, 허나 말 그대로 이건 가설이니라.]

짧게 웃음을 보인 여래가 처용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그 전에, 네 생각으로는 마지막에 가한 공격이 크타니드에게 유효했다고 보느냐?]

여래의 질문에 처용이 잠시 생각에 잠기며 침묵했다.

겉으로 볼 때 크타니드는 멀쩡해 보였기에 유효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자꾸 마지막에 보인 모습이 생각났으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에 조금 이상해 보이긴 했는데…….”

[그렇다면, 치명상은 아니어도 무언가 영향을 준 것이라 가정을 해 보자꾸나.]

여래가 모두 들어보라는 듯 설명을 이었다.

[네 자폭으로 크타니드를 구성하는 근원들이 무언가 영향을 받았고.]

여래가 처용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 근원 중 하나가 네게 흘러들어온 상태로 회귀해 버린 것이라면?]

여래의 말을 들은 처용은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여래와 미륵이 알아본 바로는.

처용의 내면에 있는 악신의 기운을 순수와 근원이라고 표현했었다.

“나는 세상에 퍼졌던 ‘순수한 죄악의 근원’을 품고 있다…….”

처용은 크타니드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다시 상기하며 말했다.

“그 말이 진실이고 거기에 스승님의 가설을 대입하니 말이 되는군요. 하아.”

처용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회귀를 하고 다시 없을 반격의 기회가 온 줄 알았는데.

크타니드는 자신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는 폭탄을 심은 것이었다.

[다른 일보다도 계승자에게 붙은 근원을 없애야 합니다.]

보살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처용 역시 보살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처용은 지금도 집중을 하고 육체의 내면을 계속 관조하고 있었다.

“저 자신조차 그 근원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악의 기운 같은 특이점이나 이상한 부분은 찾을 수 없었다.

[없애는 것은 몰라도 억누를 방법은 있다.]

여래가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처용에게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여래의 말에 처용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당사자인 처용과 다른 두 성좌도 여래의 말을 기다리듯 그를 바라보았다.

[본래 마(魔)의 근원은 사람을 끊임없이 번뇌에 빠뜨리고 욕망을 부추기지.]

여래의 말을 들은 처용은 상위 악신들이 생각났다.

그들이 행하는 저주와 흑마법 중 일부가.

인간의 욕망을 크게 자극하고 부추기는 부류였으니까.

[그것을 거부할 의지와 신념을 가지면 된다. 너는 이미 자격을 가지고 있고.]

“신력이군요.”

처용은 여래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다.

마나와는 다른 한 존재의 의지와 신념을 나타내는.

그 존재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기운이 신력이었다.

특히, 계승자로서, 수호신으로서 굳건한 신념을 가지고 성장한 처용의 신력은.

상위 악신들을 넘어서 크타니드가 뻗는 타락의 힘에도 저항할 수 있었다.

“당분간 신력 회복에 집중해야겠군요. 어차피 그래야 했지만…….”

[우리도 도울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여래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처용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젠장! 관철의 대신인 내가 저것 하나 제대로 파악을 못하다니…….]

미륵은 자신이 처용의 내면에 자리 잡은 근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에 화난 듯 말했지만.

그는 계승자인 처용에게 생긴 문제를 성좌로서 해결해 주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었다.

처용 역시 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렇다 치지만, 미륵님의 눈으로도 보이지 않는다라…….’

관철의 대신인 그의 권능으로도 파악이 불가능한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신력을 회복함과 동시에 계속 파악해 보겠습니다.”

애초에 당장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하여 가만히 있을 처용이 아니었다.

돌파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이 가로막더라도.

지금까지 그래왔듯, 일단 부수려 시도하는 것이 처용이었으니까.

[당장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겠다만, 항상 그것을 의식하면서 주의하거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처용은 자신을 믿어주고 도와주는 성좌들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주저앉을 생각이 없었다.

“잠시 어머니만 뵙고 다시 오겠습니다.”

어제 집에 갈 수 없었던 처용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간략하게 설명을 했었다.

놀라셨을 어머니에게 무사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으로 안심시켜야 했다.

[다녀오거라. 제자야.]

여래의 말과 함께 처용이 게이트를 타고 사라졌다.

처용이 사라진 곳을 잠시 바라본 여래의 고개가 하늘을 바라보았고.

[두 분 다 보셨겠지요?]

생각하듯 눈을 감음과 동시에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 크타니드라는 악의 종주를.]

여래의 말을 들은 두 성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여래가 두 성좌에게 한 말은.

처용이 기억의 실타래로 집중할 때 했었던 대화의 연장선이었다.

[그자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권능’은 확실히 대신조차 위험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처용이 보여준 기억 속 크타니드의 무력은.

확실히 세계를 위협할 정도로 위험했다.

하지만, 여래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미래는 제 예상보다 더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래가 감았던 눈을 뜨며 말했다.

[그때의 저희는 너무 늦었던 것이로군요…….]

[젠장, 최악이라고 말했을 때부터 각오하긴 했다만…….]

여래의 말을 들은 두 성좌의 표정에 참담함이 드러났다.

[더 느긋하게 다른 성좌들의 감시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여래가 두 성좌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같은 의견입니다. 뒷짐 지고 저 녀석에게 맡기기만 할 수는 없군요.]

여래의 말에 동의하듯 미륵 역시 진지하게 답했다.

[혹, 제가 오래 자리를 비우면…….]

여래가 보살을 바라보며 말하자.

[걱정은 마세요. 그리고 우리의 계승자는 그리 약하지 않습니다.]

마치 그의 생각과 말을 알고 있다는 듯이.

보살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음을 보이며 답했다.

[여래님이 하시는 일도 저 아이를 위해서이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스승님.]

[호호, 그대에게 아주 오랜만에 듣는 말이로군요.]

보살은 과거 아주 오래전.

여래가 자신을 부르던 호칭을 오랜만에 말하자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차원 붕괴 이후, 오랜만에 그곳에 가보겠군요.]

관철의 대신 미륵.

그는 인간으로서 반신에 오른 여래와 보살과는 다르게.

태초신에게 사명을 부여받고 탄생한 선천적 신격이었다.

[‘관리자’의 권한을 쓰는 한이 있어도 최대한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태초신에게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은 성좌이기도 했었다.

[미륵님이 도와주신다면, 더 수월할 겁니다.]

여래 역시 미륵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여래가 감사를 전했다.

[제자 녀석이 보여준 기억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시 진지하게 말을 하던 여래의 목소리가 잠시 끊어졌고.

[그리고, 제가 짐작한, 아니 이젠 진실이 되어버렸군요.]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더니 분노가 섞여들었다.

항상 신선처럼 평온한 모습과 표정을 보이던 여래였지만.

여래의 푸른 눈동자는 마치 엄동설한과 같은 시린 한기가 일렁였고.

[제자 녀석이 순혈자들에게 안부를 묻기 전에.]

평온하던 표정과 눈은 분노를 표출하며 일그러져 있었다.

[저 역시 그 작자들에게 안부를 물어야겠군요.]

여래가 대신에 오른 이후.

이렇게 큰 감정과 외적인 표정에 변화를 보이는 모습은.

미륵과 보살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하하, 잘못하면 신계에서 또 줄초상이 나겠습니다.]

여래가 낮게 읊조린 말에 미륵이 기대된다는 듯 말했다.

미륵은 과거 여래의 역린을 잘못 건드린 멍청한 성좌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했었으니까.

[무모한 짓은 안 하리라 믿습니다. 제자님.]

그리고, 그 당시 미륵과 같은 목격자이자.

신계의 피바람을 겨우 중재했었던 보살이 걱정되는 듯 말했다.

[하하, 과거의 제가 아닙니다. 경거망동하게 행동할 생각은 없습니다.]

여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지만.

분노를 가득 담고 있는 시린 눈동자는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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